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견진성사(2)
외전. 견진성사(2)
펠루다는 거북 수인이다.
과거에는 요인 보호, 대인 방어에 특화된 PMC 요원이었으나 현재는 공공 집행본부 소속이다.
그리고 지금은 기계 교단 대림 성지, 흔히들 말하기를 대성당이라고 부르는 곳의 한 건물 내부에서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펠루다가 서 있는 곳은 얼마 전까지 대주교의 거처로 사용되던 곳이었으며 지금은 추기경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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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알파 흥신소로 이름이 바뀌어버린 오메가의 해결사 사무실에 들어가려고 무던 애를 쓰던 중, 어떻게 해도 오메가가 식구 늘어나는 거 귀찮다며 받아 들여주지 않자 펠루다는 배수의 진을 친답시고 PMC에 사표를 내버렸다.
그리고 해결사 사무실에 찾아가서 펠루다는 말했다.
“저, 퇴사했습니다! 여기서 일하려고요! 일하게 해주십쇼!”
펠루다가 오메가에게 보였던 모습 중 가장 크고 웅대했다.
그런 펠루다에게 오메가는 ‘병신 머저리 같은 놈’이라는 시선을 보낼 뿐이었고, 오히려 눈을 반짝이는 이는 마침 자리에 있던 위타천이었다.
그대로 위타천의 손에 붙잡혀 공공 집행본부로 끌려간 펠루다는 그날부터 ‘견습 공공 집행자’라는 전례도 없고 유례도 없는 말도 안 되는 직책을 얻게 되었다.
비어버린 위타천의 부관 겸 위타천의 빠른 은퇴를 위한 후진 양성만을 위한 자리.
공공 집행본부 내부와 다른 공공 집행자들마저 도제식 교육에 거부감을 보였지만 그때마다 위타천이 나서서 거북이 내보내면 자기도 태업할 거라고 드러누워서 유야무야 넘어가곤 했다.
‘제 작업량에 비하면 위타천 씨는 이미 극도의 태업을 하고 있어요. 세금이 질질 샌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고요.’라는 마고의 일침도 위타천의 뻗댐을 그치게 할 수는 없었다.
위타천도 펠루다에게 오냐오냐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메가를 놓친 이상 펠루다를 키워야 자신이 마음 놓고 은퇴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어서 오히려 많이 배려해주었다.
문제는 그 배려가 지극히 위타천 중심적인지라 사흘 연속 야근하고 출동하기, 능력을 증강해야 한다며 억지로 강신 의식하다 신병 들게 하기, 이렇게 약해서는 네오-서울을 지킬 수 없다며 쉴드 전개한 펠루다에게 풀 강신 모드로 공격하기 등등의 무지막지한 것들 뿐이었다.
공공 집행자 서포트 부서의 사람들마저 위타천이 멀쩡한 거북이 데려와서 폐인 만든다는 소리를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유능한 PMC 요원 하나 죽어 나갈 거라면서.
하지만 놀랍게도 펠루다는 위타천의 일방적이고 혹독한 교육을 버텨냈다.
오메가에게 반강제로 끌려다니며 목격한 천외천들의 세계.
처음에는 그저 그들을 외경畏敬했다.
닿을 수 없는 존재들이라 선을 긋고 그들을 우러르면서 동시에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런 자들에게 끝없이 도전해 마침내 무릎 꿇리는 오메가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천외천에 대한 외경은 차차 갈망으로 바뀌었다.
오메가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신의 약함에 있다는 결론에 닿은 펠루다의 성찰과 천외천에 대한 갈망이 엉켜 그의 마음에 무너지지 않는 기둥을 세웠다.
위타천의 ‘배려’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해도 기둥을 깎아내지는 못했다.
펠루다에게는 공공 집행자마저 오메가의 곁에서 일하기 위한 스펙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펠루다의 경지와 실력은 일취월장, 괄목상대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급상승했다.
PMC 시절 모아두었던 돈과 공공 집행본부에서 나오는 쥐꼬리만 한 돈을 털어 등딱지 쉴드를 끝없이 보강했고, 운용 방식도 다양화했다.
인질 5명을 보호하는 동시에 특수 능력을 갖춘 테러리스트 20명을 처치하는 모의 테스트를 펠루다가 단신으로 완벽하게 통과했을 때는 전쟁 발발 3년 후였다.
쉴드를 등에 회수한 펠루다에게 위타천이 말했다.
“고생했네, 후배.”
펠루다는 눈물이 핑 돌았다.
후배.
3년간 위타천이 자신에게 한 번도 해준 적 없는 말이었다.
늘 거북이, 빠박이, 등딱지, 시다바리, 쪼다 등으로 부르던 위타천의 입에서 직접 듣는 후배라는 인정이었다.
곧 위타천은 공공 집행본부와 네오-서울 시청에 펠루다를 공공 집행자 후임으로 삼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바로 검증위원들이 위촉되고 청문회가 열렸다.
그리고 펠루다는······탈락했다.
