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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4화 (4/405)

4화

메르빙거 가의 수치

물론, 엘릭의 탐사대 쪽에는 손을 써 둔 상태였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마도명문의 유산이 이 베럭스의 손에 들어온다, 이 말이렷다? 후후후!”

베럭스 교수는 간만에 분기를 가라앉히고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다.

* * *

엘릭과 션은 목적지 카라굴 동굴에 도착하자마자 인상을 팍 찡그려야만 했다.

“너희들이 여기에 왜 있어?”

이미 선객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스무 명도 넘는 대인원이.

“왜 있긴? 당연히 동기 두 사람이 고생을 한다고 하니, 이렇게 다들 하나 같이 발 벗고 나선 거지.”

그때, 무리의 수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앞으로 나서면서 히죽 웃었다.

길게 늘어뜨린 붉은 머리칼과 비열하게 빛나는 녹색 눈동자. 엘릭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리번.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래도 엘릭, 션과 친했던 입학 동기. 하지만 엘릭이 절맥증이란 사실을 알고서는 대놓고 등을 돌렸던 녀석…….

지금은 베럭스 교수가 이끄는 ‘마학천문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이었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다른 세 사람도 마찬가지.

입학 동기이면서, 현재는 베럭스 교수의 밑에 있는 연구원들이었다.

그들은 차마 엘릭과 눈을 마주칠 용기가 나지 않았던지, 슬쩍 고개를 돌려 외면하거나 잔뜩 주눅이 든 모습으로 ‘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이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너희들…!”

션은 짜증이 가득 담긴 얼굴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리번은 순간 움찔거리고 말았다. 엘릭에게 당당하게 보일 수 있어도, 션은 그로서도 대적하기가 꺼려지는 존재였으니까.

배경도 배경이지만, 일단 직급부터 차이가 났다.

그래도 이번 임무는 베럭스 교수가 특별히 내린 명령.

그로서는 반드시 완수해야만 했다.

‘어차피 제깟 놈도 베럭스 교수님의 라인을 탄 건 똑같잖아? 지금 내가 짓밟는 건 메르빙거 가의 수치뿐이다. 션 쪽은 신경 쓰지 말자.’

리번은 눈에 힘을 잔뜩 주면서 한쪽 입술 끝을 비틀었다.

“보다시피 우리 말고도 탐사에 도움이 되라고 전문가들까지 따로 초빙을 했다니까? 학장님이 그만큼 너희들을 신임하시고 밀어주신다는 의미니까, 기쁘게 받아들이라고.”

엘릭은 리번이 전문가라고 데려온 녀석들을 보았다.

확실히 소지하고 있는 도구는 탐사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적외선을 탐지하는 쌍안경, 각종 기능이 탑재된 곡괭이, 몬스터들의 출현을 알리고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 등.

하지만 엘릭은 그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용병들인가? 미약하지만 마력향(魔力香)도 조금씩 풍기는 것 같고……. 동굴에서 정말 뭐라도 나온다면 그냥 가로챌 생각인 것 같은데.’

엘릭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학장님, 끝까지 이런 식으로 나온다고 하신다면 저도 어쩔 수 없죠.’

그냥 총장 선거를 망가뜨릴 정도로만 끝낼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와서야 그도 그냥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일단 탐사에만 집중한다.’

이들에 대한 대처는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을 테지.

‘그래도 그냥 호락호락하게 넘어가면 안 되니까…….’

순간, 엘릭이 한쪽 입술을 말아 올렸다.

“확실히. 학장님이 이렇게까지 지원해주실 줄은 생각도 못 했는걸. 거기다 특별히 동기로 뽑아서 보내주시고.”

“그렇지? 그러니까 이제 다 같이 동굴로 올라갈…….”

“그러니까 리번.”

엘릭은 시니컬하게 웃는 그대로 주변 일대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일단 탐사 시작 전에 동굴 주변의 생태계를 조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근방 1킬로미터 안에 있는 약초 정리 좀 해 줄래?”

“저, 전부…?”

“응. 전부 다. 너 혼자서. 가능하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리번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나 스폿(Mana Spot)을 탐사하기 전에는 주변 일대에 대한 사전 답사 및 조사가 가장 중요했다.

보통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에 걸쳐 이뤄지며, 필요 인원도 대략 수십 명.

