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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11화 (11/405)

11화

재능을 깨우다

엘릭은 하늘을 유영하는 동안 생각했다.

‘부족해. 이 이상으로 발전시키기에는.’

엘릭의 재능에 경악했던 메피스토와 다르게.

엘릭은 스스로의 한계를 조금씩 자각하고 있었다.

‘언령 마법이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아.’

정확하게는 아카데미와 같은 ‘체계적인 마도학’을 익힌 이들에게 전부 맞지 않다는 표현이 옳겠지만.

이미지를 구상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었다.

마법이란 분야를 쉽게 이해하고 습득하기 위해 만들었던 ‘체계’가, 상상력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이룬 진전들은 그동안 억눌렸던 성장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일 뿐이야.’

상상력의 빈곤을 채울만한 다른 자극이 필요했다.

그러나.

현재 그는 새로운 성장을 이루기에 당장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두 가지나 있었다.

스승.

그리고 실전.

‘지금 내가 이룬 성취만 가지고도 아카데미로 돌아간다면 교수진들이 저마다 전부 지도 교수가 되겠다고 나서겠지만… 그들로는 안 돼.’

그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고, 올바른 마도의 길로 인도해 줄 ‘사부’를 필요로 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아카데미의 교수진은 전부 꽝이었다.

‘그들의 밑에 들어가서야 밑천만 홀라당 빼앗길 테니까.’

마정석을 연구해보겠답시고, 몸 해부라도 나서지 않으면 다행일 테지.

‘수준도 떨어지고. 최소한 현자 급… 혹은 육망성의 성주쯤은 되어야 해.’

자신의 비밀을 칼 같이 지켜주고, 정신적인 버팀목이 될 만한 인품.

기존 학계에서도 ‘신비학’으로 남아있는 용언 마법을 자신과 같이 머리를 맞대어 고민해주고, 인도해줄 수 있을 깊은 학식.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을 정치적인 위상.

이런 모든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이 있을까?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있다 해도 접점도 없었고.

‘이럴 때일수록 할아버님이 계셨더라면…! 아니, 아버지와 함께 돌아가셨다던 숙부님 중에 한 분이라도 계셨어도…….’

엘릭은 이제야 어째서 ‘명가(名家)’와 ‘명문(名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걸 바랄 수가 없기에 생각이 깊어지던 그때.

볼 수 있었다.

‘어…?’

아니, 정확하게는 다시 보게 되었다.

자신을 증오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왕, 메피스토를.

* * *

‘잠깐. 내가 왜 그동안 이 생각을 못 했지? 따지자면 메피스토만큼 스승으로 제격인 사람도 없잖아?’

엘릭은 순간 혹한 마음이 들었다.

메피스토 정도라면 뛰어난 식견과 지식도 당연하고.

거기다 인품은 별개로 비밀 보장(?)도 가능했다.

문제가 있다면, 저렇게 자신을 싫어하는데 순순히 도와주겠냐는 것인데….

그래도 일단 부딪쳐보자는 생각에 마법을 좀 가르쳐주면 안 되냐는 질문을 던졌고.

『그런다고 해서 본 왕이 얻을 이득은 무엇이냐?』

아예 딱 잘라 거절을 들을 줄 알았던 것과 다르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반응 수위가 별 반응이 없자 기쁘기보다는 의아함이 먼저 들었다.

‘이 아저씨,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몰락 귀족으로 살아왔고, 오랫동안 유급을 겪다 보니 엘릭은 자연스레 빠른 눈치를 갖게 되었다.

덕분에 메피스토에게서 수상쩍은 구석을 단번에 잡아챌 수 있었다.

‘일단은 넘어가는 척해볼까.’

우선은 메피스토의 꿍꿍이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했으니까.

『너는 본 왕의 육체와 마기를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진명’까지도 가져갔다. 그런데 너를 도와 달라? 제정신으로 하는 말은 절대 아닐 테지?』

‘진명?’

엘릭은 순간 처음 듣는 단어가 의아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담담한 투로 말했다.

“흑마술에는 죽은 생령을 이용한 술수가 많다고 들었는데요. 그리고 연금술 쪽에는 호문클루스라고 해서 극의에 다다른다면, 인조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죠.”

