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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1화 (31/405)

31화

하산

콰콰콰-

엘릭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대체 아무 관련도 없는 시민들은 왜 건드리는 거지?’

-힘을 가진 자는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의무를 지녀야 하는 것이란다.

그건 어렸을 때부터 엘릭이 누누이 받아왔던 가르침이었다.

왜 가문이 이렇게 몰락하고 말았는지 던진 질문에, 아버지께서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을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가르침은 돌아가신 이후에도 누이가 이어서 계속 이어서 말해주었으니.

엘릭으로서는 그런 ‘상식’을 깨뜨리고 있는 저들이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았다.

저들의 노림수는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숨어있는 이사벨 등을 찾아내고자 이런 것이겠지.

실제로 사자나 마도사 중에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양민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도를 넘은 상황.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

‘치워버려야겠지.’

조부님이 소중하게 여기시고, 남기고자 하셨던 세상은 이런 모습이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엘릭은 마음을 다잡았다.

저들뿐만 아니라, 뒤에 있는 것까지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 될 것 같다고.

* * *

“대체 저런 새끼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3조장 시모난은 기겁하고 말았다.

비록 여태 사용한 스크롤은 두 장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명색이 4써클의 마법이었다.

그걸 단 한 번으로 그치게 만들어?

두 눈으로 목격하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화 속성에 있어 천적이라 할 수 있는 빙 속성 계통의 마법을 발현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넓은 범위에 걸쳐서 마력장을 펼치려면 그만큼 많은 마력을 소모하지 않나?

어디 따로 마도구라도 보유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휘이이!

상대는 그런 시모난의 궁금증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듯, 재차 새로운 마법을 발동시키고 있었다.

얼음 화살.

1써클이었나, 2써클이었나? 하여간 저조한 등급밖에 되지 않아, 마법 입문자들이 빙 속성을 깨달을 때 주로 구사한다는 마법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뭐가 저렇게 많냐고!’

그 수가 척 보기에도 백여 발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사람 주먹만 한 굵기를 가진 고드름이 허공에 한가득 응결되어 쏟아지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었으니.

지붕 위에 있던 엘릭이 이쪽으로 떨어지는 것과 당시에 눈발이 휘날리고, 고드름이 쏟아지자 위기감은 더욱 커졌다.

한평생 아무 생각 없이 동물적인 감각에만 의존한 채로 살아왔던 시모난의 머릿속에 붉은 등이 켜졌다.

어서 이곳에서 달아나라고!

“피해!”

시모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3조는 빠르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콰콰콰-

퍼퍼퍽!

갑작스러운 추위에 근육이 놀라 순간적으로 행동이 주춤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떨어진 고드름은 뾰족하고 단단했다.

“크악!”

“이게 뭐야!”

“내 팔! 내 파아아알!”

“젠장…! 저런 새끼가 대체 어디서!”

미처 마력장의 범위에서 달아나지 못한 청랑들이 줄줄이 피해를 입어 고통을 호소하는 가운데.

어떻게 오러 체인을 최대한으로 돌려서 얼음 화살을 쳐낸다고 해도, 그 뒤가 문제였다.

화살의 내구도가 너무 단단한 나머지 쳐내는 순간 손목이 탈골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충격이 컸고, 그로 인해 연이어 쏟아지는 얼음 화살까지 막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눈발은 또 얼마나 거센지 시야도 한껏 좁아져 도저히 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워 피해는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포메이션부터 지켜, 이 새끼들아!”

하지만 시모난이 마력을 담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데다가, 이미 몸에 익은 전술이 있기 때문에 3조 조원들은 어떻게든 마력장 범위에서 달아나고자 애썼다.

청랑은 각 조마다 지닌 각기 다른 특기에 맞는 전술을 보유하고 있는바.

그중 3조가 지닌 특기는 엄폐물을 활용한 기습.

그리고 많은 엄폐물이 존재하는 시가전(市街戰)은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장이기도 했다.

팟, 파밧-

쿠쿠쿵!

3조는 착실하게 건물 뒤편으로 난 길모퉁이나 낙석 더미 등으로 숨었다.

덕분에 얼음 화살은 애꿎은 엄폐물만 두들겨야만 했다.

죽은 조원은 둘.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이들은 훨씬 많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마법의 위력치고 피해가 적은 셈이었다.

