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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55화 (256/258)

외전. 애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2)

외전. 애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2)

"아주 진을 치고들 있네요.”

성당 터 한쪽에 마련된 추기경의 거처, 커튼을 슬쩍 들춰 밖을 내다본 펠루다가 중얼거렸다.

추기경은 조금 놀랐을 뿐 아무런 위해를 입지 않았다고 분명히 발표했건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파 하는 이들이 거처를 둘러싼 울타리에 모여들고 있었다.

군중이 정말로 추기경을 걱정하는 순수한 마음에 모여들었다면 펠루다도 이렇게나 거칠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추기경이 멀쩡한지 확인해야겠다면서 울타리를 넘다가 거처에 배치된 공공 집행본부 요원에게 제압된 사람이 벌써 세 명째였다.

그때, 마법으로 목소리률 키운 것인지 아니면 성대에 음성증폭기를 장착한 것인지 모를 어느 남성이 울타리 너머에서 외치는 소리가 이곳까지 들렸다.

“추기경 예하! 정말 괜찮으신지 걱정이 됩니다! 잠깐만 창밖으로 모습을 보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많은 이들이 예하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펠루다가 즉각 반응했다.

“미친놈.”

방금 눈앞에서 엔진이 폭발하는 테러를 겪은 사람에게 저게 할 소리인가.

위타천이 들었다면 당장 저런 소리를 하는 작자에게 달려가 머리를 깨놓았겠지만 펠루다는 그렇게 할 패기도, 권한도 없었다.

옆에 앉아 있던 추기경이 펠루다의 거친 발언을 듣고 빙긋 웃었다.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혹시 몰라 자가 검진을 시행 중이었던 터라 윗옷을 벗은 추기경의 몸 곳곳에서 가느다란 기계들이 뻗어 나와 작은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정말로 저를 걱정해주시는 분일지도 모르지요.”

“앗……. 죄송합니다.”

홧김이긴 하지만 종교인 앞에서 욕설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펠루다.

"바로 요원을 보내 조용히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뒀으면 합니다.”

“예?”

오랜 기간 네오-서울 대림 교구를 이끌면서 온갖 인간 군상을

다 겪어본 추기경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지금은 어떤 대응을 하던 뒷말이 나올 겁니다. 소리 지르는 저 이를 그냥 두면 두는 대로 제가 모습을 보이기도 힘든 상태라는 추측이 돌겠지요. 그렇다고 저이에게 자제할 것을 부탁하면 달라질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정말로 제 상태가 위중하니 압박을 동원해 소문이 퍼지는 걸 막는다고 생각할 겁니다.”

위타천을 따라다니며 착실하게 차기 공공 집행자가 될 수업을 받는 펠루다였지만 다양한 사안과 인물이 복잡하게 얽힌 이런 사안에 대처하는 능력은 쉽게 길러지지 않았다.

그것은 펠루다의 과거가 목표나 임무 완수를 최우선으로하는 PMC 요원이라는 것에서 기인했다.

용병이나 PMC 요원들은 최대한 단순하고 압축된 사고와 행동이 권장된다.

당장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직종이기에 한순간의 망설임조차 끼어들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

물론 해당 직종에는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다.

펠루다의 불행은 과거의 물을 빼주어야 할 선생이 하필이면 ‘복잡한 일은 안 복잡할 때까지 두들겨 패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위타천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식견 높은 추기경과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이런 시간은 훗날 펠루다에게 귀한 경험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이 시간이 귀한 경험이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할 만큼 지금의 펠루다는 위타천, 오메가식 표현에 따르면 ‘애송이’에 가까웠기에 되묻고 말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위타천이 부재한 지금 현장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펠루다가 보호 대상인 추기경에게 방법을 묻고 있었다.

무능하다고 질책받아도 모자랄 상황이었지만 추기경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추기경을 향한 펠루다의 물음은 분명 무능하긴 했지만, 책임을 떠넘기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정말 몰라서 묻는 순수와 배우고자 하는 겸손이 기저에 녹아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오메가나 위타천 같은 거친 이들이 이 거북 수인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노회한 종교인의 목 안쪽에서 소리가 흘러 넘어왔다.

"일단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어떤 현명한 방안이 나올지 기대하고 있던 펠루다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거북 수인을 괴롭히는 맛도 제법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추기경이 설명을 덧붙였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지요. 게다가 본당을 나서기 전에 봤지 않습니까. 이런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해결사가 나선 모습을요. 분명 멋진 결과를 들고 올 겁니다. 아, 오해하지는 말아요. 공공 집행본부를 못 믿는 건 아닙니다. 위타천 군도 굉장한 초인이고 그 아래에 있는 펠루다 군이나 다른 요원들도 다들 대단하죠.”

"대장이라면, 어떻게든 해줄 거라는 믿음이 들긴 합니다.”

"대장이라. 오메가 그 녀석이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묘하게 어울리는군요.”

