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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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나 심해로 향하는 길일 것만 같은 클로카이의 보랏빛 도형을 통과하자 우리가 있던 통제실보다 훨씬 천장이 높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문드문 위에서 내리쬐는 빛은 마치 동굴 내부에서 위로 뚫린 출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지만, 그 많은 빛줄기 아래에는 빠짐없이 다양한 크기의 미사일들이 곧게 세워져 있었다.
심지어는 공간이 부족했던지 마치 두더지게임처럼 아래를 파서 넣어놓은 것 같이 미사일의 전체 모습이 아니라 중간 부분이나 탄두부분만 보이는 것도 있었는데 그런 것들은 전체가 다 보이는 다른 것들에 비해 둘레가 훨씬 큰 것으로 보아 위력이 더 강한 것들이 아닌가 싶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미사일로 다가가 빛이 비치는 위쪽을 올려다보니 미사일 위쪽에 깔끔하게 만들어진 원통형 통로와 그 한참 너머에 있을 하늘이 보였다.
즉, 저 빛은 위쪽을 향해 뚫린 미사일 사출구를 통해 들어오는 것이었다.
내가 도형을 통해 넘어오기 전에 미리 와 있던 클로카이를 보고 말했다.
“아주 대단한 걸 만들어 놓으셨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밖으로 가시죠. 여기 있다가 하나라도 터지면 다 죽습니다.”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이 쥐새끼는 지 살 궁리만······.”
그때, 신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거 멈춰봐! 다른 미사일에 박는다!”
이수련의 높은 목소리도 함께였다.
“본좌도 노력 중이니라!”
쿠슈우우-
추진체에서 뭔가가 분사되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우리 쪽으로 순항미사일 하나가 낮게 날아오고 있었다.
미사일 곁에는 작은 박쥐로 변한 신시아와 로봇 헤드를 쓴 이수련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그걸 본 클로카이가 한쪽 발로 도망치며 빼액 소리쳤다.
“으아아아! 죽는다아!”
“어디 가!”
내가 클로카이의 뒷덜미를 잡는 사이, 위타천이 양손을 얼굴 앞으로 모아 교차하며 달려 나갔다.
그의 팔이 교차한 부분에서 영력이 뿜어지더니 사람 너덧은 충분히 가리고도 남을 커다란 원형 방패가 만들어졌다.
우릴 알아본 신시아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오메가 님? 위타천 님?”
그걸 들은 이수련이 미사일을 향해 있던 로봇 헤드를 번쩍 들어 우리와 눈을 맞췄다.
아마도 위타천이 만든 거대한 방패를 봤을 이수련이 크게 외쳤다.
“안 된다! 자그마한 충격에도 폭발할 수 있음이야!”
시시각각 미사일이 가까워졌다.
우리 뒤에는 미사일들이 발사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인 상황, 그냥 피해버릴 수도 없었다.
“너, 도망가면 뒤진다.”
어레스트를 채울 잠깐의 여유도 없어서 클로카이에게 윽박지른 뒤, 바로 위타천의 앞으로 뛰쳐나갔다.
“후배?”
슬쩍 위타천을 바라보고 말했다.
“힘 딸릴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그래 보이면 바로 달려와서 도와줘요.”
그리고 땅에 식물의 뿌리를 박는 느낌으로 하체에 단단히 힘을 주고 상체 역시 양손을 적당히 굽혀 앞으로 뻗은 뒤 긴장감을 유지했다.
레슬링이나 주짓수, 유도와 같은 투기 스포츠에서 상대방의 빈틈을 노려 낚아채는 것 같은 자세.
[역발산기개세]
몸의 모든 근섬유가 깨어나는 기분과 함께 힘이 끓어 넘쳤다. 그 기분을 만끽할 새도 없이, 미사일과 충돌했다.
팔목의 접촉점으로 미사일 탄두부분을 밀착하고 손으로 단단히 껴안은 채, 뒤로 밀려났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바닥이 뒤집히며 발뒤꿈치와 종아리에 상처를 남기는 느낌이 났다.
[태극권 - 욕타선나欲打先拏]
치고 싶으면 우선 잡으라는 스킬 설명처럼 잡는 것에 우선한 스킬.
그것도 태극권이라는 카운터 위주 기공의 하위 스킬이니 밀려드는 이 힘을 역이용할 수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스킬 개발자도 유저나 몬스터에게 쓰라고 만들었지, 상대가 순항미사일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속도가 조금 줄어든 것도 같지만 상정한 것보다 아마 훨씬 강력한 미사일의 추진력에 밀려나며 방향만이라도 틀기 위해 오른쪽 다리를 뒤로 쭉 뻗고 원을 그렸다.
콰드드득-
그렇지 않아도 붕괴 중인 것들로 엉망이었던 바닥에 쌓여있던 것들이 내 발끝이 그리는 호선을 따라 뒤로 흩뿌려졌다.
