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메르빙거 가의 수치
꼴통.
독종.
미친개.
사고뭉치.
깽판왕.
인성 파탄자….
지금의 얌전하고 조용한(?) 엘릭의 이미지와 다르게.
사실 초창기 입학 시절의 엘릭을 아는 사람들, 특히 동기와 선배들은 섣불리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잘못 건드렸다간 정말 갖은 고생을 다 해야만 했으니까.
‘내가 이놈한테 처음에 말 걸었던 것도,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는 게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그런 거였지.’
션은 아직도 당시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입학 초창기. 마나를 응집하지 못하는 그를 보고 정말 초대 총장의 손자가 맞냐고, 혹시 밖에서 주워온 애가 아니냐고 놀림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거기에 엘릭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휴식 시간에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커다란 짱돌로 잠자던 녀석의 뒤통수를 그대로 까버렸다.
놀리던 녀석은 머리가 깨진 채로 병원에 실려 가 반년간 입원하고 말았고, 엘릭은 그대로 한 달 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때, 그 모습이 얼마나 기가 막히면서도 재미있던지.
징계위원회에 소환되고 나서도 전혀 주눅 드는 바 없이 당당하게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비호하기도 했다.
-저놈이 먼저 본 가를 모욕하였습니다. 한낱 자작가의 자제 따위가 무려 공작가를 모욕했다, 이 말입니다. 제국의 공작으로서 한낱 하급 귀족이 저지른 불명예에 대해 처벌을 했을 뿐인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 말이 구구절절 틀린 곳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위원회의 교수들은 물론, 상대측 부모들까지 별다른 말을 못 했을 정도였으니.
때문에 아카데미 내에서도 ‘학내에서 신분과 계급은 불문에 붙인다’는 학칙을 들어 정학 처분을 내렸을 뿐, 다른 추가 처벌은 주지 못했다.
그 뒤로도 엘릭은 자신 앞에서 비아냥거리는 이들이 있으면 상대가 선배라고 해도 어떤 식으로든 철저하게 보복했다.
결국 한 학기가 지났을 무렵에는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게 되어버렸으니.
‘꼴통’이니 ‘인성 파탄자’니 하는 별명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었다.
덕분에 엘릭을 뒷담화하는 학생들은 있을지언정, 그가 있을 때는 다들 피하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나이를 먹으면서 이제 좀 얌전해지나 싶었는데……. 하아!’
사실 두 여생도를 그냥 보내줬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제 사람 좀 됐네’라고 생각했었는데.
베럭스 교수가 도로 스위치를 켜버린 모양이었다.
션은 위험하게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곧 입을 꾹 다물었다.
“흐흐.”
음침하게 웃고 있는 엘릭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잘못했다간 자신도 거기에 같이 휩쓸릴 것 같았다.
* * *
엘릭과 션은 그 뒤로 탐사대를 꾸릴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탐사대 인원은 어떻게 꾸릴 거야? 일정에 맞춰서 인력을 뽑으려면 너무 촉박한데…….”
션은 가만히 눈살을 좁혔다.
현재 베럭스 교수의 탐사대가 잡은 탐사 일정은 2월 1일.
연말과 신년 행사가 모두 끝나면서 떠들썩한 분위기가 많이 가실 때, 많은 주목을 사기 위해서였다.
이번 기회를 통해 차기 총장 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엘릭과 션은 그보다 좀 더 빠른 시기를 노려야만 했다.
‘만약에 자신이 짚은 위치에 둥지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곧장 우리 쪽으로 마수를 뻗치려 들 테니까.’
위험은 피해야만 했다.
‘더구나 유급 발표가 나는 게 1월 말이기도 하고. 그 전에 반드시 둥지를 찾아야 해.’
이런 여러 복잡한 이유로, 엘릭은 탐사 일정을 1월 2일로 잡았다.
현재 날짜가 12월 4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한 달도 안 남은 셈.
베럭스 교수의 탐사대가 준비만 반년이 넘게 걸린 것에 비하면, 날치기나 다름없는 일정이었다.
션이 짜증을 내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응? 인력을 왜 뽑아?”
“무슨 소리야? 당연히 이제부터 사람 뽑아야지.”
“아니. 그러니까 이미 다 뽑았잖아.”
“그러니까 그게 무슨……!”