『그래서?』

“그릇을 만들어드릴게요.”

『그릇? 하! 본 왕이 담길 수용체를 만들어주겠다는 거냐? 너 같은 인간 따위가?』

“그러니 그만큼 절 강하게 만들어주면 되잖아요?”

자신이 마법에 깊이 눈을 뜨면 뜰수록, 당신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메피스토는 팔짱을 끼면서 코웃음을 쳤다.

『그래도 부족하다만.』

“그럼 거래를 제시해 봐요. 어차피 제가 아무런 진전도 없어서야, 메피스토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으음.』

메피스토는 짐짓 고민하는 척하더니 차갑게 웃었다.

『역시나 싫다. 본 왕이 굳이 왜? 여태 쌓은 것들을 순순히 넘긴단 말이냐. 다른 걸 제시해라. 차라리 네가 본 왕의 권속으로 들어온다면 또 모를까?』

사실 메피스토는 이미 엘릭에게 마법을 가르쳐주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다만, 이렇게 튕기는 것은 일종의 심리적 보복이었다.

여태 엘릭 때문에 너무 속이 쓰렸으니까. 통 사정을 하게 만들어 조금이나마 한풀이를 하려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튕기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하나하나씩 밑천을 던져줄 참이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본 왕에게서 이것저것을 배우고, 그만큼 빠르게 강해진다면…! 최면과 암시도 자연스레 이뤄질 수밖에 없겠지. 그게 자신을 포박하는 덫인지도 모르고 말이야. 후후…!’

메피스토가 줄 가르침에는 ‘주박(呪縛)의 인(印)’이 파편처럼 아주 교묘하게 숨겨져 있을 예정이었다.

외운 이로 하여금 아주 조금씩 심마에 잠기게 만드는 흑마술.

처음에는 이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가랑비에 옷 젖듯이 주박의 인이 겹겹이 쌓일 것이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영혼이 메피스토의 손에 저당 잡혀 있으리라.

‘당장 녀석을 삼키지는 못한다. 그런다면 차라리 이 영혼을 영글게 만들어 삼키는 것이 오히려 나을 테지! 장기적으로도.’

이리 둘러봐도, 또 저리 둘러봐도 완벽한 계획이었다.

‘자, 어서 무릎을 꿇고, 본 왕에게 제자로 삼아달라고 애걸복걸하여라, 우매한 메르빙거여!’

한편으로는 한평생 다투기만 했던 ‘인외의 천적’을 발아래로 둔다는 사실이 아주 기쁘기도 했다.

그런데.

“아, 씨바. 더 이상 못 해 먹겠네.”

『음?』

메피스토는 당연히 들릴 줄 알았던 엘릭의 간절한 청원 대신, 욕설이 들리자 순간 자신이 환청을 들었나 싶었다.

“겁나 비싼 척하네. 이봐요, 아저씨. 흥정도 적당히 해야지, 자꾸 그런 식으로 나서면 국물도 없다는 거 몰라?”

엘릭은 짜증 난다는 듯이 짝다리를 짚으면서 가래침을 바닥에다 ‘퉤!’하고 내뱉었다.

순간, 아주 잠깐이나마 어벙한 표정을 짓던 메피스토는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 수치심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 새…!』

“【다물라】.”

『읍, 읍읍!』

“오. 혹시나 했는데, 잘 통하네?”

엘릭은 마왕의 사념체에게도 언령이 너무 잘 통하자 쾌재를 터뜨렸다.

반면에 메피스토는 뭐라고 자꾸 소리를 꽥꽥 질러댔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어 뭐라고 하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애교】.”

『읍읍! 으으으읍!』

메피스토는 어떻게든 저항을 시도해보려 했지만, 몸은 이미 엘릭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토라진 듯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갸웃거리면서 비음이 잔뜩 섞인 소리를 냈다.

『뀨?』

건장한 청년 남성의 굵직한 애교를 눈으로 봐야만 했던 엘릭은 순간 자신의 눈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으. 괜히 시켰네. 퉤!”

『으으으읍! 읍읍읍! 읍!』

메피스토는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는 식으로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물론, 말은 할 수 없었기에 얼굴만 시뻘겋게 달아올랐을 뿐이지만.

