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48화 (249/258)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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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껌뻑이던 스냅샷이 고개를 재빠르게 좌우로 흔들더니 황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추방이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시면 안 됩니다. 네오-서울의 시민으로 누렸던 모든 권익이 사라집니다. 일단 통신 장비의 사용부터, 요즘은 당연시되는 생체 인증, 전자 화폐를 통한 상거래 등등 일상 모든 분야에서 불편함이 그치지 않을 거고요. 보험은 당연히 안 될 테니까 병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엄청난 금액이 청구될 겁니다.”

“그렇다고 하더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될 거래.”

“그런데 왜 그런 선택을 하려고 하십니까.”

“그럼 내가 하나 물어보자. 지금 상황에서 내가 능력 제한 법령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

“······있을 겁니다. 저희 루트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돌파구를 찾는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만족하실만한 결과를 가져오겠습니다.”

“방법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이미 대상자가 되고 나면 늦어. 아무리 공공 집행본부나 시청이 내게 우호적이라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여론이나 기존 법령 대상자들의 불만을 업어가면서 내 편의를 봐주긴 힘들 거니까. 그러니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어. 그리고 마침 나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들도 있고 말이야. 추방을 위한 명분을 만들 수 있어.”

잠자코 듣던 앨리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능력 제한 법령의 맹점이군요. ‘네오-서울 시민이나 최소한 영주권을 가진 자에게 적용할 수 있다.’.”

“능력 제한 법령은 제한책인 동시에 다른 면에서 보면 우대책이기도 하니까. 시민도 아닌 어중이떠중이들에게 줄 수는 없었겠지.”

“법령 대상자가 되기 싫은 초인들은 다른 권역으로 떠나버리곤 하는데 사장님은 기반이 다 네오-서울에 있으니 그것도 쉬운 선택은 아니겠네요.”

자기 머리를 톡톡 두들기며 말을 이어가는 앨리스였다.

“기억 상실 문제도 있고요. 사실상 사장님은 여기서 갑자기 성인으로 태어난 거랑 다르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저처럼 기억 관련 시술을 미리미리 받아두면 그런 불상사를 예방할 수 있지요.”

한마디 얹는 스냅샷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맞아. 나는 법령 대상자가 되고 싶지 않은 거지 네오-서울이 싫은 게 아니거든. 다른 권역이라는 선택지를 생각 안 해 본 건 아니야. 말은 안 했는데 평화 공원 마무리되고 정민이 그러더라 계룡 권역으로 올 생각 없냐고. 프로이데 마탑 정도면 내 편의를 많이 봐줄 수 있다고도 했고, 자연주의 연합도 내가 아니었으면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거니까 디즈와 라이시도 환영할 거랬어.”

그 말을 들은 앨리스의 눈꼬리가 솟았다.

“그런 말씀 저한테 안 하셨잖아요.”

“그 자리에서 거절했으니까 따로 안 했지. 그런 일도 있었다는 정도로 얘기한 거야. 큰 의미 부여하지 마. 난 해결사 일이 마음에 든다니까?”

시선을 스냅샷에게로 돌렸다.

“아까 네가 말한 불편한 점들. 엄밀히 따지면 그거 다 돈 있고 힘 있고 빽 있으면 원만하게 해결되는 문제 아니야? 그리고 조금 귀찮아서 그렇지 우회책은 다 있는 문제들이잖아. 네오-서울이 어디 밝은 곳에서만 착착 돌아가는 곳이 아니기도 하고.”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스냅샷이 뭔가 더 말하고 싶은 것으로 보였지만 얼른 하나를 더 물었다.

“내가 네오-서울에서 추방되면 루트는 나와의 관계를 정리할 건가?”

내 말을 들은 스냅샷이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적어도 지금은 중립이고, 아마 그때도 중립일 겁니다.”

“루트답네.”

대화를 듣던 앨리스가 나를 불렀다.

“사장님. 추방당해서 네오-서울 시민으로의 권익을 잃어버리면서 동시에 네오-서울에서 해결사 일을 하는 건 이상한데요. 양립할 수 없어요. 이 사무실만 봐도 그래요. 건물 명의와 관리는 루트에서 하고 있지만, 사무실 명의는 사장님이잖아요. 추방되는 순간 이런 세세한 절차가 다 어그러져요. 청소업체 입점해있는 건물도 마찬가지고요.”

“맞습니다. 오메가 씨처럼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일이 아무리 잘 풀려도 불법적인 일이나 수주하는 뒷골목 낭인 정도가 최대치입니다. 절대로 해결사가 좋은 직업이라고는 못하겠지만 뒷골목 낭인이라면 해결사라는 이름도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죠.”

