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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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네오-서울을 파괴하고 새로이 세워 올릴 결심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그는 네오-서울 시장이었던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인맥을 통해 북부 중화권 권역과 열도의 중소 권역 인사들, 그중에서도 네오-서울에 적대감을 가진 다양한 이들과 접촉했다.
신분을 철저히 감춘 채, 자신 역시 또 다른 ‘그분’의 의지를 받들어 행동하는 것처럼 위장했기에 접촉한 이들 중 장을 실제로 아는 이들도 장이 누군가의 심복인 줄로만 알았다.
네오-서울만 없어지면 자신들이 아시아의 패자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이들이 귀를 기울였다.
자신처럼 ‘그분’도 네오-서울의 고위층 출신이지만 더럽고 썩어빠진 네오-서울에 환멸을 느껴 재립再立을 계획하고 있다는 장의 거짓말에 환호하는 이들이 있었다.
‘늑대 우두머리는 무리에서 이탈하는 놈들을 가장 경계한다. 이탈자가 경험을 쌓고 돌아와 자신을 밀어낼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라는 근거도 불분명한 이야기까지 해가면서.
넉넉한 웃음을 짓고 상대의 배포에 감탄하는 말이 쏟아져 나왔지만, 속으로는 싸늘한 눈빛으로 서로서로 상대의 이용 가치를 계산 중인 복마전이었다.
처음에는 소극적이었던 이들도 장이 감질나게 풀어주는 정보와 내부 사정을 교차검증한 뒤 점점 장을 신뢰하게 되었다.
장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자신의 사후 장의 처지를 걱정한 원과 장의 아버지가 장 앞으로 남겨준 검은돈과 인맥, 그리고 네오-서울의 치안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공공 집행본부에서 장에게 주어진 권한을 활용할 수 있으면 오히려 쉬운 일에 속했다.
여러 권역 중 특히나 톈진 권역이 장의 계획에 적극적이었는데,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지원해 장의 구상에만 있던 트라이포드라는 조직을 현실화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조건 없는 호의는 없다고, 고도로 훈련된 스파이인 수연을 장에게 보내 연락책 겸 감시책으로 삼아 장의 독단적인 판단과 행동을 제어하려 했다.
정작 수연이 장에게 깊이 빠져들어 톈진 권역보다 장의 명령을 우선하게 된 것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이긴 했지만.
거신족 혼혈과 화염계, 빙결계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늑대인간을 확보하기 위한 계획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수연이 장에게 물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네오-서울을 왜 그렇게나 싫어하시는지 여쭈어도될까요.”
둘이 있던 곳은 네오-서울과 WSS의 경계에 있는 평화 공원 아래의 미사일 기지.
장은 답하지 않고 수연을 빤히 바라봤다.
장의 심기가 불편한 걸로 착각한 수연이 사과를 하려는 찰나, 장이 말했다.
“따라와.”
일정한 속도와 보폭으로 장은 미사일 기지 밖으로 나갔다.
밖은 완연한 밤이었지만 그렇다고 하늘에 별이나 달 따위가 보이지는 않았다.
오른편의 저 멀리 네오-서울에서 뻗는 야경의 빛이 하늘 끝까지 닿아서 그런 것인지, 왼편 가까이 WSS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하늘을 향해 뿜어대는 매연 때문인지 알기 힘들었다.
전쟁 후 수십 년이 지났지만, 고개를 돌리면 평화 공원에는 전쟁 당시의 참상이 세월을 맞아 조금씩 변화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잔뜩 녹이 슨 포탄 파편, 블래스터 탄환의 열 반응 때문에 기괴하게 녹아버린 건물 잔해, 어느 쪽의 것이었는지 알기 힘들 정도로 잘게 찢겨 펄럭이는 군복, 이제 거의 지워져 가는 구형 전차들의 무한궤도 흔적, 신형 전차들의 호버링 엔진 분사 흔적 등등
장은 그사이를 두 다리로 걸었고 수연은 뱀과 같은 하체를 이용해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걸음이 멈춘 곳은 포격을 하도 맞아 주변 다른 지형보다 10cm 이상 지대가 낮다는 평화 공원에서 그나마 높은 곳이었다.
기적적으로 포탄을 빗맞고, 하늘을 가르고 땅을 뒤집는 초인들의 전투에도 말려들지 않은 5층짜리 건물.
그나마도 붕괴 위험 때문에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이 몇 개나 붙어 있었다.
접근 금지를 위해 둘러놓은 테이프를 아무렇지 않게 가로지르는 장이었다.
“무너지지 않는다.”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계단을 오를 때, 자욱이 쌓인 먼지가 훅 밀려들 법도 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장이 공기 중의 수분을 조절해 먼지를 눌러 가라앉혔기 때문이었다.
수연이 그 모습을 놓칠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못 본 척했다.
톈진 권역에 알리지도 않았다.
동경하는 남자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품고 있는 것이 좋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장이 자신의 의지로 정체를 완벽하게 드러낸 상대는 수연밖에 없었다.
