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40화 (241/258)

240.

240.

네오-서울 시청을 빠져나온 직후, 나는 바이크를 사무실이 아닌 성북 에어리어의 야스민 저택으로 몰았다.

시청 주차장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파파라치들이 따라붙었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야스민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드론이 내 주위를 선회하자 파파라치들도 멀어졌다.

아마 찍는 걸 그만두지는 않았을 거다.

멀리 떨어져서 드론의 문장과 나를 한 프레임에 담으려고 애쓸 거다.

그리고 그걸 팔아먹을 테고, 나는 사진 한 장 올려놓고 보이스웨어가 지껄이는 싸구려 가짜 뉴스 동영상에 등장할 거다.

보이스웨어가 지껄이는 말도 예상할 수 있다.

[해결사 오메가, 역시 야스민 가문과 유착관계?]

3주간 오만가지 억측에 시달려온 터라 이 정도는 귀엽다.

나를 어디 다른 차원이나 이세계에서 전송된 존재로 상정하고 음모론 영상을 잔뜩 만들어둔 채널을 보라며 앨리스가 패드를 가지고 왔을 때, 겉으로는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음모론은 얼토당토않은 것들이었지만 전제가 상당히 정확했기 때문이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다더니······.

그렇지 않아도 그 채널의 댓글 창은 아주 개판이 되어 있었지만, 왕왕 채널의 주장이 그럴듯하다며 찬동하는 작자들도 있는 걸 보면 무슨 수를 쓰긴 써야 했다.

그런데 앨리스나 스냅샷에게 말해도 앵무새같이 ‘이번 사건의 여파가 너무 커서 컨트롤 하기가 힘들다.

한동안 조용히 계셔라.’라고만 할 뿐이었다.

분명 누군가에게 지령받은 눈치였다.

이들에게 지령을 내리거나 협조를 요청할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마 지금 향하는 저택의 주인일 터.

어째 나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걸 방조하는 걸 넘어서 확산을 유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도 봐.

드론이 내 모습을 가리지 않는 선에서 야스민 가문 문장을 보란 듯이 내보이고 있는 거.

나와 가문이 관계되어 있다고 아주 용을 쓰고 홍보하는 수준이었다.

드론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속도를 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성북 에어리어에 진입할 수 있었다.

공사장으로 위장한 저택 출입구로 향하는 길, 그리 멀지 않은 야스민 저택의 담벼락에서 폭죽 같은 것이 터져 나와 ‘야스민 저택’이라는 글자를 만들어냈다.

내가 고쳐준 폭죽 글자 생성기였다.

이미 성북 에어리어를 넘어 네오-서울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는데, 주말만 되면 전 세계의 마도공학 유물 매니아들이 저거 하나 보려고 인산인해를 이룬단다.

브리가드의 살아 움직이는 고래 기함에서 건져낸 유물들도 대부분 확보한 야스민 공이었기에 아예 마도공학 유물 전시관을 만들 계획도 있다는 걸 신시아에게 들은 적 있었다.

물론 그냥 덩그러니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내 전폭적인 협력과 지원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그걸 생각하니 저택으로 향하는 동안 어딘가 불편했던 마음 한구석이 조금 편해졌다.

‘야스민 공과의 관계에서 나는 절대 우위고, 슈퍼 하이퍼 울트라 갑이다.’

인간관계를 급으로 나누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지만 오늘 대면에서는 나와 야스민 공이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일이 분명히 있을 것 같기에 마음을 다잡았다.

#

바이크를 주차하자 아직 앳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오메가 삼촌!”

기다란 도포가 제법 어울리기 시작한 에브레였다.

에브레의 뒤에는 저택의 집사장인 레이먼드가 나를 향해 눈인사를 건넸다.

평소 같으면 신시아나 젠이 나를 맞이했겠지만, 지금 신시아는 미사일 기지조사 작업에, 젠은 아마도 아주 은밀하고 비밀리에 진행될 야스민 가문의 일에 투입되어 있는지라 저택의 집사장인 레이먼드와 에브레가 나를 맞았다.

신시아에게 알리지 말고 들러달라는 야스민 공의 전언이 있어 아예 신시아는 내가 여기 온 것도 모를 거다.

내 옆으로 붙은 에브레에게 말했다.

“야. 니네 아빠가 너 집에 좀 자주 오라더라.”

“자주 가는데요?”

“얼마나 자주?”

“음······일주일에 한 번?”

“그 정도면 자주 가네.”

“그죠? 아빠는 걱정이 너무 많아서 탈이라니까요.”

“스콰이어한테 그렇게 말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다.”

“아들이나 되니까 이렇게 말하죠.”

“도사 되라고 보내놨더니만 말솜씨만 좋아진 것 같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스승님이 서운해하실걸요. 보실래요?”

그리고는 과장된 몸짓으로 소매를 펄럭이며 손끝에 작은 번개를 불러내는 에브레였다.

