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32화 (233/258)

232.

232.

[반향정위] 음파를 퍼트리고, 반사되어 돌아오는 것으로 반사 대상과의 거리를 측정하거나 형체를 구분하는 스킬.

서리얼 유저들에게 물어보면 유용해 보인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래서 익힐 겁니까?’하고 물어보면 열에 하나 정도만 긍정적인 의견을 냈을 스킬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게임 내 종족 보정 값을 받는다고 해도 결국 실제 플레이하는 유저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감각 수용체 중 시각에 70% 이상을 의존한다고 한다.

아무리 게임 속의 세상이 현실과 다르다지만 감각에 관련된 스킬의 습득에 한해서는 지극히 보수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분석 기사도 있을 정도이니 청각에 의존하는 [반향정위]를 익히는 유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적외선 시야], [투시안] 등등 제약이 걸리기는 해도 충분히 좋은 스킬들을 익숙한 시각을 통해 받아들일 수 있으니 반향정위가 좋은 걸 알지만 굳이 배워두려고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킬을 자주 사용하고, 다양한 방면으로 사용해야 숙련도가 오르는 시스템도 [반향정위] 기피에 한몫했다.

일정 숙련도가 되기 전까지는 눈을 감고 소리만 듣거나 여러 소음 중 특정한 소리에 집중하는 식으로 숙련도를 올려야 했는데 이런 불편하고 심지어는 불쾌하기까지 한 방법으로 게임을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

그래서 익혔다.

반골 기질 때문일 수도 있고, 하지 말라면 더 하고야 마는 청개구리 기질 때문일 수도 있다.

마이너 스킬이라 익힌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는 [반향정위]의 가능성을 보았다.

감각 대부분을 시각에 의존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감각은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보이는 것에는 그렇게나 신경을 쓰면서 정작 자신이 내는 소리가 포착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작은 빈틈을 파고들어 약점을 잡아낼 수 있다면, [반향정위]가 가지는 가치는 충분하다.

#

장의 준비는 분명 치밀했다.

오른팔처럼 부린 클로카이마저 속이면서 혼자만 드나드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거대한 철문과 수많은 잠금장치로 거짓 믿음을 만들어냈다.

이 문 너머가 통제실이구나, 여기만 넘어서면 장이 있다고 하는 믿음이었다.

그 뒤에 있던 것은 무엇이었나.

미디어아트라도 되는 듯 사방천지 가득한 TV패널, 그 안에 비친 나와 위타천이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역경과 고난에 마주한다.

하지만 그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마주하는 일은 흔치 않은 경험일 것이다.

특히나 그 역경과 고난의 끝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더더욱.

절벽에 핀 꽃에 닿기 직전인 손끝, 보석을 얻기 위해 깬 99만 9천 9백 99개의 돌, 언덕 아래로 보이는 사막의 오아시스.

그리고 끝은 멀어진다.

헛된 손짓이 일으킨 바람에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꽃.

마침내 100만 개째의 돌을 깼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보석.

허겁지겁 달려갔으나 느껴지는 것은 서럽게도 서걱거리는 모래와 말라붙어 안쪽으로 곱아든 혀.

그 허무함과 야속함, 밀려오는 분노 속에서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스스로의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너무도 괴롭다.

아리고, 아프고, 쓰라리다.

철저하게 준비된 이 흉악한 쇼에서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실에 매달려 힘없이 흔들리는 마리오네트가 되어 마음대로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신세.

주최자의 흥겨운 목소리가 둥근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위타천 님, 사과하겠습니다. 잠을 자고 나면 더 좋은 세상이 펼쳐질 거라고 했는데, 아쉽게도 아직입니다. 하지만 너무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대로 시작이니까요.

내 말을 듣고 발에서 뿌리가 돋은 듯이 서 있던 위타천이 다시 한번 영력의 창을 휘두르자 또다시 패널이 우수수 터져나갔다.

분노 때문에 얼굴이 울그락푸르락하는 위타천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장이 이곳에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더 많은 소음은 탐색에 방해였다.

