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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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가 위타천과 나다를 만나기 조금 전, 바이크의 내비게이션을 사무실이 아니라 공공 집행본부로 조정했을 무렵.
“은밀한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는 위치 정보 송수신 기능 먼저 종료하시라고 그렇게 얘기를 드렸는데도······.”
대림 에어리어 해결사 사무실에 앉아 손에 든 패드로 바이크의 경로를 파악한 앨리스의 혼잣말이었다.
“50번 알려드리면 뭐 하나, 100번 까먹는데.”
그리고 앨리스는 패드 한쪽에 떠 있는 전화기 모양 아이콘을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통신 장비들이 다 이렇게 생겼었다는데 믿기지 않네.”
아이콘을 터치하자 세부 내용이 떠올랐다.
-사장님, 부재중 3건, 음성 메시지 5건-
그걸 본 앨리스가 소리 없는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평화 공원 조사 현장에 협력 업체로 나가 있는 후앙이 앨리스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 대략 30분 전이다.
[형수님 급하게 현장 떠나셨습니다.]
신시아가 안 보이면 바로 자기에게 메시지 보내달라는 앨리스의 부탁을 후앙은 훌륭하게 이행했다.
정현, 자코와 함께 오메가에게는 은근슬쩍 선을 넘을 듯 말 듯 장난을 치기 바쁜 후앙이었지만 앨리스에게는 거의 절대복종하고 있었다.
해결사 사무실의 얼굴마담은 오메가지만, 실세는 앨리스라는 것을 일찌감치 파악한 덕이었다.
심지어 오메가가 발로 걷어차는 것보다 패드를 든 앨리스가 자신을 향해 얼굴 찌푸리는 것이 더 두렵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 후앙이었다.
잘했다는 답변을 후앙에게 보낸 앨리스는 생각했다.
‘구舊 평화 공원에서 성북 에어리어까지 30분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겠지만······. 그건 일반적인 경우고. 아마 신시아 언니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저택으로 갔겠지? 얼마나 걸렸을까? 5분? 10분?’
10분을 최대치로 잡는다면 신시아가 저택 진입한 지 20분 만에 오메가가 나왔다는 소리가 된다.
“생각보다는 일찍 나오셨네.”
이 와중에 다시 걸려 오는 오메가의 통신에 부재중 응답을 한 앨리스는 패드를 조작해 신시아의 번호를 띄웠다.
통신 연결 아이콘을 누르기 직전, 앨리스는 패드를 조작해 메인 화면으로 돌아갔다.
“포장을 갓 뜯은 오일샌드도 맛있지만, 뜯어놓고 좀 방치 해둔 샌드에 깃드는 풍미도 있으니까.”
어차피 얼마 안 있으면 신시아가 사무실로 와서 미주알고주알 얘기할 게 뻔한데, 굳이 먼저 나서서 조바심 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패드의 화면을 절전모드로 돌리고 책상에 엎어두기 직전, 앨리스는 잠시 고민하다 다시 화면을 켜고 어플 하나에 접속했다.
루트 쪽에서 따로 서버를 할당받아 가동되는 프라이빗 메시지 어플이었다.
[A: 어떻게 되고 있어요?]
[S: Y의 요구대로 O의 정보를 계속 흘리는 중.]
A는 앨리스, S는 스냅샷, Y는 야스민 공, O는 오메가.
[A: 철저하게 Y 가문과 관련된 것만 풀고 있죠?]
[S: 물론. 한 가지 문의 사항 있음.]
[A: 어떤 거죠?]
[S: 정말로 O는 Y의 사위가 되는 건지. 본사에서 파악하기로는 O는 L과도 접점이 있음.]
L은 이수련.
꽤 열심히 자신이 과거의 수호자이자 퓨전 코퍼레이션의 총수라는 것을 감춰온 이수련이었지만 오메가를 돕기 위한 과정에서 이리저리 노출되었고, 루트의 수장인 엘림은 해결사 사무실에 자주 보이는 구미호의 정체를 짐작하는 데 성공했다.
루트 설립 이래 손에 꼽히는 가치를 가진 정보였지만, 엘림은 그 정보를 즉시 최고등급의 기밀로 설정했다.
그리고 스냅샷과 타이린드에게만 공유하고 유출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고 받아냈다.
단발성 정보로 이득을 얻기보다는 오메가나 이수련과의 관계를 원만하게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득 될 것이 많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니 스냅샷도 원칙대로라면 이수련의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 됐으나, 앨리스와의 공조로 인해 둘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정보교환이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A: 그 전에, 저도 하나 물어봐도 돼요?]
[S: 가능.]
[A: 왜 어울리지도 않는 그런 말투를 쓰시는 거죠?]
[S: 이래야 더 은밀한 느낌이 남.]
[A: ······그래요.]
[S: 그렇지 않음?]
[A: 제 질문은 못 들은 걸로 하세요. L 얘기로 돌아가죠.]
[S: 확인.]
[A: O를 옆에서 봤는데, 배우자로 L도 나쁘지는 않아요. Y의 딸이 상대라는 게 문제죠. 대진운이 좀 안 좋다고 할까요.]