시모난은 속으로 안심하면서도, 어떻게든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사의 모가지를 따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하지만 그러려면 이쪽도 먼저 안전을 확보하고 난 뒤에 기회를 노려야겠지.

그래서 수하들처럼 뒤로 내빼려는데.

“…흡!”

그 순간, 시모난은 엘릭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마침 도망치는 조원을 쫓아서 머리통을 부숴놓던 엘릭이 고개를 들었던 방향이 하필이면 이쪽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녀석의 눈이 너무 이상했다.

‘무슨 사람의 눈이!’

다른 마법이라도 발동하고 있는 것인지, 오묘한 오색 광채를 내고 있는 엘릭의 동공에 노출된 순간, 마치 전신이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모난’이라는 인격체가 낱낱이 해체되는 듯한 느낌.

너무나 한순간이었지만, 그로서는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은 소름 끼치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너구나? 대가리가.”

“…!”

콰아앙!

엘릭이 이쪽으로 몸을 날렸다.

쐐애애액-

“이런 젠자아아앙!”

시모난은 욕지기를 내뱉으면서 허겁지겁 허리춤에 걸려 있던 시미터(날이 완만하게 굽은 곡도曲刀)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대체 무슨 놈의 마법사가 저리도 몸놀림이 빠른지.

엘릭은 어느새 그의 눈앞까지 다다라 있었다.

속도만 따진다면, 자신보다도 훨씬 더 빠른 것 같았다!

“【얼고】, 【박혀라】.”

엘릭이 이쪽으로 손을 뻗었다.

손바닥 위로 성에가 잔뜩 차오르면서 빛을 잔뜩 머금은 듯 새하얗게 빛났다.

5써클의 ‘얼어붙은 손길’과 3써클의 ‘저주 심기’가 합쳐진 마법.

얼어붙은 손길은 손이 스치는 곳에다 강제로 빙독(氷毒)을 새기고.

저주 심기는 상대에게 특정 저주를 강제로 이식하는 특징을 자랑한다.

즉, 엘릭은 빙독을 저주로 가공하여 시모난에게 강제로 새겨 넣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단지 스치기만 해도 시모난은 절대 동상을 피할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혈관이 있는 곳까지 빙독이 파고들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부위 전체를 도려내야 할지도 모를 만큼 위험했다.

엘릭이 냉혹의 인장을 얻고 난 뒤에 개발해낸 활용법 중에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쉬이익!

손길이 시모난의 가슴팍을 후려치기 직전, 갑자기 아래에서부터 칼바람이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노리며 불어 닥쳤다.

심안이 아니었다면 놓칠 수도 있을 만큼 위협적인 공격.

엘릭은 본능적으로 한 발을 뒤로 내뺐다.

칼바람이 아슬아슬하게 그가 있던 자리를 통과하면서 손바닥과 부딪쳤다.

차아아앙!

쩌저정-

칼바람의 정체였던 검이 삽시간에 꽁꽁 얼어붙었다가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수없이 튀어 오르는 칼과 얼음 파편 사이로.

어느새 등장한 베스코프가 시모난을 뒤로 잡아당기면서 짤막하게 말했다.

“포메이션 B.”

시모난은 이를 악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대로 근방에 있던 건물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2조와 3조는 합동 훈련을 자주하는 편이었고, 각 상황에 맞는 진형도 이미 합을 맞춰놓은 상태.

베스코프가 방금 말한 진형은 내용이 아주 간단했다.

2조의 특기는 백병전(白兵戰). 그들이 상대의 발을 묶어 놓는 동안, 숨어있던 3조가 차례로 기습을 노리면서 상대를 사냥하는 것이었다.

주로 그들만으로 상대하기 힘든 전력을 갖춘 강자나, 소수 정예에 알맞은 전법이었다.

쉬쉬쉭-

베스코프는 허리춤에 걸려 있던 검들을 연거푸 뽑아 엘릭을 몰아쳤다.

그의 장기는 쌍검술. 크기와 무게가 같은 두 검을 연달아 사용하는 기예는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아주 까다롭다.

‘하물며 무도에는 일천할 마법사에게는 더더욱!’

차차차창!

아니나 다를까.

