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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26화 (227/258)

226.

226.

클로카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몸을 바르르 떨기만 했다.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 놈의 다리 위, 허벅지에 발을 올렸다.

[천근중추공]

발 아래쪽에서 살이 뭉개지고 뼈가 부러지는 감촉이 타고 올라오는 것이 여간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쥐 수인답게 찍찍거림에 가까운 비명이 클로카이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

[천근중추공]을 해제한 뒤, 놈의 옆에 쭈그려 앉아, 꽂혀 있는 검의 손잡이를 붙잡고 말했다.

“네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나는 천사가 될 수도, 악마가 될 수도 있다. 감이 오지?”

내가 봐도 사악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지만 한편으로는 수련회 교관들이 이런 맛에 애들을 그렇게 쥐 잡듯이 잡는구나 싶었다.

이 녀석은 범죄자이기도 하고 쥐 수인이기도 하니 쥐 잡듯 잡는 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다.

주위에서는 위타천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한창이었다.

다소곳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는데 말이다.

[기막 펼치기]

[차폐]

소음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어허.”

존속살해를 전개해 휘둘렀다.

희미한 마법진이 맺혀가던 클로카이의 오른손이 뎅겅 잘려 바닥을 뒹굴었다.

“으아! 내 팔! 내 파알!”

고통 가득한 신음을 내지르는 클로카이였다.

“물어볼 것도 있고, 신시아가 너를 직접 죽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가져다주려고 목숨은 붙여두고 있는 거야. 이런 식으로 헛짓거리하면 나도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른다?”

잘린 클로카이의 팔 단면에서 검고 끈적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며 다시 물었다.

“벌써 두 번째 묻는다. 여긴 어디고 장은 어디 있어.”

몸을 벌벌 떨던 클로카이가 내게 물었다.

“마, 말하면 목숨은 살려주는 건가?”

“내용 봐서.”

“내 안전을 보장하면! 아는 데까지는 얘기를 해주겠다.”

“이거 영 까다로운 놈이네.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됐구나?”

아직 멀쩡한 놈의 다리 위에 내 손을 올려놓았다.

이런 인정머리 없고 잔혹한 수법은 사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간지럼증 - 발바닥에 물린 모기]

[환상통幻想痛 - 아물지 않은 딱지 떼기]

[환상통 - 손톱 옆 거스러미 한 번에 뜯기]

세 스킬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서리얼은 게임인만큼 통각이 현실에 비해 많이 줄어들어서 저런 스킬들을 사용해도 긁적임 정도로 끝났지만 여기선 그런 거 없다.

아주 잠시 잠잠하던 클로카이가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오는 건지 미친 듯이 악을 썼다.

“안돼! 그만! 하지 마! 누구라도 좋으니 도와줘! 살려줘!”

“응. 소리 있는 대로 질러. 밖에서 안 들려.”

발버둥 치는 놈의 등짝을 밟아 저항을 줄이자 곧 놈은 꺽꺽거리는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본인 몸을 지키는 수단은 없는 것 같았다.

하긴, 공격당하면 공간을 비틀어 흘리거나 다른 곳으로 피신하면 그만일 테니.

아무런 전조 없이 마법을 무효화하는 검이 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을 거다.

그리고 붙잡혀서 이런 흉악한 수법에 당할지도 몰랐겠지.

[간지럼증]과 [환상통] 모두 마도공학 유물의 효과라고 거짓말하고 정현과 자코에게 잠깐 실험해본 결과이니 확실하다.

몇 초만 당해도 미쳐버릴 것 같다면서, 범죄자들 심문에 쓰고 싶으니 빌려달라고 해서 곤란했다.

대체 뭐라고 말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키클롭스 아재도 나한테 딱 한 번만 빌려주면 안 되냐고 부탁할 정도였다.

어디 갱의 끄나풀을 잡았는데 입을 절대 안 연다던가.

수수료 좀 받기로 하고 끄나풀에게 가서 사용했더니 좋아 죽더라.

놈의 입이 술술 열린 건 덤이다.

갱의 끄나풀이나 공간을 다루는 데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마법사나 똑같이 못 견딜 게 분명하다.

특히나 마법사는 마탑에 들어간 순간부터 주위에서 엄청나게 떠받들어지니 이런 원초적인 고통에는 더욱 약하지 않을까.

클로카이는 거친 숨과 함께 거품까지 뿜고 있었다.

그런 녀석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생각 바뀌면 말해. 오래는 못 기다린다.”

#

위타천은 인간이다.

동시대 최강으로 꼽히는 강신술사이기도 하다.

신체를 강화하는 약물을 투여받은 적이 있고, 혈액 청소를 위한 나노봇 캡슐이 혈관을 따라 흐르고 있어 퓨어의 분류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그래도 사이보그에는 이르지 않은, 분류에 따르면 ‘경증 시술자’ 정도의 평범한 인간이다.