[S: L 정도면 상당하다고 봄. 게다가 L이 O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던데?]
[A: 그게 상당히 일방적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죠. 그런데 저는 중립이라고 말해놓고 Y 쪽을 한 번 도왔으니 L에게도 한 번은 도움을 줘야 할 것 같아요.]
[S: A는 O의 배우자로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지? 다 내려놓고 우리만의 비밀로 하겠음]
[A: 음······.]
이어지는 말을 입력하려고 할 때,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낭군! 본좌가 왔느니라!”
신시아와 함께 평화 공원 조사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이수련이 로봇 헤드를 뒤집어쓰고 등장했다.
평화 공원이었던 구덩이 근처에 마련된 퓨전 코프 임시 지원 센터 내부에서 원격 조종 로봇만을 움직이기에 이수련은 흙 하나 묻은 곳 없이 말끔했다.
이수련이 자기 얘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패드를 종료한 앨리스가 말했다.
“사장님 저기 어디냐 시청에 좀 가셨어요.”
굳이 성북 에어리어 소리는 꺼내지 않는 앨리스였다.
“그래? 언제 돌아온다고 하였느냐?”
“어······모르겠네요.”
“중간에 신시아도 어디론가 사라져서 묵묵히 일만 하다 돌아왔는데 삶의 낙인 낭군도 없다니! 의욕이 뚝뚝 떨어지는구나.”
어깨를 축 내린 채 돌아서는 이수련을 앨리스가 붙잡았다.
“언니!”
“응?”
“오늘 다른 일정 있어요?”
“별다른 것은 없느니라.”
“그럼 저랑 얘기 좀 할래요?”
“무슨 얘기?”
“그냥 이런저런 얘기요. 요즘 워낙 바빠서 서로 얼굴 마주치기도 힘들었잖아요. 밖으로 나가는 건 언니가 워낙 안 좋아하니까 여기서 뭐라도 시켜 먹으면서, 어때요?”
앨리스의 말에 이수련의 로봇 헤드 눈 부분에서 빛이 깜빡거렸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로구나······.”
날카로우면서 동시에 능글맞은 이수련의 목소리.
땀샘이 없어 그럴 리 없지만, 앨리스는 뒷덜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래도 역시 짬밥은 무시할 게 못 된다고 눈치를 챈······.’
핑계를 마련하기 위해 앨리스가 연산회로를 풀로 가동하려는 찰나.
“교체하고 싶은 파츠가 생긴 게로구나! 맞지!”
“어······.”
“대체 어떤 파츠길래 이렇게까지 하나 한번 들어나 보자꾸나. 대접을 아주 융숭히 해야 할 것이야.”
모든 외장을 해제한 이수련은 소파에 벌러덩 옆으로 엎어져 배를 북북 긁었다.
오메가의 평소 행동을 빼다 박은 듯한 모습에 앨리스는 괜히 성질이 나는 것을 초인, 아니 초안드로이드적 인내심으로 눌러 가라앉혔다.
“뭐로 드실래요?”
“생간, 천엽, 선지, 순댓국, 내장탕, 육회.”
메뉴에서부터 느껴지는 짙은 구미호 향기에 앨리스는 어지러움을 호소할 뻔했다.
일단 먹고 싶다고 하니 검색 중인 앨리스에게 이수련의 목소리가 다가왔다.
“소주랑 막걸리는 필히 있어야 할 것이야. 노동 후에는 그것들을 먹어줘야지. 오늘 한 번 취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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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뒤, 이수련은 술기운에 얼굴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해 몸을 흔들고 있었으며, 눈은 풀리기 직전.
소주 반병, 막걸리 두 모금에 이렇게 되어버릴 줄은 앨리스도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술 마실 일이 없다 보니 수련 언니 주량이 이렇게 약할 줄은 생각도 못 했네.’
“으응······왜 이리 더운 것이냐······.”
“언니! 언니! 에어컨 틀었어요!”
웃옷을 벗으려는 이수련에게 달려가 간신히 막아낸 앨리스였다.
“덥다! 덥단 말이다!”
“좀만 참아요. 곧 시원해져요! 이럴 거면 법술로 취기 좀 몰아내요!”
“그럴 거면 술을 왜 먹느냐? 알딸딸한 맛에 마시는 것이 술인데! 아하하하!”
간신히 구미호 탈의 쇼를 중지시킨 앨리스가 이수련의 앞에 놓인 술잔들을 옆으로 치웠다.
그 상태에서도 이수련은 젓가락을 집어 앞에 차려진 안주를 꿀떡꿀떡 잘도 집어 먹었다.
“요새 생간은······감칠맛이······영······별로이니라······. 성균관 옆······반촌泮村에 살던 이들이······갓 잡아 내놓은······것이······최고였는데······딸꾹!”
혼자만 알아들을 소리를 중얼거리는 이수련을 바라보던 앨리스가 물었다.
“언니, 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요.”
“응? 궁금한 거? 그래, 그래! 말해보거라! 아차차! 파츠 얘기를 하려고 했었지? 본좌가 취흥을 즐기느라 깜빡했느니라.”
“그게 아니라요.”