[반향정위]

사지를 늘어트린 마리오네트의 저항이다.

신발 끝을 세워 바닥을 톡톡 치며 소리를 퍼트렸다.

여기 어딘가에서 타인의 절망을 즐기고 있을 악의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사실 이건 네오-서울을 위해 준비한 건 아니랍니다. 오히려 새로이 태어날 네오-서울을 지키기 위해 미리 안배해둔 것이죠. 그렇게 생각하니 참 재미있죠? 종합운동장으로의 침공이 잘 이루어지고 클론들이 난입하는 데 성공했다면 이런 게 네오-서울 위로 쏟아질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에요. 네오-서울을 지키려는 당신들의 노력이 오히려 더 확실하게 네오-서울을 파멸로 몰아간 셈이에요. 모순적이지 않나요? 모순의 도시. 네오-서울

흥분이 섞여 있던 장의 목소리가 한순간,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부디 새로 태어나며 그런 모순은 모두 털어내길.

장의 과거, 품고 있는 사상, 그의 아래 모인 세력, 그에게 지원을 약속한 권역 등등에 대한 궁금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으나 힘껏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지금 상황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것은 저것들이 아니었다.

오로지 발끝에서 번지고 다시 귀로 되돌아오는 소리에만 집중했다.

장의 목소리는 여러 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오고 있었지만 자세히, 아주 자세히 들어보면 약간의 위화감이 있었다.

스피커에서 전해지는 목소리가 아니라 육성이 새어 나오는 곳이 분명 있었다.

아주 작은 틈새를 통해 전해지는 것인지 다른 소음에 섞여 발원지를 찾기 몹시 힘들었다.

하지만 아예 없다면 모를까, 여기까지 와서 놓칠 수는 없었다.

아마 장 본인도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알아차렸다면 자기를 잡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둥, 안부 전할 시간도 부족할 텐데 여기서 이럴 시간이 있느냐는 둥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여대지는 않았을 테니까.

소리가 사방팔방으로 반사되는 이 계란 모양의 공간 안에서 장의 진짜 목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주 작은 틈새를 찾기 위해 애썼다.

장이 허탈해하는 나와 위타천을 보고 즐거워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뛰노는 양 신나게 떠드는 장에게 절망을 선사해주고 싶었다.

-앞으로 3분이면 잿더미가 된 네오-서울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재창조를 위한 파괴니까 모두 기쁜 마음으로 즐겨주시―

“찾았다.”

장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몇 초 동안의 침묵, 그리고 다시 떠들어대는 장.

-감당하지 못할 현실에 정신을 놓아버린 건 아니겠죠?

대꾸하지 않고 몸을 돌려 뒤로 걸어 나갔다.

고작 몇 걸음을 걷는 동안, 장에 대해 생각했다.

팔뚝 뒤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철저함, 치밀함이 가히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군마저 속여가며 자신이 있는 곳을 숨긴 것?

그럴 수 있다.

절망 앞에 있는 이들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

백 번 정도 양보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 장소에 숨어있으며, 그 위치가 심지어 이런 곳이라니.

네오-서울이라는 초거대 권역을 흔들기 위해서는 이런 대담함마저 가져야 하는 건가.

외부에서 철문을 넘어 이곳으로 진입하면 바로 보이는 곳에 섰다.

검을 전개한 채로 발을 뒤로 들어 바닥을 톡톡 쳤다.

반사되어 위로 울려야 할 음파는 바닥의 미세한 틈을 통해 회절되어 뻗어갔다.

아마도 환기구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 같은 작은 관을 통과한 음파가 아래 위치한 공간을 휩쓸고 다시 올라와 내게 닿았다.

장이 숨어있는 곳은 철문에서 한 걸음도 안 떨어진 곳의 아래였다.

교묘히 설계된 이중 함정이었던 것.

아마 조금 전의 위타천처럼 분노에 못 이겨서 다른 곳으로 뛰쳐나갔다면 절대 찾을 수 없었겠지.