가장 최근에 받은 시술은 보툴리눔 톡신, 흔히 말하는 보톡스.

미용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던 위타천이지만 최근 가연과 같이 찍힌 사진에서 ‘실제 나이는 엘프인 가연이 더 많은데도 위타천이 훨씬 늙어 보인다’라는 댓글에 상처를 입어 시술받았다.

가연도 나이를 언급하는 것에 상처를 입었으니 댓글 작성자는 한 문장으로 두 명에게 상처를 입히는 데 성공한 셈이다.

각설하고, 위타천이 보톡스를 시술받을 때 의사가 말한 주의사항 중 격한 운동은 피하라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 위타천은 격한 걸 넘어서 파괴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위타천이 포효하자 그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던 놈들 십수 명이 위타천의 몸을 중심으로 터져 나온 바람에 밀려났다.

그의 등 뒤에는 거대한 형상이 떠올라 있었는데, 그것은 단호하면서도 어딘가 따스함이 느껴지는 나다의 휘광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고대로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신들, 그중에서도 가장 엄하고 잔혹한 신들의 형상이 위타천의 뒤를 받쳤다.

악독한 범죄자라 해도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 트라이포드와 협력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에도 그런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신앙, 각자의 종교에 따라 다른 형상을 마주하는 중이었다.

수천 개의 날개가 달린 빛무리, 긴 뿔을 가진 염소, 돌기마다 눈이 달린 두꺼비, 한 손에 뱀을 감은 시체, 삼지창을 든 남자 등등.

그들이 두려움에 주춤할 때, 믿음 없는 자들이 외쳤다.

“눈속임일 뿐이야!”

“위타천이다. 네오-서울의 위타천이라고! 저걸 죽이면 인생 피는 거야!”

가장 먼저 달려드는 놈에게, 위타천이 손을 뻗었다.

그의 손 모양은 단단한 무언가를 꽉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았다.

퍼-억

거대한 망치로 내리찍은 것처럼, 남은 것은 잔뜩 짓눌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였다.

영력을 느끼고, 다룰 수 있는 자들이 위타천에게서 흘러나오는 거센 영력에 대항하다 정신을 잃고 픽픽 쓰러졌다.

이제 형상에 감겨 모습조차 잘 보이지 않는 위타천이 걸음을 옮기며 양손을 움직였다.

몸에서 뿜어지는 영력은 그의 의지에 따라 망치가 되고, 창이 되고, 검이 되고, 도리깨가 되고, 채찍이 되고, 철퇴가 되어 주위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강신降神.

신께서 인간 세상에 내려와 몸소 벌하는 모습이었다.

위타천의 음성이 마치 높은 천상과 깊은 지저에서 지상을 향해 들리는 신탁 같았다.

“장. 모습을 보여라.”

그렇게 범죄자들을 몰아가던 위타천은 같은 지하이지만 천장이 제법 높게 뚫린 공간에 이르렀다.

사람이 다닐 수 있게 이곳저곳 높게 건설된 구조물, 액체가 흐르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오는 수십 가닥의 굵은 파이프, 차량이 드나들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커다란 통로가 여기저기로 나 있는 모습까지.

게다가 천장뿐만 아니라 아래로도 길게 공간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한 위타천이었다.

그는 지금 원통형 공간의 가장자리에 있는 셈이었다.

위타천의 머리에 불길함이 스쳤다.

영력을 거둔 위타천이 범죄자들을 뒤로한 채 달려가 난간을 붙잡고 고개를 쑥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목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떨렸다.

“미쳤군.”

자신에게 슬금슬금 접근하려던 범죄자들의 뼈와 살을 분리한 위타천이 그가 왔던 길로 다시 달렸다.

오메가와 클로카이가 있는 방향이었다.

#

“후배!”

[기막 펼치기]와 [차폐]를 해제하기 무섭게 위타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기 나누는 그사이를 못 참은 것인지 위타천은 늘 입고 다니는 하와이안 셔츠가 온통 피범벅이었다.

그래도 대충 보니 자기 피는 아니고 다 남의 피인 것 같아서 넘어가기로 했다.

주위가 조용해진 게 다 이 아저씨 작품일 테니.

나를 본 위타천의 얼굴이 심각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여긴―.”

“지하에 만들어진 미사일 기지래요.”

“알고 있었군.”

“그리고 정확한 위치는 네오-서울과 WSS를 지나가는 지하 고속도로 옆이라고 하네요.”

“그건 나도 몰랐던 사실인데.”

원래였으면 부천이었을 곳이지만 네오-서울과 WSS 간 발발한 전쟁의 결과로 초토화된 곳을 종전 이후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그대로 놔둔 곳이다.

