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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30화 (231/258)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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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믹서기가 된 오메가가 빙글빙글 돌며 통제실로 접근하려는 놈들의 뼈와 살을 분리해버리고 있을 무렵, 네오-서울 시청이 있는 광화문 에어리어에서는 때아닌 의전이 한창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대대적인 행사가 되었을 계룡 권역 위문단과 태백 권역 사절단의 방문이었는데, 수도방위사령부 기계화사단이 WSS 경계를 넘어서 진군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 의전의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다.

하지만 군인의 피가 시민의 감정에 닿을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 법인지라 네오-서울 시민 중 통제된 도로 곁에 모여드는 이들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태백 권역에서 산신으로까지 여겨진다는 전설적인 사냥꾼, 잉그리드의 방문이 매우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일도 드물다는데 사절단을 이끌고 네오-서울까지 행차한 이유에 대해 각자 추측과 망상의 주머니를 부풀리며 수군거렸다.

“태백 권역에서 이때다 싶어서 네오-서울에 빌붙으려는 거지 뭐. 태백 권역은 우리에 비하면 깡촌 정도니까.”

“영구동토층 아래 자원이 상당하다는데?”

“그거 다 투자 유치하려는 언론 플레이인 거 몰라? 자원이 있었으면 다국적 기업들이 진작 들러붙었겠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는 거 아니야? 그 영구동토층 위에······그 뭐라더라? 자유민? 여튼 그 작자들이 깔고 앉아 있는 바람에 조사도 제대로 못 했다잖아. 탈모 치료제 원료가 거기서 온다는데 그것만 봐도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 같지 않아?”

“아니면 한반도 중남부 권역끼리 연대할 셈인지도 모르지. WSS도 북부 중화권 권역이랑 짝짜꿍하는데, 우리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할 수도 있다고 쳐. 그럼 태백 권역 수장이 아니라 산신이 내려온 이유는 뭔데. 정치랑은 일절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 중 공공 집행본부 유치장에 구겨져 있었던 웨리바흐에 대해 아는 자는 거의 없었다.

웨리바흐가 잉그리드의 손자라는 걸 알게 된 이후 네오-서울 시청에서 극한의 정보 통제를 시행했기 때문인데, 사보타주 임무에서 복귀한 나다는 그딴 건 자기가 알 바가 아니라며 웨리바흐를 봉으로 때리고, 금고아 조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미사일 기지 침투 임무를 받고 그쪽으로 나가기 직전까지도······.

게다가 이번 방문은 태백 권역의 잉그리드뿐만 아니라 계룡 권역에 터를 잡은 프로이데 마탑주, 셀린느도 있으니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프로이데 마탑은 자연주의 연합과 함께 사실상의 계룡 권역 쌍두마차로 평가받는 만큼 마탑주인 셀린느는 오히려 정치적인 영향력에서는 잉그리드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 막 동대문 에어리어 종합운동장의 복구가 끝을 보이고 있으니 그 자리에서 보여주었던 프로이데 마법사들의 활약이 아직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기도 했다.

기자들과 시사 인플루언서들은 잉그리드와 셀린느가 탄 차량을 찍어대며 각자 기사, 포스팅, 영상을 제작해 올리기 바빴다.

그런 일련의 저작물의 마지막에는 꼭 이런 문장들이 따라붙었다.

-계룡 권역의 위문단과 태백 권역의 사절단은 사실상 파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잉그리드와 셀린느는 네오-서울 내부로 들어와 시장과 만날 예정이지만 이들이 데리고 있는 병력은 지금 어디 있으며 과연 어디에 투입될 것인가. 그 귀추에 따라 이들이 진정한 친우일지, 기회를 노리는 여우일지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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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신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네오-서울은 절대 이 일을 가벼이 여기지 않을 것임을 약속합니다.”

네오-서울의 시장 원이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회담이 끝났음을 넌지시 알렸다.

자리에 앉아 있는 세 명의 인원 중 가장 먼저 일어선 것은 셀린느였다.

결례를 보이지 않기 위해, 원과 잉그리드 역시 일어섰다.

눈이 마주친 원에게, 셀린느가 뭘 물어보고 싶어 하는지 안다는 듯 말했다.

“고생한 제자들을 좀 보러 갈까 합니다. 페룬의 벽창호와도 할 얘기도 있고요. 먼저 일어나도 되겠죠?”

