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애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3)
외전. 애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3)
머리를 차갑게 식힌 머디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 오메가와 벡은 없었다.
머디를 맞이한 것은 접이식 테이블과 각자 누가 사용한 건지 안 봐도 알 수 있는 의자 두 개가 전부였다.
가지런하게 테이블 안쪽으로 밀어 넣은 의자는 벡이 앉아 있던 것, 대충 구석에 팽개쳐진 의자는 오메가가 사용하던 것이었다.
벡은 황당한 숨을 턱 내뱉고 몸을 뒤로 돌렸다.
일말의 고민 없이 베어낸 듯 알끔하게 양단된 문고리가 문에서 달랑거리다 그를 농락하듯 바닥으로 떨어졌다.
문고리가 바닥에 충돌하며 나는 소음이 머디의 정신을 깨웠다.
“어떻게 된 거야! 찾아! 당장!”
이단심문관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같은 시각, 오메가와 벡은 나다의 애마인 사쿠라쨩을 타고 대림 에어리어를 벗어나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나다가 조수석에 앉은 오메가에게 물었다.
“어떻게 나왔냐능? 혜심통이 전달되는 건 알았지만 갑자기나타나서 완전 놀랐다능!”
뒷자리에 앉아 있던 벡이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공간으로 얼굴을 불쑥 들이밀고 오메가 대신 답했다.
“저한테 밖이 시끄러워지면 박쥐로 변해서 나가라고 말씀하시더니 검으로 문고리를 베어버리셨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아빠 모습이 사라져버렸어요. 신시아 아줌마나 수련 누님한테 종종 아빠가 이해 안 되는 걸 보여줄 때가 있는데 놀라지 말고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된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실제로 바로 옆에서 보니까 안 놀랄 수가 없더라고요.”
곁에 앉은 나다는 오메가를 곁눈질한 후, 벡의 말에
긍정했다.
“다른 사람이 그렇다면 애니에나 나올 것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했겠지만, 오메가 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능.”
그렇게 오메가가 시선을 끄는 사이 박쥐로 변해 빠져나왔다는 벡의 무용담이 펼쳐지는 사이, 오메가는 연신 눈을 비비고 있었다.
사라지는 데 이용한 스킬은 [은신].
눈을 깜빡이면 모습이 드러난다는 취약점을 가졌기에 지하를 휘젓는 동안 눈 한번 마음대로 깜빡이지 못한 후폭풍이었다.
차츰 상태가 나아지고는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편한지 눈을 끔뻑거리며 오메가가 혼잣말했다.
“이건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네. 청운 선생님께 가봐야 하나……."
청운이라는 이름에 나다가 반응했다.
“예전에 소개해 준 그 의원 말하는 거냐능? 다른 승려들한테도 알려줬는데 다들 좋아했다능. 나는 안드로이드라 침술도, 기치료도 크게 효험을 못 봐서 아쉽지만……."
청운은 종합병원을 나와 개인병원을 차렸다.
오메가가 서대문 에어리어 종합병원 근처에 자주 출몰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 이들이 뒤를 밟아 오메가의 주치의가 청운인 것을 알아냈고, 이후 청운만을 찾는 환자가 늘어 개인병원을 차리게 되었다.
침술과 기치료가 주력이지만 한방뿐만 아니라 양방도 같이하고 있어 인기가 좋았으며 오메가를 진료했다는 것 때문인지 인간 종족 환자들의 선호도가 매우 높았다.
벌이도 월씬 나아져 청운의 앳된 소년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날이 없었다.
“안드로이드는 어쩔 수 없죠. 원래 침술이나 기치료가 종족을 엄청나게 탄대요. 흡혈귀나 파충류 수인 같은 냉혈 종족한테도 효과가 덜하다고 하더라고요.”
눈을 끔뻑여 고통을 덜어내려 애쓰며, 오메가는 나다에게 물었다.
“저격수는 어떻게 되고 있다고 했죠? 아까 지하에서 전해지긴 했는데 그때는 저도 한창 바쁠 때라서 제대로 들었나 싶네요."
