37화
스포트라이트
“이게 대체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타샤는 오늘 아침에 발간된 신문을 탁상에다 던지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발굴권이 아카데미 쪽으로 넘어갔다는 기사가 1면을 이루고 있었다.
어서 발굴이 시작되기만을 바라고 있던 그녀로서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용의 회명서가 눈 먼 놈들의 손에 넘어가게 생겼으니까.
“저도 방금 소식을 들은 터라….”
“일을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시종 하나비는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는 션, 카를과 다르게, 타샤와 하나비는 주종 관계가 확실했다. 그것이 네레스타 가의 가풍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타샤는 아주 까다로운 상사였다.
공을 세우면 상을 주고, 실수한 게 있으면 벌을 준다. 신상필벌이 확실하고, 맺고 끊는 게 뒤끝이 없다.
문제는 그녀부터가 이미 타고난 천재였고, 빈틈없는 성품이었기에 웬만해서는 절대 눈에 차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녀의 시종이 일 년에도 몇 번씩 바뀌는 이유였다.
“면목 없습니다.”
“없으면? 그걸로 끝이야? 이유와 대책을 가져와야 할 것 아냐!”
“대책은 현재 시종단이 강구 중입니다. 그리고 현재 이유는 파악 중이긴 합니다만, 조금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뭐가 이상한데?”
하나비는 순간 대답하기를 머뭇거렸다.
이걸 말해도 되는지 감이 서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타샤의 화를 더 부채질할 뿐이었다.
“뭐냐고 묻잖아!”
결국 하나비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면서 소리쳤다.
“아, 아무래도 션 님이 발굴권을 그냥 의도적으로 넘기신 것 같은 흔적이 있어서…!”
“뭐?”
감고 있는 하나비의 눈꺼풀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녀는 속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혼나더라도 그냥 말하지 말걸!’
처음 그런 보고를 들었을 때, 하나비는 수하에게 미친 소리 하지 말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무 이유 없이 발굴권을 그냥 떠넘긴다고?
되도 않는 소리였다.
역대 발굴되었던 용의 둥지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대강 드러난 부장품들조차도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 학계에서도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녔을 거라며 기대를 모으고 있는 곳이다.
더불어 베럭스 교수가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다가 발굴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그 가치는 더 몇 배로 늘어난 상태.
그런 곳을 포기한다는 건, 진짜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했던 것이다.
션이 지도교수였던 베럭스 교수와 뒷거래를 했을 가능성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서야 차기 가주직은 완전히 물 건너간 셈이니 생각이 있다면 절대 그러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 하나비는 이번에도 타샤의 화가 내려칠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뿐만 아니라, 이제야 겨우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시종단이 또 해체될지도 몰랐다.
그런데.
“흐응.”
화가 떨어지기는커녕 상큼한 콧소리가 들렸다.
하나비는 ‘혹시 아가씨의 새로운 분노 방식인가?’ 싶어 조심스레 한쪽 눈을 떴다가 놀라고 말았다.
타샤가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싱글싱글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들 봐라. 아주 요망하잖아?”
뭔가 자신은 모르는 무언가를 읽기라도 한 걸까.
타샤는 가만히 생각에 젖어있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이런 걸 그냥 놔두고 계실 분이 아니신데?”
“가주… 께서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고 계시지 않으셔서….”
“그것도 이미 이야기가 됐다는 뜻이네. 하여간 이런 건 나한테도 귀띔해주면 얼마나 좋아? 딸이라고 차별하시나.”
차별?
하나비는 쓰게 웃었다.
‘그런 일이 벌어졌다간 바로 날벼락부터 떨어뜨리실 거면서.’
네레스타 가는 보수적이고 계급 지향적이지만, 반대로 그만큼 능력주의의 가문이기도 하다.
한낱 노예 출신이던 자신이 재능을 인정받아, 비서라 할 수 있는 시종직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게 바로 그 증거가 아니던가.
“우리 학장님도 아주 더럽게 물리셨네. 정치를 좋아하긴 해도, 제법 실력은 괜찮으셨는데 말이지. 아, 혹시 아카데미 쪽으로 연결된 사업권 같은 거 있어?”
“기술 제휴 관련으로 네 건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분쟁에서 잠시 스톱된 상태여서….”