위타천이 그랬지.

장은 자기가 기른 것과 다름없다고.

내가 보기에 적어도 사람의 심리를 다루는 면에 있어서는 장이 한참이나 위타천의 위에 있는 것 같았다.

끝이 아래로 가게 돌려서 양손으로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 검을 푹 찔러넣었다.

제법 거리가 있는 것으로 감지했지만 일단 외장재를 뜯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둥그렇게 도려내고 있으니 위타천이 후다닥 달려와서 잘린 외장재 조각을 저 아래로 던져버렸다.

조그마한 관에서 공기가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에 장이?”

가득했던 분노는 어디 갔는지 위타천의 눈이 반짝였다.

입맛까지 다시는 걸로 봐서 역시 이 아저씨도 정상은 아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 없이요.”

“비켜 있게.”

위타천이 들고 있던 창이 그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다시 그의 등에서 영력의 형상이 피어올랐다.

그리고는 다시 굴착 모드로 들어가 바닥을 마구 파내 버리는 위타천이었다.

모종의 불미스러운 일로 공공 집행자에서 잘린다고 해도 이 실력만 있으면 해체, 수거 노가다 판에서 당당히 에이스 자리를 꿰찰 수 있지 않을까.

순식간에 아래로 파 내려가던 위타천이 멈췄다.

고개를 들이밀고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위타천은 온갖 장비가 그득한 작은 공간에 있었다.

공간은 온통 CCTV화면으로 둘려 있었다.

아마도 진짜 통제실일 터.

몇 사람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로 작은 공간에 장은 없었다.

조금 전까지 머무른 것 같은 흔적만이 덩그러니 흩어져 있을 뿐.

“장! 다 끝났다! 나와!”

부르짖던 위타천이 뭔가를 집더니 나를 향해 던져 올렸다.

“이게 뭔······.”

받아보니 미사일 수십 개의 발사 진척 현황이 떠 있는 패드였다.

[100% 발사 준비 완료]

[100% 발사 준비 완료]

[100% 발사 준비 완료]

.

.

.

여기 있는 미사일이 20개는 될 거라는 클로카이의 말은 틀렸다.

50개도 넘어 보였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바로 귀걸이를 이용해 사진을 찍어 앨리스에게 전송했다.

“이거 엄청 큰일인 거죠?”

나도 바보가 아니기에 그 정도 상황 파악은 할 줄 안다.

그렇지만, 아니다 생각한 것보다는 최악이 아니라는 말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위타천의 말은 나의 기대가 부질없음을 확인해주었다.

“탄도 미사일은 궤도에 오르기 전에 미사일 방어 체계로 요격할 시도라도 하겠지만 이 거리에서 저고도 순항미사일이 발사되면 가장 가까이 있는 대림, 관악, 한강 너머 용산, 마포 에어리어까지는 초토화될 걸세. 탄도 미사일 요격에 성공한다고 해도 탄두에 실린 것들이 네오-서울에 떨어지지 않는 보장도 없고.”

계속해서 [반향정위]를 사용했다.

벽면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가까워지나 싶더니,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이 아닌 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용병이셨던 때가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정확히 파악하셨군요.”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고개를 들자 TV패널이 사라진 벽에서 걸어 나오는 장이 보였다.

검을 겨누는 것과 거의 동시에 위타천이 뛰어올라 내 곁에 섰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장을 향해 쇄도했다.

검을 휘두르기 직전 눈에 들어온 것은 장의 뒤로 길게 이어진 전선과 케이블, 그리고 그것들이 향하고 있는 작은 버튼.

버튼은 장의 손에 들려 있었다.

찰칵-

장의 손가락이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아주 작고 선명하게 들렸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진동이 온 공간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장은 소름 끼칠만큼 환하고 밝은 웃음을 만면에 그려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 같은 그 웃음.

하지만 나는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리오네트 역할로 농락당하다 끝나는 건 용납할 수 없기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