“탄도 분석 결과 용산 에어리어의 고층 건물에서 발사된 걸로 확인했다능. 다른 건 몰라도 장비와 실력은 굉장한 게 분명하다능. 7Km 정도 되는 거리에서 그것도 한강을 넘어서 맞춤……. 심지어 날아다니는 차량과 사람들 사이를 정확히 통과해서. 무시무시한 실력이라능.”
"더 세부적인 정보는요? 예를 들어 놈인지 년인지, 어디랑 관련된 것 같은지. 그런 거요.”
벡도 한마디를 보탰다.
“고층 건물이면 CCTV가 즐비할 것 같은데 찍힌 건 없나요?”
“CCTV는 많았는데 방해전파를 쐈는지 모습이 제대로 찍힌 건 하나도 없다능.”
“CCTV를 무력화하는 장치는 권역들이 다들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어서 유통도 쉽지 않고 가격도 엄청 비싸다고 하던데요.”
“벡쿤의 말이 맞다능. 범죄자들도 손대고 싶지 않아 하는 분야가 그쪽임. CCTV, 특히나 공적인 영역에 있는 걸 건드렸다가는 그렇지 않아도 피폐한 삶이 더욱 피곤해질 거라능. 그래서 오히려 자기 외형을 변화시키는 기기나 기술들이 부각 되는 게 어떻게 보면 우스운 일이기도 하다능.”
녹화 장비를 건드리기 힘드니까 외형을 뒤바꾸는 방법이 다양해진다는 나다의 말에 괜히 손에 걸린 인피면구를 한 번 쓸어보는 오메가였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교단의 성물을 저격해 터트릴 정도로 과감하고 CCTV를 망설임 없이 무력화할 정도로 기술력도 있는 곳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챔버에서 웃고 있던 머디의 모습이 쉽사리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오메가였다.
그때, 귀걸이를 통해 오메가에게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오셨으면 말을 해주셔야죠! 갑자기 사장님 위치가 바뀌길래 놀랐잖아요!
"미안. 눈 비비느라 깜빡했어.”
-눈은 왜…… 그건 됐고, 설마 혼자만 나오신 건 아니죠?
“벡은 옆에 있어. 나다도 같이 있고.”
-나다 씨도요? 여기를 다 뒤집어놓고는 어디 가시는데요?
"저격범 잡으러.”
-그걸 왜 사장님이 가요.
“다들 바쁜 것 같으니까?”
-누구 때문에 바빠진 건데요.
언제나처럼 핵심을 찌르는 앨리스의 말에 오메가는 궁색하게 답했다.
“내가 그렇게 안 했으면 그 꼴 보기 싫은 트롤 사제가 나대고 있었을 거 아니야. 벡도 혼자 끌려갔을 거고. 전부 다 깊은 의중과 헤아리기 어려운 계획에 따라 움직인 거라고.”
-그렇다고 쳐요. 그럼 그 저격범 잡으러 가는 길에 벡은 왜 데려가셨어요. 밖으로 나온 김에 언니들한테 맡기면 됐잖아요.
오메가는 벡미러를 통해 눈을 반짝이는 벡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앨리스의 질문에 왜 그럴듯한 답을 내놨다.
“음…… 부모 직장체험 같은 거지. 아빠가 무슨 일하는지는 알아야지 않겠어?”
이후로도 신시아, 이수련에게 다 말할 거라는 앨리스와 그렇게까지 잔혹한 행위를 해야겠냐는 오메가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그 사이 벡은 나다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격범 추적 중이라면서 이렇게 따로 나와 계셔도 돼요?”
“걱정하지 말라능. 특별 수사관 중에 쓸만한 녀석들이 있음!”
어느새 미소녀 랩핑이 가득한 차량은 용산 에어리어를 통과했다.
이후로도 계속 달리던 차량이 속도를 줄인 곳은 네오-서울 강북 에어리어의 어느 지점.
북한산 초입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차에서 내린 나다가 설명했다.
“이쪽으로 도주한 걸로 확인 했다능.”
네오-서울 내부에는 남산, 관악산, 청계산 등의 여러 산이 존재했으나 대부분은 개발이 끝난 상황이었다.
페룬 마탑의 거점으로 사용되는 남산이 그런 도심 내부 산 개발의 좋은 예였다.
하지만 북한산만큼은 그런 개발 열풍에서 벗어나 오히려 현재에 와서는 더욱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었다.