잉그리드의 탁한 동공이 정확히 셀린느가 있는 방향을 향했다.

“만날 수 있어 영광이었소.”

“저야말로요. 화북에서 들려오는 낭보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바다 건너 천진 쪽으로 귀를 열어놓고 있겠소. 프로이데의 마법사들의 훌륭하다는 건 몇 번이나 바람결을 통해 들은 사실이니.”

“은혜는 몰라도 원한은 확실하게 갚아야죠. 아시죠?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거?”

“내가 사는 땅은 굳이 한을 품지 않아도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오.”

농담과 덕담을 주고받은 뒤, 셀린느는 회담장을 빠져나갔다.

다시 자리에 앉은 잉그리드에게 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자분은 여기서 직접 데려가셔야 할 듯합니다. 공공 집행본부로 가시면 아무래도 이런저런 추측성 기사나 뒷말이 나올 것 같아서······.”

“본의 아니게 여럿 폐를 끼치게 됐소.”

“아닙니다. 어디 애들이 어른들 생각대로 자라준답니까. 저도 아이가 있어서 압니다.”

“애써 위로할 필요 없소. 그건 웨리바흐로 인해 다치고, 죽은 자들에게 예의가 아니외다.”

입을 다문 원을 두고, 잉그리드는 한탄하듯 혼잣말을 흘렸다.

“그저 귀엽다고 버릇없게 키운 내 잘못이오. 웨리바흐 녀석은 앞으로 평생 태백 권역 북부를 벗어나지 못하게 매어둘 셈이니 이번 일과 같은 참사는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리다.”

그때, 회담장의 문이 열리고 웨리바흐와 그를 인도하는 인원이 들어왔다.

인도자는 웨리바흐의 팔과 다리를 약간 움직일 수 있도록 매어둔 특수 구속구에서 이어진 끈을 잉그리드에게 넘기고 나갔다.

“할머니······.”

눈물이 글썽거리는 웨리바흐에게 다가오는 것은 잉그리드의 엄하디엄한 목소리였다.

“뭘 잘했다고 울고 있는 것이냐. 다른 권역에까지 큰 폐를 끼쳤으면서!”

제법 고된 유치장 생활로 그렇지 않아도 기가 팍 죽어있던 웨리바흐가 몸을 웅크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원은 냉정히 생각했다.

‘태백 권역이 크게 달라지겠군.’

아무리 웨리바흐가 잉그리드의 손자라지만 네오-서울의 입장에서 보면 트라이포드에 적극 협력한 중범죄자다.

종합운동장 사태 관련 복구 비용만 해도 천억 원대에 이르지만, 능력 제한 법령 대상자들의 사망, 군부대를 움직이는 비용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복구 비용이 새발의 피로 보일 지경이다.

이 모든 것을 웨리바흐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가혹한 일이겠지만, 굉장한 피해를 입은 네오-서울 측에서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즉, 웨리바흐를 내주지 않아도 명분 싸움에서 부족할 게 없었다.

하지만 원은 웨리바흐를 내어주는 선택을 했다.

잉그리드가 웨리바흐를 데려가기 위해 직접 네오-서울까지 왔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입장에서는 ‘남의 전쟁’인 네오-서울과 트라이포드, 네오-서울과 북부 중화권 권역 사이에 적극적인 협력을 밝힌 것에 대한 일종의 뒷거래였다.

‘강력한 전제 국가 시절도 아닌데 이런 행보는 필연적으로 불만을 가져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이 잉그리드를 하수下手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태백 권역 사절단의 대부분은 자유민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첩보를 듣게 된 덕이었다.

지금이야 네오-서울 근처에서만 전투가 벌어지고 있지만, 전선이 확대되어 태백 권역까지 확장될 기미가 보이고 있기도 했다.

트라이포드의 주력이 기후에 따른 활동력 저하가 거의 없는 거신족 클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태백 권역의 혹독한 기후는 그다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게다가 험준한 지형 때문에 눈이 미치지 않는 곳이 많은 태백 권역의 특성상 클론들을 숨겨두거나 하기에도 좋았다.

