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재능을 깨우다
“엘릭 메르빙거 생도는 지난밤 오전 2시 41분경, 갑작스러운 ‘마력 입마증’으로 인한 부정맥으로 심정지가 찾아와 현재 혼수상태에 빠진 상황이며, 이에 저희 의료진들은…!”
흔히 ‘육망성’이라고도 불리는 마탑의 주요 여섯 학파 중 한 곳이자, 션의 배경이기도 한 네레스타 가의 갑작스런 발표는.
황립마도병원에서 엘릭이 퇴원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교수진들이며 마법사들, 그리고 여러 취재진까지 전부 큰 충격으로 빠뜨리고 말았다.
지금, 누가 혼수상태라고?
“지, 지금 그 말씀은 엘릭 메르빙거 생도가 의식불명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한 경위를 설명해주십시오!”
“‘시온 트리뷴’의 다니엘 기자입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상처의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말씀해주십시오!”
“메르빙거 가의 적통이 의식이 없다면, 현재 둥지에 대한…!”
“엘릭 메르빙거 생도와 관련된 자세한 경위와 사실은 전부 따로 마탑에서 성명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나머지 질문들은 발표문을 확인해주십시오. 이상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붙잡고자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지만, 곧 병사들의 제지에 강제로 물러나야만 했다.
“아무리 수치라고 불렸다지만, 그래도 명색이 메르빙거 가의 적통이잖아? 공작이라고…!”
“젠장! 이렇게 되면 발견된 둥지에 대한 발굴권은 어떻게 되는 거야?”
“안 되겠어! 빨리 본사로 연락을 넣어서 어떻게든 파악을 해야…!”
그러다 그들은 자신들이 당장 해야 할 일을 정하고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취재진들은 특보가 될 게 분명한 이 사건을 빨리 본사로 알리기 위해 마차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교수진은 허공으로 붕 뜨게 생긴 둥지의 발굴에 대해 논의를 나누기 위해 다급히 아카데미로 이동했다.
그리고.
쾅!
“후! 하여간 이래서 사람 많은 건 정말 질색입니다. 앵무새도 아니고, 뭐가 그리 다들 말이 많은지 원.”
대변인, 카를 되니츠는 병원 뒤편에 마련된 어느 마차에 올라타면서 문을 거칠게 닫았다.
짙게 내뱉는 한숨에는 지긋지긋한 환멸이 가득 섞여 있었다.
“고생했다.”
맞은편에 있던 션 네레스타가 가볍게 웃으면서 손수건을 건네자, 카를은 그것을 빼앗듯이 가져가면서 투덜거렸다.
“아! 정말 이런 일 좀 그만 시키세요, 도련님. 매번 무슨 사고가 터지지나 않을까, 제가 얼마나 가슴을 졸이는지 아십니까?”
“그거 전부 내가 한 거 아냐.”
“압니다, 알아요. 전부 다 엘릭 님이 시킨 거겠지. 하지만 도련님도 이미 엘릭 님과 친하게 지내시는 이상 다를 건 없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션은 시종의 잔소리에 가만히 웃기만 했다.
귀족 사회에서, 그것도 가규(家規)가 아주 엄격하기로 유명한 네레스타 가에서, 시종이 감히 적통에게 이런 버릇없는 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션은 그런 걸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카를이 그의 부탁으로 이번에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는지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니, 사실 따지자면 이번만이 아니었다.
엘릭이 아카데미에서 션과 함께 사고를 치고 다닐 때마다, 뒷수습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으니까.
다만, 이번 사건은 그중에서도 가장 골치가 아플 뿐이었다.
“하여간 그건 그렇고.”
카를은 식은땀을 전부 털어내고, 손수건을 공손히 션에게 돌려주면서 진지한 투로 물었다.
“이번은 이전과는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마탑은 물론, 제국까지 통째로 들썩이게 만들 사건이란 말이에요. 때에 따라서는 일이 순조롭게 잘 풀려도 황실에서 조정 능멸이나 여론 선동을 운운하면서 제재를 가할 수도 있습니다.”
“알아.”
