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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헤지르 대주교의 소개로 원을 만나러 왔을 때처럼, 주차장에 바이크를 대고 안으로 들어가니 저번에 나를 마중하러 왔던 공무원 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뵙는군요.”
“옙.”
간단하게 던진 인사일 뿐인데 둘은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그때는 어디 구석에 처박힌 비밀 엘리베이터를 이용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네오-서울 시청의 웅장하고 거대한 로비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나를 향하는 이들의 시선과 수근거림이 느껴졌다.
[청력 강화]
“저 사람이 오메가야?”
“완전 멋있어.”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을 때부터 트라이포드를 추적해서 결국 궤멸했다는?”
“야스민 가문에서 눈독 들이고 있대.”
“눈독? 설마 신시아 야스민이랑 결혼을? 어머어머! 그럼 그 호텔 리셉션 홀 영상이 진짜였던 거네? 웬일이야.”
“그래! 심지어 자기들 성을 안 붙여도 좋다고 했다는데? 그 콧대 높은 야스민 가문이 이렇게 숙이고 들어가는 거 본 적 있어?”
“그것만 있겠어? 퓨전 코퍼레이션에서 앰배서더로 선정했잖아. 헌정 로봇도 곧 나올 거라고 하고.”
낯 간지러운 소리가 여럿이었다.
평화 공원 붕괴 이후 네오-서울 시청의 대대적인 홍보활동 덕에 내 대략적인 행보가 알려진 덕이었다.
트라이포드의 수장이었던 장의 죽음을 알려 그와 협력하던 다른 권역에 경고함과 동시에 WSS를 포위하고 있는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인과 네오-서울 시민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한 영웅 만들기라는 것이 뻔히 보일 정도로 일차원적인 수법이었다.
하지만 뻔한 방법이 계속 사용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
대단한 반향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일단 우리 사무실이 대림 에어리어 23구역의 명소가 되어버린 것부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내 얼굴 한번 보자고 그 많은 사람이 거리를 점거하고 있는 꼴이 어이가 없었다.
후앙, 정현, 자코가 그 사이를 누비면서 돗자리나 주전부리를 팔고 있는 꼬라지는 더더욱 어이가 없었고.
그래도 키클롭스 아재는 그놈들의 머리통을 때리고 어디론가 데려가긴 하더라.
어른이 괜히 어른이 아니다.
게다가 자제해도 모자랄 판에 나와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집단들은 죄다 내 이름을 한 번씩 들먹이고 다녔다.
야스민 가문과 퓨전 코퍼레이션은 분명 정보 제공자가 각각 신시아와 이수련이 분명한 내 이야기를 서로 경쟁하듯 언론에 흘렸고, 샌디 비치는 ‘오메가 같은 강함을 원한다면 딥스페이스로.’ 따위의 광고 문구를 썼다가 앨리스가 고소할 거라고 날뛴 후에야 내리는 촌극 아닌 촌극도 벌어졌다.
에어리어 의원인 에이들리도 분위기를 타고 싶었는지 나랑 관계가 얼마나 깊은지 강조하는 홍보용 기사를 냈다가 야스민 가문, 루트, 기계 교단에게 동시에 압박을 받았다.
평범한 이라면 절대 하지 못할 진귀한 경험일 것이다.
앨리스한테 연락해서 자기 좀 살려달라면서 아주 울고불고했단다.
그러게, 정치하는 양반이 낄 자리 안 낄 자리도 못 보고 다리를 펴나.
역량이 안 되면 패 내려놓고 판 돌아가는 거 구경이나 해야지.
앨리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말고 그냥 두라고 했다.
행정관 선거 들이박다가 기계 교단 지원받는 쪽이랑 상대가 안 돼서 에어리어 의원으로 선회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것도 얼마 못하고 쫓겨나는 꼴 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현장에 같이 있었던 호위대원들과 공공 집행자들이 조용하다는 점이었다.
우리 사무실로 들어오는 취재나 인터뷰 요청 중 태백 권역의 인연이 이어지고 있는 누스러스디를 제외한 다른 것들은 모두 앨리스 선에서 쳐내고 있는지라 그쪽으로도 아마 셀 수 없는 요청이 가고 있을 것이다.
공공 집행자들이야 네오-서울 내부와 외부를 가리지 않고 트라이포드 잔당 소탕에 힘을 쏟고 있기도 하고 원래부터가 인터뷰 따기 어렵기로 정평이 난 이들이기도 했다.
아, 한 명은 제외하고.
나다는 꼬박꼬박 오덕 계열 웹진에 외부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던가.
평소에 말끝에 붙이는 -능 없이 아주 정중하고 깔끔한 문체로 굉장한 통찰을 보여주는 양질의 칼럼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단다.
