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50화 (외전) (251/258)

외전. 견진성사(1)

외전. 견진성사(1)

커머라시 야스민.

흡혈귀 상위 다섯 가문 중 가장 강성한 것으로 알려진 야스민 가문의 가주이며 본명보다는 야스민 공이라는 명칭이 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네오-서울을 넘어 한반도 일대의 권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일본 열도의 지배적 위치였던 히마와리 일족에 대항하여 벌어진 근래의 열도 내전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했다.

그 덕인지 모르겠지만 네오-서울의 헤게모니와 히마와리 일족을 타파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일어선 열도의 중소 권역들은 압도적인 인력과 물자 지원, 족히 한 세대는 앞서 있는 기술 격차에 속수무책으로 차례차례 무릎 꿇었다.

연이은 패배 소식에도 의지를 잃지 않은 이들이 존재했으나 내전 3년 차, 야스민 가문에서 직접적으로 갈라져 나간 분가의 특수부대들이 열도에 침투하자 그 가냘픈 의지마저 꺾이고 스러졌다.

저항 거점이나 각 권역의 랜드마크 위에 피로 그려진 거대한 야스민 가문의 문장을 본다면 누구나 그러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주 극렬한 소수가 저항을 이어 나갔지만 결국 네오-서울과 WSS 사이에 있던 평화공원이 폭발한 지 정확히 4년 후, 열도의 한신나 권역과 간토 권역의 연합전선은 모든 저항 세력이 소멸했으며 내전이 종료되었음을 선언했다.

야스민 가문이 열도의 내전에 참전한 배경이 명확히 알려지지는 않았다.

드디어 한반도의 권역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해서 열도를 향해 검은 야욕을 뻗쳤다는 둥, 야스민 가문의 먼 분가인 것이 분명하지만 정통성을 부정해온 히마와리 일족에 대한 응징이라는 둥 갖가지 추측만이 맴돌 뿐.

야스민 가문과 커머라시 야스민은 어떤 의혹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사위가 여러모로 애쓴 판에 장인이 있는 힘껏 도와야지. 사위는 부모님이나 일가친척도 안 계신 것 같던데 이렇게라도 가족의 정을 느끼면 좋으련만.’

제시된 추측들도 대부분 맞지만, 야스민 공이 움직인 가장 큰 동기가 저런 것이라는 사실은 그의 직계 자식들도 알지 못했다.

오로지 야스민 공과 그의 진정한 친우이자 집사인 레이먼드만이 공유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의 사위가 보통 사위인가.

야스민 공의 유일한 취미라 할 수 있는 마도공학 유물을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니 야스민 공은 사위를 볼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나오고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수준이었다.

별을 따다 달라고 하면 당장 태양청년단과 협력해 항공우주센터를 만들 수도 있었다.

사위가 마음에 드는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눈이 높아도 너무 높아서 평생 혼자 살 것 같았던 딸을 데려갔을 뿐만 아니라 딸의 연적이었던 토착종 구미호 수호자를 두고도 딸에게 헌신하기로 한 걸 생각하면 야스민 공은 때때로 벅차오르곤 했다.

똑똑-

누군가 서재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분열해 있던 야스민 공의 수많은 자아들이 그 소리에 일제히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관 형태의 침대를 향해 걸어 들어가 차례로 몸을 눕혔다.

마지막 자아가 몸을 눕히자 머리에 장치를 쓴 야스민 공의 본체가 몸을 일으켰다.

장치를 벗겨 내려놓고, 침대 옆의 커다란 유리장에서 퍼덕이는 나비를 바라봤다.

야스민 가문의 문장이 날개에 그려진 나비가 여전히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야스민 공이었다.

서재의 문을 열자 앞에는 야스민 저택의 집사인 레이먼드가 서 있었다.

“예정된 시간입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이는 레이먼드.

“공께서 직접 참관하실 일은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무슨 말 하냐는 듯 눈썹을 찌푸린 야스민 공.

“그게 무슨 소린가. 이제 곧 자네 가문 사람이 된다 그건가? 그런 생각이라면 서운한데. 마음 같아서는 본가의 인원으로 합류시키고 싶지만, 문제가 복잡해서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걸 알지 않나.”

“그런 의미로 드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저택을 벗어나는 일이 굉장히 오랜만에 있는 일이기도 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일도 아니기에······. 의식이 끝난 이후에 바로 저택으로 데려와도 되는 일이고요.”

둘은 지하를 향해 내려가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의식의 순간에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일세. 그리고 이참에 바깥바람도 쐬고 그래야지. 한 400년 만인가?”

“438년하고 9개월 12일째 저택을 나가지 않으셨습니다.”

“벌써 그렇게나 됐군. 세월이 참 빨라.”

“그렇습니다.”

“그래도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절대 못 볼 줄 알았던 사위도 보고 심지어 사위 아들도 봤으니까.”

“사위 아들이라는 표현은 조금 이상합니다.”