과학, 마법, 이능, 초상 능력 기타 등등이 전력으로 투입되어 보호받는 산의 모습을 본 벡이 중얼거렸다.
“이건 산이라기보다는 밀림 아닌가요. 어디 원시림 같은데요.”
초입부터 둘레가 어마어마한 아름드리 나무가 잔뜩이었다.
“그래서 이쪽을 도주 경로로 택한 것 같다능. 그런데 좋은 판단 같지는 않다능. 오히려 투입된 수사관들이 온 힘을 다해도 좋은 환경이지 않나 싶음!”
위로 조금 이동하자 엘프 한 명이 있었다.
벡은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엘프의 몸에서 시커먼 독수리가 뽑혀 나오더니 이내 날개를 퍼덕여 산 위로 날아올랐다.
오메가가 다가가 아는 체했다.
샴록이었다.
“적성 찾은 것 같네, 수사관?”
“부끄럽군요.”
“파트너는?”
벡은 산 안쪽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경악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벡.
“설마…… 거신족?”
거신족의 몸을 밟고 문신 괴수들이 산 곳곳을 뒤지고 있었다.
나무들이 우지끈하며 부서지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저 멀리에서도 모습을 알 수 있던 진오의 거대한 몸체가 스르르 작아졌다.
샴록이 오메가에게 답했다.
"보시다시피 일하는 중이죠.”
*
*
*
샴록과 수연의 조종에서 풀려나 회복된 진오는 곧바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극형을 면하기 힘든 신세였으나 둘의 제자이자 지금은 대림 에어리어의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가브리엘라가 나서서 구명운동을 펼쳤고, 그 과정에서 샴록과 진오, 나이누안, 셀티스의 기구한 과거사가 밝혀지게 되었다.
그래도 범죄자는 범죄자일 뿐이라는 의견은 여전히 거셌지만, 그들을 범죄자로 만든 것은 복지의 사각지 대와 그 사각지대에 관심이라고는 없었던 다른 시민들이라는 성찰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하지만 샴록과 진오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가브리엘라와의 면회도 거절했다.
오메가가 언젠가 그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 이들에게 나타난 이는 노덴스였다.
"저는 불자佛子가 아닙니다. 하지만 석가모니도 살인마를 받아들여 제자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습니다. 악행을 저지르는 자는 많지만 악행을 반성하는 이는 드뭅니다. 당신들의 과거를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반성을 통해 과거를 마주하고 미래를 바꿀 수도 있겠지요. 주어진 힘을 바르게도 써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많은 범죄자를 마주해 본 노덴스는 갱생이나 교화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진흙탕에서 연꽃이 하나라도 피어오른다면 그 아름다움은 더욱 돋보이지 않을까.
그 연꽃 하나를 위해서 이렇게 거칠고 힘든 일을 하는 것은 아닐까.
3년의 세월이 흐른 후, 노덴스에게 한 통의 통신이 연결됐다.
발신지는 교도소.
진오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지만 선명했다.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게 우리의 죗값을 치르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평생 속죄해야 할 일이니까요. 욕을 하면 욕을 듣고, 돌을 던지면 돌을 맞겠습니다. 하지만 그저 우리 같은 삶이 더 생기지 않을 수 있다면, 무고한 이들이 다치고 죽는 걸 막을 수 있다면 협력하겠습니다.”
몇 달 뒤, 공공 집행본부는 특별 수사관을 충원했음을 발표했다.
평소에는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집행본부의 요청이 있을 때만 임시로 수사에 동원되는 형태였다.
*
*
*
“어떤 놈인지 몰라도 지독한 수사관들한테 걸렸네.”
오메가의 말에 샴록이 인상을 핑그렸다.
"다른 사람을 몰라도 당신한테 지독하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요.”
"하긴, 내가 좀 지독하긴 하지. 독수리 따라가면 되나?”
"포위망을 좁히고는 있는데 서둘러야 해요. 곧 해가 질 테니까요.”
“그런 건 문제도 아니지. 그렇지 벡?”
황혼이 찾아오고 있었다.
길지 않은 황혼이 사라지면 세상에는 어둠이 내릴 것이다.
