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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미러 너머로 보이는 원의 눈과 시선을 맞췄다.
“요새 진행되는 일 중에 저한테 충분한 설명이 전해지지 않고 진행되는 건이 있는 것 같아서 실례를 좀 무릅썼습니다. 이 상황에 대한 해명이 더 필요할까요?”
“그렇다고 시장을 납치합니까?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겁니다. 이거 밖으로 알려지면 아무리 오메가 씨에 대한 여론이 호의적이라고 해도 걷잡을 수 없는 역풍이 불 수 있어요. 아니, 틀림없이 불 겁니다.”
나는 능글거리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옆에 앨리스가 있었다면 아마 나를 한 대 쥐어박고 싶다고 할 정도의 표정이었다.
“누가 납치했습니까? 저는 잠시 동승 중인 것뿐입니다. 오히려 이런 장면이 유출되면 기뻐할 사람은 시장님 아닐까요? 그렇지 않아도 요새 인기가 높아지시는 것 같더라고요. 제 덕에 말이죠.”
“기가 막히는군요. 이건 심각한 패착입니다. 내외부를 동시에 촬영하는 블랙박스도 있고, 유사시를 대비한 공공 집행자 긴급호출 버튼도 제가 손만 뻗으면 누를 수 있습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좀 부담이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알리지 않고 둘이 만날 기회 자체가 없더군요. 좀 무리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퇴근을 안 하신 덕에 시간 여유가 좀 있지 뭡니까. 차량 손봐서 임시로 막아뒀습니다.”
심각한 범죄로 분류할 수 있긴 한데, 실제 차에 손댄 이가 네오-서울의 법률로 잡아넣기에는 조금 곤란한 인물이라 괜찮을 거다.
바로 네오-서울 주변의 거신족 클론 소탕 작전을 거의 다 마치고 디트로이트 권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던 페테르였다.
처음에 도움을 부탁할 때는 범죄에 끌어들이는 것 같아서 조금 민망했는데, 오히려 페테르가 더 적극적이었다.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말이든 하라나.
대신 이걸 벡한테 입힌 사진을 보고 싶다면서 내게 뭘 넘겼는데, 뿔과 꼬리가 달린 유아용 용인 코스튬이었다.
헤지르 대주교한테 몇 번이나 부탁했는데 절대 안 입힌다면서, 내가 하면 다르지 않겠냐고 눈을 반짝이며 묻는 통에 강하게 권유해보겠다고 했다.
그 말에 싱글벙글 웃던 페테르는 앨리스로부터 시장이 이용하는 차량에 대한 데이터를 받더니 새벽 시간에 가서 차량을 만져놓고 디트로이트 권역으로 떠났다.
헤지르 대주교가 잡동사니에서 좀비 학살용 톱을 뚝딱뚝딱 만들어냈다는걸 생각하면 엔지니어링에 대한 페테르의 이해도 역시 보통은 아니라고 추정할 수 있었지만, 그가 출국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지금 다시 생각해도 믿기 어려웠다.
-제 외골격에 비하면 세발자전거 수준이었습니다.
다만 경보 발신기는 건드리는 그 즉시 외부로 알리게 되어 있는 것 같으니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였다.
“누가 이런 짓을 한 건지 몰라도 절대 어영부영 넘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 일만큼은 어영부영 넘어가셔도 괜찮을 겁니다. 제 말 믿으시죠.”
기계 교단과 척져서 좋을 것 하나 없다는 사실은 전 세계 권역의 지도층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막대한 표심을 움직일 수 있는 곳인데다가 첨단 기계공학의 본산 같은 곳이니 당연한 일.
그러니 네오-서울의 시장인 원이 추후에라도 차에 손댄 인물을 찾아 정체를 밝혀낸다고 해도 그게 페테르인 걸 알게 된 순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기계 교단의 중요 인사인 동시에 디트로이트 권역의 공공 집행자를 소환해 조사하는 일은 아무리 네오-서울 시장이라고 해도 반발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원에게 말 한마디를 툭 건넸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혹시나 해서 긴급호출 버튼을 누를 법도 한데, 누르지 않으시는 걸 보면······. 시장님도 제게 하실 말씀이 있다는 걸로 알아들으면 되겠습니까.”
룸미러 속, 매섭던 원의 눈가에서 힘이 조금 풀렸다.
“어디까지 알고 있습니까.”
“그건 떠보는 티가 너무 나는데요.”
