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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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사무실로 내려오자 앨리스가 물었다.
“어제 일 마치고 드라이브라도 하고 오셨어요? 바이크가 차고에 들어온 시간이 4시가 넘었던데요?”
방금 감고 나와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머리를 털면서 대답했다.
“드라이브라면 드라이브지.”
“늦게 들어오셨는데 용케 오전에 내려오셨네요.”
젖은 머리칼 너머의 앨리스에게 웃으면서 답했다.
“직업의식이지.”
“사장님한테는 무슨 말을 못 하겠다니까요. 바이크 경로가 어디 보자······.”
패드를 만지작거린 앨리스는 곧 이해하기 힘들다는 뉘앙스를 숨기지 않고 내게 말했다.
“관악 에어리어? 이 시간에 여길 왜 가셨죠?”
그리고는 놀란 표정까지 지어 보이는 앨리스였다.
“야밤의 밀회······. 드디어 마음을 정하신 건가요? 누구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앨리스에게 반응하지 않고 커피만 홀짝였다.
원에게도 잘 통했던 침묵이다.
아니나 다를까 앨리스도 호들갑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설마 신시아 언니랑 수련 언니를 두고 다른 사람? 사장님! 제발 제 예상이 틀린 거라고 말씀해주세요. 요새 힘드신 건 알지만 그걸 이런 식으로 해소하는 건 옳지 못한 방식이에요! 간이 커도 너무 크잖아요.”
앨리스에게 일침을 날렸다.
“너 목소리만 떨리지 눈은 아주 초롱초롱한데? 사실은 날 걱정하는 게 아니라 네가 재밌을 일을 기대하는 거 아니야?”
그러자 표정을 싹 바꿔 아쉽다는 목소리를 내는 앨리스였다.
“사장님처럼 눈치 빠른 사람은 싫은데.”
“다 너한테 시달려서 이렇게 된 거야. 아니라곤 못 하겠지?”
“말 돌리지 말고요! 여긴 왜 가셨냐고요.”
“곧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말한 후에, 사무실의 창 중 큰길 쪽으로 나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앨리스가 황급하게 말했다.
“내려오시기 전에 환기 다 했어요. 벌써부터 사장님 보겠다고 모여든 사람들 있으니까 창문 열지 마세······.”
힘차게 창문을 열어젖혔다.
아래 걸린 플래카드와 사람들이 손에 든 팻말에 적힌 문구가 보였다.
<네오-서울의 영웅, 오메가>
<대림 에어리어의 아들!>
<오메가를 시청으로>
이렇게 내가 창문 밖으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각자 가진 장비로 내 사진을 찍기 바빴다.
아래를 훑어보자 모여 있는 이들 중 몇몇이 자기들끼리 떠드는 대화가 들렸다.
“이, 이쪽을 봤어! 오메가가 나를 봤다고!”
“네가 기괴하게 생겨서 본 거야!”
“나랑 눈이 마주쳤다고!”
“오메가는 마주친 게 네 눈이라고 생각 안 할걸. ‘저 자식은 왜 똥꾸멍을 밖에 내놓고 다니나’하고······봐! 인상 찌푸리잖아!”
대화가 워낙 기괴해서 인상을 찌푸린 건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만 모양이다.
그걸로 그쳤으면 좋으련만, 촬영용 드론까지 날리는 놈들이 있었다.
사무실 건물을 둘러싸고 통제 중인 파충류 수인들이 드론 올려보내지 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순식간에 아래쪽이 난장판이 되었다.
경비 인력들은 다 스콰이어가 렙틸리비아에서 보내준 친구들인데 오늘은 고생 좀 해야 할 것 같다.
옆구리에 차고 있던 칼자루를 전개했다.
아래에서 감탄이 터지기도 전에 휘둘렀다.
[에피시]
[파도천]
광자 검날을 타고 오르던 불꽃이 그대로 뻗어나가 드론 몇 기를 격추했다.
아래쪽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오오!”
“천하를 멸하는 화염검이다!”
“마도공학의 재림이다!”
그랬다.
내가 앨리스와 스냅샷의 조언을 받아들여 두문불출하는 몇 주간 괴소문과 음모론이 구르고 굴러 덩치를 불린 끝에 나는 퓨어이지만 마도공학 유물로 무장했기 때문에 상식을 넘어서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광자 검날을 만들어내는 칼자루만 해도 형태가 비슷한 것은 많지만 위력은 내 것만 못하다는 게 증거라나.
그리고 활동 초기에는 하나만 가지고 다니다가 시커먼 검날의 칼자루를 얻어 칼자루끼리 공명해 마침내 악마적인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위올란트가 마지막으로 만들어 준 검이니 내가 보기에 어떻게 이렇게 개똥 같은 아이템만 전해져 내려온 건지 신기할 정도의 마도공학 유물보다는 훨씬 유용한 게 사실이긴 했다.
