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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5화 (25/405)

25화

하산

-아시다시피 6개 이상의 오러 체인은 제국제일검이신 ‘황금 사자’만이 이룬 경지…. 그것을 위해 마력을 억지로 돌리시다가 역류를 일으킨 것 같습니다.

-그런…!

-대로는 오러를 형성하시기는커녕 마력을 돌리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니,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시면 근육이 괴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죠?

-절맥증은 기혈이 꼬이면서 마력의 순환이 중단되는 병이니, 이 순환을 바로 잡으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방법이, 뭔가요?

-그것이….

헤르만 바일의 입마증이 치료하기 힘든 것은 그가 오히려 너무 많은 마력을 보유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많은 마력이 역류하면서 성질이 난폭해지니, 몸이 저절로 망가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바로 다스려야만 하는 것인데….

문제는 그게 절대 쉽지가 않다는 점이었다.

청사자의 마력을 가라앉힐 만한 물건은 ‘보물’이나 마찬가지이니 극히 드물 수밖에 없었고, 있다고 해도 아주 귀하게 여겨졌으니까.

처음에는 마탑이나 아카데미에 협조 요청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번에 그대들의 지배 가문인 ‘사자공가’에서 본 탑의 마법사 다섯을 죽인 적이 있었지.

-하지만 저희 청사자는 그 일과 무관한…!

-그래도 그대들 역시 같은 사자가 아니오?

-본 아카데미에서 보유하고 있는 아티팩트는 모두 학문 연구 관리를 위해 특별 관리 되고 있어 외부로의 유출이 불가합니다. 필요하시다면 청사자께서 직접 내방하시어….

마법에 마탑이 있어 마법사와 정령사들의 지붕을 자처한다면.

무도에는 사자공가가 있어 기사와 전사들의 수장을 표방하니.

마탑과 사자공가의 충돌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지고 있었고, 여기에 대해서는 황실에서도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니 마탑과 우스던 아카데미에서는 사자공가의 봉신(封臣)을 자처하는 청사자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

이사벨은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각지로 사람을 보내어 수소문을 거듭했다.

그러다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아주 오랜 옛날, 설인의 고원에 ‘설산왕’이라는 존재가 살아 대륙의 동북부를 거머쥐고, 영토를 빙산과 눈보라로 가득 채운 적이 있노라고.

그리고 그의 위대함을 기리기 위해 설인들이 무덤을 만들어 그 안에다 설산왕의 사리를 단단히 봉해놓고 있다고 말이다.

어느 지역에서나 유행할 수밖에 없는 민담이었지만, 이사벨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추가 조사를 강행하여 새로운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설산왕의 무덤은 정말 실존한다고!

그리고 실제로 여러 단서를 조합하여 무덤이 있으리라 유추되는 후보지까지 파악할 수 있었으니.

이사벨이 믿을 수 있는 기사 여섯을 대동한 채 가문을 나서게 된 배경이 바로 이것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녀가 치료법을 찾아 움직인다는 소식이 다른 이의 귀에 들어갔다는 점이었다.

‘숙부님… 대체 당신의 추악함은 어디가 끝인 거죠?’

그동안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헤르만 바일의 배다른 동생, 파울 바일이 움직인 것이다.

첫째는 가문의 기사 중 중역이라 할 수 있는 3체인(Triple-Aura Chain) 이상의 ‘엑스퍼트(Expert)’들이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는 것.

‘사자는 강자만을 따른다’는 제일 규율답게, 가문의 기사들은 대개 검을 제대로 쥐어본 적도 없는 이사벨을 꺼리는 눈치였고.

이미 몇몇은 파울 바일 쪽으로 직접 줄을 대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사태를 관망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자객을 보냈다는 것.

‘얀, 스온….’

이미 출발할 때 기사 둘을 잃었고, 거룡 산맥에서도 그들과 조우해 이 사태까지 내몰리고 말았다.

다행히 설산왕이 묻혀 있을 거라고 짐작되는 장소 인근까지는 찾을 수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으니 자꾸만 조바심이 들었다.

