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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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에 무엇이 실려있는지는 모르겠다.
방사능물질? 생화학테러에 사용되는 미생물?
이외에도 여러 가지 좋지 못한 것들이 떠올랐다.
하나같이 여생을 침대에 누워 숨만 헐떡이며 보내기 좋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검을 거두어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검날을 타고 오르던 불꽃과 얼음이 미사일의 잘린 단면을 훑어내리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이 융합마법이 얼마나 뜨겁고 얼마나 차가운지는 나도 맞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하지만 미사일 단면의 복잡한 회로와 장치들이 순식간에 녹고, 얼어서 부서지는 걸 보고 있으면 왠지 안심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끝내, 마침내, 드디어.
위로 솟구치던 미사일을 세로로 양단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비유는 이상하지만, 엄청나게 크고 기다란 소시지를 세운 뒤에 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소시지가 힘차게 위로 튀어나와 주는 덕분에 내가 할 일은 아래로 향한 칼날이 비틀어지지 않게 힘껏 힘을 주는 게 전부였다.
힘을 잃고 푸쉭거리는 소리만을 내는 미사일의 가장 아랫부분, 추진체가 내 앞을 지나갈 때, 나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미사일을 파괴했으면 그대로 힘을 잃고 아래로 떨어질 거라는 게 내 생각이었는데, 워낙 거대한 질량이 위로 밀려 나오던 터라 관성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미사일은 속도가 많이 줄었을망정 위로 올라오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손에 어마어마하게 길고 얇은 검을 든 채로, 나는 입에서 멍청한 신음을 냈다.
“어······.”
사출구에서 벗어나 솟아오른 미사일은 내가 양단한 탓에 절단면을 기준으로 좌우로 벌어지고 있었다. 안쪽은 녹고 얼어버리긴 했지만, 완전히 무력화했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이쪽 세상에 많이 적응했지만 그런 복잡한 걸 한 번에 보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적응하지는 못했다.
그런 날이 오지도 않을 것 같고.
그때, 무언가가 쇄도해서 벌어지는 미사일의 옆에 강하게 붙었다.
“일을 칠 거면 마무리까지 깔끔해야지 후배!”
“아예 수백 조각을 내버리면 안 되나?”
각자의 날개를 뻗은 위타천과 야타가라스였다.
둘이 버티고 있어서 양단된 미사일이 당장 좌우로 쓰러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었지만 힘의 균형이 매우 아슬아슬한 것은 사실이었다.
“둘 다 너무 힘주지 말라능! 내가 조절하겠음!”
수십 개의 거대한 손이 미사일의 둘레를 단단히 잡는 것이 보였다.
나다가 순식간에 만들어낸 장엄한 천수관음상이 뿜어내는 광채가 굉장했다.
천수관음상은 벌어지려는 미사일을 꼭 붙잡았다.
잘린 단면이 마찰하며 나는 소리가 거셌다.
“이, 이거 어떻게 하면 되냐능! 터질까 봐 무섭다능!”
“터질 거면 애진작에 터졌지! 괜찮으니까 조금만 더 들고 있어 봐!”
“위타천쿤은 본인이 직접 안 들어서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거라능!”
“나다! 사출구에 그대로 떨어트려라! 터져도 아래에서 터지게 만들어!”
“야타가라스쿤 말대로 하겠다능! 오메가쿤! 비키라능! 빨리! 빨리!”
천수관음상이 손을 뻗어 미사일을 사출구 위로 조준할 즈음, 통신 채널을 통해 마고의 말이 들렸다.
-미사일 기지 붕괴 73% 이상. 내부에 있던 미사일들도 연쇄 폭발 중. 여파로 지반 자체가 붕괴할 수 있어요. 위험하니 최대한 멀리 벗어나요. 당장.
채널을 통해 위타천이 마고에게 물었다.
-여기 상황을 보고 있나 모르겠는데, 이 미사일 여기 떨궈도 되나?
-넣었다가 다시 밀려 나올 수도 있어요.
-그럼 밀려 나오는 것보다 강하게 밀어 넣으면 된다는 소리 아닙니까?
마지막 목소리는 노덴스였다.
마고가 날카롭게 답했다.
-그 과정에서 폭발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어요!
-위에서 터지나 아래에서 터지나 위험한 건 똑같다면 시도는 해 봐야죠.
어느새 여기까지 접근한 노덴스가 가벼운 점프 몇 번으로 천수관음상의 어깨까지 올랐다.
거기에서 뛰어내리며, 노덴스는 부드럽게 몸을 틀었다.
낙하하는 노덴스 주변의 공기가 이지러졌다.
내력의 분출로 인한 현상.
노덴스가 몸을 비틀 때마다 그 정도가 더욱 강해졌으며, 마지막 자세는 깍지를 낀 양손을 머리 위로 치켜든 모습이었다.