존속살해도 야타가라스가 가지고 다니던 걸 강탈했을 뿐인데 애초에 시커먼 야타가라스가 들고 다닐 때랑 내가 들고 다닐 때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그 검이 이 검이라고 알아보는 이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애초에 야타가라스는 주로 음지의 일을 맡아서 했기 때문에 애초에 모습 자체가 노출이 덜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오메가>, <마도공학>이라는 키워드가 나오자 야스민 가문에서 ‘우리가 오메가와 관련해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가문의 마도공학 대리인이라는 것뿐이다.’라는 성명을 득달같이 발표했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지 야스민 가문의 성명을 곧 자신들이 상상하던 내 모습에 가져다 붙였다.
숟가락 얹기에 제대로 성공한 야스민 공만 신났을 거다.
그 과정에서 내 기존의 검에 ‘천하를 멸하는 화염검’이라는 심하게 중2병스러운 이름이 붙은 것만 빼면 내게도 나쁠 게 없는 일이긴 했다.
대충 귀찮은 건 다 마도공학이라고 우기면 되니까.
불쇼에 이어 사무실 안쪽을 담기 위해 누군가가 소환한 나비들을 통째로 얼려버리는 얼음쇼까지 보여주었다.
문득 생각나는 인물, 아니 곤충이 있었다.
“스펙터는 어떻게 됐으려나.”
종합운동장에서 민간인으로 위장해 벗어나려다가 잡힌 걸로 알고 있다.
위타천이 과거에 놓친 걸 만회하겠다고 데려간 걸로 아는데, 그 양반이 정보를 캐내겠다고 어르고 달랠 부류는 아닌 것 같으니 아마 죽었으려나.
아래쪽을 보니 열광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더 이상 건물로 접근하지 못하게 애쓰는 경비 인력이 보였다.
곧 앨리스가 나를 뒤로 잡아당겨 창문에서 멀어지게 하고는 쾅 소리가 나게 창문을 닫았다.
“이러면 사장님에 대한 주목도만 높아진다니까요?”
“맞아. 나도 알아.”
“네?”
“좀 주목해줬으면 해서 그랬어.”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을 구기는 앨리스가 들고 있던 패드에서 알림음이 났다.
“스냅샷 씨네요. 지금 뵐 수 있냐는데요.”
“지하 통해서 온대?”
“네.”
“올라오라고 해. 파충류 수인들한테도 미리 알려주고.”
현재 혼잡을 피하려고 건물 내부에는 미리 허가받지 않는 인원이 아니면 들이지 않았다.
1층 출입구가 열려있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신시아와 이수련이 아니면 그쪽을 이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사무실 건물에 출입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관심이 쏟아지기 때문.
그래서 저번에 방문한 누스러스디도 그렇고 대부분은 지하 수로와 연결된 차고를 통해 건물을 드나들었다.
아마도 출발과 동시에 연락을 넣은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냅샷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적당한 곳에 차를 대고 지하 수로를 걸어왔을 스냅샷의 신발 자국이 사무실 바닥에 옅게 남았다.
앨리스가 그걸 닦아내기도 전, 스냅샷이 나를 향해 절망적인 표정으로 외쳤다.
“간밤에 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일어나자마자 전달받고 놀라서······.”
“놀라서 오줌이라도 지렸냐?”
“그건 아니지만······.”
스냅샷이 고개를 돌려 앨리스에게 향했다.
답을 요구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앨리스도 어리둥절한 얼굴을 할 뿐이었지.
다시 나를 향해 스냅샷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지금 앨리스가 연기하는 겁니까?”
“시키면 잘할 것 같긴 한데 연기는 아니야.”
“그럼 단독으로?”
“그런 셈이지.”
“맙소사. 어쩌자고······.”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앨리스가 끼어들었다.
“죄송한데 지금 두 분 무슨 얘기 하고 계신 거죠?”
묵묵히 커피를 홀짝이면서 스냅샷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제가 설명하라고요?”
“온 김에 하면 좋잖아.”
“으으······.”
고통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던 스냅샷이 입을 열었다.
“앨리스 양, 놀라지 말고 들어요. 간밤에 관악 에어리어와 폭주족 하나가 목격됐습니다.”
“관악······.”
“단속 드론을 전부 따돌린 건 물론이고, 진급 출동한 일대 사설 집행자들을 끌고 다니며 농락했다는군요.”
