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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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장의 사진에 모두 같은 인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로 많이 찍힌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시청 갔을 때 저 안내해준 공무원이에요.”
“시청 소속 공무원요?”
“네. 정확한 직책은 모르지만 아마도 시장 비서실이나 그에 준하는 부서에 있지 않을까 해요.”
누스러스디의 눈이 매섭게 변하는 동시에 반짝반짝 빛났다.
그의 전신 모든 감각기관이 나를 향해 곤두선 것 같았다.
그가 팔찌를 다시 한번 만졌다.
작은 가동음이 나면서 팔찌의 장식에 가려져 있던 작은 렌즈가 날 향했다.
“혹시 모르니 촬영 좀 하겠습니다. 외부로 유출되는 일은 없을 거고 녹화가 불편하시다면 음성만이라도 녹음을 좀······.”
흥분 상태의 누스러스디를 제지한 건 앨리스였다.
“들어오시기 전에 설명 들으셨겠지만, 이 응접실에서 이루어지는 녹화와 녹음은 그 결과물을 보장할 수 없어요, 기자님. 간섭을 위한 음파와 전파가 지속되면 장비가 파괴될 위험도 있답니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누스러스디의 팔찌를 슬쩍 내려다본 앨리스가 살벌한 웃음을 지우지 않고 말했다.
“―최소 화상, 최대 절단에 이르는 상해를 입으실 수도 있으니 종료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 방에 들어온 뒤 앨리스의 얼굴은 계속 웃고 있었지만 심사가 꼬여도 단단히 꼬인 모양.
하긴, 계속해서 귓가에 모기가 날아다니는 기분이라는데 아직까지 웃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 해도 굉장한 일이다.
앨리스의 안내에 아쉬운 듯 팔찌를 매만지는 누스러스디에게 나 역시 강한 어조로 말했다.
“취재에 대한 열정은 알겠지만, 다 미리 말씀드린 부분이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누스러스디 당신은 일 마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앨리스 기분이 안 좋으면 나는 종일 내 책상 앞에 박혀서 앨리스 눈치만 봐야 한단 말이야.
요즘은 밖으로 나가기도 힘들어서 꼼짝없이 사무실에 있어야 한다고. 아쉬움과 미련이 그득 담긴 눈으로 팔찌의 작동을 멈추는 누스러스디.
그 와중에도 내게 다시 한번 확인받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시장 밑에 있는 공무원이 확실하다는 거죠?”
“두 번이나 봤으니까요. 두 명이었는데 이 사람은 서기관이었을 거에요.”
“네오-서울 시장과 고위 장성들 간의 커넥션이라니. 흥미롭네요. 어떻게 생각하면 가장 기득권다운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판을 흔드는 새로운 인물을 곱게 볼 리가 없으니까.”
혹자는 웃기지 말라고 하겠지만, 나는 흔들 생각이 전혀 없다.
작전 종료를 알리면서 말했던 것처럼, 그저 내 앞길 막는 놈 엉덩이나 걷어차려고 무던 애쓰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되어버렸다는 게 내 입장이었다.
물론 이번만 그런 게 아니라 또 그런 놈들이 생기면 어김없이 발길질해주겠지만, 얽힌 인물이 네오-서울의 시장인 원이다 보니 섣불리 누스러스디의 의견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기사 타이틀을 뽑는 건지 혼자 중얼거리며 이런저런 단어를 조합해보는 누스러스디를 향해 말했다.
“그건 너무 나간 것 같은데요. 그리고 자세히 말씀은 못 드리지만 현 시장과 제가 이래저래 얽혀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래저래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이 궁금해지는군요.”
“말씀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오메가 씨와 이 사무실은 알면 알수록 보물 같은 곳이에요. 아주 기자를 안달 나게 한다고요. 걱정하시는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 건이 쉽게 기사화되지는 않을 겁니다. 기사를 뒷받침할 증거도 충분하지 않고, 섣불리 기사로 냈다가는 역풍 맞기 딱 좋은 주제이기도 하니까요.”