톈진 권역에서 파견된 스파이임에도 자신의 편이 되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일 수도, 목적과 사상을 공유하는 진짜 동료로 인정한 것일 수도 있었다.
수연은 묻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미묘한 거리로 장의 뒤에 서 있는 것이 지금의 자신에게 어울린다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 수연의 내면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은 그저 계단을 오르기만 했다.
전쟁과 세월을 겪어 잘 열리지 않는 옥상으로 향하는 문을 비틀어 열고, 장은 옥상의 난간으로 걸어갔다.
낡아빠진 난간 너머로 평화 공원이, 그리고 그 너머로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진 고층 건물들과 그곳에서 뿜어지는 빛.
그 빛에 실린 형용하기 어려운 에너지들.
네오-서울이었다.
한참이나 닿을 듯 닿지 않는 네오 서울의 밤을 말없이 응시하던 장의 입술이 떨어졌다.
“저걸 보면, 무슨 생각이 들지?”
철저하게 스파이로 키워진 수연이 즉각 대답했다.
“중화의 위기를 틈타 성장한 기회주의자들의 도시, 찰나의 번영을 누리는 하루살이, 욕망과 타락 위에 세워진 모래성.”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장이 말했다.
“그건 네 생각과 네 의견이 아니잖아. 나는 네 것이 듣고 싶다.”
수연이 읊은 것들은 교관들이 밖에 있던 것을 그녀에게 집어넣은 것이지, 그녀의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달싹거리는 수연의 입술.
하지만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네오-서울을 바라보고 있는 장이 중얼거렸다.
“시간은 금이라 했다. 우린 금을 흘리고 있구나. 하지만 네 것을 들을 수 있다면, 금도 아깝지는 않다.”
망설이던 수연이 입을 열었다.
그녀가 처음 네오-서울에 왔을 때, 지금처럼 늦은 밤이었다.
그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말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아름답습니다.”
툭 튀어나온 말.
장이 역정이라도 낼까 봐 수연이 설명을 덧붙이려 했으나 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수연이 미처 예상하기 힘든 종류였다.
“아름답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슬프도록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슬프다.”
그리고 제법 긴, 장의 얘기가 시작되었다.
“내 어머니는 네오-서울 출신이 아니다. 전장의 포성이 끊이지 않는 개경 권역에서 홀로 내려왔지. 네오-서울이 워낙 큰 권역이니 일자리도 많지 않겠냐는 단순한 생각이었다고 한다. 틀린 소리는 아니지. 양질이냐 저질이냐와는 별개로 일자리 자체는 그때나 지금이나 흘러넘치니까.”
장의 목소리는 밤바람을 타고 수연에게 전해졌다.
바람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담담한 장의 음성이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지 수연은 더욱 알아채기 힘들었다.
“그래도 대학을 마친 덕을 본 건지 시청의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 그게 어머니와 내 인생에서 다행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연고 하나 없는 여자가 가지기에 그리 나쁜 직업은 아니었지만, 당시 네오-서울 시장이었던 아버지의 눈에 어머니가 들어왔거든. 물론 아버지는 당시에 이미 기혼자셨고, 원이라고 하는 아들도 있었어. 놀랍지 않나? 처가의 조력이 없었다면 네오-서울 시장이 못 됐을 건데 그 자리에 오르니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게?”
킥킥거리는 장이었다.
즐거워서 흘리는 웃음이라기보다는 명백한 조소였다.
“아니지. 자기를 정치판의 말로 보는 부인과 처가에 대한 반항심일 수도 있었겠군. 그래봤자 물 밖에 나온 물고기가 아가미를 뻐끔거리며 지느러미를 퍼덕대는 꼴이었겠지만. 멍청하셨다. 다시 생각해도 멍청하셨어. 그리고 멍청한 사람들의 특징이 뭔 줄 아나? 그들은 겁이 많다. 어쩌면 선후가 바뀐 것일지도 모르겠군. 겁이 많아 멍청해지는 걸지도 몰라. 경직되고, 후회하기 마련이니까.”
수연은 자신을 향해 몸을 돌린 장을 눈에 담았다.
멀리서도 선명한 네오-서울이 뿜어내는 빛 때문에 장의 모습은 온통 음영져 있었다.
“나를 잉태한 뒤, 아버지는 어머니를 멀리하셨다. 아랫도리에 지배되던 뇌가 비로소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일을 그만두셨고, 간신히 죽지 않을 만큼 아버지가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하셨지. 무슨 일이든 하려고만 하면 아버지가 사람을 보내 막았다고 하더군. 우리의 존재가 어떻게든 노출되는 걸 원치 않았던 모양이야. 어머니와 나는 네오-서울을 벗어날 수 없었다. 우리가 노출되는 걸 원치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우리가 자신의 시선 밖으로 나가는 것도 싫어했거든.”
수연은 장의 눈을 마주했다.
단단한 보석 같은 장의 눈 아래, 증오와 비애가 흐르고 있었다.