둘에게 답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조언을 받았지.”

“누구한테 말입니까?”

“스냅샷 너는 진짜 아는 게 없구나? 그럼 그냥 들어.”

이제 시선을 앨리스에게 맞췄다.

“앨리스 너는 내가 지금 누구 얘기하는지 알지?”

“알죠. 밤새 미친 듯이 질주하던 폭주족한테 날아온 딱지를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는 사람.”

바로 어제 나와 ‘동승’해서 ‘대화’한 사람.

원이다.

“먼저 추방 건. 네오-서울은 지금 내부에 불법체류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도 힘들대. 워낙 거대한 권역인데다가 유입 경로도 엄청 다양하니까. 스냅샷, 너희 카지노에 있던 토끼 기억해? 한신나 권역에서 쫓겨 넘어왔던?”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건 없습니다.”

“그렇겠네. 여튼 그 토끼가 정식으로 네오-서울에 들어왔겠어? 다 불법체류라 이거야. 꽤 악질인 놈이라 추적 수사 중이었다고 듣긴 했는데 그 자식은 나랑 얽히지만 않았으면 잡혀 들어가는 데 더 오래 걸렸을 거야. 그런데 그놈이 여기서 얌전히 있었냐? 아니잖아.”

“매일같이 카지노에 들락거리고, 자기 패거리들 이끌고 패싸움하고······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래. 말은 추방이지만 사실 마음만 먹으면 할 건 다 할 수 있단 말이지. 그리고 불편하지 않게 해주겠다는 약속도 받았어.”

“어떻게요?”

“전시잖아. 가상의 전향 포로 데이터를 만들어서 일상의 인증 영역에 덮어씌워 주겠대. 그리고 몇 년 후에는 추방 상태에서 복권해주겠다고도 했고. 구두가 아니라 서면으로 남길 수도 있다고 했어.”

“그런 게 가능할 정도라면······.”

놀란 표정의 스냅샷에게 단도리쳤다.

“대충 눈치챈 거 같은데 괜히 흘리지는 마. 그리고 가능하면 엘림에게도 알리지 말았으면 좋겠어. 애초에 여기서 널 여기서 내보내도 상관없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건 초반부터 날 도왔다는 것과 그래도 대림 에어리어에서 일한다는 동질감 때문이야.”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스냅샷이었다.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지만 대략 납득한 눈치였다.

“좋아요. 그건 그렇다고 쳐요. 그럼 해결사 일은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사무실 명의나 이런 건······.”

“사무실은 폐업이야. 추방된 해결사의 사무실이 떡하니 남아있는 건 그림이 이상하잖아.”

내 말을 들은 앨리스와 스냅샷이 동시에 외치기 직전, 내가 더 빨랐다.

“들어봐. 아직 안 끝났어. 폐업하고 이 자리에 그대로 재개장할 거야. 법인 폐업 사기 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긴 한데, 피해자는 없어.”

“바지사장 구해서 운영하시려는 거겠네요.”

“아닌데?”

“그럼요?”

“바지사장이 아니라 진짜 사장 앉힐 건데.”

“누구요?”

“앨리스, 너.”

“네에?”

“안드로이드가 사장이면 지원금이랑 지원정책이 많대. 그거 뽑아먹을 겸, 내 책임도 덜 겸 네가 사장해. 법인명도 네가 붙여. ‘괴상한 대림 에어리어의 앨리스’ 어때.”

고민하던 앨리스가 답을 냈다.

“나쁘지 않네요.”

“진짜?”

“법인명 말고요. 방식이 나쁘지 않아요.”

“별로야? ‘괴상한 대림 에어리어의 앨리스’?”

“그 얘기는 나중에 해요. 대신 저도 조건이 있어요.”

“뭔데. 최대한 수용할게.”

“제가 사장이되 일은 지금처럼 돌아가고, 여전히 저는 사장님한테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거요. 갑자기 오메가 씨라고 하기엔 입에 달라붙지 않을 것 같네요.”

“그건 내가 반길 조건이기도 하네. 그럼 이렇게 하기로 한 거다? 자, 스냅샷 네가 증인이야.”

손을 내밀었고, 앨리스도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잘 부탁해, 새로운 사장님.”

“열심히 해 보죠, 여전히 사장님.”

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스냅샷이 고개를 위로 꺾었다가 다시 내려놨다.

“역사적인 장면, 제 개인 기억 아카이브에 잘 보관해뒀습니다.”

