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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28화 (229/258)

228.

228.

-사장님! 어디 계세요!

“오! 들린다!”

앨리스의 목소리를 듣고 반가워하는 내 옆에 꽤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는 장비들과 어레스트에 묶여 바닥에 엎어진 기술자들이 있었다.

어레스트에 묶이지 않은 기술자들도 몇 명 있었는데, 위타천은 그들에게 빨리 통신을 원상 복구하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묶이지 않은 기술자들이 발이 보이지 않게 뛰어다니고,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패널 위를 마구 두드린 지 몇 분 되지 않아 외부와 통신이 복구된 것.

도저히 더는 못 서 있겠다면서 주위에 굴러다니던 의자 위에 쓰러지듯 앉은 클로카이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를 냈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바로 올 수 있다고 했죠?”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체구가 작은 쥐 수인일 뿐만 아니라 비쩍 마르기까지 한 놈에게 맞춰진 통로의 높이와 너비 때문에 통로를 벗어날 즈음이 되어서는 몸 이곳저곳이 저릴 정도였다.

게다가 공간술사 아니랄까 봐 안쪽의 길 자체가 일반적인 구조라고 하기에는 힘들었다.

잘 가다가 뚝 떨어지거나 수직 가까운 곳을 기어 올라가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혹시나 통로가 발견되면 침입자를 고립시키기 위한 설계라는데, 아무 징조 없이 몇 번이나 발을 헛디딘 위타천이 결국 참지 못하고 뒤돌아서 클로카이의 기다란 주둥이와 수염을 틀어쥐고 으르렁댈 정도였다.

“팔이 잘린 거지, 혀가 잘린 게 아니니까 미리미리 말해. 알겠어?”

짜증이 그득그득 묻어나는 위타천의 음성에 클로카이는 미친 듯이 읍읍 소리를 내었다.

통로는 우리가 왔던 길 말고도 굉장히 여러 곳으로 뻗어 있었는데, 클로카이는 자기의 쓰임새를 증명하듯 이 미사일 기지 내에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고 떠들어댔다.

검만 치워주면 이렇게 힘들게 갈 필요 없이 자기 마법을 이용해서 단숨에 갈 수 있다는 자기 PR이 이어질 즘, 칼등으로 녀석의 수염을 툭툭 건드려 조용히 시켰다.

“네오-서울이랑 WSS 사이에 고속도로 놓인 곳 있지?”

-평화 공원 말씀하시는 거죠?

거대 권역 사이에 있었던 전쟁으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무지를 보존하면서 이름을 평화 공원이라 붙인다······아마 위정자들의 생각이겠지.

그치들의 사고가 굴러가는 방식은 대체 어떻게 된 걸까.

그리고 소름 돋을 정도로 간결하고 명료한 이름의 공원 아래에 건설된 미사일 기지.

이걸 대조라 하면 너무나 싸구려다.

역설이라 하면 감정을 쥐어짜는 역겨움이다.

이것마저도 장이 의도한 걸까?

만일 그렇다면, 장은 보통 비틀린 인간이 아닐 것이다.

얼굴 가득 피곤을 달고 간신히 사무적인 인사를 하던 위타천의 부관 장, 산책을 나온 것 같은 가벼운 걸음과 활기 넘치는 눈으로 네오-서울의 파멸을 말하는 트라이포드의 수괴 장.

둘의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서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떠다녔다.

침을 삼켰다.

이걸로 미식거리는 속이 가라앉을 수 있게.

목 주변의 근육이 조였다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안으로 눌러 삼키는 행위보다는 밖으로 끌어올려 뱉는 행위를 택했다.

말이었다.

“그래. 지하에 고속도로 있는 곳. 정확하게 딱 거기 어디라고 짚어줄 수는 없는데 고속도로만 있는 게 아니었어. 트라이포드에서 만든 지하 시설이 있어. 미사일 기지라는데, 내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어. 근데 내부자 증언도 그렇고, 위타천이 목격한 것도 그렇고, 맞는 것 같아.”

앨리스는 대답이 없었다.

그래, 아무리 앨리스라지만 이런 엄청난 사실을 들은 이상 말문이 막히겠지.

이 상황에 그러면 안 되겠지만, 이때가 아니면 늘 조잘거리는 앨리스가 언제 또 조용해질까 싶어 장난 섞어 물었다.

“뭐라고 말 좀 해봐. 그 정도로 충격이야?”

잠시 뒤,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됐어요.

“뭐가.”

-통신 전파를 추적해서 사장님 계신 곳을 특정하는 거요. 왜곡 전파가 여럿 있긴 한데 어렴풋이 잡아냈어요.

놀라서 말이 없어진 줄 알았는데, 그 와중에도 자기 할 일을 하느라 말이 없던 거구나.

바이크에서 보랏빛 도형 안으로 뛰어들 때, 위타천이 내게 그랬지.

그래야 자기 후배답다고.

당최 적응 안 되는 선후배 호칭은 차치하고, 위타천이 무슨 뜻과 기분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 알 수 있었다.

그대로 앨리스에게 돌려주었다.