“에브레군. 허용된 장소에서만 도술을 사용하라고 젠 님께서 말씀하신 걸로 압니다.”

레이먼드의 나지막하고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들리자 에브레는 얼른 번개를 흩어버렸다.

“그······렇죠.”

젠과 신시아도 저택 안에서는 레이먼드를 존중한다는데 에브레가 레이먼드를 거스를 수 있을 리 없다.

도술이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한 레이먼드가 몸을 절반 정도 비켜섰다.

“올라가시죠. 공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에브레군도 서재 앞까지는 동행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야스민 공의 서재로 향하는 길, 에브레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봤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왜 그러는 건데.”

“예전에 제가 삼촌에 대해 예지했던 거 기억하시죠.”

“그래. 벡 관련된 거였지. 아! 그거 알아? 벡이 벌써 뛰어다니는 거? 누구 닮았는지 넘어져도 안 울더라.”

“애들은 빨리 크네요.”

“벡은 그거보다 더 빨리 커. 리얼로.”

“하긴······아니, 이 얘기가 아니라. 그때 일이 다 마무리되고 제가 삼촌한테 그랬잖아요. 미래가 바뀐 것 같다고.”

“맞아. 그랬어.”

“이번에도 예지가 있었어요. 또 달라졌고요.”

“응? 왜 얘기 안 했어?”

내 물음에 대한 답은 레이먼드가 해주었다.

“공께서 에브레군에게 부탁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탁요?”

“이루어지지 않은 예지를 굳이 밖으로 알려 좋을 것 없다고, 오메가 씨를 직접 대면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하지 말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맞아요. 저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래도 알려드리려고 삼촌 사무실에 가려고 봤더니 거기 요새 엄청나던데요? 경비 인력 보내다가 렙틸리비아 텅텅 비겠다고 아빠가 그랬어요.”

“안 그래도 골치야. 돈 많고 내 필드에서는 이름 좀 있지만, 밖에서 누가 알아보지는 않는 삶을 꿈꿨는데 지금 와서는 다 글렀지 뭐냐.”

내 말을 듣고 킬킬거리는 에브레에게 말했다.

“근데, 내가 등장하는 예지고 심지어 바뀌기까지 했는데 야스민 공 부탁에 전하지도 않아? 벌써 권력자한테 붙는 거냐 에브레. 젠이 그렇게 가르치더냐. 서운하다, 서운해. 내가 렙틸리비아에서 뛰고 구르면서 스펙터를 잡지 않았더라면 너는 지금쯤······.”

“아이, 왜 그러세요. 저도 알려드리려고 노력했다니까요. 상황과 여건이 안 따라줬을 뿐이에요.”

“그래. 생명의 은인보다는 짱짱 쎈 흡혈귀 도사 스승님과 말 한마디면 네오-서울이 아주 들썩이는 그 스승님의 아버지가 더 중요하지.”

“삼촌! 아니라니까요!”

“안 되겠어. 젠 씨한테 말해서 애가 비뚤어지고 있는 것 같으니 일주일에 두 번은 집에 보내라고 해야겠어.”

“아! 그러지 마요! 가면 종일 아빠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요! 아빠는 아직도 나를 애 취급해요!”

실컷 에브레를 놀려 먹다 보니 어느새 길게 뻗은 복도와 그 끝에 있는 서재의 문이 보였다.

“어째 요새 이런 분위기를 자주 느끼는 것 같은데······.”

레이먼드가 내 혼잣말을 캐치했다.

“예?”

“아닙니다. 혼잣말이었습니다.”

원도 그렇고 야스민 공도 그렇고, 어째 이런 독대 자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

권력자들의 특징인가.

“가시기 전에 꼭 말씀해주세요. 제가 그동안 얼마나 배우고 성장했는지 수련장에서 보여 드릴 테니까요!”

힘차게 외치는 에브레와 그런 에브레의 뒤에 서 있는 레이먼드를 두고 서재로 걸어가 문을 두드렸다.

“오메가입니다.”

문이 스스로 스르륵 열리고, 그 틈으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

#

야스민 공은 내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원을 만난 일부터 물어보았고, 나는 있는 그대로 얘기해주었다.

“그랬더니, 시장이 뭐라던가?”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하더군요.”

“완곡하게라도 거절을 하지는 않고?”

“예.”

“능력 제한 법령 대상자가 되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쉽지 않을 텐데······.”

“어째서죠?”

“자네의 편의를 봐주면 기존의 법령 대상자들의 반발이 생길 거니까. 대상자들이 소수이긴 해도 하나하나가 최소 공공 집행자와 비견되는 실력과 무력을 지녔다고 평가되지 않나.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협력하는 초인의 수가 권역 영향력의 지표라고 보는 시선도 있는 판에 법령 대상자 대부분에게 반감을 심어줄 행보를 시장이 보인다? 현 시장을 쭉 보아온 나로서는 그 자리에서 자네의 요구를 왜 거절하지 않았나 의문이군.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지도 않고 순순히 알아보겠다고 한 걸 보면 뭔가 따로 품은 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천하의 야스민 공도 명쾌하게 딱 답을 내지 못하는 문제인 것 같았다.