‘마도학에서는 마나 스트림이 좁고 깊은 곳으로 흐른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크레바스 같은 곳이라면…!’

그러다 이사벨은 무언가 떠오르는 것이 있어 다시 지형을 살피려는데.

“…아가씨.”

갑자기 첸의 걸음이 멈췄다.

진지한 목소리.

이사벨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숨으십시오! 에드!”

“아가씨, 이쪽으로!”

오른팔을 잃었던 기사, 에드가 재빨리 이사벨의 팔을 낚아채면서 근방에 있던 바위 뒤로 숨었다.

그리고.

“그동안 어디에 계셨나 했더니. 여기에 계셨군.”

눈보라를 가로지르면서 여섯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같이 흉흉한 기세를 뿌리는 이들.

‘청랑(靑狼)이 여기까지…!’

파울 바일이 비밀리에 키웠다는 수족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서로 간에 그동안 고생한 것도 있으니 시간도 아낄 겸 서둘러 끝내드리겠소. 보아하니 아가씨께서도 이 근방에 계신 듯하고?”

청랑의 6조장, 하눌은 주변에 나 있는 발자국들을 보면서 피식 웃고는 손을 아래로 내렸다.

파밧!

첸은 이를 악물면서 재빨리 오러 체인을 돌렸다.

이미 오랜 추격으로 체력과 마력이 바닥 난 지 오래였지만.

어떻게든 이사벨이 도망칠 시간은 벌어야 했다.

* * *

“와우…! 겁나 춥네!”

엘릭이 안가에서 나왔을 때는 안배가 시작된 지 딱 한 달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온갖 온도 조절 마법으로 포근했던 안가와 다르게, 바깥은 눈보라가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냥 단순히 협곡의 상승 기류가 거친 게 아니었다. 크레바스 위로 드러난 하늘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밟아라】.”

엘릭은 별 어려움 없이 크레바스를 벗어날 수 있었다.

마력을 운용하는 솜씨나, 언령 마법의 완성도가 한 달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었으니까.

협곡의 끄트머리까지 완성된 얼음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그새 지형이 확 달라진 설원이 나타났다.

“역시. 없네.”

엘릭은 주변을 쓱 훑어보고는 실웃음을 흘렸다.

여기까지 안내해줬던 ‘푸른 눈꽃’ 부족장이 혹시나 있을까 둘러봤지만,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그렇게 큰소리를 뻥뻥 치더니.

그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아 죽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냥 바로 내뺐던지.

“한 번 가볼까?”

엘릭은 녀석도 놀릴 겸, 길잡이도 구할 겸 해서 푸른 눈꽃의 부족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안배에서 너무 오랫동안 설인들과 아웅다웅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설산왕의 인장을 삼켰기 때문일까?

엘릭은 어쩐지 설인이란 종족이 조금 친숙하게 느껴졌다.

* * *

“…뭐야, 이거?”

자신을 보면 녀석이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엘릭을 맞이한 건, 잿더미가 된 채 눈에 파묻혀 있던 설인 마을이었다.

곳곳에 널브러진 설인의 사체는 하나 같이 무언가에 쫓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마을은 노략질과 방화를 당한 흔적이 크게 남아있었다.

외부에서 대대적인 침입이 있었다는 뜻.

그리고.

“….”

한쪽 구석에서 발견된 부족장은 누군가와 크게 다퉜던 건지 전신이 온통 상처로 얼룩진 채 피범벅이 되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분노와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서는 원한이 서려 있었으니.

죽기 직전까지 저항을 하다 살해를 당한 것 같았다.

『유흥이라도 즐긴 모양이로군.』

메피스토는 무미건조한 어투로 그렇게 품평했다.

“유흥…?”

『그래. 딱 보면 모르겠느냐? 충분히 바로 죽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을 질질 끌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천천히 죽인 티가 확 나는 것을. 흐흐. 누군진 몰라도 웬만한 마족보다도 더 악독한 심정을 가진 놈들이로고.』

마왕조차도 악독하다고 표현할 정도라면, 비정상이란 뜻이다.

‘이건 좀 엿 같은데.’

엘릭은 혀를 찼다.