순간, 중심축이 되어야 할 왼발이 살짝 떴다.
‘미사일의 추진력을 이기지 못한 건가!’
이대로라면 내가 미사일에 딸려가 뒤쪽에 처박힐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연쇄 폭발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
식은땀 한 줄기가 이마에서 솟았다.
그때, 미사일의 속도와 추진력이 확 줄어들었다.
“집중하게. 할 수 있어.”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위타천이었다.
등 뒤에 신앙의 형상을 띄운 위타천이 양손을 뻗어 내가 옆구리에 끼다시피 한 미사일의 남은 탄두부분을 밀고 있었다.
뜨던 왼발이 다시 바닥에 밀착했다.
“잘했느니라! 잠깐만 그대로 있거라!”
날아온 이수련이 손을 들어 세우자 손날에서 법술의 징조가 튀어 오르더니 작두와 같은 블레이드 형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수련은 법술 블레이드로 미사일의 외부를 긁었다.
마치 칼로 잘리는 묵처럼, 미사일의 외장 일부가 깔끔하게 떨어져 나갔다.
이수련은 공중에 뜬 채로 몸을 뒤집어 꼬리 하나를 미사일 내부에 꽂았다.
꼬리에서 만들어진 스파크가 미사일 안쪽으로 스며드는 것과 거의 동시에 미사일 뒤에서 치솟던 불꽃이 사라졌다.
꿀꺽하고 침을 크게 넘긴 뒤, 물었다.
“된······건가요?”
“그래. 낭군이 온 덕에 살았느니라.”
내 뒤에 있던 위타천이 옆으로 고개를 쑥 내밀고 이수련에게 투덜거렸다.
“저도 있습니다만.”
“그래. 네 녀석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겠구나.”
곧이어 신시아가 데리고 온 기계화 좀비와 거신족 클론 좀비들이 내게서 정지한 미사일을 받아 조심스레 한쪽에 놓아두었다.
이수련과 위타천은 붕괴하는 기지 내부에 철골 구조물을 수십 개 만들어 당장 붕괴하는 걸 막고 있다는 여다함과 발렌시아를 데리러 날아갔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가 미사일을 막은 곳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어마어마한 탄두를 가진 미사일이 삐죽 나와 있었다.
‘이걸 못 막았더라면······.’
등골이 서늘해지고 소름이 쭈뼛 돋을 즈음, 신시아가 내 옆으로 붙었다.
“장에게 갔던 건 어떻게 됐나요?”
“장은 죽었어요. 저와 위타천의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사실이에요.”
“그럼 이걸 막을 방법은······.”
대화에 앨리스가 끼어들었다.
-아쉽지만 현재로서는 없어요. 아마 장이 살아있었다고 해도 멈출 수는 없었을 것 같아요. 한 번 발동되면 아예 멈출 수가 없게 설계되어 있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탈출했거나 탈출 직전이에요. 거기 계신 분들도 지금 나오셔야 해요. 자폭이 시작되면 평화 공원 전체가 날아갈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요. 네오-서울 WSS간 지하 고속도로도 대부분 파괴될 거라 통행금지도 걸렸고요. 폭발 이후에 거기서 어떤 일이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대마법 부대나 방사능 유출 대응 태스크포스팀도 즉시 대응 준비하고 있어요.
“알겠어. 나갈 수단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검지와 중지를 뻗어 V를 만들어 내 눈을 한 번 찍고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고 있는 클로카이를 향해 찍었다.
지켜보고 있다는 사인, 동시에 헛짓거리할 생각은 접으라는 사인이기도 했다.
클로카이가 쭈그러졌을 때, 반가운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사제!/ 오메가청년!”
날개를 펼친 위타천의 옆구리에 낀 여다함과 몸을 원래대로 돌릴 시간이 없었는지 이수련의 원격조종 로봇들에게 매달린 발렌시아였다.
그들이 옆으로 다가오자 신시아가 둘의 노고를 칭찬했다.
“수고하셨어요. 두 분 아니었다면 여기서 얼마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과찬입니다. 신시아님. 다만 이제 슬슬 한계입니다. 안쪽에서 계속해서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어요.”
숨을 헐떡이는 여다함에 이어 발렌시아도 인상을 찡그리고 덧붙였다.
“심지어 추진체를 무력화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체적으로 탄두나 몸체가 과열되거나 발화해서 터지는 것들도 있었다. 아주 악독해.”
말을 다 들은 내가 모두에게 되물었다.
“막을 방법은······없을까요?”
내 말에 잠자코 듣고 있던 클로카이가 버럭 외쳤다.
“나가야 한다고요! 전 여기서 안 죽을 겁니다! 준비할 겨를이 없어서 아주 멀리는 힘들겠지만, 폭발에 휘말리지 않을 곳 정도로 통로를 열 수는 있습니다! 제발 갑시다! 제발요!”