“혼자 공부하는 찐따라서 잘 안 들리는데?”

『읍읍읍!』

“하여간 생각 바뀌실 때까지 이렇게 계속 있어 봅시다.”

엘릭은 사악하게 웃어 보였다.

* * *

그 뒤로 ‘메피스토 쥐어짜기’가 시작되었다.

“생각이 바뀌시면, 여기에다가 알고 계신 언령 마법들 기술해주세요. 그럼 내용 봐서 풀어드릴게.”

『읍읍! 으읍!』

엘릭은 메피스토 앞에다 노트와 펜을 놔두고, 개인 수련에 몰두했다.

메피스토가 유령처럼 남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기본적인 물리력은 가지고 있어 펜을 움직이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메피스토는 강제로 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침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물론, 천년 넘게 봉인을 견뎌냈던 그에게 이 정도 침묵은 별 대수롭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단맛을 알게 된 아기는 단맛만 찾기 마련인 법.

메피스토도 마찬가지였다.

간만에 자유를 찾았던 그로서는 오히려 다시 침묵에 잠겨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쾅! 콰콰쾅!

엘릭이 2써클의 ‘화구(火球)’를 언령으로 풀어 지면에다 연거푸 박아 넣는 족족, 그의 가슴 속에서도 똑같이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마왕의 자존심이 있지, 어린 인간의 이딴 협박에 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버티고자 했지만.

그런 생활이 하루 이틀을 지나 닷새가 됐을 무렵에는.

『으으읍! 읍읍읍!』

결국 참지 못하고 노트로 달려가 무언가를 한참 동안 박박 끄적대고 말았다.

그리고 휙 하고 노트를 던지듯이 건넸다.

『읍읍!』

“이게 뭔데요? 오…?”

엘릭은 시큰둥하게 보다 말고, 곧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령 마법에 대한 기초 개론(基礎槪論)이 제법 상세하게 적혀 있었으니까.

아카데미에서도, 가문의 서고에서도 전혀 배우지 못했던 내용들.

실전된 지 오래라는 고대 지식이 분명했다.

딱!

엘릭은 감탄을 터뜨리면서 약속대로 손가락을 튕겨 묵언 상태를 해제시켜주었다.

『푸하! 이 빌어먹을 새…!』

“【다물라】.”

하지만 엘릭은 곧바로 메피스토를 묵언 상태로 되돌려버렸다.

“이 아저씨, 참 입이 험하시네. 학습 능력도 부족하시고. 이 뒤 내용 좀 더 자세하게 풀어 봐요. 그럼 다시 정상 참작해 드릴게.”

『으으으읍!』

그렇게 이틀 뒤에는 메피스토가 다시 노트를 붙잡고 말았고.

『으으으! 진짜…!』

“왜요? 불만 있으신가 봐요.”

『…아니. 그럴 리가.』

메피스토는 목 언저리까지 치밀어 오른 욕지기를 도로 삼켜야만 했다.

이대로 굴복하기엔 그놈의 마왕 자존심이 너무 상했지만… 어쩌겠나. 법보단 주먹이 가까운 것을.

“근데 오늘 기술하신 내용은 어제보다 분량이 좀 적네요?”

『그야 얼마나 쓰라고 했는지 말 안 했잖…!』

“【다시 다무시고】.”

『으으읍! 읍! 읍읍!』

“이 양반, 장사의 기초를 너무 모르시는구만. 분량은 무조건 전날보다 1.5배 더 많게 서술해주셔야죠? 그게 국룰인데.”

대체 누가 정한 룰인데!

“그럼 그날 하루는 묵언을 해제해드릴게요. 어때요? 콜?”

『읍읍읍!』

“뭐라구요? 하시겠다구요? 크으! 이제야 말이 좀 잘 통하시네.”

『으으읍!』

메피스토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제는 날조까지 서슴지 않게 하고 있으니!

문제는 자신이 그걸 무조건 수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마왕을 겁박하는 인간이라니.

‘젠장! 이 새끼가 있으면 사탄도 실직할 게 분명해!’

메피스토는 그제야 자신이 삼키려 했던 게 독사과였단 사실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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