물론, 그 역시 이들을 뭐라고 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역시 설인의 고원으로 들어오고 나서 숱하게 많은 설인 부족들을 불태웠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그들을 갖고 놀거나 한 적은 없었다.

어쩐지 기분도 불쾌했고.

‘이게 전부 설산왕의 업을 삼켜서라고.’

업을 삼킨다는 것은 그 존재가 산 인생을 훔친다는 뜻.

당연히 어느 정도 감정적인 동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이들은 다른 설인 부족과 다르게 엘릭이 안가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곳이기도 하니,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후우!”

엘릭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자 했다.

설인은 설인. 설산왕은 설산왕이다.

그가 설산왕에게서 받은 유지는 어디까지나 냉혹의 인장을 완성하는 것뿐.

굳이 설인에 대해 동정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

팟!

엘릭은 마을을 도망치듯이 떠났다.

* * *

하지만 엘릭은 얼마 움직이지 못했다.

“음?”

산자락을 내려오던 중에 결이 비정상적으로 뭉쳐 있는 곳을 발견해 그쪽으로 걸음을 틀었다가, 충격적인 현장을 목격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밍마…?”

눈으로 반쯤 파묻힌 자리.

익숙한 얼굴을 한 소년이 고통에 잔뜩 젖은 채로 쓰러져 있었다.

설인의 고원을 오를 적에 말 많고 눈치 없던 길잡이, 쿡 밍마였다.

『음.』

녀석을 싫어하던 메피스토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죽은 건 밍마만이 아니었다.

엘릭과 함께 움직이던 몬스터 헌터들이며 약초꾼들까지, 여객들 모두가 전부 끔찍하게 살해되어 있었다.

설인 마을에서 메피스토가 말했던 것처럼 한껏 ‘유흥’을 즐기다 죽인 게 분명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었으니.

“이거.”

엘릭의 고개가 비딱하게 꼬였다.

“좀 많이 엿 같은데?”

* * *

“흔적으로 보건대, 두 곳 모두 범인은 같아요. 숫자는 총 열 명. 그것도 하나 같이 오러 체인을 지닌 유저(User) 이상이 분명해요.”

엘릭은 날카롭게 현장을 훑어보면서 가해자들의 신원과 정체를 분석했다.

사건이 벌어진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을 텐데도, 날씨가 날씨다 보니 현장 보존이 잘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를 복원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예전부터 묻고 싶었던 것인데. 유저가 대체 뭐지?』

“음? 아. 메피스토 때는 그런 구분이 없었겠네요.”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묻지 않느냐.』

“오러 체인을 가진 놈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러 체인?』

“예.”

엘릭은 메피스토를 위해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다.

본디 마나는 마법사들을 위해 내려진 축복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마나를 가공하는 방법이 다양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기사와 전사 같은 무도가들은 마나를 신체에 적용할 방법을 강구하다 끝내 오러(Aura)를 개발하게 된다.

마법사들이 심장에다 마나 써클을 새겨 기적을 행사하지만.

무도가들은 단전에다 오러 체인을 엮어 육체를 강화시키니.

그 단계는 크게 5개로 구분된다.

1개의 오러 체인을 가진 유저.

2개는 어드밴스(Advanced).

3개는 엑스퍼트(Expert).

4개는 마스터(Master).

5개는 슈페리어(Superior).

“흔히 3개의 오러 체인을 가진 엑스퍼트가 마법사로 치면 마도사 급으로 분류되긴 합니다만… 그 안에서도 실력이 천차만별로 갈리니 딱 이렇다 정의하긴 어렵습니다.”

『그럼 5개가 끝인가?』

메피스토는 흘러버린 세월만큼 크게 바뀐 무력 체계에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보통 그렇게 구분되긴 합니다만, 없는 건 아닙니다. 딱 유일하게 그 이상의 오러 체인을 구성한 사람이 있거든요.”

『호오. 그게 누구지?』

“‘황금 사자’란 자입니다.”

메피스토가 차갑게 웃었다.

『광오한 별칭이로군.』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죠.”

『왜지?』

“오늘날 대륙에서 가장 강한 존재니까요.”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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