“이래야 우리 사무실 최고 에이스지.”

-애초에 사무실에 저랑 사장님밖에 없잖아요.

최고 에이스랑 그냥 에이스, 둘이서 이끌어가는 사무실이라고 대꾸하려는 찰나, 앨리스의 말이 계속됐다.

-잠깐만요. 마고 씨도 알았나 봐요.

돌아보니 위타천이 허공에 중얼대고 있었다.

바로 마고에게 얘기한 건가.

-통신이 쏟아지는 중이에요. 확실한 거 위주로 정리해서 알려드릴게요.

“부탁 좀 할게.”

-사장님 쪽 상황은 공공 집행본부 소관으로 넘어갈 것 같아요. 수도방위사령부는 WSS 공업지대에 남아있는 클론 소탕에 주력하고요.

“공업지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들 하고 있어.”

-일찍도 물어보시네요. 사장님이랑 위타천 님 갑자기 사라져서 잠깐 혼란스럽긴 했는데 신시아 언니가 중심 잡았어요. 현장 지휘는 젠 님이 도와주고 계시고요.

“누구 죽거나 다친 건 아니고?”

-펠루다 씨의 쉴드장 형성 기기 몇 개가 손상······.

“등딱지 말하는 거지? 패스.”

-이외에는 없어요. 수도방위사령부에 상황을 인계하기 위해 다들 공업지대에서 빠져나오고 있고요.

“다들 수고했다고 전해줘.”

-그럴게요. 사장님, 혹시 기지 안에 있는 게 어떤 미사일인지는 모르시죠? 지금 미사일 기지 건으로 네오-서울 시청에서 WSS 의회를 압박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어떤 정보라도 좋으니 있으면 공유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하네요.

“나는 보지도 못했어. 아, 잠시만.”

클로카이를 바라보고 물었다.

“미사일 탄두에 뭐 실려있냐?”

“제가 알고 있는 건 반 마력 물질, 생화학무기, 이온화 방사선 정도가 다인데요.”

잠시 침묵했다.

인지를 넘어선 정보가 비로소 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뭐부터 물어봐야 하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아서 떠듬떠듬 말했다.

“미사일이 하나가 아니야?”

“예. 스무 개는 족히 될걸요.”

“기지랑 미사일을 지하에 넣으려면 최소한 그 공간만큼의 흙을 퍼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정도 공사를 어떻게 안 들키고 했지? 자재를 옮겨오는 건 어떻······.”

거기까지 하고 말을 마쳤다.

더 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간을 이어붙이거나 찢는 것에는 탁월한 능력을 갖춰서 물질계 마법사가 아니라 공간술사로 불리는 놈이 바로 앞에 있었다.

“네가 했구나.”

자기를 인정하는 발언 정도로 생각한 건지, 의자에 앉아 있던 클로카이가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엉성하게 판 토굴을 따라 지하로 내려오는 건 힘들긴 했는데, 도착하고는 일사천리였죠. 흙은 저기 어디 바다로 옮겨버리면 알아서 가라앉고, 생긴 공간에 인력과 자재를 옮겨오면 되는 거죠. 저는 거기까지만 하면 됩니다. 힘든 일은 마법사의 일이 아니니까요.”

말하는 꼴에서 반성하는 기색이라고는 깃털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도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있는 놈의 다리 한쪽을 발로 걷어 차버렸다.

클로카이가 죽는 소리를 내는 사이, 들었던 걸 앨리스에게 전달했다.

이번에는 진짜로 말이 없어진 앨리스였다.

-······하나만 제대로 터져도······.

“나쁜 생각은 하지 말자고.”

-그래요. 그게 좋겠네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단은 비밀로 할게요. 사장님도 주의하세요.

“그래.”

-공공 집행자와 능력 제한 법령 대상자로 이루어진 침투조가 긴급 편성돼서 기지 탐색에 나설 것 같아요. 안에 계신 사장님이나 위타천 님이 신호를 보내거나 유도 역할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답하기 직전, 위타천이 벌컥 소리치는 게 들렸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니까! 마고! 장이 이 기지 안에 있어! 잡아야 한다고! 동시에 미사일 발사도 막아야 하는데, 어디 있고 몇 개나 있는지도 모르는 출구로 나가서 유도조를 하라고? 포기할 건 포기 해야 해. 안쪽의 일은 나랑 후배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못 도와.”

앨리스가 내게 했던 말을 마고가 위타천에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위타천이 화를 내는 게 이해가 됐다.

위타천이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게 아니다.

우리는 이곳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했고, 일단 급하니까 뛰어든 탓에 단둘이 할 수 있는 일의 양에는 한계가 있었다.

즉, 정보와 일손의 부재가 만들어낸······어?

“야, 쥐새끼.”

안 좋은 예감이라도 들었던 것인지 딴청을 피우다 내 눈치를 보는 클로카이에게 말했다.

“여기 출구 3개 정도 된다고 했지.”

“그······랬죠.”

“네가 파놓은 통로. 출구로 이어지냐? 3개 전부.”

“예.”