“손자가 옳은 표현인 걸 내가 모르겠나? 손자이긴 한데 나와 피가 이어지지 않으니 그렇게 부를 뿐이지. 어찌나 아쉽던지. 지난 4년 내내! 그런데 드디어 피가 이어지는 날 아닌가. 홀스릭 가문도 야스민에서 분리되어 나갔으니 말이야.”

“맞는 말씀입니다.”

“설레서 미칠 것 같구먼. 어서 가세.”

들뜬 발걸음의 야스민 공이 지하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엄중하게 경비 중인 근처의 공사장에서 커스텀 오더가 잔뜩 들어간 에어로 리무진 한 대가 벗어났다.

운전석에 앉은 레이먼드 홀스릭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홀스릭 가문 주거지로 차를 몰았다.

그동안, 야스민 공은 짙게 선팅된 창문을 살짝 내려 손등에 햇빛이 닿게 했다.

아주 예전 같으면 격통을 느끼며 손등이 타들어 갔겠지만, 야스민 공은 데이워커 수술을 받은 지 오래라 햇빛은 그의 몸에 아무런 위해도 미치지 못했다.

그는 조심스레 손을 뒤집었다.

햇살을 이제 그의 손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렇게나 피해 다니려고 애를 썼는데.”

두려움의 형상이자 공포의 실체였던 빛줄기가 전해오는 온기가 따스했다.

차 안을 떠다니는 먼지가 햇살의 범위 안에 들어가 더욱 선명하게 비쳐 보였다.

그것을 바라보는 야스민 공의 눈동자는 너무도 붉어서 차량 내부 대부분을 덮고 있는 어둠에서도, 창문 틈을 통해 들어선 빛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오늘은 그와 그의 직계 자손들만큼은 아니겠지만 눈이 몹시도 붉은 흡혈귀 하나가 탄생할 예정이었다.

창문을 올려 빛을 차단한 야스민 공이 즐거운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레이먼드에게 물었다.

“얼마나 남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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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앙-

부와앙-

기계 교단 대림 교구의 성당이 위치한 대림 에어리어 1구역에서 7구역에서는 귀를 먹먹하게 하는 기계 소음이 멈추지 않았다.

기계 교단의 세가 강성한 해당 구역뿐만 아니라 바이오 테크 기업들의 지사와 연구소가 한 건물 너머 한 건물로 모여있는 13, 14, 15구역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이 분위기는 대림 에어리어 전체를 휘감고 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기계 교단 대림 교구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헤지르 대주교의 추기경 승격이 발표된 직후부터 일주일 내내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어느 고층 건물의 카페에 앉아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를 바라보던 한 인물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타조 수인인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으며, 악기를 넣어두면 좋을 것 같은 긴 케이스를 옆에 내려두고 있었다.

그러자 타조 수인 반대편에 있는 트롤이 양손을 위로 뻗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입 밖으로 길게 튀어나온 트롤의 송곳니에 덕지덕지 붙은 기계 장치가 요란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린! 이건 대단한 거라고. 헤지르 대주교가 고도로 발전하고 복잡한 권역인 네오-서울을 맡아 기계 교단의 세를 크게 부풀리고 수많은 신도를 바른길로 이끈 업적은 진작부터 인정받고 있었잖아. 승격은 교단 본부에서도 몇 번이고 논의되었던 안건이었기도 하고. 헤지르 대주교 본인의 은퇴 의사가 워낙 확고해 매번 무산되긴 했지만.”

“······.”

린이라 불린 타조 수인은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롤은 제 흥에 못 이겨 계속 떠들어댔다.

“아직도 본인은 은퇴 의사가 짙은 것 같은데, 대주교 같은 인물이 이대로 은퇴하면 안 되지. 네오-서울이 근방 권역들과 벌인 전쟁을 이용해서 교단의 양적 팽창에도 크게 기여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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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S 같은 경우는 그나마 빠른 휴전 협상을 통해 핵심 구역들을 지켜낼 수 있었지만, 북부 중화권 권역들은 오히려 자신들끼리 단단히 연합해 네오-서울에 대한 반감을 분명히 했다.

네오-서울 측의 응징은 처참하고 일방적이었다.

오메가의 추방 이후 시장의 암계에 걸린 줄도 모르고 축배의 잔을 들다 한순간에 물갈이된 수도방위사령부의 똥별들 대신 임명된 새롭고 젊은 상층부는 군공에 목말라 있었고, 작전명 ‘북벌’은 그들의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종류를 이루 헤아리기도 힘든 포탄과 미사일들이 하늘을 가로질렀고, 조금 잠잠해졌다 싶으면 초인들로 이루어진 특수부대가 권역으로 침투해 벙커와 방공호를 뚫고 요인들을 처리했다.

심지어는 장과 연결고리가 있다면 타 권역으로 망명한 인사까지도 끈질기게 추적해 죽였다.

네오-서울 각 분야에 침투해 있는 첩자와 스파이 색출이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잠자는 사자가 일어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세계는 분명 목격했다.

명분조차 네오-서울에게 있는 전쟁.