약물 중독 치료에 관한 의료 기록이 발견되었고 최면요법으로 기억에 손을 댄 흔적이 보인다는 소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간 위타천을 따라다닌 것은 허사는 아니었던지 펠루다의 초인적인 고생을 본 공공 집행본부 구성원 일부와 네오-서울 시민들에게서 ‘PMC 요원이었던 펠루다의 과거를 고려하면 그 정도는 문제가 안 된다’, ‘PTSD 치료를 위해 사용했을 것이다’라는 호의적 여론이 퍼졌다.
결국 위원들은 강력한 반발에 밀려 기존의 탈락 의사를 철회하고 2년의 유예기간을 두어 펠루다를 지켜보기로 했다.
임시 면허를 취득한 셈.
물밑 여론을 움직이는 데는 커뮤니티 마스터, 앨리스의 영향이 컸다.
펠루다가 떨어지면 또 위타천이 자기에게 와서 징징댈 것 아니냐는 오메가의 히스테릭한 독촉 때문이었다.
신시아도 남편을 공공 집행자로 만들 생각은 없기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물론 펠루다는 이런 뒷공작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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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펠루다는 지금 침을 꿀꺽 삼키며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지난 4년간 위타천에게 붙잡혀 이런저런 현장을 많이 끌려다니면서 겪을 일, 안 겪을 일을 가리지 않고 체험해왔다.
그 이전 PMC 요원으로 활약하던 시기에도 요인 보호와 대인 방어만큼은 자신 있는 분야였다.
하지만 이틀 뒤에 기계 교단 대림 성지에서 열릴 견진성사에서 펠루다가 보호해야 할 대상은 그런 과거의 경험 어디를 뒤져봐도 나타나지 않을 듯한 거물이었다.
헤지르 추기경.
펠루다는 견진성사가 진행되는 동안 추기경의 바로 곁에서 1차적인 보호를 담당하는 중역을 맡게 된 것.
이 일만 성공적으로 마치면 유예기간이 2년이 아니라 1년으로 줄어들 거라는 위타천의 일방적인 판단과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고 여겨 넙죽 받아들인 펠루다의 패기가 만들어낸 상황이었다.
대림 에어리어 뿐만 아니라 네오-서울 전역이 축제 분위기였기에 경호하는 측에서는 더더욱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응접실에서 위타천, 나다가 추기경에게 경호 작전의 전반을 설명하는 동안 밖에서 펠루다는 밖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기계 교단의 사제복을 입은 이들이 그런 펠루다를 향해 곱지 않은 눈총을 보냈다.
추기경이 집전하는 견진성사는 커다란 행사이기 때문에 네오-서울 공공 집행자들 일부도 투입되는 대규모 작전이기도 했다.
이 점이 기계 교단 내부에서 불만을 불러왔다.
기계 교단 내부에는 신체 전반을 전투용 기계로 교체하고 굳건한 신앙을 가진 수도회와 사제단이 수십 개는 있었다.
말이 수도회와 사제단이지 신심으로 뭉친 병사라고 해도 좋았다.
이런 수도사와 사제들이 아니면 감히 어떤 이가 추기경의 호위를 맡냐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
특히나 그런 수도회와 사제단을 수족으로 삼아서 이단 종파의 절멸을 지상최대의 목표로 삼는 이단심문관들이 모인 교단본부 신앙정립성의 반응은 극렬할 정도.
하지만 위타천에게 들어 펠루다가 오메가와도 인연이 있음을 알게 된 헤지르 추기경은 호위로 펠루다를 삼은 결정을 강행했다.
물론 펠루다도 이제는 구를 만큼 굴러서 그런 눈길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응접실의 문이 열렸다.
여전히 후덕한 안드로이드 승려, 나다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펠쿤, 안에서 부르니 들어가 보라능. 여긴 내가 있겠다능.”
“아, 네. 감사합니다.”
밖으로 나온 나다가 손을 모아 합장하자 그의 뒤에서 후광이 터져 나오며 응접실 문을 완전히 봉쇄했다.
그 자세에서 나다는 생각했다.
‘얼른 집에 가서 불법소녀 애니 4기 마지막 화 보고 싶다능. 미연시 신작도 해야 하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재밌는 게 왜 이리 많이 나오냐능!’
속으로 혼자 화를 내는 나다를 뒤로 하고 응접실 안으로 들어선 펠루다에게 위타천이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펠루다가 다가서자 추기경이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벡에 대한 건 알고 있지요?”
“예. 대장, 아니 오메가 씨의 생물학적 아들이라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헤지르 대주교가 교단의 여러 일을 맡아보면서 피치 못하게 네오-서울을 떠나게 되면 벡은 해결사 사무실에 맡겨지곤 했다.
기계 교단 내부에 두기에는 오히려 안전하지 못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펠루다는 위타천에게 끌려다니는 4년 동안 틈만 나면 사무실을 찾아왔으니 자연히 벡과 마주치곤 했다.
