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44화 (245/258)

244.

244.

“오메가 씨, 네오-서울에서 추방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을 꺼낸 이는 우리 사무실에 유일하게 드나들 수 있는 기자, 누스러스디였다.

누스러스디의 소속은 데일리 네오-서울.

가짜 뉴스와 황색언론, 카메라 하나 들고 들이대면서 알 권리를 떠들어대면 그게 전부인 줄 아는 자칭 언론계 인물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몇 안 되는 중립적 시각의 보도를 내는 걸로 알려진 언론사가 데일리 네오-서울이다.

잠입, 위장을 통한 심층 분석 기사나 사회를 들썩이게 하는 르포 기사도 심심치 않게 내는 곳이기도 하다.

소속 기자인 누스러스디만 해도 태백 권역의 도시인과 자유인들 간의 불협화음이 들린다는 소리만 듣고도 자기 눈으로 확인부터 하겠다고 바로 기차표부터 끊었다고 한다.

그 기차에서 나를 만나 이래저래 연이 이어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태백 권역에서 누스러스디와 좀 같이 다녀본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누스러스디는 자기 종족인 사티로스 특유의 심각한 장난기를 많이 타고난 것 같다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니 나는 아주 당연하게도 누스러스디의 말을 그가 으레 하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농담이나 할 거면 사무실 출입 금지할 겁니다.”

“농담 아닙니다.”

서슬 퍼런 작두에 약재가 썰리듯 단칼에 마무리하는 누스러스디였다.

“제가 추방을 왜 당합니까. 아니 그 이전에, 어떻게 당합니까. 지금도 밖에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창문도 제대로 못 열고 어딜 가기만 해도 파파라치가 따라붙는데. 지금 생각할 문제가 산적해 있으니까 농담은 거기까지 합시다.”

“농담 아니래도요.”

“출처가 있는 정보입니다. 신원과 신뢰가 확실한 정보원에게서 받은 거기도 하고요.”

누스러스디의 표정이 전에 없이 한껏 진지했다.

팔짱을 끼고 그런 누스러스디를 보다가 말했다.

“앨리스 좀 불러와도 될까요. 이런 일은 저보다 앨리스가 더 익숙할 것 같아서요.”

우리가 있는 곳은 주로 사용하는 사무실 옆에 따로 마련한 VIP 응접실.

혹시 모를 녹음이나 녹화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고객들을 위해 이 응접실에 통신 장비는 하나도 가져오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가지고 들어온다 해도 내부에 특수한 음파 간섭을 일으키는 장비가 설치되어 있어 기기 성능 100%를 발휘하는 걸 막는다고 한다.

그 기계가 아군, 적군을 가리는 게 아니라서 안드로이드인 앨리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지라 앨리스는 이 방에 들어오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

쉬지 않고 모기 두어 마리가 귀 근처를 맴도는 장소가 있다고 상상하면 자기 고통이 이해가 갈 거라나.

하지만 누스러스디의 말이 정말이라면 나 혼자 듣고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하시죠.”

누스러스디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문을 열고 짧은 복도를 통과하자 주로 사용하는 사무실이 등장했다.

“앨리스!”

내 부름에 파티션 너머 앨리스의 머리통이 움직였다.

이쪽으로 다가온 앨리스였다.

“네! 벌써 끝나셨어요?”

“아니. 잠깐 이리 좀 와 볼래? 너도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으으······. 그 방 진짜 싫은데. 지금 가요.”

“수고 좀 해줘.”

앨리스를 데리고 응접실로 돌아와 앉으니 누스러스디는 앨리스에게도 똑같은 얘기를 했다.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스러스디 씨의 휴민트(HUMINT: 인간 정보)를 의심하는 건 아닌데요. 저희도 여러 곳의 협조를 받아서 다양한 데이터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있거든요. 요새 사장님 이름이 갑자기 확 떠오르는 바람에 반대급부로 비방하거나 깎아내리는 건 봤어도 갑자기 추방은 좀······. 요즘 어디든 사장님 까면 간첩이에요. 까임방지권을 20개 정도 가지고 있던데요.”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 정도야?”

“네. 근데 19장은 까먹었다고 봐도 돼요.”