션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라고 해서 이번 사기극(?)이 가질 위험성을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성공하나 실패하나, 이번 일의 결과에 따른 후폭풍은 절대 작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엘릭은 이걸 아주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있었다.
자고로 판은 크게 흔들려야 따먹을 게 많은 법이니까.
‘똑똑한 놈이니 어련히 알아서 잘하지 않겠냐만은…. 그래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고생하는지는 좀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개새끼.’
듣자 하니 오늘 아침에 병실로 사람을 보냈을 때는 이미 엘릭이 사라지고 난 뒤라고 했다.
아무런 편지도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고 하니,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밥이나 굶고 다니지는 않을지, 어디 눈먼 거지들한테 둘러싸여 해코지나 당하지나 않을지.
아직 엘릭이 절맥증을 치료했단 사실을 모르는 션으로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나도 이번엔 최대한 불문에 부치려는 거잖아. 아는 사람은 우리 말고 없지?”
“이번 일을 주도한 이들 모두 입이 무거운 아이들로만 했으니 새어나갈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나머지는 천운에 맡겨보자고.”
“다만….”
“왜? 뭐 빠진 거라도 있어?”
션은 엘릭이 혹시 자신이 모르는 다른 사고라도 쳤나 싶어 미간을 살짝 구겼다.
카를도 이번만큼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살짝 머뭇거렸다.
“뭔데 그래?”
“타샤 아가씨께서….”
“누님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와?”
션은 가문에서 자신이 가장 꺼리는 혈육의 이름을 듣고 인상을 와락 구겼다.
“확실치는 않지만, 타샤 아가씨께서 아무래도 이번 일에 흥미를 보이시는 듯합니다.”
“뭐?”
* * *
[마도 명문의 유일 후계, 불명!]
[주인을 잃은 보석룡의 둥지… 이 뒤의 소유권은 누구의 손에?]
[희대의 대발견을 이룬 생도, 엘릭 메르빙거에 대한 추도가 성황을 이뤄.]
[우스던 아카데미의 교수진이 움직이다.]
[발굴권에 조심히 주장하는 베럭스 교수와 마학천문 연구소의 움직임, 집중 취재!]
[대발견, 그 숨겨진 이면에는 원소학부, 베럭스 학장의 물심양면 어린 도움이 있어.]
[누구도 알지 못했던, 오로지 꿈을 향해 달려가는 생도를 위해 묵묵히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주었던 베럭스 학장, 그는 대체 누구인가?]
[마학천문 연구소로 쏠리는 관심과 집중.]
“션 녀석, 생각했던 것보다 되게 잘하고 있나 보네.”
아침부터 수많은 시민이 바쁘게 오가는 번화가, 21번 대로 위.
마차 승강장에 배치된 가판대에는 여러 신문이 헤드라인만 노출한 채로 놓여 있었다.
하나 같이 동일한 이슈, 엘릭 메르빙거와 관련된 일들이었다.
그리고 그가 탐사대를 꾸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어느 친절한 교수의 ‘미담’까지.
대충 몇 개만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최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가판대를 보고 있던 그림자는 마음에 찬다는 듯이 히죽 웃고 있었다.
“음? 젊은이, 신문을 살 게 아니면 만지면 안…!”
가판대의 주인은 서서히 찾아오는 추위에 윗옷을 고쳐 입다 말고, 뒤로 돌아보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엥? 어디로 간 거지?”
조금 전까지 앞에 젊은 청년이 한 명 서 있었던 것 같았는데, 금세 사라지고 없었으니까.
주인은 대로변까지 나와서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그가 봤던 것과 비슷한 외양을 가진 사람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귀신에라도 홀렸나….”
너무 오래 밖에 있어서 일사병이라도 걸린 걸까.
아무래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피로가 많이 쌓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판대 주인은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가판대를 하나둘씩 빠르게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 * *
『숨어다니는 거로도 모자라, 이제는 지붕 위로 훌쩍훌쩍 잘도 뛰어다니는군. 본 왕의 힘을 가지고 그렇게 쥐새끼처럼 다니지 말란 말이다! 좀 더 화려하고, 파괴적인 마법도 많지 않냔 말이야!』
가판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어느 건물의 지붕 위에서.
