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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49화 (본편 끝) (250/258)

249. 본편 끝

249.

공공 집행본부 앞의 고즈넉한 찻집.

나무로 짠 문이 열리면서 위에 달려있던 종이 경쾌한 소리를 냈다.

짤랑-

고도로 발달한 도시와 주변 환경에 영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가도, 또 다르게 생각하면 그것이 주는 낯선 정취와 여유가 사람들을 이 찻집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찻집의 주인장인 구형 안드로이드는 새로 들어온 찻잎을 정리하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방금 막 들어온 손님을 보았다.

위타천.

네오-서울의 공공 집행자이자 이 찻집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해 자주 방문하는 고마운 손님이다.

서로 간의 눈인사를 마치자 위타천이 그리 크지 않은 찻집 안쪽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아마도 요새 같이 다니던 젊은이를 찾는 것이리라 생각한 주인장은 손으로 가장 안쪽의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걸 본 위타천이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안쪽으로 테이블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찻집 구석 천장 아래의 다 낡아빠진 브라운관 TV에서는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뉴스 소리가 작게 들렸다.

-해결사 오메가의 네오-서울 추방 여부가 곧 발표됩니다. 수도방위사령부가 중심이 되어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 추방 안건은······.

주인장은 교체 시기를 한참 넘겨 초점 조절이 잘 되지 않는 렌즈를 이리저리 조정해서 TV를 바라봤다.

TV에 나오는 인간 남자가 위타천을 기다리는 남자와 비슷하게 생긴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렌즈 때문인지, 아니면 브라운관 TV의 깔끔하지 못한 색감 때문인지 확실하게 구분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결국 주인장은 TV를 보려고 애쓰는 것과 찻잎 정리를 모두 멈추고 포트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위타천이 주문하기 전, 다기를 데워놓기 위함이었다.

다기가 데운 물을 맞아 은은하게 밴 차향이 올라올 때쯤, 위타천이 향한 방향에서 아주 즐겁고, 유쾌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

“얼굴 꼴 좀 보라지! 푸하하하!”

내 앞에 앉아 찻집이 떠나가라 웃고 있는 위타천에게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남의 불행을 그렇게 즐거워하다가는 크게 돌아옵니다. 진짜로. 웃을 시간에 주문이나 해요.”

“그래. 해야지. 후배 얼굴 보느라 주문하는 것도 잊었네. 주인장! 여기 늘 마시던 걸로!”

분명 찻집인데 어디 위스키 바처럼 주문을 하는 위타천이었다.

주문을 마친 위타천이 날 보고 싱글벙글 웃었다.

“엄밀히 말하면 불행이라고는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선택에 따른 결과일 뿐인데? 게다가 그 선택이 나쁜 선택도 아니지 않나.”

“그렇······긴 하죠.”

그 사이 위타천의 앞에 차가 놓였고, 그걸 들어서 마시던 위타천은 곧 다시 내 얼굴을 보고서는 입에 머금고 있던 차를 뿜고 말았다.

“하하하! 후배가 다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타고난 강골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눈탱이밤탱이가 되어서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했어.”

위타천의 말처럼, 나는 지금 왼쪽 눈두덩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다.

회복 계열의 스킬을 쓰면 웬만한 상처나 붓기는 사라지게 할 수 있지만, 이 멍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법술 기운을 누르고 눌러 담은 주먹을 맞았기 때문. 못해도 멍이 한 달은 갈 거란다.

말이 법술이지, 이 정도면 저주랑 크게 다르지 않은데 해주를 하려고 해도 이수련 정도, 혹은 이수련 이상으로 법술의 경지가 높아야 해주가 가능할 것 같다기에 그냥 시간을 보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세상천지 뒤지면 어디 한둘 정도야 없겠느냐마는 그렇게 찾아서 한다는 게 멍 지우기라는 게 어딘가 구차해 보이기도 하고 이걸 달고 다녀야 이수련마음이 조금 풀릴 것 같기도 하고 등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다.

“후배도 참 대단해. 그냥 둘 모두와 만나겠다고 해도 이상할 건 아닌데 말이야.”

“그건 둘 모두한테 못 할 짓인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제가 둘 다 너무 좋아서 견디지 못할 정도면 또 모르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수련 씨한테는 연애 감정이 안 생길 것 같으니 서로를 위해서라도 솔직히 말하고 정리해야겠더라고요.”

“생각보다 올드한 연애관의 소유자였군?”

“올드하다고 하면 할 말은 없는데, 때로는 고전의 멋이란 게 있지 않겠어요?”

“고전에 따르면 영웅은 삼처사첩이라던데, 후배 정도면 네오-서울의 영웅 아닌가.”