어려운 요구인 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때려죽여도 그 망할 법령인지 뭔지에 발목이 묶일 생각은 없다.

그리고 애초에 백지수표를 제시한 건 원이니 내가 부담감이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단 자네 뜻이 그런 방향이라면 나도 최대한 알아보라고 하지. 자네는 내 대리인이기도 하니 말이야.”

“마도공학 분야로 한정입니다.”

“우리 사이에 뭘 그리 딱딱하게 구분 짓고 그러나.”

“계약서까지 쓴 사이인데 확실히 해야죠.”

나를 바라보는 야스민 공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서재는 아주 조용했다.

평소라면 수십은 족히 될 야스민 공의 분리된 자아들이 각기 할 일을 하느라 시끄러웠겠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지금 야스민 공은 장치에서 벗어나 본체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 역시, 오늘 이 거물 흡혈귀와의 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조 아닐까.

본 게임으로 넘어가기 전, 가지고 있던 의문 하나를 풀어 놓았다.

“장에 대한 것, 정말 모르셨습니까.”

야스민 공의 이글거리던 눈이 조금 잦아들었다.

그리고 팔짱을 낀 야스민 공이 답했다.

“현 시장의 아버지에게 사생아가 있었다. 이것이 내가 아는 전부일세. 이상은 사생활의 영역이야. 이렇다 할 업적이나 발자국을 남긴 시장도 아니었으니 더 살필 필요도 없었고.”

“모든 걸 알 수는 없으시다는 정도로 알아들으면 될까요.”

“딱 그 정도일세. 알려고 하면 알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나도 만능은 아닌지라 그런 세세한 일까지 파고들기는 쉬운 게 아니라네.”

‘혹시 모르지, 자아 공고화 장치가 20대 정도 있어서 훨씬 더 많은 내가 있으면 가능했었을지도?’라고 농담을 덧붙이는 야스민 공이었다.

야스민 공이 내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런 위험 요소를 이렇게 방치할 것 같지도 않았다.

누구보다 네오-서울에서 뽑아 먹을 게 많은 이가 야스민 공일 텐데 위험 요소를 제거하려고 애쓰면 애썼지 모른 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건 이쯤하고, 내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럼 혹시 앨리스나 루트 쪽에 따로 하신 말씀은 없으십니까.”

“그런 일 없······.”

야스민 공의 말을 끊었다.

“중요합니다. 공께서 지금 하시는 말씀에 따라 저희 신뢰 관계를 재고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헙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닫은 야스민 공이었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일, 있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자네가 알아야 하나?”

“저랑 관련된 게 아니라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관련됐다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통제 중인 자네 정보를 조금씩 흘리라고 했네. 우리 가문과 관련 있는 것 위주로······.”

“왜 그러셨습니까.”

“왜? 왜애?”

책상에서 벌떡 일어선 야스민 공이었다.

그리고는 반지를 벗어 책상 위에 링크하자 책상 전체가 거대한 패널로 변했다.

책상 위에 화면이 떠 오르는 동안, 야스민 공이 나를 향해 성토했다.

“자네도 참 너무허이. 어떻게 그간 한마디를 안 하나?”

로딩이 완료된 후, 책상으로 시선을 내린 나는 삽시간에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책상에는 사태가 마무리된 후 키스 중인 나와 신시아의 사진이 다양한 각도에서 찍혀 있었다.

‘각도랑 거리로 역산해서 자리에 있던 놈들 중 사진 찍은 놈들을······.’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야스민 공이 버럭 외쳤다.

“이런 사진이 온통 도배 되는데! 우리 딸이랑 잘 만나고 있다! 결혼할 생각도 있다! 왜 얘기 안 하냐고! 신시아가 뭐가, 어디가 부족해서!”

“······.”

머리가 새하얘진 사이, 야스민 공은 속사포도 부족할 속도로 말을 쏟아냈다.

“흡혈귀가 되지 않아도 좋아, 성도 안 붙여도 좋아, 일도 계속해도 돼, 집도 마련해 줘, 자네 그 아들도 흡혈귀로 만들어 우리가 지원해줘. 대체 뭐가 부족한 건가. 그거 때문에 그러나? 신시아 나이가 자네 10배는 될 거라는······.”

쾅-!

서재의 문이 벌컥 열리고 누군가 뛰어 들어왔다.

“아버지!”

신시아였다.

거의 동시에 귀걸이를 통해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이크 경로가 성북 에어리어 쪽이길래 신시아 언니한테 들은 거 있냐고 알렸어요. 괜찮죠?

괜찮기는······분명히 알고 이러는 걸 거다.

악마다······.

우리 사무실에 악마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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