어쨌든, 공공 집행자들은 그렇다 치고, 호위대원들한테서 한 마디도 새어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해서 펠루다한테 물어봤더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대장 사무실에서 경력자 대상으로 인원 충원할 거라고, 알아서 평판 관리들 하라고 슬쩍 눈치 줬죠.”
혹시나 되지도 않는 소리 흘렸다가 걸러질까 봐 알아서들 조심하고 있다는 소리 같은데······경력자 충원이고 신규 공채고 할 생각이 없는데 어쩌나?
그런데 통신상으로 전해지는 펠루다의 목소리만 해도 아주 희망찬 파랑새의 꿈나라를 거닐고 있길래 그냥 얼버무리고 끊었다.
분명 나는 생각해본다고만 했으니까.
이런 일련의 상황을 두고 당황하지 않는 것은 앨리스뿐이었다.
어차피 대중의 관심은 끓는 냄비 같은 거라서 가만히 있으면 잠잠해질 거라나?
하지만 그 냄비가 조금 식어갈 즈음이면 새로운 장작이 어디선가 굴러들어와 화력을 돋우는 바람에 평화 공원 붕괴 이후에 거의 3주가 지났음에도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오늘만 해도 시청에 가기 위해 바이크를 끌고 나오니까 달라붙는 파파라치들이 어찌나 많은지.
어쩔 수 없이 간만에 속도를 좀 내야 했다.
절대로 내가 즐기려고 한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헬멧은 잘 쓰고 있었으니 딱지 몇 개가 사무실로 가도 앨리스가 이해해줄 것이라 믿는다.
물론 듣기 좋은 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해결사? 말이 좋아 해결사지 사실 흥신소잖아. 사설 집행자도 못 되는 어중이떠중이들이 거는 간판 아니야?”
“불안정한 직업이야. 우리처럼 일정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공무원이 결혼 상대로는 훨씬 낫다고.”
그런 소리가 들린 곳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거물들이 자기 편 하자고 어르고 달래는 사람인데 직업이 문제냐.’, ‘그래도 사업체 사장이고 대림 에어리어 22구역에 세 주는 건물도 있는 갓물주라는 소문도 있다.’ 하는 대체 어디서 들은 건지 모를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한 소문으로 반박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아주 호화롭게 장식된 엘리베이터 문 앞에 도착했다.
두 공무원이 각자의 공무원증을 인식기 위에 가져다 대자 소리 하나 없이 엘리베이터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안으로 발을 딛기 전, 둘 중 한 명이 내게 설명했다.
“귀빈 전용 엘리베이터입니다. 시장실이 있는 복도로 바로 연결됩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린 뒤, 나가서 왼쪽으로 돌아보시면 시장실이 있을 겁니다. 시장님은 안에 계십니다.”
“고맙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열릴 때처럼 소리 하나 없이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소음과 진동이 아니라면 멈춘 것이 아닐까 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이야······기가 막히네.”
스냅샷한테 물어봐서 우리 사무실 건물에 달 수 있다고 하면 달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그 비용은 루트에서 부담하는 쪽으로 해서.
시장의 서재로 연결되는 화물칸 엘리베이터가 상하전후좌우 아주 난리 부르스를 추던 것과 달리 귀빈용 엘리베이터는 위로 곧게 나아가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추었다.
문이 열리자 비서로 보이는 다른 공무원들이 나를 맞이했다.
“이쪽입니다.”
생각해보니 나를 맞이했던 공무원들도 그렇고 여기 공무원들도 그렇고 외적인 판단 기준으로 봤을 때 여성이 없다.
‘여성이 있을 법도 한데······일부러 배제한 건가?’
그러다 문득 원과 장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생각났다.
장의 어머니를 건드려 불행한 아이를 잉태하게 했었지.
어쩌면 원도 그런 걸 스스로 경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은 마지막까지도 원을 형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원은 내게 혈육을 죽이는 의뢰를 하며 괴로워했으니까.
시장실의 문이 열리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시장들의 서재가 어둡지만 푸근한 분위기였다면 시장실은 밝고 깔끔한 대신 어딘가 자세를 바로 해야 할 것 같은 정갈함이 느껴졌다.
그런 시장실의 한쪽 벽에 놓인 커다란 원목 책상 너머, 원이 앉아 있었다.
나를 기다리는 모양새라기보다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간신히 나를 만나기 위해 짬을 낸 것 같았다.
팔목까지 걷었다가 급히 내린 주름이 선명한 셔츠 팔 부분, 그리고 한쪽만 끼워진 커프 링크스, 살짝 헐겁게 조여진 넥타이, 어두운 서재에서 봤을 때보다 더 어둡게 보이는 원의 다크서클 등등이 내 추측에 힘을 더했다.
하긴, 트라이포드를 궤멸한 것은 맞지만 아직 여러 상황이 진행되고, 또 새롭게 발생하고 있으니 그 총책임자로서 얼마나 바쁘겠는가.