“왜?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신시아 언니랑 결혼할 거라는 소문 때문에요. 흡혈귀를 혐오하는 소수를 제외하면 신시아 언니는 전 연령, 전 종족, 성별 불문 호감도가 상당히 높은 셀럽이거든요.”

신시아 얘기가 나오자 누스러스디의 몸이 앞으로 쏠리고, 눈이 반짝였다.

“역시 야스민 가문과의 혼담이 어떻게 잘······.”

또 머리 아픈 얘기를 꺼낸 앨리스를 향해 인상을 쓰면서 동시에 누스러스디에게 말했다.

“원래 얘기로 돌아가죠.”

앨리스가 딴청을 피우는 동안, 아쉬워 미치겠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은 누스러스디가 화제를 원래의 것으로 돌렸다.

“앨리스 양의 의견도 맞습니다. 저였어도 그렇게 생각했겠죠. 영향력 강한 전쟁 영웅을 전후까지 살려둘 필요가 없다는 건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지만 지금은 아직 전후도 아니고, 이렇게나 갑자기 추방이라는 워딩까지 사용하는 건 과장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시겠죠. 게다가 오메가 씨는 현재 네오-서울의 정신적 구심점이자 사기 진작에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사무실이 대림 에어리어에 있어서 낙후 지역의 희망처럼 띄워지기도······.”

황급히 누스러스디의 말을 끊었다.

“잠깐, 잠깐만요. 저 죽어요?”

누스러스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방금 그랬잖아요. 전쟁 영웅을 전후까지 살려둘 필요가 없다고.”

“어······. 비유를 하다 보니 나온 말이긴 한데 죽지는 않으실 겁니다. 네오-서울이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한 전제군주의 통치를 받는 곳도 아니고 말이죠.”

“그럼요?”

“아마 반대의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죠. 여러 방면의 구애를 받으실 겁니다. 특히 정계 쪽에서 환장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에도 에어리어 의원 하나가 오메가 씨랑 엮어서 홍보 자료 내놓은 걸로 아는데요.”

“오리너구리! 이름이······.”

잘 떠올리지 못하는 나 대신, 앨리스가 문장을 완성해주었다.

“에이들리 씨요.”

“씨는 무슨. 오리너구리 새끼.”

“누스러스디 씨가 아무리 저희에게 우호적인 논조로 인터뷰나 기사를 내주시고는 있지만 기자세요. 기자 앞에서 말 예쁘게 부탁드려요. 사. 장. 님.”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앨리스에게서 엄청난 압박이 느껴졌다.

아마도 여러 부문의 취재를 하면서 오만가지 군상과 상황을 겪어봤을 누스러스디조차 앨리스의 기세에 거스르기는 힘들었던지 빌빌대는 나 대신 대화를 주도해나갔다.

“여튼, 지금 오메가 씨의 상황은 아주 좋습니다. 순풍에 탄 배가 바다를 헤쳐 나가는 것처럼요.” “굳이 항해 중인 배를 언급하신 건 물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도이신가요? 아니면 순풍이 그칠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의도이신가요?”

잠깐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흡족한 미소를 짓는 누스러스디였다.

“오메가 씨 같이 핵심을 짚는 인터뷰이만 있으면 제 기자 생활이 아주 편해질 텐데 아쉽습니다.”

그리고 누스러스디는 앨리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앨리스 양이 언급한 ‘여러 곳’. 아마 주로 루트와 야스민 가문이겠죠?”

잠시 눈썹을 찡그린 앨리스가 순순히 답했다.

“네. 그렇죠.”

잠자코 둘의 대화를 들을 생각이었지만, 참지 못하고 한마디 끼워 넣었다.

“그거 그렇게 쉽게 말해도 돼?”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는 것도 우습잖아요. 심지어 데일리 네오-서울 기자 앞에서는 더더욱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누스러스디는 앨리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설명을 덧붙였다.

“오메가 씨에게 관심 있는 곳에서는 다들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을 테니 유난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정보의 출처는 루트와 야스민 가문에서 접근하기 힘든 곳입니다.”

앨리스가 바로 반박했다. “

그런 곳이 있어요? 네오-서울 안에서 루트와 야스민 가문만큼 큰 영향력을 가진 곳이 얼마나 있다고. 설령, 사장님이 추방된다는 말이 네오-서울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말이라고 한다면 신경 쓸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요.”