“야스민 가문의 입김이 닿는 의원들의 비밀 모임?”
처음 듣는 소리다.
[명경지수]
혹여라도 놀라지 않게 마음을 눌러 차분히 가라앉혔다.
그리고 다시 묵묵히 룸미러로 원을 응시했다.
침묵이 백 마디 말을 이긴다고 했다.
절대 몰라서 입 다물고 있는 게 아니다.
“행정관들에게 전달된, 에어리어 별 인구 중 인간 종족이 차지하는 통계를 내보라는 공문?”
여전히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지만 궁금하긴 해서 한 손으로 이마와 머리를 쓸어넘긴 후 팔짱을 끼었다.
원이 탄식했다.
“미치겠군······. 설마 퓨어 특별법도? 대체 어떻게? 절대 안 새어 나가게 단속에 단속을 또 했는데.”
이쯤에서 한마디 해줘야 한다.
묵직한 동시에 일반적이어서 오히려 모호한 걸로.
“완벽한 비밀은 없습니다.”
경악하는 원에게서 나올 말이 아직 남은 것 같다.
장성들과 군부에 대한 얘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그러니 다른 얘기를 좀 들어봐야 했다.
저 특별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특별법이라······흠······.”
원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인다.
“그 정도라면 오메가 씨도 짐작하고 있을 거 아닙니까. 저도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요.”
돈 빌려주고 받으러 온 사채업자가 된 기분이다.
사채업자는 자기가 회수하러 온 금액이라도 정확히 알지.
나는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도 정확히 모르는데 있는 척이라는 척은 다 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해결사 일 시작한 초기에 이런 시덥지 않은 일을 조금 한 적 있어서 사채업자 따위가 쓰는 말투와 단어는 잘 알고 있다.
“노력은 누구나 합니다. 저는 결과를 원하지만요.”
“이제 협박하는 겁니까?”
“우리 시장님. 계속 저를 이상한 놈 만드시네. 동승을 납치라고 하시질 않나. 대화를 협박이라 하시질 않나.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는 건 누구나 원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걸 삥땅 치려고 한다는 소리가 들리면 기다리던 저는 어떻게 될까요. 눈이 확 돌아버리지 않을까요?”
저렴한 단어 선택에 당황한 듯, 지금껏 꿈쩍하지 않았던 원이 놀란 표정을 짓고는 더듬더듬 말했다.
“퓨어는 능력 제한 법령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특별법을 만들려고 했지만 그건 역차별 논란을 불러올 수 있어서 일단 넣어둔 상태입니다. 근거도 빈약한데다가 법령으로 이득을 볼 대상이 너무 명확하기도 하고요. 의원들 모임이나 공문에서도 내막이 드러나지 않게 단어 하나하나 신경을 썼는데 대체 어떻게······.”
그런 법이었어?
만들어졌으면 좋았긴 하겠지만 애초에 네이밍부터가 퓨어 특별법이면 대놓고 나를 겨냥한 거 아닌가.
진짜 이름은 저게 아니겠지만 만약 수면 위로 올랐다면 그건 내게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맥이려고 하는 것으로 오해할 것 같았다.
앨리스 말에 따르면 나는 지금 까임방지권 20개 중에서 19개 썼다는데 원이 저걸 그대로 밀어붙였다면 평생까임권을 발급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조금 더 들어보고 싶었지만, 아직 내가 이렇게 찾아오게 된 연유는 나오지 않았다.
“그게 다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나 시장님이나 서로 요새 피곤한 일 많은데 계속 이렇게 나오실 겁니까?”
하지만 지금껏 묻지도 않은 걸 술술 내뱉던 원은 순박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더는 없습니다. 일이 생각처럼 빠르게 진행되지 않은 것에 오메가 씨가 불만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방식이 용인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군부 얘기는 못 꺼낸다 이거지?
“정말 이렇게 나오실 겁니까?”
“무슨 얘기가 듣고 싶은 겁니까. 할 수 있는 얘기는 다 했습니다.”
“원래 여기 타야 했던 서기관.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을까요.”
원의 입술이 딱 붙었다.
“그 서기관 통해서 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소간의 신체 접촉이 있을 수도 있겠죠. 신체 접촉만 있겠습니까? 기타 여러 가지 장비를 이용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시장님이 따로 생각하고 있는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협조가 미진해서야······저도 인내심에 한계라는 게 있습니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하게 내가 나쁜 놈이고 악당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
사무실 건물에 몰려드는 불특정 다수, 그 와중에 나를 압박하는 이수련과 신시아 등등 오밀조밀 쌓여왔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게 체감될 정도다.