뭔가에 서명하고 있던 원이 펜을 내려놓고 일어나 나를 맞았다.
“아, 네오-서울의 영웅이 오셨군요.”
“영웅으로 만들려고 아주 애를 쓰시던데요. 제가 내는 세금이 그런 데 들어가는 줄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든 절세하려고 몸부림쳤을 겁니다.”
“탈세만 하지 말아주시죠. 사무실과 오메가 씨에게 쏠린 눈이 많으니만큼 서로 피곤해지지 않겠습니까.”
원이 고수는 고수다.
자기가 아니더라도 가십거리에 관심 있는 이들이 계속해서 내게 눈을 붙일 수 있게 만든 셈이었다.
흐음······이러면 의뢰 대가로 제시하려고 했던 게 처음부터 어그러지는 느낌인데······.
일 얘기로 틀었다.
“공공 집행본부 쪽에서 보고서가 올라왔는지 모르겠지만, 장은 죽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위타천도 그 부분에 대해서 약식 증언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들었습니다. 아직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요.”
평화 공원은 조사가 한창이다.
붕괴 위험 때문에 네오-서울 시청에서 엄선한 전문 인원만이 참여할 수 있는데, 미사일 탄두에 실려있던 온갖 물질 때문에 살아있는 인원이 내려가는 것은 힘들어 신시아의 기계화 좀비나 이수련의 원격 조종 로봇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들었다.
나를 응시하는 원을 향해 말을 이어나갔다.
“장을 죽여달라는 의뢰. 완료했습니다.”
“동의합니다. 기대 이상으로 잘 해주셨죠. 게다가 금방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가 애를 많이 쓰고 있긴 합니다만 네오-서울의 구심점 역할도 해주고 계시고요.”
“썩 반갑지는 않습니다만―.”
원을 보고 팔짱을 끼었다.
“대가 받을 때까지는 비위 맞춰야죠. 그게 계약관계고 갑을관계 아니겠습니까.”
“농담도. 을도 이런 슈퍼 을이 어디 있습니까. 적어도 저는 지금껏 본 적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듯 피식거리며 웃기까지 하는 원이었다.
그리고 원은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커프 링크스를 쥐고 아직 나풀거리던 한쪽 소매 구멍에 맞춰 끼웠다.
“네오-서울의 시장이라면 오메가 씨 같은 아웃라이어, 혹은 이레귤러들을 견제하고 제도권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게 응당 해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제 의뢰는 네오-서울의 시장이 아니라 아버지의 업보를 짊어진 아들이자 못난 동생을 둔 이복형인 제가 드린 것입니다. 저번에 제게 물어보셨죠? 이름처럼 둥글게 살아왔냐고?”
“둥글기만 했다면 시장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거라고 답하셨던가요.”
“그랬을 겁니다. 이 자리에서 한 번 더 그런 면을 드러내야 할 것 같군요. 원하는 걸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겠습니다.”
원이 장의 죽음을 의뢰하면서 내게 걸었던 대가는 ‘백지수표’.
그만큼 장이 이끄는 트라이포드가 네오-서울에 큰 위협이었으며 동시에 이런 대가를 제시할 정도로 원은 꼬여버린 인연을 풀고 싶어 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천천히 입술을 뗐다.
“해결사 일이란 게 말이죠. 참 거칠고 험합니다. 하나 정리하면 다른 게 툭 튀어나오고, 그거 치워 놓으면 또 예상도 못 했던 게 와르르 굴러들어요. 처음에는 이거 말고는 다른 길이 없어서 시작했습니다. 참 막막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거 아니고 다른 직업을 가진 제가 상상이 안 됩니다.”
원은 팔짱을 낀 채로, 손가락을 움직여 자신의 팔뚝을 톡톡 치며 내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래서 저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요새 아주 난리입니다. 정신이 없어요.”
“영웅 만들기를 그만두라는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정말 제가 원하는 게 그걸까요? 시장님?”
원이 내 눈을 피했다.
나는 그런 원을 응시하며 받길 원하는 대가를 말했다.
일종의 조건이기도 했다.
“관심은 언젠가 줄어들 겁니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요. 하지만 이번 일로 제게 한 가지 굴레가 씌워지겠죠. 관심 같은 것보다 훨씬 무거운 굴레가요.”
원이 내 입에서 나올 말을 짐작한 듯 한숨을 길게 끌었다.
“크흠······.”
“저는 능력 제한 법령에서 벗어날 길을 원합니다.”
묵직한 침묵, 원의 입이 열렸다.
“그것과 별개로 하나만 물어봅시다.”
“말씀하세요.”
“그게 해결되면, 근시일 내에 다른 일정은 있습니까?”
“글쎄요······. 제대로 쉰 것도 오래됐으니 휴가나 갔으면 합니다.”
“이런 판국에 휴가라니. 부러운 얘기군요.”
“대신 남들 쉴 때 굴렀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