저기 어디서 폭발음과 더불어 끼이익하고 무언가 휘고 비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입을 연 것은 이수련이었다.
“쥐새끼의 말이 틀리지 않느니라.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느냐.”
내 어깨에 손을 얹은 위타천도 이수련과 같은 의견이었다.
“후배는 장의 계획을 완전히 어그러트리지 못해 아쉬운 거겠지? 하지만 이 정도가 어딘가. 장은 죽었고 원래라면 미사일 폭격을 맞아야 할 네오-서울을 지켜냈네. 돌아가기만 하면 끝나는 걸세. 자네가 원했던 트라이포드의 궤멸과 함께 말이야. 우린 임무를 완수했네. 이만 돌아가세.”
장의 계획을 완전히 어그러트리지 못해 아쉬움이 남냐는 위타천의 말이 가슴을 푹 찔렀다.
집착할 필요 없는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는 틀렸고, 나는 옳았어’ 하는 아집.
그 아집 때문에 비뚤어졌다고 장에게 설교해놓고, 나도 어느새 아집을 부리고 있었다.
사람이란 얼마나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생물인가.
나도 아직 멀었다.
덩그러니 남은 장의 팔목에 얼음 팔찌를 만든 지 얼마나 됐다고.
죽어서는 넓게 보고 평안해지라는 마음이었는데 내가 조급해하고 있다는 게 부끄러웠다.
기상 직후 찬물로 세수를 한 것처럼, 꿈틀대던 정신이 형언할 수 없는 막 하나를 뚫고 기지개를 켰다.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모두에게 말했다.
“나가죠. 쥐새끼, 통로 만들어.”
점점 더 붕괴가 가속하는 가운데, 클로카이가 예의 그 보랏빛 도형을 사람 하나가 지나갈 정도의 크기로 만들어냈다.
“기지의 출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연결됩니다.”
가장 먼저 위타천이 도형을 통과하고, 곧바로 이쪽으로 상체만을 내밀어 안전함을 알렸다.
“쥐새끼의 말이 맞네. 이상한 곳으로 뚫은 건 아닌 모양이야.”
“어느 정도로까지 협력해야 저를 신뢰하실 겁니까. 억울합니다.”
“나는 범죄자는 안 믿는 주의라.”
“그리고 쥐새끼가 뭡니까. 저도 클로카이라는 이름이······.”
말을 다 듣기 전 위타천은 도형 속으로 쏙 사라졌다.
이어서 여다함, 발렌시아, 신시아, 이수련까지 모두 도형을 통과했다.
남은 건 나와 클로카이 뿐. 이제 끝이다.
“어서 가시죠.”
도형 너머로 가려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천지가 뒤흔들리는 소리와 진동이 느껴졌다.
커다란 미사일 하나가 위로 솟고 있었다.
‘무력화하지 못 한 게 있었나!’
금방의 충격 때문에 흐려지는 도형에 마력을 넣고 있던 클로카이를 향해 외쳤다.
“목적지 바꿔! 여기 바로 위 지상으로!”
“예?”
“들은 거 다 알아! 빨리!”
쿠오오오-
거의 로켓이라 해도 믿을 것 같은 미사일이 사출구를 향해 오르는 것이 생생했다.
존속살해를 전개해 클로카이의 목에 겨누었다.
“빨리!”
녀석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입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씨! 이게 무슨 일이야! 여기만 나가면 앞으로 절대 나쁜 짓 안 하겠습니다! 염병!”
도형이 다시 선명해졌다.
“됐어?”
“됐습니다!”
클로카이의 머리통을 붙잡고 도형을 넘어섰다.
붕괴와 파괴의 소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나를 찾는 목소리가 여럿 울렸다.
-사장님? / -오메가 님? / -낭군?
발아래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점점 커지고 있었다.
클로카이를 집어던지고 진동의 근원, 아래에서 올라오는 미사일과 그 사출구가 있음 직한 방향으로 달렸다.
들이밀기 위해 전개해두었던 존속살해를 역전개하고 원래 내 검을 꺼내 두 번 비틀자 칼등과 푸른 검날이 거의 동시에 밀려 올라왔다.
[파천황]
검을 타고 오르는 푸른 불꽃과 붉은 얼음.
‘이걸로는 작다.’
[혈계조검술]
손목에서 피가 튀어 오르며 검을 향해 몰려갔다.
‘좀 더! 길게!’
칼등 끝에 닿은 피가 계속해서 길어졌고, 파천황으로 만들어낸 융합마법도 피를 감싸며 뻗어갔다.
사출구의 끄트머리에 도달해, 도신刀身만 3m는 족히 될 것 같은 불균형의 극치인 무기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작은 바람에도 휘청일 듯 아슬아슬했다.
[균형잡기]
그리고 올라오는 미사일을 향해―
[취중실천지]
위로 오르는 것과 아래로 내리는 것이 교차했다.
예리한 것이 뭉툭한 것을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