-떨어지세요!
노덴스의 말과 거의 동시에 위타천과 야타가라스, 나다가 만들어낸 천수관음상은 미사일에서 멀어졌다.
나 역시도 그때는 사출구에서 멀어져 있었다.
눈물 콧물 다 질질 짜면서 도형을 만들어내는 클로카이의 뒤통수를 잡은 채로.
더 멀어져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호기심은 어쩔 수 없기에 달려가면서도 계속해서 뒤를 흘끔거렸다.
노덴스는 치켜올린 깍지를 그대로 내리찍었다.
그의 두터운 손이 미사일 탄두 끝에 스치듯 닿았다.
엄청났던 기세에 비하면 가볍다고도 할 수 있는 마무리.
하지만 이어지는 여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노덴스의 손과 탄두의 접촉점에서 수십 수백 회의 기파가 터져 나오더니 미사일 전체를 움켜쥐듯 휘감았다.
그리고 기파는 세로로 잘린 미사일을 그 형태 그대로 밀어붙였다.
마치 역재생을 시킨 것처럼 올라올 때와 반대로 빠르게 사출구 아래로 밀려 내려가는 미사일이 인상적이었다.
-위타천, 나다와 노덴스를. 나는 오메가를 맡지.
야타가라스의 음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위타천은 날개를 퍼덕이더니 이내 낙하 중인 노덴스를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워낙 커다란 덩치의 노덴스이기에 위타천의 비명 아닌 비명이 들렸다.
-뭘 먹길래 이렇게 무거운 거야!
나다는 특유의 통통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알아서 피하겠다능!
내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림자 날개를 활짝 펼친 야타가라스였다.
시커먼 그림자가 나를 향해 뻗어졌다.
검을 역전개하고 허리춤에 꽂은 뒤, 빈손으로 그림자를 마주 잡았다.
“감사히!”
일렁이는 그림자에서 야타가라스의 머리와 눈이 있음 직한 부분이 나와 내 손에 잡힌 클로카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쥐 수인은?”
“장에게 협력하던 아주 악질 범죄자.”
“심문할 녀석이 하나 늘었군.”
드물게도 즐거운 기색을 내비친 야타가라스가 내게 말했다.
“떠오를 테니 꽉 잡도록.”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야타가라스의 날개가 한층 더 길어지며 퍼덕이자 몸이 붕 떠올랐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거대한 진동이 아래에서 느껴지더니 땅이 부르르 떨리고, 꾸물거렸다.
앨리스와 마고의 목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렸다.
-연쇄 폭발이 시작됐어요!
클로카이가 버둥대며 외쳤다.
“으아아아! 더 높이! 더 높이 가라고오!”
발로 놈의 어깨를 걷어찼다.
“가만있어! 진짜 떨어트리는 수가 있어!”
“진짜 그러면 사람 새끼도 아닙니다! 짐승 언저리의 무언가라고! 하라는 거 다 했잖아요!”
“지금은 가만히 있으라고!”
지반을 구성하던 흙과 암석은 물론이고 미사일 기지의 일부였을 파이프, 철판, 수레 기타 등등이 마구 솟구쳤다.
화산 폭발에서 용암이나 마그마만 빼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저 옆에 노덴스와 나다를 옆구리에 낀 채로 있는 힘껏 날개를 퍼덕이는 위타천이 보였다.
-이런 젠장! 그냥 처음부터 나한테 잡혀서 갔으면 됐을 걸 왜 괜히 뛰어가서 두 번 움직이게 만드냔 말이다!
-위타천쿤이 힘들까 봐 그랬다능. 지금도 버거워 보이지 않냐능.
-이 정도로 무슨!
달려가던 나다도 낚아채진 모양.
위타천이 아등바등 날갯짓하는 반면 야타가라스는 움직임 자체가 훨씬 여유로웠다.
원래부터가 부엉이 수인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아래쪽에서는 폭발이 계속되고 있었고, 정체 모를 것들이 높이 떠올랐다가 아래로 힘없이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클로카이가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뭐가 날아와요! 이대로 있으면 맞아요! 제가 맞는다고요!”
야타가라스의 얼굴 부분이 다시 슬쩍 아래쪽을 보더니 중얼거렸다.
“말이 많은 녀석이군. 그런 녀석일수록 심문할 맛이 나지.”
그렇게 말하고 몸을 기울인 야타가라스 덕에 폭발에 휘말려 발사되듯 튀어 오르는 것들을 피할 수 있었다.
그것 중 하나가 딱 내 눈높이에 닿았다.
작은 표지판 일부분으로, 아마 미사일 기지가 있던 곳의 위에 세워져 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나도 모르게 표지판에 쓰여 있는 글귀를 읽었다.
[어서 오세요. 평화공원입니다.]
