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애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1)
외전. 애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1)
챔버에 자신이 모르는 장치가 있었나?
역설계에 걸려든 것인가?
오메가의 말을 들은 머디는 다양한 가능성을 떠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수십 가지에 달하는 조사와 검사를 마친 후에야 챔버에 입장했었다.
외부에 챔버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몇 번이나 확인했었다.
‘허세다. 이 남자는 아무런 증거 없이 나를 압박하고 있는 것뿐이다.’
자신의 시선 한참 아래에 있는 남자가 풍기는 분위기와 살기는 진짜일지 몰라도, 조금 전 자신에게 한 말은 거짓이라고 단언해버린 머디였다.
‘계획은 새어 나가지 않았다. 이단심문관들은 서로를 배신하지 않는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오로지 교단과 신의 대리자인 교황 성하를 위할 따름이다.’
믿음으로 똘똘 뭉친 트롤이 배에 힘을 단단히 주고 눈을 부릅떴다.
감히 기계 교단의 이단심문관을 농락할 셈이냐고, 당장 물러서라고 웅혼한 외침을 내지를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오메가를 다시 마주한 순간 머디는 티타늄으로 덧씌워 전신으로 강력하게 피를 밀어 보내는 자신의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길들일 수 없는 야수의 눈이었다.
그 눈 속에 트롤이 있었다.
트롤은 건장한 신체에 이단심문관의 검은 사제복을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머디는 그 트롤에게서 다른 모습이 겹쳐 보였다.
구석에 몰린 채로 벌벌 떨며 야수가 자신에게서 관심을 거두길 빌고 또 비는 작은 초식동물이었다.
깜빡-
야수와 초식동물이 동시에 눈을 감았다 떴다.
머디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입장을 다시 한번 명확히 했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 몸에서 넘칠 듯 맴돌던 웅혼함은 유령처럼 사라져버렸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맥없는 말 한마디뿐.
“거짓말······.”
“믿는 건 자유라고 했잖아. 나도 세게 주장하지는 못해. 입증하려면 골치 아프거든.”
입증하기 힘들다는 말에 머디는 특수한 장비나 능력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즉시 눈으로 오메가의 전신을 스캔한 머디는 다른 의미에서 놀랐다.
‘아무것도 없어? 요즘도 이런 인간이 존재하다니······. 이건 이거대로 더 놀라운데. 잠깐, 설마······?’
종족을 불문하고 몸에 기계 부품 하나 없는 이가 드문 세상.
굳이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는 이들을 찾자면 신앙정립성에서 조작을 통해 이 사태의 범인으로 몰아가려 했던 반 기계주의자 정도가 간신히 꼽혔다.
‘하필이면 이 자리에 있을 줄이야.’
머디는 오메가를 반 기계주의자라고 착각했다.
애초에 반 기계주의자들은 극도로 희귀한데다가 그마저도 어디 산골에 자기들끼리 모여 사는 형태가 주를 이뤘다.
그렇기에 이렇게 고도로 발달한 초거대 권역에는 없을 것으로 생각해서 오히려 가상의 테러리스트로 만들기에 적합하다고 여겼는데 당사자가 네오-서울 한복판, 그것도 기계 교단의 성지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말문이 막힌 머디였다.
물론, 대략 한두 시간 전만 해도 호버 바이크를 신나게 몰고 온 오메가는 반 기계주의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발전한 시대상에 감탄하는 일이 잦았기에 분류하자면 기계 예찬론자에 가까울 것이다.
하다못해 허리춤에 늘 쑤셔 넣고 다니는 검 두 자루도 따지자면 굉장히 정교한 기계였다.
다만 비무장 상태의 인원만 성당 안으로 들여보내는 교단의 원칙 때문에 검을 맡겨두고 입장한 상태.
머디는 오메가가 말한 검이 칼자루를 비틀면 검날이 전개되는, 이름부터 ‘전개형 기계식 검’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지금 그의 상상 속에서 오메가는 날이 번쩍이는 철제 검을 휘두르는 반 기계주의자였다.