“그거 다시 가동할 준비해. 아니, 이참에 장학금 형식으로 투자도 진행한다. 아버지께서 저번에 나한테 넘기신 내탕금 있지? 그거 전부 때려박아.”
하나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예? 하지만 그래서는 원로들 쪽에서 말이 나올…!”
“흥! 영감님들이야 그냥 사사건건 딴죽이나 걸 줄 알지 뭘 안다고 그래? 그냥 내 말대로 해. 총장 선거가 끝나고 바로 접촉할 수 있도록. 대신에 방향은 바꿔.”
“…어디로 말씀이십니까?”
“원소학부.”
“…!”
베럭스 교수가 학장으로 있던 곳이 원소학부였다.
그런데 그곳에다 투자를 한다고?
“아직도 모르겠어? 이번 발굴권은 본 가도, 아카데미의 것도 아냐.”
하나비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그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충격의 연속이기 때문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예의가 없다며 한 소리를 쏘아붙였을 텐데도, 앞으로 있을 재미난 미래를 그려내는 타샤의 눈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원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화려한 꽃밭이 나는 법이거든. 그런 승자한테 가장 먼저 바로 줄을 대야 뭐든 확실하지. 그러니까 준비…!”
타샤는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흔들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다. 이런 깜찍한 쇼를 준비한 사람의 얼굴은 직접 봐야지. 선거 쪽으로 간다.”
하나비는 타샤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동안 더 바빠지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의 뒤를 허겁지겁 쫓았다.
문을 나서는 타샤는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앙큼해 보였다.
* * *
아카데미 총장 선거일이 되었다.
총장 선거의 규칙은 까다로운 편이었다.
선거 관리 위원회의 입회하에 7명의 후보를 두고 의결권을 가진 선거 대표들이 총 2차에 걸쳐 투표를 진행하고, 여기서 최종적으로 뽑힌 이를 이사회에서 임명한다.
55인의 선거위원은 각계에서 골고루 선출되도록 명시되어 있었다.
교수평의회와 직원 노동조합 및 총동창회, 그리고 생도회에서 각기 10인을 선출하고, 남은 15석은 각각 황실과 마탑에서 채우는 형태였다.
1차 투표는 정오부터 반나절 동안 이뤄지며, 만약 1등의 득표수가 과반수를 이루지 못할 경우, 상위 2인만 두고 2차 투표를 진행했다.
또한, 최종 1인이 된다고 하여도, 이사회에서 불신임을 발표할 경우에는 처음부터 재투표가 이뤄질 때도 있었다.
물론,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지만.
여하튼 이토록 철저하게 되어 있는 이유는 그만큼 우스던 아카데미가 가진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더럽게 북적거리네.”
엘릭은 머리를 덮고 있던 로브를 슬쩍 뒤로 젖히면서 오랜만에 찾은 아카데미의 캠퍼스를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지난 몇 년간 그렇게 들락날락했던 곳인데, 오늘따라 전혀 다르게 보였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온갖 신문사의 취재진이며 마법사들, 시민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자공가에서 보낸 듯한 기사들도 더러 보일 정도였다.
한쪽에서는 ‘더러운 베럭스 학장은 물러나라!’라는 푯말을 들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탐사대에 투자했다가 쫄딱 망한 이들인 것 같았다.
“그거야 네가 그만큼 불을 질러댔으니까 그렇지, 새꺄!”
션은 그런 엘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투덜거리면서 손으로 엘릭의 로브를 꾹 눌렀다.
마법으로 얼굴을 조금 변형시켰다고 해도, 만약에 엘릭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래! 원래 같았으면 그냥 아카데미 내에서나 조금 시끄럽다 말겠지. 근데 요 몇 달간 무슨 일이 있었냐? 둥지 파동에 학장님 실수에… 으! 제국민 중에 이번 일에 관심 안 가질 사람이 없을걸?”
지난 두 달 동안 그렇게 신문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댔으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음.”
“네가 얼마나 크게 판을 벌여놨는지 이제야 좀 감이 오냐?”
션은 엘릭이 침음을 길게 흘리자 굳은 표정이 조금 풀렸다.
이미 엎지른 물이니 회수할 수는 없어도, 이제 이번 일을 계기로 반성을 좀 하….