그때부터는 흡혈귀의 시간이다.
#
린은 북한산의 거대한 나무줄기 사이를 마구 누볐다.
그녀의 몸에서 뻗어 나온 기계 보조 팔과 보조 다리가 여기저기 늘어진 넝쿨을 끌어당겨 이동에 이용했다.
기이한 움직임이었지만 속도는 매우 빨랐고 소음이라고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린이 지금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몸 여기저기 할퀴고 뜯긴 자국이 가득하였으며 총을 담아둔 악기 케이스는 뜯어져 버린 지 오래였다.
담겨 있던 총기도 핵심부품만을 신체에 부착하고 일부는 버려야 했다.
'네오-서울 측의 대응이 예상보다 빨랐다.’
머디에게서 추기경과 벡의 사살에 실패한 것 같다는 얘기를 들을 때만 해도 약간 아쉬운 정도가 전부였다.
기다리면 기회는 또 올 테니까.
그렇게 생각한 린이 CCTV의 사각지대를 통해 건물 아래로 내려왔을 때, 건물 주위는 긴급 동원된 사설 집행자들로 쫙 깔린 상태였다.
충격량과 탄도 역산을 통해 저격 지점을 순식간에 계산해 낸 마고 덕이었다.
린이 있던 건물을 중심으로 일대에 통행이 중지되고 바리케이드가 쳐졌다.
수색 검문이 시작됐다.
악기 케이스를 열어 보일 수 없던 린은 도주를 선택했다.
때마침 도착한 나다는 저격수를 추적하며 본부에 수사관 지원을 요청했고 그렇게 샴록과 진오가 린 추적에 손을 보태게 된 것.
먹물로 이루어진 샴록의 소환수들은 끈질기게 린에게 따라붙었으며 소환수의 인도를 받은 진오는 몸 곳곳을 부풀렸다 줄이며 거침없이 린에게 향했다.
한참이나 산을 오르던 린이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감은 눈 너머로 네오-서울의 야경이 밀려들었다.
‘네오-서울 측의 대응이 상정한 것 이상으로 너무 빨랐다. 보완해서 다시…….'
다시 몸을 돌렸을 때, 린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붉은 눈의 청년이 두세 걸음 너머에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청년의 어깨에 있는 날개는 어둠과 섞여들어 잘 구분되지 않았으며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청년의 팔꿈치부터 뻗어 나온 날카로운 톱날이 린의 목에 닿아있었다.
끝이었다.
벡의 눈이 헤지고 찢긴 린의 사제복에 닿았다.
“정말로 신앙정립성이…….”
린이 벡의 붉은 눈을 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본인은 자각이 없는 모양이지만 너는 교단에 풍파를 불러올 거다. 우리는 풍파를 방지하기 위해 움직였을 뿐이다.”
“……."
“너의 그 힘이 축복 같은가? 저주. 그것도 지독한 저주다. 큰 힘은 성숙하고 현명한 자들이 지녀도 그 위험을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 너는 어떻지?”
흔들림 없던 톱날이 가녀리게 떨렸다.
“네 존재가 흐릿하게나마 알려진 건 채 5년이 되지 않는다.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근본도 알 수 없다.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지닌 게다. 내가 끝이 아니다. 너의 파멸은 이제부……."
스걱-
세상이 반으로 갈라졌다.
린의 세상만이.
세로로 양단되어 무너지는 린의 뒤, 완전 전개한 검을 휘두른 직후의 오메가가 있었다.
사후 경직과 잔류 전압 때문에 바들대는 린의 몸뚱이였던 것을 내려다보며 오메가가 중얼거렸다.
“저주니, 근본이니 그게 할 소리야? 애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외전. 새 식구-외전 끝
외전. 새 식구
기계 교단 대림 교구의 성당 지하.
지상으로 향하는 길이 완전히 봉쇄되었다.
지하 시설 깊은 곳에 있던 특수 목적 로봇 일부가 가동되어 이단심문관들이 사용하고 있는 장소로 들이닥쳤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감쪽같이 사라진 오메가와 벡의 행방을 추적하는 데 여념이 없던 머디가 벌떡 일어나 저항했다.
하지만 로봇을 이끌고 들어온 대림 교구의 사제의 말은 건조하기만 했다.