“영웅은 삼처사첩이라······. 가연 씨한테 전해드려도 되죠?”

나를 보고 웃음을 감추지 못하던 위타천이 가연의 이름을 듣자마자 얼굴이 굳었다.

“큼······. 농담 좀 한 거 가지고.”

그리고는 얼른 화제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노괴가 쉽게 넘어가던가? 절대 한 대로 끝낼 구미호가 아닌데. 내가 아는 이들 중에서 가장 제멋대로 하는 이를 꼽으라면 단박에 꼽을 수도 있어.”

누구보다 마음대로 사는 것 같은 위타천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신시아랑 둘이 얘기를 길게 하고 온 모양이더라고요. 대화 끝에 이수련 씨도 결국 이해했나 봐요.”

“이해? 뭘?”

“자기만 좋아한다고 해서 맺어지기는 힘들다는 사실요.”

“호오······. 그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닐 건데.”

“절대 인정 못 한다면서 아주 난리를 피웠다고 하더라고요. 호텔 스위트룸 통째로 날아갈 뻔했대요.”

“아! 얼마 전 강남 에어리어 호텔에서 의문의 폭발이 있었다는 게······?”

고개를 끄덕였다.

“테러인 줄 알고 출동하려다가 긴급하게 출동 취소가 되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노괴의 땡깡이었군.”

“이수련 씨가 날뛰는 동안 신시아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서 진정되길 기다리기만 했대요.”

“아무것도 안 하고? ”

“네. 본인도 능력을 보이면 그건 싸우자는 소리 밖에 안 되니까요.”

“야스민 영애도 대단하군. 그런 자리를 마련한 것도 상상이 안 되는데 대화를 하고 이해까지 시켰다니 말이야.”

어느새 우리 둘 앞에 놓인 찻잔이 비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시퍼런 멍이 들어있을 내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해도 다 하고 왔는데 그래도 차인 건 분하다, 직접 들으니 더 열 뻗친다고 한 대만 맞자고 하더라고요. 알겠다고 했더니······이 꼴이네요.”

위타천이 혀를 내둘렀다.

“분하니 때리자고 하는 쪽이나, 그걸 그렇게 하자고 하는 쪽이나······굉장하긴 하군.”

“이걸로 끝난 게 다행이죠. 종합운동장 때 봤던 이수련 씨 원래 모습 또 보는 것도 각오했는데요. 이거 말고도 하나 더 있네요. 저를 부르던 호칭이 낭군에서 빌어먹을 놈이 됐다는 거?”

“그 정도면 양호하군.”

“또 있어요. 차근차근 좋아하게 만들면 되는 거냐고 묻던데요.”

“그 말은 아직 포기 못 했다는 거 아닌가?”

“저 말고······아닙니다. 여기까지만 하죠. 제 얘기는 아닙니다.”

“후배 말고 다른 이에게 그러는 거면 상관없지.”

아무래도 이수련의 다음 목표가 벡인 것 같아서 차마 말로 꺼내지는 못하겠다.

“그럼 이제 야스민 공의 사위가 되는 건가?”

“신시아의 남편이기도 하죠. 실감은 안 가지만요.”

“후배가 먼저 간다니 기분이 이상한데.”

“그쪽은 말만 약혼이지 사실혼이랑 다름없잖아요. 그리고 당장은 아닐 겁니다. 일단은 네오-서울을 좀 떠나 있을 생각이라서요.”

“사무실 이름만 바꾸고 계속 있는 것 아니었나? 어제 온 메시지는 그런 내용이던데.”

“분명 추방당했는데 제가 여전히 네오-서울에 돌아다니면 얼마나 말이 많겠어요. 좀 가라앉을 때까지 만이라도 사라져 줘야죠. 메시지를 대충 보신 것 같네요.”

“하기사. 그럼 어디에 있으려고?”

“다른 권역을 좀 둘러보려고요.”

“신혼여행?”

“결혼은 아직이라니까요.”

기지개를 쭉 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높게 솟은 건물, 그 사이를 누비는 자가용과 다양한 종족들.

흔한 네오-서울의 모습이었다.

“네오-서울이 권역 중에 최고라지만 다른 권역은 또 다른 권역들만의 매력이 있지 않을까요? 그 속에 숨겨진 기인이사들은 또 얼마나 많을지 짐작도 안 돼요. 그걸 직접 느껴보고 싶어졌어요.”

“좋은 취지일세. 여행은 시야를 넓혀주지. 여행은 아니지만 나도 용병 시절에······.”

위타천의 라떼 토크를 잠자코 들어주었다.