메피스토는 팔짱을 낀 채로 옆에서 엘릭에게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엘릭은 그쪽으로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결을 짚고 단순히 마력을 부여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것을 결정화해서 매듭지을 수 있다면 좀 더 복잡한 용언… 아니, 언령도 구현이 가능할 것 같은데.”
엘릭은 머릿속으로 수식을 이래저래 정리를 해보더니, 내친김에 시도해볼 생각으로 결을 잡아 이쪽으로 끌어당겼다.
“【올라서】, 【날아라】.”
순간, 엘릭을 둘러싼 공기의 흐름이 살짝 변하는가 싶더니, 그의 몸이 단숨에 수직으로 하늘 높은 곳까지 떠올랐다.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엘릭이 순간 화들짝 놀랄 정도였다.
방금 지붕 위로 떠 오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높이와 속도.
이대로 있다간 자칫 정신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래서 엘릭은 몸을 둘러싼 결의 움직임을 조금씩 틀고자 했고, 곧 수직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천천히 몸을 틀 수 있었다.
그렇게 몇 차례에 걸쳐서 조절을 시도하자 방향 전환과 속도 변화에 조금씩 능숙해졌다.
그만큼 많은 양의 마력을 필요로 했지만, 드래곤 하트-언제부턴가 그가 ‘마정석(魔精石)’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마력 기관-는 끊임없이 마력을 제공하고 있었다.
아래에서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메피스토는 혀를 차고 있었다.
『용언의 기초인 언령을 깨우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는 동시 구동(더블 스펠)이 가능해졌다고…? 아무리 본 왕의 힘을 가져갔다지만, 20년 넘게 마법을 익히지도 않았던 몸뚱이로?』
엘릭이 본격적으로 마법을 단련하기 시작한 지 보름째.
메피스토는 그동안 엘릭의 천재성에 몇 번이나 놀랐으면서도, 다음날이 되면 또 놀라길 반복해야 했다.
그만큼 엘릭이 보이는 성장세는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아주 오래전 메르빙거와 대적했던 전적이 있기에, 메르빙거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괴물 집단인지를 잘 알고 있긴 했다.
무슨 축복이라도 받은 건지, 대대로 천재들만 배출해온 족속들.
오죽하면 한때 모든 마도의 종주이자, 인외의 천적이라고까지 불렸을까.
하지만.
‘저놈은 그런 수준도 훌쩍 뛰어넘고 있잖아!’
메피스토가 봐왔던 무수히 많은 메르빙거의 천재들도 엘릭에 비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 그쯤 되지 않을까?
‘저 정도면 저들의 시조…!’
메피스토는 어딘가에 생각이 미치다가 황급히 고개를 털었다.
생각이 깊어진 나머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불경을 저지를 뻔했으니까. 그 존재는 그들 사이에서도 절대적인 금기였다.
여하튼.
메피스토는 지난날 둥지에서 엘릭을 잡아먹고자 했던 자신의 지난 선택을 후회했다.
어쩐지 저런 육체를 가지고도 절맥증인 것이 이상하더라니.
애당초 찝찝한 건 손을 대는 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되면 기회를 틈타 저놈의 육체를 빼앗겠다는 계획도 틀어지고 말아지는데. 제길!’
메피스토는 조금씩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원래는 엘릭이 마정석을 다루는 것에 실패하기를 유도해 입마증이라도 부르려 했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너무 잘 다루니 이건 자신이 어떻게 손을 쓸 틈이 없었다.
그때.
“이봐요, 메피스토.”
슥!
메피스토 옆으로 엘릭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의 두 눈은 생기로 활활 타오르는 중이었다.
“마법 좀 가르쳐주면 안 돼요?”
언령 마법을 잇달아 성공하게 되자, 그만큼 학구열과 성취욕이 샘솟는 것일 테지.
메피스토는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화를 내려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한쪽 입술을 비틀었다.
‘잠깐. 이 기회를 잘만 이용하면, 마정석도 되찾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재능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