“어떻게 가는지 말로 설명해. 그림 그릴 수 있으면 더 좋고.”

“지금요? 지나오시면서 느끼셨겠지만 보통 복잡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설명을 해드려도 알아듣기 쉽지 않으실 텐데······.”

“그건 들어보고 내가 결정할 거니까 알려주기나 해. 혹시라도 이상한 마음 품고 또 개짓거리 할 생각 말고.”

나쁜 짓을 해서 그렇지, 머리는 비상한 게 틀림없는 클로카이가 우리가 들어온 격실을 기준으로 설명을 시작하자 나는 스킬을 발동했다.

[지도 분석]

[길찾기]

여태껏 지나왔던 통로의 기억과 클로카이의 설명 위에 스킬이 덧입혀지며 머릿속에 지도 하나가 완성됐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윽박질렀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넌 바로 죽는 거야. 알겠어?”

“제가 어떻게 해야 믿어주실 겁니까. 이렇게나 헌신적으로 협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네가 생각해. 그리고, 장은 통제실에 있을 거라고 했지? 그럼, 거기로 가는 통로도 있어?”

“통제실 내부로 이어지는 통로는 없습니다. 그 앞으로 이어지는 길은 있지만요.”

“왜지?”

“통제실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장 혼자뿐이었으니까요. 저도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장이 없을 때 네 그 잘난 마법으로―.”

클로카이가 내 눈을 피했다.

“네 마법. 만능이 아닌가 보지? 제약이 있는 것 같은데.”

“영업기밀입니다. 이건 정말 죽어도 안 말할 겁니다.”

뭔지 궁금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짐작이 되기도 했다.

직접 가본 곳으로만 공간을 열 수 있다든가 하는 그런 종류의 제약이겠지.

“그래, 당장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리고 아직도 마고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 위타천을 불렀다.

“잠깐 여기로 좀 와 줘요!”

나는 계속해서 클로카이에게 검을 들이밀고 있어야 해서 멀어질 수 없었다.

위타천이 가까이 다가왔다.

“잠깐 통신 좀 꺼보세요.”

하와이안 셔츠의 단추를 만지작거리는 위타천이었다.

저게 위타천의 통신 장비였구나.

“됐네.”

“제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안쪽은 이미 들어온 우리가 맡는데, 바깥쪽 상황까지 감당할 수는 없어요.”

“역시! 후배는 이야기가 통하는군!”

“끝까지 들어보세요. 그런데, 장을 잡는다는 우리 목적이 흐려지지 않으면서 유도 임무도 할 수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런 방법이 있으면 당장 해야지!”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대신······.”

일부러 말끝을 흐리자 뭔지 알겠다는 듯이 위타천의 눈썹이 꿈틀댔다.

“못 본 척해달라는 거군. 또 뭘 할 셈이지? 후배를 보면 볼수록 퓨어이긴 한 건지 뜯어보고 싶단 말이야.”

“동의하신 거죠? 그러면 저기부터 어떻게 좀.”

위타천의 겁박에 통신을 복구시킨 기술자들을 향해 고개를 까딱이니 위타천이 품에서 어레스트를 몇 개 꺼내 던졌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기술자가 어레스트에 감겨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클로카이를 걷어차서 수레에 타게 한 뒤 이 공간의 구석진 벽으로 밀고 갔다.

우리가 나온 벽이었다.

“벽 없애.”

“어떻게 하시려고요.”

“들으면 알아? 벽이나 없애.”

검을 역전개하자 클로카이가 다시 벽을 없애기 위해 마법을 사용했고, 그동안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뭘 할 건데, 봐도 상관은 없거든? 근데 보면 나중에 내가 널 죽일 수도 있어. 어떻게 할래?”

“상관없는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할 거냐고.”

“통로 열면 수레 좀 돌려주시겠습니까. 안 보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손이 너무 많이 가는데······.”

닥쳐오는 죽음의 위기를 느꼈는지 클로카이가 온 힘을 다해 찍찍거렸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클로카이가 탄 수레를 돌려놓고, 통로 앞에 섰다.

옆에 있는 위타천에게 말했다.

“가연 씨가 물어도 절대 모른다고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원영신]

내가 만들어낸 분신 셋을 바라보는 위타천의 경악스러운 얼굴이 아주 일품이었다.

이 분신들은 내 일부이니 기억과 감각을 공유한다.

즉, 출구로 향하는 길을 알고 있다는 것.

분신들은 눈빛을 나누는 것만으로 자기들끼리 각자 어디를 맡겠다는 얘기를 끝냈다.

통로로 뛰어든 분신들의 뒤로 위타천의 작은 혼잣말이 흘렀다.

“이 정도로 정교한 이지를 갖춘 분신이라니?”

깔끔하게 무시했다.

“자, 그럼 우리는 장이 있는 곳으로―.”

쿠르릉-

깊은 곳에서 밀려 나오는 것 같은 진동이 온몸을 흔들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기술자들이 여기저기로 굴러다녔으며, 거대한 장비들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클로카이가 소리쳤다.

“발사 준비에 들어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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