션은 엘릭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느냐고 따지려다가, 순간 뒤늦게 말뜻을 이해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소리 좀 지르지 말라니까.”
“어떻게 그런 걸 둘이서 갈…!”
“이렇게 좋은 기회를 왜 남들이랑 나눠 먹어?”
엘릭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션은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실 맞는 말이긴 했다.
이런 일일수록 숟가락을 얹는 사람은 적으면 적을수록 더 좋으니까.
“그래도 탐사를 하려면 준비를 할 게 많…!”
“그러니까 이럴 때일수록 학장님이 주신 기회를 잘 써먹어야지.”
“……?”
“뽑아먹을 수 있는 건 다 뽑아먹어야지.”
엘릭이 말하는 모습은 꼭 도박판에서 호구를 잡은 꾼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그닥 다그닥.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남단으로 향하는 대로 위의 팔륜마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정말 승인이 날 줄이야.”
션은 마차를 모는 내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거봐. 내가 될 거라고 했지?”
반면에 맞은편에 앉은 엘릭은 한결 거들먹거렸지만.
션은 대체 엘릭이 무슨 마술을 부렸는지를 알고 싶었다.
아니, 사실 알고는 있었다.
그냥 어안이 벙벙할 뿐이지.
‘꽤 많은 아티팩트가 필요하다고 올렸었는데……. 별다른 제재도 없이 너무 수월하게 통과 받았어.’
베럭스 교수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정말 지켜주었다.
필요한 자금 집행은 물론, 아카데미에서 보유하고 있는 중요 아티팩트들까지 무상으로 대여해 주었으니까.
개중에는 정말 승인이 날까 싶었던 4성급의 아티팩트도 있었으니.
원래 그만한 물건이 인가가 나는데 최소 한 달 이상, 정교수 이상의 직급이 아니면 보통 불발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조교수와 학과생으로만 이뤄진 탐사대에 허락된 것 자체가 윗선에서 엄청 힘을 썼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마도경식을 얻을 생각으로 눈이 멀었단 뜻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하아!’
특히 그들이 타고 있는 팔륜마차도, 아카데미에서 실시하는 프로젝트의 수장에게만 주어진다는 금색 표장(標章)이 찍혀 있었다.
‘외부에서 보기엔 학장으로서 조교수와 학과생의 프로젝트에 그만큼 지원해주었다는 본보기가 될 테니까…. 자기 이미지 메이킹에도 좋고, 실패한다면 그 덤터기를 전부 우리에게 다 뒤집어씌울 수 있으니 더 좋을 테고.’
만약 그들이 성공한다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니, 베럭스 교수로서는 탐사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이든 간에 절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셈이었다.
‘쩝.’
션은 어쩐지 베럭스 교수의 손아귀 위에서 놀아나는 것 같아 영 기분이 찝찝했지만.
엘릭은 그런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그런 노림수를 진즉에 파악하고, 뻔뻔하게 얻을 수 있는 건 죄다 얻어내면서 무리 없이 탐사 일정을 진행했다.
덕분에 예산부에서도 한참이나 비명을 질렀다던가.
‘대체 이놈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션은 베럭스 교수도 학장 인생을 다 걸어야 할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엘릭의 말이 떠올라, 그 속내를 대놓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괜히 알았다가는 자신만 노파심에 전전긍긍할 것 같았으니까.
‘그나저나…….’
그런 션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엘릭은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도 용케 잘도 책을 보고 있었다.
‘이 새끼는 대체 또 뭘 보는 거야?’
그것도 흉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두꺼운 책을.
-「인자 변증에 따른 신체 강화에 대한 고찰」
무슨 이름이 그렇게 복잡하고 어렵기만 한지.
션은 엘릭이 평상시 교수나 연구원들도 어렵게 여기는 논문을 즐겨 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 책자의 경우에는 더 어이가 없었다.
“야, 그거 봐도 되는 거냐? 내가 알기로 마의학부에서도 이번에 기피 도서로 분류되었을 텐데……?”
“아, 이거? 기피 도서는 아니고.”
“그럼?”
“그냥 금서(禁書)야.”
“…!”
“보면 아마 흑마술 연구한답시고, 마녀 종자로 몰려서 화형당할 수도 있을걸.”
“…넌 진짜 미친 게 틀림없어.”
어떻게 저런 위험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태연하게 내뱉을 수 있을까.