“증거가 확실해진다면······?”
“그때는 안 낼 이유가 없죠. 제 커리어 가장 윗줄에 남을 수도 있는 건인데요.”
“일단 저희도 상황 파악을 해야 하니 지속적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앨리스를 바라봤다.
다 들으라는 듯 ‘그래요.
사장님은 말만 하고 일은 제가 하죠.’하고 중얼거리는 앨리스였다.
그게 네 할 일이잖아.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그렇게 우리는 VIP 응접실에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 얻어가는 게 많군요.”
아주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누스러스디였다.
아직도 건물 주위에 사람이 많은데 괜히 어디 붙잡혀서 이상한 소리나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를 위해 문을 열어주려고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 누스러스디의 말이 들렸다.
“오메가 씨와 시장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를 쉽게 신용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나는 그대로 멈추었다.
고개만 돌려 누스러스디에게 향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현 시장이 미디어에서는 넉넉하고 유순한 이미지이지만, 제 생각에 그건 전대 시장 중 하나였던 그의 아버지에게서 기인해 빌려온 이미지에 불과합니다. 고도의 정치적 전략이죠.”
“흠······.”
“제 전문 분야가 정치나 행정이 아니라 정확한 평은 내리지 못하지만, 그쪽에 있는 동료들이 하는 말이 웃으면서 칼을 찌를 사람이라고들 합니다. 아주 비정하다 이겁니다. 특히나 지위, 안위에 관련해서는 더더욱.”
“참고하죠.”
누스러스디가 떠난 뒤, 책상에 앉아 들었던 내용을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맞춰 정리하고 있으니 앨리스가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스냅샷 씨한테 연락할까요? 아니면 역시 이런 일에는 야스민 가문? 군부 일이라면 그쪽 출신인 야타가라스 씨도 잘 알 것 같네요.”
“어디에도 연락하지 마.”
“네?”
“다른 곳의 힘을 빌리면 나와 시장 사이의 의뢰가 드러날 수 있어.”
“비밀유지계약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데 기본을 망칠 수는 없잖아.”
원이 지금 무슨 꿍꿍이속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누스러스디의 말처럼 어딘가 검은 구석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하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윤곽이 드러난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은 윤곽은커녕 그림자 꽁무니 정도 밟은 정도였다.한참이나 이렇다 저렇다 앨리스의 말이 없길래 바라보니 앨리스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사장님의 직업의식이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나를 무슨 어디 길거리 양아치로 보나······. 그래도 진심으로 일하거든? 기본이나 근본 무시하면 잠깐은 성공할 수 있어도 꾸준히는 못 간다.”
게임 할 때 근본 없다는 소리를 누구보다 많이 들어본 내가 하는 말이라 우습긴 했지만 내 생각은 그랬다.
말이 우습지만 근본 없는 중에 제일 근본인 놈이 나 아닐까.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직접 만나봐야지.”
“시장을요?”
“그럼 그쪽에 연락 넣을게요.”
“그것도 하지 마. 괜히 더 움츠러들거나 대비할 시간을 줄 수도 있잖아. 시장을 완전히 신뢰하는 건 아니야. ‘아직 두고 보자.’ 정도지.”
“그럼요? 어떻게 만나실 건데요.”
“시장 퇴근 시간이랑 이용하는 차량 좀 알아봐 줘. 차량 근처 CCTV 가동 범위랑 차단 방법도 알려주면 좋고. 아니다. 알려주면 내가 알아 먹겠냐. 그건 네가 해줘야 할 것 같아.”
다시 말이 없어진 앨리스에게 물었다.
“왜?”
“직업의식 칭찬한 지 몇 분이나 됐다고······.”
“직업의식은 투철한데 직업윤리는 좀 희미해. 그리고 윤리 따지면 이 일 힘들어진다? 우리 사무실이 하는 일이 그런 일이잖아?”