나를 뚫어져라 보는 앨리스의 시선 때문에 얼굴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스냅샷의 설명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목격 지점의 공통점들은 모두 군 관계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곳이라는 거죠. 관악 에어리어에는 수도방위사령부가 있으니까요. 그 주위의 군인 관사와 군인 아파트에 집요하게 나타났어요.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모르지만 짐승 소리, 폭탄 소리, 비명 소리 등등 난리가 아니었답니다. 거기다가 어떻게 알았는지 관악 에어리어가 아닌 곳에 있는 일부 장성들의 자택 앞에서도 그 지랄······죄송합니다. 그 난리를 피웠습니다. 흐릿하긴 하지만 찍힌 사진과 영상이 돌고 있어요.”
스냅샷의 한쪽 눈에서 빛이 나와 빈 벽에 투사되었다.
바닥에 거의 닿을 것처럼 기울어진 바이크와 그 위에 탄 남자. 굉장히 흐릿하긴 했지만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사진의 주인공이 나라는 걸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냅샷은 이제 거의 나를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다른 권역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아가고 있고, 아무리 네오-서울을 위기에서 구해낸 영웅이라고는 해도 아직은 엄연한 전시戰時입니다. 이건 반감만 커질 겁니다. 특히나 군부에서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자기들을 개무시한다고 생각하겠지. 별 감정 없던 군인도 나보고 좀 재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어쩌면 꼴 보기도 싫어할 수도 있고.”
“그걸 아는 분이 그러셨습니까! 앨리스 양 뭐라고 말 좀 해주세요. 오메가 씨는 제 말은 귓등으로라도 안 듣는다니까요.”
스냅샷의 지원 요청에도 불구하고 앨리스는 열심히 패드만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앨리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저도 전적으로 스냅샷 씨의 말에 동의해요.”
“역시······.”
자신의 시대가 왔다는 듯 기뻐하는 스냅샷을 제지한 앨리스.
“하지만 뭔가 변한 게 틀림없는 것 같네요. 그렇죠? 사장님이 이렇게까지 독단적으로 움직일 사람은 아니거든요. 아주 급한 일이 있었지 않을까요. 그리고 독단적으로 하신 일도 아니죠?”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죠?”
“스냅샷 씨 표현에 의하면 그 지랄을 떨었잖아요?”
“아니 그렇게까지는······.”
“그랬는데 발급된 딱지가 하나도 없어요. 사진까지 찍혔는데 딱지가 하나도 없다? 이건 이상해요.”
제 스냅샷도 앨리스처럼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다 마신 커피잔을 곁에 내려놓았다.
“스냅샷.”
“예?”
“너 어디까지 아냐?”
“뭘······말입니까?”
“뭐 아는 게 있어야 거기서부터 설명을 해주지. 루트 이거 완전 쭉정이네.”
내 농담에 얼빠진 표정을 짓는 스냅샷과 여전히 딱딱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앨리스에게 말했다.
“설명하기가 영 어렵네.”
“핵심적인 거부터 말씀해보세요. 거기서부터 설명하면 되잖아요.”
“그거 좋네. 나, 추방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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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아는 강남 에어리어의 어느 호텔의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야스민 가문에서 소유한 호텔 체인인 플라워즈 호텔이 아니라 다른 호텔 내부에 들어온 게 얼마 만인지도 가물가물했다.
‘50년은 분명 넘었고, 100년 됐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호텔 최상층 VIP 전용 스위트룸으로 향하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보이는 것은 어느 펜트하우스 부럽지 않은 고급스럽고 넓은 실내와 그 너머로 보이는 네오-서울의 풍경이었다.
한눈에 담기도 어려운 기가 막힌 풍경이었지만 신시아는 눈도 두지 않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에서 아주 옅게 말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따라간 신시아가 마주한 이는 이수련.
바이저를 내려쓰고 퓨전 코프 회사 일을 보던 이수련이 신시아를 발견하고 잠깐만 기다려달라는 뜻으로 손을 내밀어 보였다.
고개를 끄덕인 신시아는 라운지처럼 꾸며진 곳으로 가 품에서 인공 혈액 팩을 꺼냈다.
뜯은 혈액 팩을 채 한 모금도 마시기 전, 바이저를 없앤 이수련이 다가와 신시아의 반대편에 앉았다.
“일이 길어졌구나. 오겠다는 걸 듣고 그 안에 끝낼 계획까지 짜놨는데 말이다.”
“계획해도 그렇게 잘 안 되더라고.”
공감한 둘은 가볍게 웃었다.
“본좌와 할 얘기가 있다고?”
입술에 묻은 인공 혈액을 혀로 핥아낸 신시아가 이수련을 응시했다.
“그래, 오메가 님에 관한 얘기야.”
“그럴 것 같았느니라. 어디 한 번 얘기해 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