단숨에 전세가 역전되어 여태껏 청랑을 몰아치던 엘릭이 뒤로 물러나고, 베스코프가 공격을 퍼붓는 형태가 되고 말았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검격이 얼마나 날카롭고 예리한지, 엘릭은 공격을 일일이 피하는 것만으로도 급급할 정도였다.

다행히 심안이 열려 있고, 여전히 양손에 얼어붙은 손길이 발동되고 있는 중이라 큰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그래도 위험해 보이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렇기에 베스코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했다.

‘놈은 강하다. 그러니 본격적인 전력이 드러나기 전에… 해치워야 한다!’

더블 체인이 맹렬하게 울렸다. 쌍검 위로 오러가 잔뜩 새겨지면서 엘릭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조장!”

그리고 그런 베스코프를 따라 2조도 이쪽으로 몰려들었다.

파바박!

엘릭이 마도사 급의 마법사라고 판단하고, 베스코프가 밀려날 것을 우려해 합공을 하기 위해서였다.

더불어 3조도 바쁘게 움직이면서 공격할 기회를 엿보았다.

엘릭에게로 쏟아지는 칼날이 더 많아졌다.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대는 청랑들 사이로, 엘릭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그런데.

‘…웃어?’

베스코프는 엘릭을 밀어붙이다 말고, 순간 그의 입가에 맺힌 엷은 미소를 놓치지 않았다.

두 눈 역시 위기에 빠진 것 치고는 아주 담담했다.

마치 먹잇감이 목덜미를 드러내기를 기다리고 있는 맹수의 눈빛 같은…!

‘설마!’

베스코프가 헛바람을 들이키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찝찝했던 점이 있었다.

원래 마법사란 작자들은 수식 연산과 마력 가공이라는 복잡한 과정 때문에, 전투에 임할 때 절대 전면에 나서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하지만 엘릭은 그런 기존 상식을 전부 무시하고 전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지금까지는 상대하기 바쁘니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그가 오만하다고만 생각했었지만.

만약 여기에 다른 노림수가 있었던 거라면?

베스코프뿐만 아닌 그들 전체가 한데 몰려들기를 바라기라도 했다면!

“안…!”

한순간, 엘릭이 몸을 넙죽 엎드리면서 양손을 바닥에다 짚었다.

쩌저저적-

한순간, 그들이 있던 대지 위로 마력장이 파문처럼 잔뜩 퍼져 나가며 삽시간에 두꺼운 빙판이 깔리고.

“【터져라】.”

짧은 언령과 함께.

퍼퍼퍼펑!

빙판이 일제히 터져나갔다.

“크아아악!”

“아아악!”

“컥, 커헉! 사, 살려…!”

엘릭에게로 가까이 접근했던 청랑들은 폭발에 그대로 휩쓸려 몸뚱이가 강제로 찢겨나가며 절명하고 말았다.

하지만 폭발에 직접 노출되지 않았던 이들이라고 해서 피해가 절대 작은 건 아니었다.

수백 수천 개로 튀어 오른 얼음 파편들이 그들의 몸뚱이를 과녁 삼아 속속들이 박혔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엘릭이 터뜨린 빙판은 얼어붙은 손길을 이용해 만든 것.

즉, 그 속에는 막대한 빙독이 담겨 있었다는 점이었다.

얼음 파편이 박힌 자리로 빙독이 삽시간에 퍼졌다. 동상과 괴사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삽시간에 어떤 이는 팔이 얼어붙고 누군가는 다리가 땅바닥에 눌어붙었다. 재수 없게 복부에 박힌 자는 속이 얼어붙어 그대로 굳어버렸다.

살갗 위로 성에가 잔뜩 차오르고, 새하얀 입김을 뿜어대는 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얼음 지뢰.

여태 즐겨 사용하던 화염 지뢰를 응용한 것으로, 저주로 가공한 빙독을 최대한 퍼뜨릴 용도로 사용한 것이다.

2조는 그렇게 반파(半破)되고 말았다.

그리고 남은 절반은.

“이제야 좀 보기 좋네. 【휘몰아쳐라】.”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동시에 다시 휘몰아치는 얼음 폭풍에 그대로 갈가리 찢겨나갔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도망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빙독에 조금이라도 노출된 이상, 관절 중 어느 한 군데가 망가져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니까.

휘휘휘휘!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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