"추기경 예하의 명이십니다. 자세한 얘기는 위로 가서 마저 하시죠.”
머디의 주위에 있던 다른 이단심문관들이 저항할 기색을 보이자 초록빛을 내보이던 로봇의 렌즈가 삽시간에 적색으로 변했다.
고막을 긁는 키리릭 소리와 함께 흐르듯 변형되는 로봇의 몸체.
거미와 같은 하반신 위에 얹어진 두 개의 포신과 꽂아놓은 깃털처럼 높게 솟은 안테나가 이단심문관들을 겨냥했다.
“지부장이신 머디 이단심문관께서는 이 로봇들에 대해 알고 계시겠죠?”
“전량 폐기했다고 듈었는데, 이런 곳에 남아있었군요. ‘신앙 수여’.”
기계 교단 발흥기, 내부에서는 여러 종파의 패권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그 싸움은 탁상을 넘어 무력 경쟁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끝 모를 경쟁을 끝낸 무기가 지금 이단심문관들을 타겟 지정 완료한 병기. 신앙 수여다.
안테나를 통해 타겟의 내부 전기 신호를 방해하는 동시에 포신에서 폭발이 가능한 나노봇 집속탄을 발사하는 병기로, 대상의 신체에 기계 파츠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쉽고 강력한 효력을 발휘하는 구조다.
따라서 가능한 많은 신체 부분을 기계로 교체하는 것을 지상최대의 과제로 삼는 기계 교단의 사제들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는 물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술 계보를 따지면 페테르의 아주 먼 조상 뻘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물건이기도 했다.
위험성은 기계 교단을 넘어 현시대의 문명 자체에도 지대하므로 신앙 수여를 사용해 기계 교단 통합 종파의 교황에 오른 이가 제일 먼저 내린 칙령이 모든 신앙 수여의 파괴였을 정도다.
와중에도 살아남은 것이 몇 기 있었는데, 우연히 손에 들어온 골동품 몇 기를 헤지르가 고쳐내 대림 교구 성당 지하에 봉인해두었다.
취미의 영역이라 치부하고 처박아두었는데, 이렇게 다수의 이단심문관들을 압박해야 할 일이 생겨 신앙 수여를 깨우게 되었으니 세상일이란 정말로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신앙 수여를 깨우라는 명을 내리며 헤지르 추기경은 생각했다.
‘이것마저 기계 장치의 신께서 안배해둔 것인가.’
답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머디는 다른 이단심문관들에게 말했다.
“저항하지 마라. 끝난 것 같으니.”
지하층 봉쇄가 풀렸다.
위로 올라온 머디를 기다리는 것은 위타천과 공공 집행본부의 요원들이었다.
경멸스러운 표정의 위타천이 말했다.
“추기경 암살에 관한 공범 형의로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남기실 말씀이라도?”
답하는 대신, 머디는 반파된 제단과 엔진을 바라보았다.
페룬의 마법사들과 예공방의 연구원들이 조심스레 현장을 분석하고 있었다.
러다이시스트들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 같았다.
‘날이 어두워진다.’는 것을 끝으로 린과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벡을 확보하거나, 최종적으로는 죽이려고까지 마음먹었는데 지금 벡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처절하고 처참한 실패였다.
준비가 부족했나?
머디의 몸이 떨렸다.
준비는 부족하지 않았다.
조심 또 조심하고 준비에 준비를 거듭했다.
모든 변수를 상수화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럼에도 의외의 변수가 생길 수 있음을 주의했다.
머디가 고려하지 못한 것은 단 하나의 변수, 오메가였다.
그리고 그와 연결된 사람들.
헛웃음이 머디의 목구멍을 간지럽혔다.
계속해서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엔진이 터질 때 머디는 오메가의 말처럼 크게 웃고 있었다.
교단의 잠재적 위험 요소를 제거했다고 생각했다.
교단은 영원불멸하리라.
이 순간, 머디는 그때처럼 크게 웃고 싶었다.
하지만 목을 통해 나온 것은 무겁고 허탈한 한숨이 전부였다.
머디의 시선이 다시 위타천에게로 돌아왔다.
"다른 이단심문관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 강압과 강요로 억지로 따라온 것뿐입니다.”