“우리 사무실이라고 해서 은근히 저까지 엮지 마세요.”
“이렇게 발을 뺀다고? 아까 안에서 전과자 스캔한 거, 그 리스트 받은 것도 따지면 다 범죄다?” “
그건 굳이 따질 필요 없이도 그냥 범죄랍니다.”
“그건······그렇네.”
그리고 몸을 돌려서 걸어가는 앨리스에게 말했다.
“어디 가. 그래도 사장이 말하는데 다 듣고 가야지.”
잠깐 걸음을 멈춘 앨리스가 제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사장님의 괴상한 논리 듣고 있기, 제 자리로 가서 사장님이 부탁하신 거 찾아보기. 어떤 게 더 효율적일까요? 골라보세요.”
“······부탁한 거 찾아보기.”
다시 몸을 돌리는 앨리스에게 급히 말했다.
“참, 잠깐만. 아까 야타가라스 얘기도 했잖아. 야타가라스한테도 부탁할 수 있는 거야? 어떻게? 야타가라스는 여기 온 적도 없고 너랑 얘기 한 적도 없지 않아?”
“평화 공원 때 오퍼레이터 하느라 알게 됐죠. 이후에도 마고 씨 통해서 이따금 연락해요.”
그리고 이어지는 앨리스의 말은 내 머릿속에 물음표 수천 개를 띄우게 했다.
“얘기가 꽤 잘 통하던데요?”
“뭐?”
“왜요?”
눈을 동그랗게 뜨던 앨리스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제가 야타가라스 씨한테 갈까 봐 걱정하시는 거예요? 사장님도 참. 그럴 일 없어요. 야타가라스 씨도 대단하긴 한데 사장님만큼 재밌고 독특한 상사는 별로 없을걸요. 별걱정을 다 하시네.”
그런 말을 남기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앨리스의 뒤통수를 멍하니 쳐다봤다.
‘얘기가 잘 통해? 야타가라스랑? 그 빡대가리랑?’
한참이나 고민한 끝에 내린 내 결론은 그랬다.
극과 극은 통하는 면이 있다.
이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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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스러스디가 오메가의 사무실에 다녀간 지 사흘 뒤.
네오-서울 시청 시장실.
시장인 원의 책상에는 WSS를 포위 중인 군단들의 배치도가 놓여있었다.
이 기세라면 한 달 내에 WSS로부터 종전협정 제의가 올 것이 거의 확실했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병력들을 아직도 트라이포드와의 관계를 부인하고 있는 북부 중화권 권역으로 보낼 준비 역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네오-서울의 많았던 시장 중 누구도 해내지 못한 업적이었다.
원은 자신의 아버지처럼 미적지근하게 임기를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재선이고 삼선이고 이 시장실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있길 원했다.
똑똑- 묵직한 노크 소리.
“들어와.”
오메가를 안내했던 서기관이 안으로 들어왔다.
“시장님, 이만 퇴근하시죠.”
시계가 0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사흘 내내 퇴근하지 않고 샤워와 옷만을 갈아입은 채 일에 몰두하는 원에게 서기관이 말했다.
“열심히 하시는 건 좋지만 시장님께서 늦게까지 일하시는 걸 오히려 불안하게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문제가 있으니 정시 퇴근을 못 하는 거 아니냐면서요.”
“이렇게 해도 걱정, 저렇게 해도 걱정. 참 쉽지 않은 자리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원은 풀어놓은 넥타이를 챙겨 들고 재킷을 입었다.
“가지.” 그가 시장실 밖으로 나서자 상사를 따라 퇴근하지 못하고 있던 비서실의 인원들이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다들 퇴근들 해.” 원은 주차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서기관도 함께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원이 물었다. “장성들은 좀 어떻던가.” “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좀 갈리는 모양이라······. ” “보수적이다 못해 답답들 하구만. 상을 차려줬으면 알아서 퍼먹을 줄도 알아야지. 내가 다 떠먹여 주기까지 해야 하나?”