6개월 후, 톈진, 허베이, 만주 권역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열도의 내전에 불이 붙기도 전이었다.

해당 권역들의 문명 수준은 50년 이상 퇴보했으며 걸인이 넘쳐나게 되었다.

이 틈을 노린 것이 헤지르 대주교였다.

인도적 지원을 기치로 삼아 대규모 지원단을 구성했고 기계 교단 상징이 그려진 깃발 아래서 교인들은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비록 기능 대부분을 상실한 북부 중화권 권역들이지만 그곳에서 기계 교단은 빠르게 영향력을 넓혔다.

정치적, 문화적으로는 사회주의가 짙게 남아있어 종교에 강한 거부감을 가졌던 해당 권역들의 지도층이 사라졌을 때를 노린 전략.

다른 종교들도 빠르게 기계 교단을 모방했지만 재원, 인력, 기술 삼박자가 모두 갖춰진 종교는 흔치 않았다.

동시에 네오-서울의 시청과 군부에 기술 지원을 아끼지 않은 판단 또한 주효했다.

그렇기에 전쟁 개시 4년 후, 북부 중화권 권역의 지도층이 친 네오-서울 인사로 가득 채워졌을 때 기계 교단은 북동아시아에서 유례없는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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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이 눈을 뜨지 않은 채로 트롤에게 답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트롤은 입을 다물었지만 린은 한 번 더 물었다.

“답해, 머디.”

머디라는 이름의 트롤은 머리를 긁으며 멋쩍게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무게감 있던 헤지르 대주교의 입지가 교단 내에서 급부상했지.”

“그래. 그의 불분명한 과거 정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말이야.”

“지금까지 헤지르 대주교를 견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던 페테르 님도 뜻을 바꾸셨지. 이번 추기경 승격에 가장 강력하게 힘을 보탠 분이 페테르 님이라고도 하니까.”

고개를 끄덕인 린을 향해 머디가 한마디 덧붙였다.

호들갑 떠는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한없이 진지하다.

“이상해.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스탠스가 바뀐 때를 추적하면 독단적인 판단으로 네오-서울의 전쟁에 참여하신 이후야. 결과적으로 보면 페테르 님 개인에게나 교단에게나 큰 이득이 된 판단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페테르 님을 파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 그건 역시 대전사를 실제로 만나고······.”

쉽게 꺼내서 안 되는 단어가 나오자 눈을 감은 린의 미간 위에 주름이 잔뜩 생겼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야. 괜히 입 밖으로 내지는 마. 화를 부른다.”

“미안.”

서슬 퍼런 린의 목소리에 얼른 사과했지만 머디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정말이라면 우리가 나서야 해. 다른 이들이 아니라 우리가.”

“알아.”

린이 목걸이를 만지자 옅은 빛이 둘 사이에 놓여있던 책상에 닿아 흐릿한 홀로그램을 만들어냈다.

홀로그램은 작은 아기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리고는 곧 걸음마를 뗀 유아, 달리기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거쳐 이제 막 소년티를 벗어가는 약관의 청년 모습으로 변했다.

“목격과 관측된 일부 모습으로 추정한 거라 정확한 형상은 아니야.”

“이게 소문의 벡······.”

“헤지르 추기경이 워낙 싸고돌아서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도 불분명해.”

“만약 정말이라면 헤지르 추기경은 어쩌면 추기경 그 이상의 입지를······.”

여전히 이마에 주름을 여럿 만들어낸 채로 린이 머디의 말에 긍정했다.

“어쩌면 교단의 분리를 가져올지도 모를 중대 사안이야. 막아야 해.”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뜰 수는 없겠지.”

“교단은 교황 성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해. 그것이 기계 장치의 신께서 내린 뜻이니까.”

악기 케이스를 슥 내려다본 머디가 뜸을 들이다 질문했다.

“그럼 추기경과 벡 모두?”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초제근.”

“시기는?”

“일주일 뒤 대림교구의 견진성사(세례받은 신자가 신앙을 확고히 했음을 증명하는 성사. 종교적 성인식)를 대주교, 아니 헤지르 추기경이 집전한다더라. 고작 견진성사인데 말이야. 추기경이 참관만 해도 굉장한 일인데 집전이야. 대주교 시절부터 잡혀있던 일정이라고 하니까 벡이 참여하는 게 확실해. 그때를 노린다. 사고로 위장될 거고, 추기경과 벡은 희생자로 인식되겠지. 다른 형제자매들에게도 그렇게 전해.”

그렇게 말을 마친 린은 머디를 남겨둔 채로 테이블 옆에 놓여있던 악기 케이스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거리 가득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V16!

V16!

이것이 기계 교단을 향한 환호성인가 그렇지 않으면 헤지르 추기경 개인을 향한 외침인가.

대전사의 존재가 허구가 아닌 진실이라면 이 환호성은 마침내 추기경을 다음 교황, 혹은 새로운 교황으로 옹립하자는 데까지 이를 것인가.

기계 교단 신앙정립성 소속 이단심문관 린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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