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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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기지 내부는 발을 딛고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 정도로 마구 흔들렸으며, 고막을 긁어내리는 사이렌 소리가 위기감을 더했다.
과열되어 펑펑 터지는 조명, 뭔지 알기도 힘든 연기와 액체를 뿜어대는 파이프만 봐도 보통 상황은 아니었다.
붕괴가 시작된 제어실의 한복판, 장의 목을 찢는 광소狂笑가 소음을 집어삼켰다.
“아버지! 보고 계십니까! 당신의 뒤틀린 욕망이 잉태한 생명이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어머니! 꿈 많던 소녀였던 당신이 그리던 네오-서울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제 방식으로 네오-서울을 다시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으윽―!”
위타천이 던진 영력의 창이 장의 어깨를 관통했다.
쓰러질 듯 비틀대던 장이 번들거리는 눈빛을 우리에게 향한 채로 포효했다.
“저는 이 더럽고 흉측한 도시를 다시 세우기 위해 터를 다지겠습니다. 티끌 하나 없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야 저와 같은 슬픔들이 더 나타나지 않을 것이기에!”
장은 이제 광기에 집어 삼켜진 모습이었다.
귀에서는 계속해서 앨리스, 신시아, 이수련의 목소리가 잠시도 쉬지 않고 울려 퍼졌다.
-전원 진입을 멈추고 밖으로 피신하세요! 미사일 기지에서 최대한 멀어지세요! 정지 불가능한 자폭 시스템 가동을 확인했습니다!
-아직 손 못 댄 미사일들이 있는데?
-이런 제기랄! 사출구가 열리지 않았는데도 발사되려는 미사일이 있구나! 내부에서 폭발시킬 셈인 게야! 여기서 연쇄 폭발이라도 일어났다가는 다 끝이니라!
-여다함 님! 발렌시아 님! 그만 나오세요! 신시아 언니랑 수련 언니도요! 어서!
-일단 최대한 되는 데까지는 미사일 못 쓰게 만들게!
-본좌도 신시아와 동감이니라!
대혼란이었다.
우리가 들어온 두터운 철문 너머로 뭔가가 펑펑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손에서 튀어 오르던 활 형상의 번개를 없앴다.
허리에 꽂힌 두 칼자루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앞으로 나섰다.
스스로에게 도취하여 아무런 말이나 지껄이던 장도 이런 내 행동을 예상하지는 못했던 것인지 생명을 끌어다 쓰는지 우렁차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새로운 네오-서울의 원년이 될 것이니······?”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위타천이 계속해서 눈으로 장이 있는 곳을 경계하며 내게 빠르게 말했다.
“후배. 더 이상의 접근은 위험하네. 우리도 빠져나가야 해.”
“제 몸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따라오진 마세요. 저 녀석이 그 쪽한테 품고 있는 악의와 증오가 보통이 아닌 것 같으니까. 되도록 출구를 확보해주셨으면 해요. 여기서 죽을 생각은 없으니까 마무리하고 나갈 길은 있어야죠.”
“괜찮······.”
아마 위타천은 괜찮겠냐고 물어보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곧 그는 괜찮겠냐는 말을 눌러 삼키고 다른 말을 꺼냈다.
“무사히 돌아오게.”
이런 세심하고 자상한 사람의 턱주가리 한 번 때려보겠다고 수도 없이 생각해온 내가 참 속 좁고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려는 찰나 위타천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늦으면 버리고 갈 거니까.”
나는 지극히 옳은 생각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왔구나.
당장이라도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됐고, 나가서 밖에 쥐새끼 있으면 그거나 챙기고 있으세요.”
어깨에서 영력의 날개를 뽑아낸 위타천이 날개를 펄럭거려 철문으로 향하는 걸 보고, 다시 장을 향해 걸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장의 몸 곳곳에 있는 상처가 눈에 들어올 때쯤, 장이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그의 표정 아래서 비명에 가까운 고함이 뿜어졌다.
“오지 마!”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뒷걸음질 치던 장의 뒤꿈치에 파손된 TV패널이 걸렸고, 그는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나를 향한 적의 가득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정도인가?”
멈춰선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기껏해야 장에게서 다섯 발자국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
엉덩방아를 찧은 자세로 굳어 있던 장이 입가에 실소를 흘렸다.
내 접근을 두려워하는 표정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나도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어찌보면 이런 상황에서도 발휘하는 장의 기지에 대한 찬사 격인 웃음이었다.