“좋아, 이제 내 입장은 다 들었으니까 가서 내가 추방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길 바래. 루트니까 믿어도 되겠지?”

“확실하게 추방해 드리겠습니다.”

“뉘앙스가 되게 이상하네.”

스냅샷이 떠난 뒤, 자개로 새겨진 사장 명패를 자기 책상에 놓아도 되겠냐는 앨리스에게 마음대로 하라고 답변했다.

“그건 너 좋을 대로 해.”

“그럼 사장님 방도 제 창고로 써도 돼요?”

“그건 안 되지. 나는 어디서 자라고.”

“음······. 스콰이어 씨한테 연락해서 렙틸리비아에 남는 주택 없냐고 물어볼까요? 멀지도 않은데 출퇴근 하시는 거죠.”

“너무하네, 너무해. 그런 거 생각할 시간에 고객들한테 당황하시지들 말라고 미리미리 연락이나 돌려.”

“그럴게요. 사장 된다는 생각에 들떠서 중요한 걸 놓칠 뻔했어요.”

자리로 쪼르르 달려가는 앨리스에게 부탁 하나를 더 했다.

“내 거취는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이니까,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때가 된 것 같네.”

그 말에 앨리스가 곧장 뒤로 돌아 나를 보았다.

비장함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드디어······때가 온 것이로군요.”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그래. 외면한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겠지.”

“당장 연락 넣을까요?”

“······연락은 당장 넣되, 모이는 건 내일로 해줘.”

“사장님 지금 이후부터 뭐 없으시잖아요. 그냥 빨리 끝내버리시죠?”

“안돼!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을 줘! 내일. 내일 이 시간까지 모여달라고 전해.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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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속하고도 무색하게 찾아온 다음 날 같은 시각.

사무실에는 긴장감이 넘쳤다.

아니, 어쩌면 긴장하고 있는 것은 나 혼자일지도 몰랐다.

신시아와 이수련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으며 앨리스 또한 둘과 조잘조잘 떠들며 나를 두고 추방자라느니 피고용인이라느니 하는 농담을 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최고의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 젠 오빠가 법령 대상자잖아. 옆에서 보고 있는데 그거 정말 할 짓 못 돼. 뭐만 하려고 하면 난리법석이야. 다른 대상자들이야 이래저래 네오-서울에서 진행하는 이권 사업에 우선순위를 준다지만 우리 가문 이름값이 있는데, 오빠가 그런데 끼면 욕이나 먹지. 판을 잘 짰네. 오메가 님이 생각하신 거예요?”

“네? 아, 아뇨. 판은 시장이 짜고 저는 거기에 불 좀 질러준 거죠.”

“그래도 오메가 님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면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았겠죠? 이미 수도방위사령부 내에서 오메가 님을 규탄하려고 브리핑이나 기자회견을 하느니 마느니 목소리가 많다고 하니까요.”

“앨리스가 계속 같이 있어 주는 것이 참 다행인 듯싶구나. 둘이 떨어지면 지원했던 파츠를 다 회수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으니 말이다.”

“줬던 걸 다시 가져가는 게 어디 있어요, 수련 언니!”

“비즈니스의 세계란 그리도 냉혹한 것이니라. 이제 앨리스 너도 곧 사장이니 알아두면 좋을 것이야.”

나만 긴장하고 있는 건가? 그렇지 않아도 오늘 아침부터 손이 발발 떨리는 바람에 카페인이 들어가면 관절에 모터 달았냐는 소리 들을까 봐 커피 대신 떠온 냉수를 한방에 다 마셨다.

“잠시만요. 이렇게 모였으니 결론을 내야겠죠.”

그리고 단숨에 말해버렸다.

“어쩌면 따로 말씀드리는 게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대로 어영부영 질질 끄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제 스타일이 아니라 이 자리에서 제 마음을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

[S: A는 O의 배우자로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지? 다 내려놓고 우리만의 비밀로 하겠음]

[A: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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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어떻게 되고 있나요?]

[S: 수도방위사령부의 장성 및 실무자 레벨까지 전방위 로비 중. 온라인이나 네트워크에서도 작업 중이라 O의 추방에 대한 논의가 며칠 내 수면 위로 오를 듯.]

[A: 좋아요. 그쪽은 믿고 있을게요.]

[S: 확인]

[A: 위에서 물었던 것 말인데요. O의 배우자요.]

[S: ?!]

[A: 누가 더 낫다고 말씀은 안 드렸었는데 결론이 나왔네요.]

[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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