놀랍도록 지금 상황에 역설적인 문구라서 응답이 툭 튀어나왔다.
“예. 아주 기깔나게 평화롭네요.”
표지판은 잠시 멈추더니 빙글빙글 아래로 떨어졌다.
그걸 따라 시선을 내린 곳에 폭발에서 멀어지려 애쓰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야타가라스! 저기에 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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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서울 근처에서 이런 걸 볼 줄이야!”
오메가에게는 상투라고 불리는 도깨비, 빈이 머리 위로 날아드는 작은 돌멩이와 파편들을 쳐내며 외쳤다.
“상투! 소리 지를 기운 있으면 한 걸음이라도 더 움직여! 달려! 멀어져야 한다고!”
펠루다의 재촉에 빈은 도깨비불로 변해 휙 떠올랐다. 켄타우로스인 클라우스가 발을 구르며 빈을 향해 성질을 냈다.
“비겁하다! 우리는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비겁은 무슨! 도깨비로 안 태어난 걸 원망해.”
그때, 그들의 진행 방향으로 거대한 바위가 날아와 길을 막았다.
“내가 처리하지!”
순식간에 가속한 클라우스의 전면이 두껍고 날카로운 창의 형태로 변했다.
그대로 켄타우로스가 바위를 뚫기 직전―.
지이이잉-
이수련의 원격 조종 로봇들이 날아와 손에서 레이저를 뿜더니 바위를 그대로 녹여버렸다.
로봇들 사이에 둥둥 떠 있는 이수련이 고갯짓했다.
“어서들 가거라.”
마치 원래부터 이렇게 하려 했었다는 듯 클라우스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녹아내린 바위 사이를 통과하자 다른 이들도 빠르게 뒤를 따랐다.
간신히 속도를 줄일 무렵, 의료 인술을 익힌 닌자인 사루와타리 미츠아키가 일행의 상태를 파악했다.
“죽은 사람, 손? 없는 것 같고. 다친 사람은?”
클론들과 연이은 전투에 이어 기지 내부에서도 트라이포드의 잔당들과 사투를 벌여야 했던 터라 다들 여기저기 다친 곳이 많았다.
모두들 한층 긴장이 풀린 상태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무너지기 시작하는 지반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오크가 있었다.
한쪽 눈에 있는 동공 세 개가 인상적인 오크의 이름은 아지만. 오메가 때문에 다들 눈깔이라 부르는, 심지어 본인도 그 호칭에 익숙해진 탐색 특화 용병이었다.
그런 아지만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뛰어! 아직 멀었어! 뛰라고!”
작은 점 하나가 그들이 쉬고 있는 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시시각각 크기가 커지는 그것은 커다란 통제실의 벽면 일부를 이루고 있던 조각이었다.
말이 조각이지, 여기 모인 인원 중 가장 거대한 왕발조차도 날아오는 조각에 비하면 작은 원숭이 정도로 보일 지경이었다.
다들 멀어지려 애쓰며 소리를 꽥꽥 질렀다.
“왕발! 저거 쏴서 못 맞추냐?”
“우워어어어!”
“적토마! 나 좀 등에 싣고 달려!”
조각이 그들을 덮치기 직전,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펠루다가 본 것은 푸른 빛과 검은빛이 춤추듯 흔들렸다는 게 전부였다.
빛에 엉켜 든 통제실 벽면 조각은 거짓말처럼 힘을 잃고 수십 갈래로 쪼개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자욱한 먼지 너머로 양손에 검을 하나씩 든 실루엣이 보였다.
저 멀리 미사일 기지가 있던 곳이 대대적인 폭발을 일으켰다.
지축을 뒤흔드는 진동과 굉음, 지금까지는 전조에 불과했다는 듯 높이 치솟는 흙과 파편들.
밝았던 낮이 한순간 어두워졌다.
펠루다는 너머를 응시했다.
밤인지 낮인지 모를 어둑함 속, 눈에 들어오는 것은 광자 검날이 발하는 빛뿐.
그리고 빛의 주인공은 펠루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둠을 수놓는 별빛의 강건함처럼, 온몸 불태워 빛을 이끄는 태양의 숭고함처럼.
‘이게 정말 한 인간이 해낸 일인가. 그 어떤 시련과 고난이 무릎을 꺾고 숨통을 조일지언정 이 사람은 스러지지 않겠구나.’
마주한 인물에게서 느껴지는 거대한 아우라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펠루다였다.
만약, 아직 게임이었더라면 마침내 자욱한 먼지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이에게 새로운 스킬이 생겼으리라.
우연의 일치로 펠루다가 혹여 스킬 명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인간 찬가]······.”
가까이 다가온 오메가가 펠루다의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잘한 거지 인간이 잘한 게 아닌데? 인간 찬가가 아니라 오메가 찬가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