“우리 모자에게 저 아름다운 도시는 슬픈 감옥이었다. 그 감옥 안에서, 어머니는 나를 통해 아버지를 그리워했고 나를 통해 아버지에게 분노했다. 네오-서울이라는 저 도시는 나 같은 슬픔들을 집어삼켜 아름다워진 곳이다.”
수연은 그의 여린 어깨를 감싸 안고 싶었으나 장이 품고 있는 증오의 뜨거움과 비애의 냉혹함을 감히 가늠할 수 없었기에 손을 뻗지 못했다.
“날로 쇠약해지던 어머니는 치료마저 거부하고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장례식장, 사진이나 동영상이 아닌 진짜 아버지를 처음으로 본 곳이었다. 아버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저 몇 있지도 않은 조문객들이 자신을 알아보지나 않을까 허둥거렸던 게 전부지. 이후 나는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버지의 본부인도, 내 형이라고 주장하는 인간을 만난 것도 그때였지.”
누군가 물어보게 되면 말해줄 생각으로 속으로 몇 번이나 다듬어왔던 장의 이야기.
하지만 그 누구도 묻지 않아 속으로만 삭였던 이야기였다.
“네오-서울을 싫어하는 이유를 물었지?”
“······.”
“어머니와 나의 꿈을, 삶을, 생을 앗아간 도시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아래 잠긴 슬픔의 수는 얼마나 되며 어디까지 깊을지 알 수조차 없다. 그리고 그 위에서 슬픔을 만들고 짓밟은 자들은 일말의 반성조차 하지 않고 살아간다. 나는 그 역겨움을 견딜 수 없다. 그 더럽고 냄새나는 것들을 벌하기 위해 지금껏 나는 살아왔다.”
장의 말이 이어졌다.
수연은 장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너무나 깊이 파고들었다. 도려내기 위해 환부를 쑤시고 있으면 어디까지 썩었는지 아는 것이 두려울 지경이다. 그렇기에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새로이 세워지는 것이다. 젊은 날의 내 어머니가 꿈꾸던 네오-서울을 만들어 보여드릴 수 있는 길은 그뿐이다.”
말을 마친 장은 올라왔을 때처럼 일정한 보폭으로 건물에서 내려갔다.
수연은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그녀가 보일 수 있는 최대의 경외와 존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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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발치는 뇌전 화살과 영력의 창이 잠시 그쳤을 무렵, 제어실은 난장판이었다.
TV패널은 죄다 떨어져 바닥을 구르고 있었으며, 그나마 벽과 천장에 붙어 있는 것들도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제어실의 한복판,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몸 이곳저곳에 타거나 관통 흔적이 있는 장이었다.
덜덜 떨리는 다리로 비틀거리며, 장이 말했다.
아직도 경계하며 가까이 접근하지 않으려는 오메가를 향해서였다.
“오메가. 왜 이렇게까지 네오-서울을 지키려는 겁니까.”
“앞뒤가 바뀌었어. 네오-서울을 지키려고 하는 게 아니야. 너를 치우려다 보니까 네오-서울을 챙기게 된 거지.”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에게 네오-서울은 무엇입니까.”
대충 답하고 마무리하려던 오메가는 장의 시선과 마주했다.
장의 눈에서는 간절함과 절실함, 무엇보다 순수한 호기심이 배어 나왔다.
침을 꿀꺽 삼킨 오메가의 대답은―.
“삶을 주고, 꿈을 꾸게 해준 곳.”
갑자기 남의 몸에 들어온 오메가에게 네오-서울은 그런 곳이었다.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주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꿈을 실현해준 곳.
한편, 장은 놀랐다.
자신과 어머니가 잃어야만 했던 것들을 오메가는 네오-서울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받았다니.
씁쓸하게 장이 웃으며 읊조렸다.
“생을 뺏을 수는 있겠군요.”
장이 자신 주변의 수분을 끌어모았다.
순식간에 물방울이 응결하는 것을 넘어 장의 주위에 구형으로 막이 쳐질 정도였다.
오메가와 위타천이 계속해서 공격했으나 물로 이루어진 막을 통과한 투사체들의 힘이 급격하게 약해졌다.
그러더니―
푸확-
장의 주변에 잔뜩 모였던 물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바로 몸을 피한 덕에 오메가와 위타천의 몸에는 물이 한 방울도 묻지 않았지만, 장에게서 더 멀어지게 되었다.
장의 주위에 흩어진 물들이 바르르 떨며 바닥에 파인 홈과 회로를 타고 내달렸다.
그리고 물들이 바닥 아래로 흡수되듯 사라졌다.
다시 장이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전부는 몰라도 일부는 날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뇌전궁을 만들어 시위를 당기는 오메가의 귀에 앨리스의 급박한 목소리가 쑤셔박혔다.
-자폭 시스템? 이런 건 못 찾았는데? 왜 갑자기? 이건 또 뭐야. 정지 불가?
1초 뒤.
-거기서 다 나와요! 빨리! 나오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