앨리스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수련은 취객 아니랄까 봐 자기 할 말만 떠들었다.
“뒤꿈치에 압축 공기 부스터를 달아주랴? 그게 아니면? 호신용 음파 블레이드를 팔에 넣어주랴? 네트워크 접속을 위한 신경 섬유를 머리칼에 이식해줄 수도 있으니 본좌에게 말만 하거라.”
마지막 제안은 꽤 괜찮다고 생각한 앨리스였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언니!”
큰 소리에 이수련이 몸을 떨고는 감기던 눈을 크게 떴다.
다시 이수련의 눈이 감기기 전, 앨리스가 본론을 꺼냈다.
“우리 사장님 좋아하죠?”
깜짝 놀란 표정이던 이수련의 얼굴에 헤실헤실 웃음이 피었다.
“낭군 말이냐? 그걸 말해 무엇하겠느냐.”
“그런데 사장님은 언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본좌를? 음······.”
이수련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팔짱을 꼈다.
그리고는 아주 당연한 진리를 말하듯, 당당하게 선언했다.
“이지적인 두뇌의 천재 로봇 공학자이자 법술의 대종사이며 기업 경영의 신이면서 초 섹시 극 요염 구미호로 보고 있지 않겠느냐?”
반박할 말이 한가득한 앨리스였지만 잘 참아넘긴 뒤 말했다.
“정말요?”
“당연한 소리! 본좌는 매력의 집합체이니라!”
“아닐걸요? 변신하는 메카 구미호 정도로만 보고 있을걸요?”
“앨리스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 것이니라.”
“자신 있다는 거죠?”
“당연하지!”
“그럼 그렇게 매력적인 언니인데 왜 사장님이 비즈니스 파트너 이상으로 대하지 않을까요?”
한참이나 고민하다 이수련이 꺼낸 말은 궁색 그 자체였다.
“그, 그리 대하면 신시아가 샘이 낼 것 같아 낭군이 배려하는 것이니라.”
“에이, 누가 누굴 보고 샘을 낸대요. 좀 되긴 했어도 신시아 언니는 사장님이랑 단둘이 데이트도 했는데.”
말도 안 된다는 듯,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이수련에게 답하는 앨리스였다.
“그, 그것은······.”
혼란스러워하는 이수련에게 앨리스가 쐐기를 박았다.
“제가 누굴 편들고 그러는 건 아닌데, 이대로 가면 언니 꼼짝없이 신시아 언니랑 사장님 결혼하는 거 봐야 해요. 거기서 축의금 걷을 거예요? 아니면 부케 받을래요? 말만 하세요. 원하는 거 시켜 드릴게.”
“본좌를 두고 낭군이 그럴 리가······.”
끝으로 갈수록 점점 흐려지는 이수련의 말이었다.
“스탠스를 바꿔야 해요! 그 얌전한 신시아 언니도 밀어붙이는데. 언니도 좀 사장님의 응? 심장에? 응? 어필할 그런 스탠스로 가야 한다고······.”
앨리스가 열변을 토하던 그때, 간신히 나다의 미연시 토크와 위타천의 결혼 토크에서 벗어난 오메가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야! 앨리스! 너 사무실에 있었으면서 왜 계속 통신에 부재중이라고 뜨냐?”
“글쎄요. 기기 오류 아닐까요?”
“점검 좀 해봐. 그런 건 네 담당이잖아.”
“네에~.”
“그리고 이건 무슨······술 냄새?”
“수련 언니랑 잠깐······안돼! 언니!”
앨리스가 잠깐 눈을 돌린 사이, 이수련은 남아있던 소주 반병을 다 털어 넣고 있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오른 이수련이 오메가에게 쇄도했다.
“우윽!”
피할 새도 없이 오메가를 껴안은 이수련이 얼굴을 마구 부비며 술주정을 부렸다.
“낭구운! 본좌는 축의금을 받고 싶은 것이지 걷고 싶지 않으니라! 나앙구운! 부케도 던지고 싶지, 받지는 않을 것이니라! 나앙구운!”
“왜 이래요! 어후 술 냄새! 앨리스! 이수련 씨 술 많이 마셨어?”
“왜 본좌는 비즈니스 파트너로만 대한 것이냐아! 왜 그리 거리를 둔······설마······!”
잠시 부비는 걸 멈춘 이수련의 눈에 눈물이 방울졌다.
“설마 애초에 정자를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었느냐! 그래서 일찌감치! 어찌할꼬! 우리 낭군 불쌍해서 어찌할꼬!”
“미치겠네. 진짜로. 좀 떨어져 봐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리 낭군 양물陽物 확인해야겠다며 달라붙는 이수련과 그런 이수련에게 쩔쩔매는 오메가.
둘을 보며 앨리스가 중얼거렸다.
“어떻게 보면 평소보단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어필이라면 어필인가?”
“앨리스! 뭘 중얼거려! 와서 좀 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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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이수련은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낯선 곳. 하지만 베개와 이불은 물론이고 보이는 모든 것에서 오메가의 체취가 풍겼다.
숙취로 정신이 없음에도 이수련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낭군의 방······! 그렇다면······거사를 치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