볼 때마다 쑥쑥 자라는 데다가 오메가를 닮기까지 한 아기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펠루다가 오메가에게 물었을 때 나온 답이 바로 저것이었다.
“생물학적 내 아들.”
오메가는 더 이상 말해주지 않았다.
어리둥절해진 펠루다가 앨리스나 신시아, 이수련에게 물어도 더 이상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수련만이 ‘본좌의 미래 신랑이니 잘 모셔야 할 것이야.’라는 더욱 이해 못 할 소리만 떠들 뿐이었다.
펠루다에게 있어 다행이었던 점은 벡이 펠루다를 썩 잘 따랐다는 점이었다.
오메가가 절대 사무실 채용 안 할 거라고 꺼지라며 펠루다를 발로 차면 벡이 쪼르르 달려가 막아줄 정도였다.
입이 트인 이후에는 아빠와 할부지 다음으로 헤으삼촌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헤으삼촌이 펠루다 삼촌으로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추기경의 말에 펠루다의 사고는 정지했다.
“벡은 기계 장치의 신의 대전사이며 교단에 내린 축복입니다. 그러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유사시에 펠루다 군은 제가 아닌 벡을 보호해주셨으면 합니다.”
무거운 침묵.
보다 못한 위타천이 펠루다를 툭툭 칠 정도였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펠루다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
“그, 그럼 대장이 기계 장치의 신이었던 겁니까? 벡이 교단의 대전사고 대장이 생물학적 아버지니까······.”
미소가 가득하던 추기경의 평안이 깨졌다.
“오메가 그 녀석이? 방금 펠루다 군의 발언은 신성모독입니다.”
여전히 자신에게 공돌이 영감님이라고 부르는 오메가를 생각하면 머리부터 지끈거리는 헤지르 추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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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 추기경 서임 미사 겸 견진성사 당일.
어마어마한 인파가 대림 에어리어의 기계 교단 성지로 밀려들었다.
입장하지 못한 이들은 각 교구에 있는 성당으로 모여 미사 중계를 볼 정도.
그마저도 하지 못한 이들이 거리에 넘쳐났지만, 모두 한 마음 한뜻으로 크게 외쳐댔다.
V16!
V16!
그때
네오-서울을 날리려던 어느 사생아의 울분도 잊혀지고
이름 모를 해결사의 활약도 추방 이후 묻혀버린
그리고 그런 것들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생존이 천박한 농담이 된 시대에
한 남자와 한 안드로이드가 차와 인파가 가득한 대림 에어리어 도로 위의 호버 바이크에 올라타 있었다.
“시부럴 거. 더럽게 막히네.”
“아예 아침에 출발하던가, 아니면 바이크 두고 가자고 했는데 부득불 바이크 타고 가자고 그런 건 사장님이잖아요.”
“그럼 이 거리를 걸어가?”
“으으······. 신시아 언니가 무슨 일이 있어도 늦지 않게 사장님 데려오라고 했는데. 이게 뭐야······.”
“그래?”
“언니야 야스민 저택에서 따로 출발할 거라고 했잖아요. 젠 님이랑 같이 오실 거라고.”
“신시아는 언제쯤 도착 예정인데?”
“지금부터 10분 후요.”
“우리 자기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자기래. 우웩.”
계기판 주변에서 움찔거리는 오메가의 손을 본 앨리스가 불안감 섞인 목소리로 재빨리 말했다.
“제발 이상한 거 하지 마세요. 추방령 종료되고 복권된 지 1년도 안 지났어요. 따지면 유예기간이고 가석방 같은 거라서 괜히 눈에 띄면 안 돼요. 이례적으로 빠른 절차라서 주목하는 눈도 많은······.”
하지만 이미 오메가는 조작을 마친 후였다.
바이크의 옆에서 날개가 뻗어 나왔다.
지면을 향해 재조정을 마친 노즐에서 공기가 뿜어졌다.
“꽉 잡아. 모드 팔콘이야.”
제한 높이보다 훨씬 높이 떠오르는 바이크를 향해 교통 드론들이 먹잇감을 발견한 까마귀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이제 거의 절규하고 있었다.
“다른 호버 바이크 오너들이 바보라서 이런 기능을 안 넣는 게 아니라고요! 이런 개조 시도 자체가 심각한 불법이라 걸리면 벌금 정도로 안 끝난다고 5천 번쯤 말씀드렸잖아요!”
“안 걸리면 된다는 거네. 그리고 걸려도 큰일 나는 건 내가 아니라 너다?”
“그게 무슨······?”
“사무실 명의가 내가 아니라 너로 되어 있잖아. 그리고 세금 때문에 바이크도 법인 차량으로 등록하라며. 앨리스 사장님.”
“이이······.”
“개조도 무려 추기경이 해준 거라고. 기계 교단 추기경한테 따질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자, 가자고!”
오메가는 거침없이 기계 교단 대림 성지를 향해 스로틀을 감았다.
이것마저 기계 교단에서 준비한 퍼포먼스로 오해한 많은 이들이 내지르는 함성과 탄성이 바이크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