지하에는 고속도로가 놓였지만, 지상에는 아무런 건축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장은 네오-서울의 턱밑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한 셈이다.

공사 소음도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묻혔으려나.

위타천이 말을 이어나갔다.

“미사일이 한두 기가 아니었네. 탄두에 어떤 게 실려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네오-서울에 떨어지면 엄청난 파장이 있지 싶어. 막아야 하네.”

“우리 둘로는 쉽지 않을 것 같은 내용이네요.”

“통신이라도 됐으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라도 요청할 텐데.”

“외부 주파수랑 네트워크를 차단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디 있는지도 아니까 그걸 파괴하는 걸 우선으로 하죠.”

여기까지 들은 위타천이 내게 물었다.

“그걸 어떻게 다 아는 건가?”

여전히 클로카이의 등에 올려놓고 있던 발을 한번 쿵 찍어주었다.

고통스러워하는 놈의 신음을 배경음 삼아 설명했다.

“이놈이 아주 장의 오른팔이더라고요. 생각보다 아는 게 많아서 잘 빼먹었습니다.”

클로카이가 캑캑거리며 말했다.

“도와주마. 차단기가 있는 곳으로 공간을 열어줄 테니 제발 잘린 곳에 응급처치를 부탁한다.”

놈의 등을 더 짓이겼다.

“흐어어억!”

“도와주마는 반말이고.”

“도, 도와드리겠습니다.”

클로카이의 등에서 내려오자마자 녀석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필요 없어! 네가 이상한 곳으로 보낼지 어떻게 알아! 일어나서 안내해!”

“이······다리로요?”

내가 [로우킥]을 먹인 탓에 클로카이의 다리 한쪽은 아직도 그런 방향이면 안 될 것 같은 곳으로 뻗어 있었다.

미안하지는 않지만 조금 민망해져서 바닥에 박혀 있던 검을 뽑은 뒤 클로카이에게 들이대고 윽박질렀다.

“다리 두 개 중에 하나 남았잖아! 빨리 일어서!”

놈은 서러움이 폭발한 듯 꺼이꺼이하는 울음을 터트렸고, 결국 위타천이 오는 길에 봤다며 작은 짐수레를 가져와 클로카이를 실은 후에 출발할 수 있었다.

한 손으로는 수레를 밀고, 다른 한 손으로는 검을 클로카이에게 들이댔다.

“아주 상전이네. 상전이야. 조금이라도 이상한 짓 하면 바로 죽인다. 명심해. 손 위로 꺼내. 내가 보이는 곳에 둬. 잘린 쪽도 마찬가지야.”

클로카이는 조금 편안해진 목소리로 나를 향해 아첨했다.

쥐 수인이라 그런지 묘하게 잘 어울리는 언행이었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차단기를 향해 나아가며, 옆에 있는 위타천에게 말했다.

“장은 지금 여기에서 조금 떨어진 통제소에 있다고 해요.”

“거짓말일 가능성은?”

광자 검날을 클로카이 쪽으로 더 가깝게 붙였다.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으! 거짓말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장이 알아챘을 수도 있겠군.”

장을 그렇게 목놓아 애타게 찾더니 이제는 알아채서 불만인 눈치인 위타천이다.

그렇게 당신이 난리를 쳤는데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이상하지.

클로카이에게 물었다.

“여기서 지상으로 나가는 출구는 몇 개나 되고, 어디에 있지?”

“3개 정도 있는 걸로 아는데······정확하지는······흐이이! 이것 좀 치워주십쇼!”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지 3개 정도는 뭐야!”

광자 검날을 들이밀며 으르렁거리자 클로카이의 말이 더욱 빨라졌다.

“저는 항상 마법으로 이동해서 모릅니다! 진짜입니다!”

그걸 들은 위타천이 중얼거렸다.

“차단기를 부숴서 증원 요청도 해야 하면서, 출구도 확인하고, 미사일 발사도 막아야 한다라······후배랑 나눠 맡는다고 해도 몸이 부족한 판에 이 쥐새끼 때문에 쉽게 나뉠 수도 없으니······.”

수레에 실려 가던 클로카이의 뒤통수를 1초 정도 바라보던 위타천이 짧게 말했다.

“죽일까?”

나도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죽이죠.”

수레에 탄 클로카이가 몸부림쳤다.

“으아아! 부탁드립니다! 제발 목숨만은! 목숨만은!”

그때, 우리가 향하던 통로의 저 앞에서 차근차근 불이 꺼지고, 격벽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장이 저희가 온 걸 드디어 알아챈 것 같네요.”

그때, 클로카이가 외쳤다.

“왼쪽!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통로가 있습니다!”

왼쪽으로 눈을 돌려보니 그냥 평범한 벽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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