션은 장난스럽게 히죽 웃는 엘릭을 보면서 관자놀이가 욱신거리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아니. 대체 네가 호왕(虎王)의 강체술(强體術)을 알아서 뭐하려고?”
호왕.
서북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흑(黑)의 설원’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수인족들의 왕.
한때, 제국을 위협하는 최악의 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제국의 집요함과 자중지란으로 혈통이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으니.
강체술은 그런 호왕의 혈통에게 대대로 전승되었다던 기예였고, 마지막 호왕과 함께 비밀에 묻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뼈를 강골로 만들고, 근력을 몇 배로 증폭시킨다는 강체술의 신비는 전설로 남아 수인족은 물론, 인간들에게도 탐구의 대상으로 남아있는바.
한동안 마법 학계에는 강체술의 메커니즘을 알아내기 위한 열풍이 불어 닥치기도 했다.
하지만 열풍은 금세 잦아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마탑의 상층부에서 위험 요소로 분류하여 금지 항목으로 지정했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벌을 받을 수 있었는데…….
“혹시 몸을 치료할 방법이라도 있을까 싶어서.”
션은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래서? 힌트는 좀 얻었냐?”
“아직은. 복원은 다 완료했는데, 어떻게 내 몸에 적용해야 할지 아직 감이 안 잡혀서.”
“뭐라고? 다시 말해봐.”
“내 몸에 적용…….”
“아니. 그 전에!”
“복원은 완료했다고.”
“…!”
다른 연구자들이 그렇게 머리를 맞대고도 실패했던 걸 이미 끝냈다고?
만약 발표만 할 수 있다면, 진즉에 유급 따윈 철회되었으리라.
‘…정말이지, 이래서 천재란 놈들은.’
자신도 남들이 봤을 때 충분히 수재라고 표현할 자질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엘릭 앞에서는 아주 초라할 뿐이었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재능.
하지만 그 재능이 오히려 너무 넘친 나머지, 하늘이 시기해서 저런 병도 같이 안겨준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이것을 극복한다면, 그땐….
‘괴물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끼이익!
마차가 멈췄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 * *
“뭐? ‘게헨나의 숨결’과 ‘창공주갑’까지 가져갔다고?”
베럭스 교수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은 황망한 얼굴로, 보고를 올린 조교수를 바라봤다.
게헨나의 숨결은 악마들이 서식한다는 구천지옥의 유황불이 담긴 호리병을.
창공주갑은 하늘의 신이 과거 사도였던 ‘리트빌레’에게 내려준 성유물을 모방한 레플리카를 의미했다.
전부 하나 같이 4성급 마도구로 분류되는 것들.
세상에 나간다면 일개 마을 하나쯤은 쉽게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폭탄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 일개 생도와 조교수가 탐사에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홀라당 가져가 버리니 황당할 수밖에.
하지만 정작 당황한 건 조교수였다.
“그것이 학장님께서 그들이 뭘 원하든지 간에 적극적으로 도우라고 하셨…!”
“이런 미친 새끼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게헨나의 숨결과 창공주갑이 어떤 물건인지 잘 알면서 그냥 내어줘? 도중에 사고라도 생기면, 그 책임은 전부 네가 질 거야? 앙?”
불벼락처럼 떨어지는 호통 소리에 조교수는 당장 자라목이 되고 말았다.
사실 그라고 해서 할 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보고를 드리려 하려니까, 귀찮게 일일이 묻지 말고 그냥 하라고 말씀하셨잖습니까!’라는 말이 목 언저리까지 올라왔으니까.
“꼴도 보기 싫으니까, 어서 나가 새꺄!”
물론, 상대의 그런 사정 따위를 들어줄 베럭스 교수가 아니었고.
손에 짚이는 재떨이를 던지며 히스테리를 부리자, 조교수는 도망치듯이 방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베럭스 교수는 씩씩거리다 상체를 의자에 깊게 뉘였다.
“하여간 이놈이고 저놈이고, 일을 제대로 하는 놈들이 하나도 없으니, 쯧!”
베럭스 교수는 혀를 차다가 가만히 미간을 좁혔다.
“그놈들이라도 일을 좀 잘 처리해야 할 텐데 말이지…….”
사실 베럭스 교수는 엘릭의 추론이 그럴듯하다는 생각을 마음 한편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 틀렸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아예 처음부터 실패하도록 만들 수밖에.”
재능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