약 4년 전, 네오-서울이 WSS, 북부 중화권 권역과 한창 전쟁을 벌이기 직전 이름을 날린 해결사가 있다는 소문 정도는 머디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추방 이후 그에 대한 정보는 누군가 혹은 어떤 집단이 지우기라도 한 것처럼 서서히 사라졌고 결국에는 도시 전설처럼 드문드문 이어져 내려올 뿐 실체를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날이 빛나는 두 자루의 검을 기가 막히게 사용했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머디 역시 해결사의 흔적을 찾았지만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온갖 기행과 능력을 보이는데 정작 신체는 퓨어라는 허황된 소리뿐.
아마 이 자리에서 오메가가 광자 검날을 전개했다면 머디는 그 의문의 해결사와 오메가를 이어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게다가 이 인간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이 인간과 제법 친해 보이는 저 아수라는 머디도 알고 있었다.
‘예공방의 사장인 하르파고스. 날로 벨 수 있다면 식칼이고 귀도鬼刀고 가리지 않고 수집하는 검 예찬론자. 이 인간도 검 이야기를 했으니 역시 비슷한 부류겠지.’
일촉즉발의 상황을 추스른 것은 위타천이었다.
머디와 오메가 사이에 끼어들어 둘의 거리를 벌린 뒤, 그는 먼저 머디에게 말했다.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물러나는 건 네오-서울 공공 집행본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문제입니다. 필요하다면 저희가 기계 교단에 먼저 도움을 요청하겠지만 이곳은 여전히 저희 통제에 놓일 겁니다.”
위타천의 고개가 오메가에게로 돌아갔다.
“자네도 여기까지만 해. 더 나서는 건 그림이 안 좋아.”
“제가 여기 좋은 일 축하하러 왔지, 그림 그리러 온 건 아니잖습니까.”
“어허.”
“영감니······추기경님도 먼저 떠나셨으니까 벡은 저희가 데려가겠습니다.”
후배라는 명칭이 펠루다에게로 옮겨간 이후 어느 샌가부터 오메가를 자네로 칭하는 위타천이었다.
머디는 그 짧은 위타천의 말에서도 작은 단서를 잡아냈다.
‘그 안하무인, 유아독존인 위타천이 저렇게나 사정을 봐준다고?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근엄한 표정을 얼굴에 그려내고는 위타천에게 답했다.
“교단, 특히 신앙정립성은 이 사태를 절대 가벼이 보지 않을 겁니다.”
“가벼이 보지 않는다라······참고하지요.”
위타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머디가 다른 이단심문관들에게 물러서라 말했다.
비로소 긴장이 조금 누그러졌다.
하지만 머디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눈을 반짝이는 벡에게 한쪽 눈을 찡긋해주는 오메가의 등 뒤에서 머디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장의 수사와는 별개로, 저 청년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트롤 이단심문관의 시선은 신시아와 이수련의 등 뒤에 있는 벡에게 향해 있었다.
다른 이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기 직전이었으나 머디가 한 발짝 더 빨랐다.
“교단 내부의 일입니다. 심지어 교단의 중요한 의식을 행하던 중에 벌어진 일이고 저 청년은 교단에 전혀 보고되고 알려진 바 없습니다. 반 기계주의자들이 교단 내부에 심어놓은 첩자일 수도 있습니다.”
반 기계주의자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며 슬쩍 오메가의 눈치를 본 머디였다.
벡을 보호하려고 나선 오메가를 보고 기가 막힌 스파이 시나리오를 즉석에서 짜낸 자신을 칭찬하고 싶기도 했다.
“추기경께 여쭙겠습니다.”
곤란한 표정의 위타천이었다.
공공 집행본부가 수사의 중심이 되는 것까지는 오메가의 도움 아닌 도움으로 어떻게 강행했지만 네오-서울 곳곳에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드문 기계 교단과 반목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었으니.
그런 위타천에게 이수련이 혀를 쯧하고 찼다.
“저, 저 못난 놈.”
머디가 장기를 발휘해 신나게 떠들어댔다.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분들도 자리에 계시지만 대체로 면면이 화려한 분들이시지 않습니까. 네오-서울을 대표하는 분들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이런 분들이 이렇게 똘똘 뭉쳐서 ‘저희 교단’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건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탄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이게.”