마음이 여유로워서 그런지 제법 재미있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얘기를 나누다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구했는지 신기하기까지 한 브라운관 TV가 떠들어대고 있었다.

-각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오메가 추방 안건이 가결되었습니다. 수도방위사령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나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새로운 영웅을 찍어 내렸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시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그는 떠나지만 용기와 의지는 이어질 것’이라며······.

“어휴, 저거 일 처리만 조금 못했어도 한 대 쥐어박는 건데.”

위타천이 TV를 향해 몸을 돌렸을 때 마침 화면이 돌아갔다.

“누굴 쥐어박으려고? 수호자?”

“있어요. 그런 사람.”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이제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

마주 일어선 위타천을 보고 말했다.

“여행 중에 네오-서울에 들를 일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위타천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불법체류자가 공공 집행자에게 연락한다니, 말도 안 되지.”

“정이라고는 없네요. 그럼 떠나기 전에 뭐 하나만 부탁해도 됩니까?”

“말만 하게.”

“턱에 어퍼컷 한 방만 꽂게 해주시죠.”

눈이 동그래진 위타천.

“수호자에게 뺨, 아니 눈탱이 맞고 그걸 왜 나한테 풀려고 하는 거지?”

“한 대만, 안 됩니까? 그거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훠이~ 떠나라 추방자야. 공공 집행자가 이놈! 하고 잡아간다.”

나를 놀리기에 여념이 없는 위타천을 뒤에 두고 가게를 나서기 전, 주인으로 보이는 안드로이드에게도 인사했다.

“차 잘 마셨습니다. 나중에 또 올게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좋았다.

가만히 있어도 떠나고 싶을 정도로.

#

6개월 뒤, 무슨 풍파를 겪었는지 먼지를 가득 뒤집어쓰고 번호판 일부가 덜렁거리는 호버 바이크 한 대가 대림 에어리어로 들어왔다.

바이크를 좀 아는 이들이 힐끔거리며 저 바이크가 전설적인 모델인 RW200이 아닌가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저으며 그럴 리 없다고 결론 내렸다.

애초에 비싼 걸로 유명한 모델일 뿐만 아니라 유명했던 네오-서울의 어느 해결사가 애용한다고 알려져 프리미엄까지 붙어 거래되는 모델이 RW200이다.

방금 지나간 바이크는 짐을 실을 수 있게 마개조한데다가 워낙 지저분해서 시장통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위의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로, 라이더는 어느 건물 앞에서 바이크의 속력을 줄였다.

아직 바이크의 시동을 끄지 않은 채로 몸을 일으킨 라이더의 옆구리에 두 개의 칼자루가 꽂혀 있었다.

바이크보다는 덜했지만 여기저기 새겨진 잔기스가 여러 사연을 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남자가 고개를 든 채 중얼거렸다.

“상호는 자기가 정하겠다더니 웃기지도 않네.”

네오-서울에서 추방된 해결사의 사무실이 있던 곳, 예전에는 없던 작은 간판이 붙어 있었다.

[알파 흥신소]

아마도 1층의 차고로 가면 자동으로 문이 열렸을 테지만, 남자는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이들을 놀래키기 위해 바이크를 도로변에 세워두고 건물로 향했다.

성큼성큼 걸어 올라가던 중, 사무실 문 앞에서 서성이는 양 수인이 보였다.

“찾는 분이라도 있으세요?”

불쑥 말을 건네는 남자에게 양 수인이 더듬더듬 말했다.

“여기가 유명한 해결사 사무실이라고 들어서 왔는데 웬 흥신소가 있어서요······. 잘못 왔나 봐요.”

“네오-서울 분이 아니시군요?”

“네?”

“그 해결사는 추방되고 여기가 바뀐 지 반년은 족히 됐을 겁니다. 유명한 얘기일 건데 모르시는 것 같아서 네오-서울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아······맞습니다.”

“혹시 어쩐 일로 오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못 받은 돈이 좀 있어서요. 받아낼 수 없을까 하고······.”

“그러시군요. 원래 이런 의뢰는 안 받는데, 고객님 건은 특별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복귀 몸풀기용으로 좋을 것 같네요.”

“네?”

웃음이 나오는 걸 참으면서 오메가는 사무실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잠금장치가 풀리는 것과 동시에 안에서 우당탕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 “오메가 님!” / “빌어먹을 놈!”

간만에 듣는 익숙한 목소리들이었다.

여전히 웃음을 참으면서 오메가는 양 수인에게 멘트를 쳤다.

“안 되는 일도 되게 하는 해결사 오······지금은 알파 흥신소입니다. 의뢰는 사무실로 발주하시면 검토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본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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