그런데 그걸 혼자서 하라고?

이런 가파른 산지에서 그랬다간 골병이 들 수밖에 없었다.

리번으로서는 따질 수밖에 없었지만.

“여기 탐사대장은 난데……. 뭐, 듣기 싫다면 돌아가도 좋고.”

“…….”

엘릭이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은 리번의 입을 꾹 다물게 만들었다.

탐사대장의 말은 절대적이니, 안 듣는다면 내쫓길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이놈은 적으로 돌리는 게 아니야.’

션은 아주 잠깐이지만 리번에게 동정심이 갔다.

어쩐지 이곳에 오고 나서부터 엘릭의 인성질이 부쩍 늘어난 느낌이었다.

* * *

“【마나의 시나위】.”

션의 영창과 함께 손에 쥐고 있던 수정구에서 환한 빛무리가 터져 나오면서 산자락 전체로 흩어졌다.

‘고작 이런 데다가 마력 탐색구를 쓰게 될 줄이야…….’

션은 쓰게 웃고 말았다.

마력 탐색구는 원래 전쟁 시에 숨어 있는 마법사들을 탐지하기 위해 쓰이는 아주 비싼 전술용 마도구.

엘릭이 참 착실하게 베럭스 교수에게 삥을 뜯어냈다 싶었다.

‘지금쯤 화도 엄청 내고 계실 테고.’

션의 입가에 쓴웃음이 짙어지던 그때.

두우웅!

션은 한순간 머리가 깨지는 듯한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저 멀리.

산자락 중턱 부근에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금빛 기둥이 높이 치솟는 게 보였다.

“션!”

“설마, 이건……?”

“어, 어, 엄청난 크기의 마력장(魔力場)! 아, 아니, 결계……!”

션을 지켜보고 있던 리번 등의 눈동자 위로 경악이 퍼지고 말았다.

마력 탐색은 마나의 등급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그중에서도 황금빛은 대마도사 급의 최고 등급을 의미하는바.

거기다 저만한 규모와 크기라면……!

“저, 정말 저곳에 용의 둥지가……?”

“다들 조용! 어서 가보자.”

션은 파리해진 안색으로 이를 악물면서 소리쳤다.

엘릭은 그가 내상을 적잖게 입었다는 사실을 눈치챘지만, 곧장 탐사대를 움직였다.

“탐사대, 빛의 기둥이 꺼지기 전에 목적지로 이동한다.”

션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도, 만약 여기서 시간을 끌었다간 나중에 잔소리를 들을 게 분명했으니까.

팟-

엘릭은 탐사대원 중 한 명의 등에 업힌 채로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빛의 기둥이 맺힌 장소는 평평한 고원 지대였다.

울창한 숲이 가득한 주변과 다르게 나무도, 풀 한 포기조차도 자라지 않는 황무지.

심지어 흔한 바위조차도 없었다.

“이게 무슨……?”

탐사대원들은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균열이나 동굴이 보이지 않자, 잠시 당황한 표정이 되었지만.

“여기야.”

엘릭이 일대를 빠르게 쓱 훑더니 한 지점을 가리켰다.

“【플레어】.”

션이 정확히 그 위에다 불덩이를 작렬시키자, 마치 산사태가 일어난 것처럼 엄청난 폭발과 함께 지반이 그대로 움푹 내려앉았다.

그러자 드러나는 커다란 동혈.

“……!”

“……!”

“……!”

얼마나 크고 깊은지, 사람 수십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확 하고 풍기는 엄청난 양의 마력향은 한순간 마법사들에게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들은 가까스로 균형을 잡으면서도, 경악에 찬 시선으로 엘릭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딱 한 번 살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 거지?’

‘정말 내가 알고 있던 그 낙제생이 맞아……?’

마력 탐색구가 감지해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위치일 뿐, 정확한 지점까지 짚어내지는 못한다.

그건 일반적인 교수들이나 조교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사전 답사와 다른 전문 인력의 도움이 필요한 것인데… 그게 다 무소용해진 것이니.

그동안 엘릭이 공부를 잘한다고 해도 마도명문의 수치라고만 여기고 있던 동기들로서는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션은 그런 동기들에게 ‘이제 그걸 알았냐?’는 듯,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콧대를 높이 세웠고.