“그건 저희가 판단하겠습니다.”
머디를 비롯한 다른 이단심문관들이 요원들에 의해 연행됐다.
상황이 조금 진정될 무렵,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눈이 빠지게 지켜보고 있던 신시아는 혼잣말했다.
"자기랑 벡은 오고 있나?”
“그쪽에서 꼬리를 잡아 이쪽에서도 빠르게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고 하니 오고 있는 중 아니겠느냐.”
“그렇겠지? 벡을 데려간 게 좀 걸리긴 하는데……."
“오메가 옆에 있는 편이 벡에게도 안전한 방법이었을 게다. 별일이야 있었겠느냐."
신시아와 앨리스를 바라보는 앨리스는 오메가와 속닥거리는 중이었다.
“네? 벡이 실신했어요? 어쩌다가요? 크게 다친 건 아니죠?”
-그럴 일이 있었어. 다친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애가 생각보다 허약하네. 일단 청운 선생님 병원 가서 검진 한번 하고 갈 테니까 적당히 시간 좀 끌어줘.
“무슨 수로 시간을 끄냐고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때, 앨리스는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누구랑 얘기하고 있니? 앨리스? 실신은 또 무슨 소리야?”
어느새 접근한 신시아의 차가운 목소리.
“어, 언니. 그게……."
“아무래도 내가 아는 사람 같은데, 통신 좀 이쪽으로 이어줄래?”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지만 알파 흥신소는 달랐다.
인간 해결사 위에 안드로이드 사장이 있고, 그 안드로이드 사장 위에 해결사의 부인이자 흡혈귀 사령술사가 군림하는 지배구조.
여기에 가끔 사외이사 격인 구미호 로봇공학자가 흥신소 경영에 감 놔라 배 놔라 훈수를 두고 있기도 했다.
-앨리스! 어떻게 됐어! 왜 말이 없는데!
머릿속에 전해지는 오메가의 목소리를 무시한 앨리스는 통신을 신시아에게 전해주었다.
"자기? 어디 계세요? 곧 오신다고요? 아 벡도 같이 있죠?”
-당연히 같이 있죠. 바꿔줄까요?
“네.”
-어…… 음……. 오늘 무리해서 그런지 벡이 자고 있네요.
신시아의 눈에서 녹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깨워서 바꿔주세요.”
평소에는 아주 깨가 쏟아져라 알콩달콩하면서도 오메가가 터무니없는 짓을 벌이거나 자신을 속이려다 걸리면 간혹 이렇게 살벌한 포스를 여과 없이 내뿜는 신시아였다.
어느새 다가온 이수련도 ‘벡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 ‘그렇다면 오메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라며 길길이 날뛰었다.
두 여인에게서 원초적인 공포를 느낀 앨리스는 벌벌 떠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 와중에도 앨리스는 요즘 들어 신시아의 짜증이 잦아지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
이틀 뒤.
“사람을 반으로 갈라! 그것도 애 보는 앞에서!”
헤지르의 호통에 오메가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간신히 꺼낸 말이라고는.
“죄송합니다.”
그리고는 눈을 굴리다 하지 않아도 좋았을 한 마디를 덧붙이고 말았다.
“이쪽 일이 이래저래 험한 부분들이 종종 있어서요.”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다시 움츠러든 오메가였다.
"그래도 검사 결과 별문제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이야 그렇겠지만 나중은 또 모르는 일 아닌가! 아무리 보조 장치를 이용해서 정신도 몸의 성장에 맞췄다고는 하지만 겨우 다섯 해를 산 아이에게 사람이 갈라져 죽는 걸 보이는 게…… 어후……."
오메가 식 문제 해결을 직접 체험해보기도 한 추기경이었지만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정신을 차린 벡이 눈을 반짝거리며 너무 홍미롭고 정말 재밌었다고 하는 모습이 추기경의 화를 더 부르기도 했다.
“언제까지 새장 안의 새처럼 고이 모셔두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벡도 세상이 험하다는 걸 알아야 해요.”
"자네가 아니었으면 세상이 조금은 덜 험했을 거야.”
비수처럼 날아드는 추기경의 지적에 본전도 못 찾은 오메가였다.