해결사 일······천직일지도?
그래서 그런지 준비한 것도 아닌데 말이 술술 나왔다.
“그 서기관,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는 게 더 좋을 것 같군요. 흔적을 줄줄 흘리고 다녀요. 더 말해야 합니까?”
“어디서 그런 헛소문을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진도 있습니다. 아마 찍히는 줄도 몰랐겠죠. 제가 더 해야 합니까? 감정만 상할 것 같은데요.”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동안 차창 밖으로는 한강이 펼쳐졌다.
저 멀리 보이는 한강 기계 지구는 밤이 늦었는데도 여전히 찬란한 불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와 대비되는 검은 강물은 옅은 잔물결과 함께 계속해서 하류로 흘렀다.
결국 원은 고개를 뒤로 젖히더니 힘이 빠진 목소리로 웃었다.
“참······. 누구보다 사람은 잘 본다고 자부하고 살았는데 오메가 씨는 제 안목으로 재단할 수 없는 사람이었군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은 운 좋게 시작과 과정을 다 빼먹고 결론만 알고 있는 수준이긴 했지만 그게 어디야.
다시 고개를 내린 원의 눈은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참 뻔뻔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과드리겠습니다. 군부의 장성 일부를 선동해 오메가 씨를 추방하려는 계획을 세운 건 사실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그렇지 않아도 적폐인데 이번 군사작전으로 목소리가 더 커질 똥별들을 한 번에 밀어낼 계획도 있었습니다. 아마 거기까지 알아채고 계셨겠죠.”
몰랐지만 눈가에 힘을 줬다.
입에서도 쯧하는 소리를 냈다.
여기까지 와서 순박하게 몰랐다고 머리 긁으면서 웃을 수는 없었다.
그러자 원이 황급히 덧붙였다.
“불쾌하신 거, 이해합니다. 단적으로 말해 제가 오메가 씨를 이용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네오-서울을 위해서 그랬다는 핑계도 대지 않겠습니다. 음흉한 속내를 품었는데 대의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제 불찰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큰 틀에서 제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오메가 씨에게 의뢰의 대가를 지불하는 방법은 오메가 씨의 네오-서울 추방 말고는 없습니다. 들어보시죠.”
“저를 설득하겠다는 겁니까?”
“예.”
“괜한 술수는 안 쓰는 게 좋을 거라는 말씀을 미리 드립니다.”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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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분 뒤, 시장의 관용차가 방향을 틀었다.
시장의 자택이 있는 방향이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설득력이 있군요.”
운전석에 앉아서 손을 뻗어 핸들을 톡톡 두드리며 원의 말을 듣던 오메가의 말이었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원이 황급히 덧붙였다.
“사실상 가장 빠르게 효과를 내는 방법입니다.”
오메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가 적극적으로 협력하면 말이죠.”
원의 입술이 달싹였으나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오메가의 말에서 틀린 부분은 없었다.
팔짱을 내린 오메가는 긍정적 의사를 보였다.
“좋습니다. 대신 일이 진행된 이후에는······.”
“전혀 불편 없게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바로 내일부터 움직이도록 하죠. 12시가 이미 지났으니 오늘이겠군요.”
“고맙습니다.”
원이 눈치를 보며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알게 된 건지는······.”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오메가.
“그거 말하면 이 일 오래 못합니다. 대화는 여기까지인 것 같군요. 그럼 저는 이만.”
그렇게 말하고 오메가는 운전석 문을 열었다.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기에 차량 내부에 경고등이 번쩍였다.
원이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오메가는 그대로 밖을 향해 뛰었다.
화들짝 놀란 원은 차창을 내려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따라오고 있던 바이크에 기묘한 움직임으로 올라타 몸을 앞으로 붙인 오메가가 씩 웃고 있었다.
바이크 속력을 높여 차의 옆으로 붙은 오메가는 열려있는 운전석 문을 걷어차 닫고는 멀어졌다.
비로소 경고등이 꺼지고 어둑해진 차 안, 원은 차량이 제대로 자율주행모드인지, 목적지가 조금 전 불러 준 자택이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뒷좌석에 등을 붙일 수 있었다.
“보통 미친 인간이 아니야······.”
간신히 한 마디를 내뱉고 나서야 원은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