“허, 이런 때까지 페이크야? 어지간히 독하네.”
“한 걸음만 더 다가왔으면 저와 함께 여기 묻힐 수 있게 만들어줬을 건데, 아쉽군요.”
뇌전 화살을 쏘아 보내며 위력이 줄거나 방향이 미묘하게 휘어지는 곳을 관측해 추정한 장의 능력 범위 한계선이었다.
장을 내려다보았다.
주변으로 통제실의 벽과 천장 일부가 무너져 떨어지고 있었다.
얼굴을 일그러트린 장이 내게 버럭 외쳤다.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겁니까! 이런 내 모습이 우스운 겁니까!”
천천히 심호흡하고 깊은 곳에 있던 말을 뱉었다.
“장. 나는 너를 이 자리에서 죽일 거다.”
콰아앙-!
폭음이 가까워졌다.
“그 전에, 너와 대화하고 싶어졌어.”
“머리가 어떻게 된 겁니까? 자기를 죽이겠다고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멍청이가 어디 있습니까.”
“그럼. 이대로 끝나는 데 동의하는 걸로 알면 되나?”
장의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휘감겼다.
“네 과거나 성장 과정 따위를 물어보려는 게 아니야. 이 도시, 네오-서울이 네게 가지는 의미가 궁금하다.”
그는 나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묵직한 침묵 따위는 없었다.
지직거리고, 터지고, 흔들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으니까.
칼자루로 손을 가져갔다.
“시간 끄는 건 별로 추천하지 않아. 할 말 없으면 깔끔하게 여기서······.”
칼자루를 뽑아 완전히 전개하려는 찰나, 장의 입이 열렸다.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 나락에 던져진 악귀들조차 고개를 내저을 수라장.”
“······너는 그 악귀 중 하나였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들으라는 듯 냉정하게 쏘아붙였다.
“피해망상.”
그의 눈가가 떨린다.
계속 쏘아붙였다.
“현실도피, 비겁한 놈,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끌어들이는 속 검은 악질.”
“다, 당신이 뭘 안다고! 내 어머니는 네오-서울에 와서 끔찍한 경험을 하고 죽었습니다! 아들인 저는······.”
“어머니께서 네 귀에 대고 유언으로 속삭이셨나? 이 저주받을 도시를 불태우라고? 기억을 떠올리기도 끔찍한 이곳을 밀어버리라고?”
거친 말이 쏟아지던 장의 입술 위아래가 서로 붙었다.
“유력 정치가의 사생아. 심지어 나중이긴 하지만 본가로 거둬들이기까지 했지. 이런 배경을 두고 악귀? 배가 불렀군. 아주 처 불렀어.”
“아버지가 내게 남긴 것이라고는―!”
“설마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 화베이 지역의 유력인사들이 너와 접촉했다고 시인했어. 그 작자들은 네가 진짜 머리인 줄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만. 차명, 비밀 계좌들도 여럿 있다던데? 정말 이래도 남긴 게 없나?”
“그건 나와 어머니의 비참한 삶에 대한 보상일 뿐입니다!”
“비참? 네 아버지가 너희 모자를 네오-서울에 연금해둔 건 부인하지 않겠어. 하지만 둘이 살기에 적당한 금액을 지원해주지 않았나? 그 돈으로 넌 학업도 마쳤고. 아니야?”
부인하지는 못할 거다.
원에게 직접 들은 내용들이니까.
장이 이를 가는 부드득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그 정도를 비참이라고 하지는 않아. 오히려 평범하지. 내가 무슨 말 하고 싶은 줄 알겠어? 너는 그저 삐뚤어진 시선과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놈이라는 거야. 변화는 시도도 하지 않고 네 그 편협한 마음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모조리 때려 부수려는 미친놈일 뿐이라고. 남의 모래성을 부수는 네 살짜리 어린애랑 다를 게 뭐야.”
“당신은 모르기에 그렇게 쉽게 떠들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지지부진한 방식으로는 여길 바꿀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도 없고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지? 네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닌데?”
“······.”
내 목소리가 격해지기 시작했다.