“엉덩이나 깔고 앉아서 스스로 뭘 해 본 적 없는 족속들 아닙니까.”
“그러다 입에 물려 있던 사탕을 빼앗기고 나서야 되찾아달라고 울고불고할 것 같은데. 바람 좀 더 불어넣어.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아야 장성들 목소리도 힘을 가지는 거지, 곧 군사작전이 마무리되면 균형이 완벽히 무너질 거야. 지금도 아슬아슬해.” “역시 지금이 적기라고 보시는군요.” “기회가 없어. 특별법은 어림도 없고.”
“퓨어 특별법은 저 역시 힘들 거라고 봅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둘은 차량으로 향했다.
서기관이 운전석 손잡이에 손을 대자 사용자 인증을 마친 차량이 시동이 걸리며 부드럽게 떠올랐다.
원도 뒷좌석 손잡이에 손을 대자 소리 없이 문이 열렸다.
그때, 지하 주차장 전체 조명이 깜빡하고 꺼졌다.
원과 서기관이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
뭐지?”
“관리 부서에 연락해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조명이 꺼졌다.
“흡!”
서기관의 목소리와 함께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나?”
“예. 잠깐 발을 헛디뎠습니다.”
조명이 다시 들어왔을 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원이 뒷자리에 탑승했다.
그리고 서기관도 차량의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문이 잠기고 차가 출발했다.
밀려오는 피곤에 눈이 감기던 원이었지만 곧 눈을 번쩍 떴다.
주차장을 벗어난 차량이 자신의 집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룸미러를 통해 서기관의 얼굴이 보였다.
원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무슨 짓이지?”
손을 뻗어 차량을 자율주행모드로 전환한 서기관의 얼굴과 몸이 녹아내렸다.
[인피면구]를 사용해서 서기관으로 변해 있던 오메가는 룸미러를 통해뒤쪽의 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얘기 좀 하실까요? 사흘이나 퇴근을 안 하셔서 기다리느라 지루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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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와 원이 탄 차가 떠난 후, 지하주차장 바닥에는 불이 꺼진 사이 오메가에게 옆구리를 얻어맞은 서기관이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곧 개 수인 하나와 도마뱀붙이 수인 하나가 서기관 곁에 나타났다.
사설 집행자인 정현과 자코였다.
오메가로부터 뒤처리 부탁을 받은 상황.
물론 자세한 내용은 비밀로 한 채 쓰러진 사람 좀 챙겨달라고만 전달받았다.
“이 아저씨 맞지?”
“그럴 겁니다.”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메가 형님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야? 시청에서 공무원을 실신시키고?”
“그 형님이 언제는 조용히 다닌 적이나 있어요? 공무원이 대수겠어요. 마음에 안 들면 시장도 팰 사람이 오메가 형님 아닙니까.”
“그래, 네 말이 맞다. 근데 진짜 시장을 패진 않겠지?”
둘은 눈을 마주치고 킥킥거렸다.
“설마요.”
“그래. 설마. 이 아저씨 짊어지기나 해. 적당히 안전한 곳에 던져놓고 이상한 놈들이 접근하는 것만 막으면 될 거야.”
“저 혼자 들어요?”
“그럼 선배인 내가 들어? 자코 너도 진짜 많이 컸다. 예전에는 하라면 바로바로 하더니 요새 머리 좀 컸다고 되묻기나 하고. 나 때는 말이다······.”
정현의 말이 더 길어지기 전에, 자코는 서둘러 실신한 서기관을 들쳐멨다.
정신이 힘든 것보다는 몸이 힘든 편이 훨씬 낫다는 걸 자코는 알고 있었다.
다 말 많은 사장인 키클롭스와 말 많은 사수인 정현 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