아무래도 이대로 있다가는 계속해서 꾸중만 들을 것 같아서 슬쩍 다른 화제를 들이밀었다.
“이단심문관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쪽의 소행인 게 거의 확실해졌지 않습니까. 뒤엎으실 겁니까?”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는 추기경이었다.
"어째 내가 뒤엎길 바라는 것 같네만?”
"아니. 그럼 암살 시도당하고 그냥 묵묵히 넘어가는 사람도 있습니까? 몇 년 사이 영감님도 많이 늙으셨나 봅니다. 저기 지하에서 제자로 키우던 놈들 손짓 한 번으로 다 죽이던 게 어제 같은데.”
"그때 그놈들은 죽을만해서 죽였던 거고.”
“이번은 좀 다릅니까?”
"다르지. 이 시도가 신앙정립성의 독단적인 행동인지, 아니면 윗선까지 이어져 있는지, 이어져 있다면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지, 앞으로도 시도가 있을 것인지 등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수도 없이 많으니까. 게다가 이단심문관들의 폐쇄성과 결집력을 생각하면 건드려 부스럼 만드는 꼴일 수도 있어.”
한숨을 푹 쉰 헤지르 대주교였다.
"떠나야 할 때를 놓치니 늘그막에 이런 고생이나 하는구먼.”
“영감님을 교단에 끌어들인 게 페테르라면서요. 책임지라고 하세요.”
“끌어들인 게 아니라 권유한 걸세. 그렇지 않아도 사건을 전해 듣고 신앙정립성 핵심 지부를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땅으로 만들겠다는 걸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애걸복걸하고 오는 길이네.”
“말처럼 했다면 볼만했을 것 같은……."
다시금 느껴지는 싸늘한 눈초리에 오메가는 슬그머니 입을 닫았다.
여전히 눈에 힘을 풀지 않은 대주교가 오메가에게 말했다.
"자네를 이렇게 부른 건 앞으로 벡의 처우에 관해 의논하기 위함일세. 자네는 추방도 당해봤고 복권도 되어 봤으니 이런 일에 대해서는 경험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말이야.”
“마냥 품고 있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아셨군요.”
"유년기의 끝이 다가온 게지.”
그렇게 말하는 추기경의 얼굴은 어딘가 서운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라면 저보다는 야스민 공과 상의하시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영향력이나 손 닿는 부분이 월씬 많으실 텐데.”
“나도 그리 생각했네. 그래서 벡에게 물어봤더니 야스민 가문의 영향력 아래 있기보다는 자네 사무실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하더군.”
“예?”
“듣자 하니 벡을 데려갈 때 부모 직장체험이라고 데려갔다면서? 일이 이렇게 된 김에 한동안 데리고 있는 건 어떤가? 자질 하나는 기가 막힌 아이지 않은가.”
오메가의 사무실이라면 성당에서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니 안전을 확보하면서 보고 싶을 때 볼 수도 있는, 추기경으로서는 혜안에 가까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오메가는 즉답했다.
“그건 좀 힘들 것 같네요.”
"어째서.”
“마음 같아서는 데리고 있고 싶은데요. 일이 좀 꼬여서 지금 벡을 사무실 식구로 받아들이면 저 펠루다한테 칼침 맞아요. 우리 사무실에 오겠다는 걸 몇 년째 무시하고 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사장 아들이 낙하산으로 꽃혀 봐요. 눈이 안 돌겠어요? 그리고 해결사가 그렇게 인식이 좋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첫 사회생활인데 좀 그럴듯한 곳에서 시작하는 게 벡한테도 좋지 않겠어요?”
"하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네. 다만 벡이 완고하게 자네랑 함께하길 원하고 있는 게 문제지.”
“짜식이 아빠 멋있는 건…… 알아서.”
마지막에는 추기경의 눈총 때문에 목소리가 줄어든 오메가였다.
고민하다 오메가가 절충안을 냈다.
“그럼 제가 아는 건실한 사설 집행자 사무실이 있는데 거기에 일단 취직시키죠? 거기 사무실이 저희 근처에 있기도 하고, 사설 집행자면 제가 하는 일이랑 어느 정도 비슷하기도 하고 나쁘지 않은 경험이잖아요.”