“마음에 드네.”
“뭐?”
하지만 돌아온 대답에 한순간 션은 벙찌고 말았다.
그리고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그만큼 내 이름값도 올라가는 거잖아? 관객은 많을수록 좋지.”
“이 또라이 새…! 하! 내가 말을 말아야지, 말을.”
션은 손으로 얼굴을 덮고 말았다.
계속 옆에서 잔소리를 하면 뭣하랴. 애당초 귓등으로도 듣질 않는 것을.
“선거가 시작됩니다! 관람하실 분들은 중앙대관으로 모이십시오!”
그때, 한쪽에서 사람들을 통제하던 관리 위원의 말에 인파들이 서쪽으로 우르르 몰렸다.
“가보자.”
“그래. 가자, 가. 나도 더 이상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엘릭과 함께 중앙대관으로 들어갔다.
* * *
빈 객석에 적당히 앉을 때쯤.
7인의 후보자들이 차례로 나와 선거 대표들에게 한창 최종 연설을 하고 있었다.
“저기 안 가고 싶냐?”
션은 위원석 중 비어있는 한 곳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메르빙거 석(席).
원래 황실과 마탑에 배정된 15석 중 1석은 마도명문의 것.
초대 총장을 기리는 의미로 주어진 것이니, 원래는 엘릭의 자리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자질 논란으로 엘릭은 자처해서 공석을 유지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음, 굳이?”
그러나 평소 갈증 어린 눈을 보내던 것과 다르게.
엘릭은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다.
“이젠 굳이 목맬 필요 없잖아?”
“하긴.”
필요할 때 얼마든지 앉겠다는 투.
션은 자신이 별걸 다 물어봤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엘릭은 이제 그동안 그의 천재성을 묶고 있던 사슬을 전부 떨쳐냈다. 저 자신만만하고 대범한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저런 자잘한 것에 얽매이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어쩐지 션은 자신도 속이 후련해진 것 같아 좀 더 마음 편하게 선거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래. 쇼일 뿐이라니까,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겠지. 그나저나….’
션은 엘릭에 대한 걱정을 한쪽으로 치우고, 눈대중으로 빠르게 남은 위원석을 훑어보았다.
‘아버지 대신에 누님이 오신다고 하지 않았나? 어디 있…! 어이구? 그럼 그렇지.’
비어있는 좌석은 메르빙거의 것만이 아니었다. 황실의 위원들에게 배정된 좌석들도 전부 비어있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투표가 시작되지 않기도 했지만, 그들의 신분이 위원 중에서 가장 높기 때문이었다.
일찍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격에 맞지 않다고 여겼으니까.
그래서 선거 대표들 전부 거기에 대해서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였지만.
정작 일찍 차지하고 있어야 할 마탑 쪽 좌석 중 하나가 비어있는 것에는 고의로 눈치를 주면서 불쾌감을 보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탑의 7석 중 6개는 육망성의 것. 비어있는 좌석은 네레스타 가의 것이었다.
다행히 가주 대행으로 참여하기로 된 타샤 네레스타가 마침 단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쪽으로 쏟아지는 눈총과 다르게, 타샤는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여유롭게 단상 한복판을 가로지르더니, 눈이 마주친 위원들에게는 그냥 머리만 까닥하고는 자기 자리에 앉아 다리까지 꼬았다.
그러자 옆으로 트여있던 치마가 갈라지면서 고양이 다리처럼 날렵하게 쭉 뻗은 각선미가 드러났다.
“크흡!”
“험험, 험!”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위원들은 타샤를 노려보다 말고 황급히 고개를 돌려 저마다 헛기침을 하기 바빴고.
몇몇은 아예 노골적으로 그녀를 노려보기까지 했다.
“네레스타 가의 영애께서는 이곳이 어떤 자리인지 별 감흥이 없으신 눈치이신가 보오?”
단정치 못하게 이게 무슨 짓이냐는 타박이었지만.
“그럴 리가요. 잘 알고 있죠. 아니, 오히려 여기 이 자리에 계신 그 누구보다도 훨씬.”
타샤는 턱을 들어 도도하게 대답하면서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잘 알고 있을걸요?”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
그곳에는 션과 엘릭이 있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