다만, 트라이포드의 이 전략은 클로카이가 제 역할을 발휘할 때 효율이 극대화될 수 있었고, 오메가에게 클로카이가 붙잡혀 있는 지금은 원래 계획한 것보다 훨씬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다의 사보타주 때문에 클론 생산의 중심지였던 톈진 권역에서 생산량이 확 줄어든 것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네오-서울 동부와 북부에서도 소탕 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패주한 클론들 일부가 권역 경계를 넘어 태백 권역으로 숨어들고 있는 상황이 위성사진으로 파악되기도 했다.

태백 권역도 대응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소리.

그렇다면 이것은 ‘남의 전쟁’이 아니라 ‘예방 전쟁’의 성격으로 전환되게 된다.

고대로부터 사회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은 이들이 가장 급격하게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기회는 사회의 변혁이다.

이른바 전쟁 같은.

따라서 잉그리드를 위시한 자유인들의 이번 행동이 태백 권역 내에서 그들의 발언권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원은 잉그리드와 웨리바흐를 찬찬히 살폈다.

흐를 피로 권리와 발언권을 쌓아가려는 할머니와 그간 쌓아온 권리와 발언권에 피를 묻혀 더럽힌 손자.

제법 흥미롭게 바라보던 원이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다른 가정 사정까지 살피기엔 이복동생에 대한 근심 걱정이 너무나 컸다.

잉그리드의 호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너는 종족의 수치이고, 나고 자란 땅의 수치이니 돌아가게 되면 평생 연금 신세로 속죄해야 할 것이야. 그리고 네 머리와 손발에 찬 장치 역시 평생 해야 할 것이다.”

긴고아를 풀 수 없다는 잉그리드의 말.

웨리바흐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잉그리드가 뭔가를 만지작거리자 짧게 경련했다.

인도자가 끈과 함께 넘겨주고 간 컨트롤러였다.

“내 핏줄이라고 봐줄 생각은 없다. 네 방종에 따르는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야.”

잉그리드가 원에게 고개 돌렸다.

“이만 떠나도 괜찮겠소?”

“오신 김에 며칠 더 머무르시다 가시지 않고요.”

“많은 피가 흐를 것인데 어찌 마음 편히 쉬겠소. 그리고 이곳은 산에 살던 늙은이가 있기에는 너무 번잡한 곳이니 부디 일찍 떠난다고 해서 노여워 마시오.”

잉그리드는 바로 당일 웨리바흐를 데리고 태백 권역으로 돌아갔다.

셀린느 역시 바로 다음 날 계룡 권역으로 향했다.

직후 네오-서울에 놀라운 소식들이 전해졌다.

수박 크기의 우박이 톈진 권역의 1/10 정도 면적에 쏟아져 난장판이 되었다는 소식과 화베이 권역 요인要人들이 암살당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톈진 권역에서 상공에서 대규모 마법의 흔적이 보인다, 화베이 권역 요인 암살이 있던 자리에서 늑대인간들이 보였다 하는 루머가 있었지만 실제로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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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싯-

CCTV와 연결되어 있던 수십 개의 스크린 화면 중 또 하나가 금방 꺼졌다.

동시에 뒤쪽의 거대한 철문 너머로 쿵쿵거리며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느끼기도 힘들 정도의 소리였는데 어느새 노크하는 정도로 들리니 얼마 지나지 않아 주먹으로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나지 않을까, 하고 장은 생각했다.

장은 오직 혼자 미사일 기지의 통제실에 있었다.

피싯-

또 하나의 스크린 화면이 검게 변했다.

CCTV 카메라가 빙글빙글 도는 오메가가 만들어내는 검풍에 선이 잘리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다.

장은 눈을 돌려 다른 화면을 보았다.

철문을 부수는 위타천의 뒷모습이 멀리 보였다.

위타천의 주변에는 고철이 된 잠금장치와 철문 파편이 한가득이었다.

떨어진 장의 입술 사이로 나온 말은 그랬다.

“개미 같네.”

바닥에 붙어 죽어라고 기어 다니는 개미.

아이가 심술을 부려 집에 물이라도 부으면 한순간에 몰살당하는 개미.

심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호기심이나 순수한 악의일지도 모르는 일.

시선을 내린 장에게 작은 버튼이 보였다.

그는 지금 아이였고, 개미들의 세상에 물을 부을 준비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연료 주입 95%]

[연료 주입 96%]

[연료 주입 97%]

장의 얼굴에 광기 섞인 미소가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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