“진입한다.”

엘릭은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동혈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여기로… 고대에 용이 들락날락했단 거잖아?”

“깊다. 엄청.”

“어. 너무 스산하기도 하고. 마력을 돌려도 추위가 가시질 않아.”

동굴은 아주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외부에서 보던 것보다도 훨씬.

탐사대는 동굴을 이동하는 내내 그런 장엄한 규모에 완전히 압도되고 만 상태였다.

이미 고대 용종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지 천 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동굴 곳곳에 깊게 배어 있는 마력향은 마법사들의 숨을 턱 하고 막히게 만들었으니.

마치 엊그제까지만 해도 용이 이곳을 드나들었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것이다.

‘이미 다들 여기가 용의 둥지라는 것을 의심도 하지 않고 있어.’

션은 엘릭을 따라 선두를 자처하면서 길을 걷다가, 탐사대가 보이는 반응들을 엿보면서 피식 웃었다.

분명히 베럭스 교수로부터 엘릭을 방해하라는 명령을 들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미 그 자체를 잃어버리기라도 한 투였다.

션은 어쩔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저놈들도 마법사니까.’

미지를 파헤치고, 지식을 탐구하며, 진리를 좇는 선구자들.

마법사라면 당연히 용이라는 존재가 주는 신비로움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 앞에서는 정치적인 입장도 무용해지는 것이다.

‘그나저나 너무 추운데. 둥지 곳곳에 퍼져 있는 마력 결계가 이렇게 강할 수가 있나? 대체 여기 살던 존재는 어떤 종인 거지?’

션은 양손으로 연거푸 팔뚝을 문질러보았지만, 좀처럼 추위를 쫓을 수가 없었다.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잔뜩 흘러나왔다.

다른 마법사들도 일제히 써클을 맹렬하게 돌려보거나, 화 속성 마법을 발현해보았지만,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는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다이아몬드 드래곤.

보석룡(寶石龍).

학계에서도 아주 오랫동안 존재 여부에 대해 의심만 사다가, 최근에야 겨우 분류가 마무리되었다더니.

생전에 엄청난 마력을 품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빛을 다룬다는 골드나, 가장 큰 덩치를 가진 레드에 비교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션은 우선 눈에 보이는 것들부터 꼼꼼하게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러다.

‘얘는 또 뭘 하는 거야?’

뒤늦게 엘릭이 수첩에다 바쁘게 뭔가를 끼적대는 것을 보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용이 전부 룬 문자로 이뤄져 있었다.

마도학자들도 복잡하고 어려워서 쓰기를 꺼린다는 구어(舊語).

무슨 구조식 같은데…….

“뭐야, 그건?”

“술식 풀이. 해를 찾고 있었어.”

션은 번뜩 든 생각에 목소리를 최소로 낮추면서 물었다.

“너, 설마 결계의 구조식을 찾고 있는 거냐?”

“어.”

“……!”

너무나 간단하게 돌아오는 대답.

하지만 션은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용이 구현한 마법을 분석한다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사실 엘릭이 보고 있는 건 그보다 훨씬 크고 방대한 세계였다.

‘여긴… 노다지야.’

둥지에 입장한 순간부터 줄곧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히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확 뜨이고 있었다.

결계를 구성하는 프렉탈 구조.

공기를 순환케 하는 정령술.

석벽 곳곳에 박혀 여러 마법을 발현 중인 보석 마술.

침입자를 차단하는 각종 트랩이나, 신비한 마력을 품고 있는 온갖 기괴한 모양의 도형과 문자.

이러한 다양한 마법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커넥션 모델까지…….

엘릭은 가문 내력의 특유한 예민한 감각 덕분에 그러한 모든 것들을 보고, 느끼고, 맡을 수 있었다.

연원도 방식도 다른 마법들이 거대한 체계 안에서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돌아가는 모습이란.

마치 처음에 우주가 어떤 모양으로 이뤄져 있는지를 알았을 때처럼, 그를 흠뻑 취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용언 마법.’

그동안 공부하고 학습했던 것들이, 용언 마법이 주는 방대한 세계관 앞에서 낱낱이 해체되고, 새로운 형태로 재조립되는 것 같았다.

황홀(怳惚).

혹은 몰아(沒我).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법사라면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다는 기연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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