“외부 접근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기도―.”

누스러스디는 계속해서 모호한 말을 던졌다.

자기가 직접적으로 흘리는 걸 피하는 모양새였다.

누스러스디가 슬쩍슬쩍 던진 단서들이 이리저리 조합됐다.

‘누스러스디를 처음 만난 곳이 어디였지? 무슨 일로 거기에 가던 중이었지? 나와 누스러스디 사이의 공통 인맥이 있나?’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알겠다.”

누스러스디는 군사, 군대를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기자다.

태백 권역에서도 그가 있어 스펜서 대령의 부대에 쉽게 출입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집안의 가풍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네오-서울 남서부에서 거신족 클론 소탕 작전을 지휘하던 군인인 카마던 중령이 누스러스디의 집안사람이라고 했다.

말은 분가한 가문의 협력이지만 사실은 사병에 가까운 특수부대 조직을 운영하는 야스민 가문이기에 아마도 직접적인 연결라인은 만들어지기 힘들 것 같은 곳.

루트에서 프리랜서나 퇴역자들은 곧잘 끌어들이지만, 현직자와의 커넥션은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 곳.

전제군주라는 누스러스디의 말이 더욱 내 추측에 힘을 실었다.

상명하복이 당연한 이들.

“수도방위사령부.”

현직 군인들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누스러스디가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장성들 사이에서 오메가 씨에 대한 불만이 있습니다. 실제로 피 흘리는 건 자기들인데 스포트라이트는 오메가 씨가 다 가져간다는 거죠.”

앨리스는 목소리에 짜증을 감추지 않았다.

“그건 너무 일차원적인 사고 아닌가요?”

“맞습니다. 주류 의견도 아니죠. 젊은 장교들은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소수의 장성이 가진 영향력이 문제입니다. 아주······.”

누스러스디는 이어갈 말을 찾아 숨을 골랐다.

그의 이어지는 말은 상당히 원색적이었다.

“······똥별 놈들이 자리 차지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자기들이 피를 흘리긴 무슨! 병사들이랑 젊은 애들 피나 빨아 먹으면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누스러스디를 보며, 옆에 있는 앨리스를 팔꿈치로 톡톡 건드렸다.

“빨리 말 예쁘게 하라고 해.”

“오프 더 레코드니까 좀 험해져도 괜찮아요. 그리고 사장님처럼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누군가를 콕 짚어서 욕한 게 아니잖아요.”

내가 더 따지기 전에, 앨리스가 누스러스디에게 물었다.

“수도방위사령부 내에 사장님을 좋게 보지 않는 시선이 있다는 건 알겠어요. 요새 WSS, 중화권 권역과의 전쟁에서도 우세이니 군부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고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장님이 추방된다는 건 제가 보기에 비약에 가까운데요. 애초에 군부의 일은 외침外侵을 막는 것이지 안쪽에 간섭하는 게 아니잖아요?”

누스러스디의 답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안쪽에 장성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으로 추측합니다. 애초에 그쪽에서 장성들에게 충동질하거나 로비를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감히 하고 있습니다. 장성들이 먼저가 아니라 이쪽에서 먼저 오메가 씨를 추방할 계획을 세운 걸 수도 있다는 거죠.”

누스러스디는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를 돌려 책상 위에 뭔가를 투사했다.

“장성들의 자택 앞에서 잠복 취재로 확보한 사진들입니다.”

차에서 나와 누군가가 걸어가는 사진과, 자택에서 나와 다시 차량에 타는 사진들이 여러장이었다.

“사진 속의 인물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전력으로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은······.”

앨리스의 눈동자가 사진들을 스캔했다.

“최근 3년간 전과자 리스트를 확인했는데, 리스트에 없는 얼굴이네요.”

“그런 기능도 탑재되어 있습니까?”

“리스트 데이터랑 그걸 보관할 용량, 빠른 탐색을 위한 연산회로만 있으면 돼요.”

아마 데이터는 마고한테, 저장 공간은 루트와 샌디비치에게, 추가 연산회로는 이수련한테 받았을 거다.

일반적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소리.

누스러스디가 감탄하는 사이,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투사된 사진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외쳤다.

“저 이 사람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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