추기경도 놓쳤고, 엔진의 확보도 실패했다.
남은 벡이라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디는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종교, 탄압과 같은 센 단어들이 나오자 모인 사람들이 주춤했다.
그 사이 머디는 벡이 있는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같은 방향으로 가던 오메가를 지나치자 공중에 떠 있던 이수련과 신시아가 머디의 앞을 막았다.
“이런······. 야스민 가문의 영애 아니십니까. 야스민 공께서는 오랜 기간 교단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아는데, 따님은 생각이 조금 다르신가 보군요? 아드님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계실까요?”
슬그머니 야스민 공과 젠까지 끌어들이는 머디의 음흉함에 신시아는 입술 안쪽을 꽉 깨물었다.
이번에 머디는 이수련을 훑었다.
“직접적인 교류는 없지만, 그 모습을 보니 어디 로봇 기업 관련 인사가 아니실까 합니다. 교단과 대립하는 곳들은 말로가 모두 좋지 않았죠. 아마도 알고 계시겠지만요.”
팔짱을 끼고는 있지만,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이수련의 모습에 기세등등해진 머디가 계속해서 말을 쏟아냈다.
“여기 계신 각자의 입장이 있겠죠. 저 역시 조금 양보했으니 이 정도 양보는 받아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명색이 추기경 예하께서 집전하시는 견진성사에 파견된 이단심문관인데 뭐라도 했다는 모습이 남아야 할 것 아닙니까. 빈손으로 털레털레 갈 수는 없지 않겠어요?”
말을 마친 머디의 한쪽 팔은 길게 늘어져 바닥에 닿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팔 전체를 신축성 있는 금속섬유로 교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 문제가 없다면 청년은 풀려날 겁니다. 이렇게나 예민하게들 나오실 필요가 없다 그겁니다.”
머디의 팔이 이수련과 신시아 사이로 쏘아졌다.
‘문제는 이쪽에서 만들면 그만이지.’
벡을 움켜쥐기 위해 쫙 펴진 손아귀가 우악스러웠다.
놀라서 눈을 크게 뜬 벡에게 손이 닿기 직전, 머디는 팔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우지직-
늘린 팔이 붙어있는 어깨가 형편없이 뭉개져 있었다.
[역발산기개세]
어느새 소리 없이 다가와 머디의 어깨를 뭉갠 오메가의 목소리가 머디의 귓가에 닿았다.
“내 입장도 물어봤어야지. 각자의 입장 말고. 그럼 이런 일은 없잖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드디어 파악한 이단심문관들이 뛰어들었으나 이수련의 법술 장벽과 신시아의 원혼에 막혀 뒤로 밀려났다.
머디의 팔이 어깨로부터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뱀처럼 꿈틀대는 팔의 움직임을 보며 머디가 으르렁댔다.
“어떻게······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나 있나?”
“네가 하는 짓은? 괜찮고? 좋은 날을 좆 같은 날로 만들고 있잖아.”
벗어나기 위해 머디가 몸을 뒤틀었으나 오메가의 손아귀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쪽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그냥 넘어갈 거라고는······.”
“누군지 궁금해? 알려줘? 안 되는 일도 되게······아니 여기서 이건 별로야.”
답변이 나오기도 전, 오메가는 그대로 머디를 들어 성당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속이 시커먼 놈들에게 세상의 매운맛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속이 검을수록 맵기는 증가하지.”
묘하게 오메가의 행보와 어울리는 말.
신시아와 이수련을 제외한 모두가 황당한 눈으로 처박히는 머디와 머디를 그렇게 만든 오메가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신시아, 이수련, 벡에게 앨리스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사장님이 또 사고를 치셨네요.
“본좌도 그리 생각하고 있느니라.”
“그래도 자기치고 이 정도면 거한 사고는 아니네.”
내용과는 다르게 너무나 평안한 앨리스의 말투, 모든 걸 바로 앞에서 보고도 큰 변화가 없는 신시아와 이수련의 태도.
이들은 평소에 어떤 수라장을 헤쳐 나가고 있는 것일까.
벡은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조금 두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