생각하면 편두롱이 올 것 같은 골치 아픈 일율 몰고 다니지만, 또 그런 편두통을 말끔하게 날리는 오메가를 떠올리니 둘의 마음은 묘하게 편해졌다.

“잠시만요.”

펠루다가 손을 뒤로 돌려 등딱지의 왼쪽 경계 부분을 쓸었다.

통신 장비가 내장된 곳이었다.

구석으로 가서 통신하는 펠루다의 표정 변화가 엄청났다.

처음에는 놀라서 눈이 커지고, 곧 힘을 잔뜩 줘서 눈가와이마에 주름이 엄청나게 생겼다.

그리고 통신을 종료할 즈옴이 되어서는 세상 근심걱정을 혼자 짊어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위타천 님에게 온 통신인데, 추기경님께도 알려드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메가를 생각하며 편해졌던 마음이 쭈그러드는 감각이 생생한 펠루다의 입이 열렸다.

"이단심문관들이 대장이랑 벡을 같이 데려갔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편두통을 유발하는 소식이었다.

엄청나게 걱정스러워하는 펠루다의 말을 들은 추기경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 두 손을 모아 경쾌하게 손뼉을 쳤다.

짜악-

“왠지 평소보다 과하다 했더니 이런 계획이었군!”

#

성당 지하, 주로 사제들의 기도실이나 거처로 사용되는 공간이지만 더 깊이 내려갈수록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오곤 했다.

과거 추기경의 제자였던 파라터스가 수연과 손을 잡고 기계화 좀비를 양산해 내던 곳도 이 광활한 지하 시설 어딘가에 있었다.

지금은 모두 불타버렸지만.

당시 사태 해결의 주역이었던 오메가였지만 성당 지하에 다시 올 일은 없었기에 이렇게 내려오는 것은 그때 이후로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때와 같은 목적은 아니었다.

과거에는 침투, 현재는 구류에 가까운 상황.

심지어 구류의 주체는 이단심문관들.

이단심문관들의 무서움을 들어 알고 있는 벡은 옆에 앉아 있는 오메가를 보며 자신마저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작은 방을 정리해 만든 임시 장소에서 오메가는 양쪽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꽃고 앉아 있었다.

심지어 접이식 책상 위에 다리까지 뻗어가며.

떼를 쓰다시피 해서 내려오기 전에 받아낸 두 개의 칼자루가 오메가의 허리춤에 꽃혀 있었다.

벡은 지금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투성이였다.

*

*

*

오메가가 머디를 집어던진 후, 이단심문관들은 오메가에게 달려들었다.

기형적이라는 말도 아까울 정도로 다양한 형태로 기계 신체를 변화시키는 이단심문관들 사이에서, 오메가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었다.

이단심문관 중 오메가를 잡기는커녕 제대로 눈에 담은 이들조차 드물 정도였다.

성당에 모여 있던 다른 이들은 기계 교단과 적대하고 싶지 않았기에 오메가를 돕되 이단심문관들에게 적당히 손속에 사정을 두었다.

오메가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한 선까지 힘조절을 했다.

비록 다들 적당히 힘을 뺐다고는 하지만 하나하나가 자신의 분야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초인이자 전문가들, 아무리 기계 교단 전력의 핵심 중 하나라는 이단심문관이라고 해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구석에 처박혔던 머디가 정신을 차릴 때쯤, 멀쩡한 이단심문관은 하나도 없었다.

이성적 판단을 우선시하는 보조 사고회로를 삽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머디의 가슴에서 화가 치솟던 찰나, 오메가가 뻔뻔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런, 큰일을 벌이고 말았잖아? 아까 백을 데려가려는 것 같은데 나도 잡아가지 않겠어? 나는 이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거든."

구형 안드로이드들에게서도 보기 힘들 정도의 딱딱하고 경직된 억지 음성.

결국 머디는 여기저기 쓰러진 이단심문관에게 둘을 지하로 데려가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단심문관들에게 둘러싸여 지하로 향하는 벡과 오메가에게 다가려는 신시아와 이수련을 막은 건 위타천이었다.

위타천의 입술이 달싹이는 걸 본 이수련이 법술의 장막을 둘러쳐 소리가 새어 나가지 못하게 했다.

"일부러 명분을 준 걸 겁니다. 벡과 함께 있으려고요. 이단심문관들이 사건과 얼마나,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기이할 정도로 백을 확보하려 하지 않았습니까. 오메가도 위화감을 느꼈을 겁니다. 그리고 혼자 보내는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라도 곁에 있는 편이 훨씬 낫다고 판단한 거겠지요.”

몇 년간 오메가와 이래저래 엮이며 오메가의 사고방식을 띄엄띄엄이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된 위타천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추기경의 추측이기도 했으며 오메가의 의도를 꿰뚫은 것이었다.

그때, 지하로 향하던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여기서부터는 성당 본당이 아니니 칼자루를 돌려받아야겠다고 오메가가 버티고 있었다.