“마탑들이 서로 노릴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마법사가 있었다. 그대로만 있어도 특권층이 되었겠지. 네가 그렇게나 싫어하는 네 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았다. 자신의 고향이 망가지는 것을 볼 수 없어서. 스승에게 비난받고, 세상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면서 그는 뜻이 통하는 친구들을 모아 미래를 가꿨다. 친구들 역시 각자의 앞에 깔린 길을 걸었으면 큰 어려움 없었겠지만, 마법사의 뜻에 감화되어 일부러 자갈과 가시가 깔린 길을 걸었지. 그런데 어떻게 된 줄 알아? 죽었어. 그의 재능을 노린 놈들 때문에. 죽어서도 친구들이 엇나가지 않을까, 이제 막 싹을 틔운 미래가 꺾이지 않을까 걱정했던 선한 마법사가 죽었다고.”
“그런 물러터진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나이누안은 너 때문에 죽었어! 너의 그 알량한 분노심 때문에! 네가 죽인 사람이 어디 나이누안 혼자일까? 그 자리에 있던 셀티스는 물론이고 그 이전과 이후로도 수도 없이 죽였겠지. 안 그래?”
“······.”
“가진 것으로 파괴를 획책하는 자와 가진 것을 내려놓음으로 구렁텅이에서 희망을 피워냈던 자. 걸음마다 피와 죽음을 흘리는 자와 손짓마다 꿈과 미래를 그려내는 자. 재밌어. 이렇게 정반대의 인간 군상이 모여 있는 네오-서울이라는 곳. 그리고 좆같아. 죽으면 안 될 사람들이 죽어야 할 놈 때문에 먼저 떠난다는 게.”
내 손목에 얼음 팔찌를 만들어냈다.
나이누안이 가르치던 아이들의 손목에 만들어 주곤 했던 것이었다.
처음 나이누안 덕에 빙결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내가 만든 팔찌는 어설프고 서툴렀지만 지금 내 손목에서 빛나는 얼음 팔찌는 매끄럽고 정교했다.
“네오-서울을 지옥으로 만든 건 네 아버지가 아니야. 네 마음이지. 너는 불붙은 수라의 마음을 옮겨 붙일 이유가 필요했던 게 전부라고.”
“종교인이 되기로 마음먹기라도 한 겁니까?”
“네게 네오-서울은 감옥이고 지옥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상상하는 일이 이뤄지고 수많은 가능성이 요동치는 멋진 곳이야. 아마 너는 내가 말하는 걸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겠지.”
씁쓸한 미소가 장의 입가에 떠올랐다.
“우리는 아마 계속해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고개를 든 장이 계속해서 무너지는 천장을 바라보며, 작게 그리고 천천히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쉽기도 하군요. 내가 힘들고 어려웠던 때, 오메가 당신 같은 사람이 곁에 한 명만 있어 줬더라면······.”
그대로 장이 눈을 감았다.
“이제 끝인가 봅니다. 계획이 이렇게 실패한 건 억울하지만, 당신이 했던 말을 되새겨 보겠습니다. 아마 이 뒤로 시간이 많을 것 같으니까요.”
콰직-
천장에서 떨어진 거대한 파이프 일부가 장의 몸을 짓뭉갰다.
피와 살점이 그 아래로 배어 나왔다.
장의 일부라고 생각되는 것은 팔 하나밖에 없었다.
뒤에서 위타천의 외침이 들렸다.
“후배! 가야 하네!”
옆으로 훌쩍 날아온 위타천이 장이었던 살점들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초라한 마지막이군.”
“누구나 마지막은 초라할 겁니다.”
어깨를 으쓱한 위타천이 출구로 향했다.
미동조차 없는 장의 팔에 시선을 집중했다.
“후배!”
얼음 팔찌가 장의 팔목에 생기는 것을 보고 나서야 몸을 뒤로 돌려 달렸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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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어디로 가자고요?”
어레스트를 해제한 덕에 말을 할 수 있게 된 클로카이의 첫 마디였다.
“미사일 있는 곳. 가본 곳일 거 아냐. 그럼 통로 만들 수 있지 않아?”
위타천이 눈을 반짝였고 클로카이는 그런 위타천의 눈치를 보며 내 입을 막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영업 비밀이라니까요. 그리고 기왕 갈 거면 여기로 떨어진 곳으로 가지 왜 미사일 발사하는 곳입니까. 눈 가려져 있느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대충 봐도 여기 붕괴하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 우리 팀이 있거든.”
“팀요?”
“그래. 그리고―”
계속해서 진동과 폭발음이 온 사방에서 들렸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잖아. 이 지랄 맞은 것도 해결할 수 있으면 해결해보려고.”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결사가 아니면 누가 해결해? 잔말 말고 길이나 만들어. 대가리 굴리면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