"자네가 벡에게 그렇게 말해주게. 내 말은 안 들어도 자네 말은 들을 것 같으니.”
“그렇게 하죠.”
오메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추기경의 거처 밖으로 대림 에어리어가 보였다.
나가기 전, 오메가는 추기경에게 당부했다.
“아직 엎을지 말지는 고민중이시라는 거죠?”
“그런 셈이지.”
“엎기로 결심하셨으면 의뢰 주세요. 우리 영감님은 특별한 사이니까 염가로 모시죠.”
쓰잘데기 없는 소리 좀 흘리고 다니지 말라고 한마디 하려던 추기경은 멈칫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오메가라는 전력의 든든함은 이루 말하기 힘들었다.
이번 일만 봐도 거칠기는 했지만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전적으로 오메가의 역량 덕이었다.
“그리함세.”
“추기경에 만족하실 겁니까? 교황도 하고? 에라 모르겠다, 메시아도 되어 보고, 구원자도 되어 보고!”
결국 추기경은 참지 못했다.
“쓰잘데기 없는 소리 말고 나가게!”
추기경의 고함과 거의 동시에 밖으로 빠져나온 오메가에게 벡이 달려왔다.
“아빠! 할아버지가 뭐라 하셔요?”
“가장 숭고한 성전을 준비하라는데?”
“네? 정말로요?”
“농담이야. 너 취직시켜야 한다고 나한테 그러시더라.”
"농담 그만하시고요.”
"농담 아니야. 짜식아. 근데 우리 사무실에는 안 들일 거야.”
추기경 암살을 계획했다는 이유로 기계 교단 신앙정립성은 해체되고, 메카 흡혈귀 사설 집행자가 대림 에어리어를 누비게 되지만 그것은 아직 조금은 먼 이야기.
성당을 벗어나 바이크로 걸어가며 오메가는 기지개를 쫙 켰다.
“으아 날씨 좋다. 이런 날에도 의뢰하러 가야 한다니. 째고 싶네.”
“큰 사건 하나 해결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또 바로 의뢰에요?”
“크긴 큰 사건이었지. 근데 벡, 그거 알아야 해.”
“어떤 거요?”
"이 지랄 같은 권역은 큰 사건이 하루에도 몇 개씩 터진다는 거. 그 덕에 나는 쉴 틈이 없단다. 입도 하나 늘었으니까 더더욱 몸이 부서져라 일해야지.”
“저는 아빠 사무실에 안 들일 거라면서요. 그런데 입이 왜 늘어요?”
바이크에 올라탄 오메가는 씨익 웃었다.
“너 동생 생겼다.”
“네에?”
“나도 어제 알았어. 짜증을 쉬지 않고 내길래 영 이상하더라고. 신시아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래서 병원 가봤더니 임신이란다. 흡혈귀의 자연임신은 굉장히 힘들다는데, 이 아빠가 누구냐! 안 되는 일도 되게 하는 해결사 아니냐! 신시아한테 연락해서 축하한다고 해줘.”
그런 것도 해결사가 하는 일에 들어가는 건가 싶어서 벡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뿌듯한 미소와 함께 얼껄대는 오메가에게 앨리스의 통신이 전해졌다.
-긴급 의뢰요.
“뭔데."
-바이크 윈드스크린에 네오-서울 유명 피요리 전문점들 위치 띄워놨거든요? 리스트에 있는 거 전부 사서 식기 전에 사무실로 복귀하세요. 의뢰자는 누구인지 말할 필요 없죠?
"그런 건 배달 서비스를……."
-이번 의뢰에 한해서 딱지 떼여도 아무 말도 안 할게요.
“바로 출발한다고 알림.”
헬멧을 쓰기 전, 오메가는 벡에게 물었다.
"같이 갈래? 직장체험 2탄이라고 생각하고?”
벡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메가의 뒤에 타서 피요리 전문점으로 향하며 벡은 생각했다.
‘월급 모아서 바이크부터 사야지. 아니다. 아빠도 할아버지한테 부탁해서 받은 거라는데, 나도 부탁하면 하나 주시려나?’
언젠가는 오메가와 나란히 바이크를 모는 상상을 하면서 웃는 벡이었다.
〈외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