법술 장막 밖으로 벗어난 위타천이 짜증 가득한 목소리를 연기하며 외쳤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얼른 줘서 보내!”

소동이 벌어지고 약 1시간 뒤, 저격수를 추적하러 나갔던 나다가 성당으로 복귀했다.

*

*

*

벡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아빠.”

“응?”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오메가는 대답했다.

“좀 있으면 나가서 영감님한테 한 소리 듣지 않을까? 신시아가 저녁에 좋은 식당으로 예약했다던데 그전까지 끝나려나?”

위기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말에 벡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메가는 떠들고 있었다.

“흡혈귀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잘 쟁겨 먹어야 한다면서 신시아가 특별히 예약한 식당이야. 피 요리 전문점인데 블러드 소시지니, 블랙 푸딩이니 아주 메뉴가 화려하더라. 내 생각에는 인공 혈액 섭취하면 그것만 먹어야지 다른 피 음식에 환장하는 걸 보면 문제가 있어. 이거, 신시아한테 얘기하지는 마라? 예전에 한 번 말 꺼내 봤다가 그거랑 그거랑 같냐고 꼬치꼬치 따지는 바람에 아주 머리 아팠어.”

벡은 그런 오메가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벡에게 있어 오메가는 호칭은 아빠지만 삼촌이나 동네 형 정도의 포지션이었다.

음식을 기대해보겠다고 벡의 혀끝까지 나왔던 말은 안으로 쏙 들어가고 말았다.

어느새 한쪽 팔을 감쪽같이 수리한 머디가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머디의 시선이 오메가의 칼자루에 닿았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한 분이시더군요. 미처 몰라뵀습니다.”

눈썹만을 으쓱하는 오메가.

그걸 본 머디는 다시 화가 치밀었지만, 간신히 억누르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유전자 검사 결과 정말 부자父子 관계가 맞으시고.”

검사를 위해 혈액이 필요하다고 하자 ‘내 피는 절대 못 준다.’, '이거 얼마짜리 피인 줄 아느냐,' ‘뒷감당이 가능한 레벨이 아니다.’라며 오메가가 난리를 치는 바람에 혈액 대신 타액을 받았다는 뒷이야기가 있었다.

머디가 오메가에게 물었다.

“이 청년의 아버지 되시기도 하고, 굉장히 아끼시는 것같은데 몇 가지 묻겠습니다. 추기경 예하와는 어떤 관계이시며 청년과 교단 사이에 대해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오메가는 눈을 멀뚱멀뚱하게 뜨고 머디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메가, 벡, 머디 사이에 침묵이 밀려들었다.

머디가 인내심을 발휘해 다시 한번 질문했으나 오메가는 부동자세였다.

결국 머디는 폭발했다.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크게 하품한 오메가가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았다.

"그쪽이 물어보면, 내가 다 답해야 하나?”

“잡아가라고 한 건 당신 아닙니까!”

머디의 일그러진 얼굴에 오메가의 말이 날아들어 꽃혔다.

“말은 바로 하자고. 내 발로 잡혀 들어온 거잖아. 그리고

영장도 없는데 내가 왜 곧이곧대로 답해. 당신 아는지

모르겠는데, 이거 불법적인 구류야. 변호사 오기 전까지

한마디도 안 할 거야.”

“변호사? 부르십쇼. 그렇지 않아도 당신이 이단심문관들에게 끼친 피해를 산정해야 하니까!”

“안 부를래. 아는 변호사 없어.”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씨익 웃는 오메가.

“월 어떻게 해. 여기서 내보내 주면 돼. 그럼 나도 인심 써서 추기경 앞에서 엔진이 폭발할 때 그쪽이 웃고 있던 거 얘기 안 할게.”

“그런 적 없습니다.”

“있으면서.”

답답해진 머디는 이대로라면 계속해서 오메가에게 말린다고 생각하고 벡과 오메가를 따로 두려했다.

몸을 벡 쪽으로 움직인 순간, 그리 넓지 않은 작은 방에 새로운 광원이 생겨났다.

“애한테 관심 꺼. 얘기는 나랑만 해. 뜯겼다 붙인 팔 바로 잘리고 싶지는 않지?”

광자 검날이 드러나며 오메가의 얼굴에 음영을 드리웠다.

머디는 분노가 섞인 발걸음으로 방을 벗어났다.

오메가는 검을 역전개하고 다시 벡과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얼마 뒤 의자에서 내려와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체조를 했다.

체조를 마친 오메가는 벡에게 말했다.

“아들, 몸 좀 풀어둬. 나갈거니까.”

“네?"

"내 발로 왔으니까 내 발로 가야지. 여기는 위타천 아저씨한테 맡기고 총 쏜 놈 잡으러 가자.”

“어, 어떻게요?”

“추적 중이래.”

나다는 돌아온 직후부터 지하의 오메가에게 혜심통을 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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