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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타가라스는 부엉이 수인이다.
현직 네오-서울 공공 집행자인 동시에, 최강의 검사를 꼽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네오-서울을 비롯한 한반도 중부에 전운의 전조가 무럭무럭 피어나는 이때, 야타가라스는 허베이 권역의 최외곽 빈민가를 달리고 있었다.
물론 그림자 속으로 자유자재로 녹아들고 심지어 그림자를 공방일체의 무기로 활용할 수도 있는 그의 능력 특성상, 웬만큼 예민하거나 전문적인 탐지 장치를 몸에 박지 않은 이상 그림자가 조금 떨리는 정도로만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구성원 대부분이 술과 약에 절어 하루의 근심을 잊는 빈민가라면 더욱 들킬 염려가 없어야 했다.
하지만 야타가라스의 뒤를 쫓는 이들이 있었다.
허베이 권역 공안 마크가 박힌 도심 순찰용 헬기 수십 대가 빈민가 위를 낮게 날며 서치 라이트를 이곳저곳에 비춰댔고, 프로펠러의 풍압에 이기지 못한 빈민가의 빈약한 가옥 지붕들이 들썩였다.
헬기 아래로는 공안 소속 초인 범죄 대응팀이 중무장한 채로 빈민가의 더러운 골목을 누비며 가옥들의 보잘것없는 대문을 거친 군홧발로 부수고 안에서 떨고 있는 농민공 가족에게 총구를 들이대며 이상한 자를 보지 못 했냐고 윽박질렀다.
정작 자신들도 야타가라스를 제대로 본 적 한번 없으면서.
물론 야타가라스는 자신의 뒤에서 벌어지는 이런 촌극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허베이 권역 중앙위원회 건물을 비롯해, 정수장, 교통관리공사 같은 주요 인프라 사보타주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톈진 권역에서 비슷한 임무를 수행한 나다의 팀과 합류해 귀국하면 작전 종료였다.
추후 필요하다면 또 방문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작전의 주요 포인트는 북부 중화권 권역에 네오-서울의 거동을 알리는 정도면 충분했다.
야타가라스는 다른 공공 집행자들보단 음지의 업무를 많이 맡아왔던지라 네오-서울을 벗어나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단독으로 타 권역에 침투해서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일은 수도방위사령부에 있을 때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이것도 꽤 재밌군.’
하지만 재미와는 별개로 더 머물 생각은 없는 야타가라스였다.
네오-서울에 남겨두고 온 일이 있었기 때문인데, 바로 수연과의 심문이었다.
수연은 연일 계속되는 야타가라스의 심문에 의해 정신이 거의 다 붕괴한 상황이었지만 야타가라스는 그것마저 곤궁한 처지를 빠져나가려는 간사하고 악독한 수작이라고 여기고 더욱 수연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심문의 녹화 녹음 파일을 받아보는 마고는 그런 야타가라스에게 경악했다.
중화권 권역에서 스파이 훈련을 받았을 수연의 정신을 붕괴시킬 줄은 마고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무런 장비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대화만으로.
야타가라스가 평소에 말이 많지 않은 것이 주변인들에게는 은총이자 축복이라고 생각한 마고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야타가라스는 어서 돌아가서 스파이를 쥐어짤 생각뿐이었다.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어 달리는 야타가라스가 골목에서 방향을 꺾자 공안 몇 놈이 눈에 들어왔다.
놈들의 숫자는 셋.
긴장한 표정으로 한쪽 손가락은 방아쇠울 위에 올려놨으며, 다른 손으로는 총몸을 붙잡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는 여러 장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는데 아마도 열 포착 탐지기나 기타 색적 장비가 장착되어있을 안경 형태의 장비일 것이라고 야타가라스는 생각했다.
야타가라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침착했다.
그에게 있어 우선순위는 최단 거리로 가는 것이지 들키지 않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들키면 처리하고 나아가면 그만이다.
네오-서울 대림 에어리어에 사무실이 있는 어느 해결사와 비슷한 사고방식이었다.
바닥을 훑던 그림자가 위로 불쑥 솟아올랐다.
마치 폭탄이 만들어낸 물기둥 같은 모습.
그 모습을 본 공안이 재빨리 방아쇠를 당겼으나 화기는 발사되지 않았다.
[빠르게 베기]
어느새 그들의 뒤편에 위치한 야타가라스가 검을 검집에 집어넣는 소리가 경쾌하고 묵직하게 밤의 빈민가를 적셨다.
철컥-
공안들의 몸과 그들이 들고 있던 무기가 무너져내렸다.
그들을 벤 그림자가 야타가라스의 몸으로, 그가 들고 있는 검으로 빨려들었다.
숨을 거둔 공안의 귀에 꽂힌 통신장비에서 헛된 부름이 새어 나왔다.
-웨이! 뤄진! 즈하오! C팀 연락 두절!
순식간에 헬기들이 몰려들고 다른 공안들이 포위망을 형성했다.
모여든 헬기들이 구석구석 서치라이트를 비췄지만 야타가라스는 없었다.
어깨에서 그림자 날개를 길게 뽑아낸 야타가라스는 이미 빈민가를 벗어나 접선 장소로 낮게 날아가는 중이었다.
가느다란 소리 하나 흘러나오지 않았다.
지금 야타가라스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뿐이었다.
하나는 원래부터 하고 있던 수연의 심문에 대한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방금의 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것도 좋은 검이지만 역시 그것만 못하군.’
오메가에게 돌려준 존속살해에 대한 아쉬움.
사실 야타가라스는 존속살해라는 이름도 알지 못했다.
그의 파멸적인 네이밍 센스에 따라 야타가라스가 존속살해를 부르는 이름은 ‘잘 드는 검’이었다.
오메가는 기존에 사용하던 검의 약점이자 안티테제이기 때문에 존속살해를 자신이 가지고 있고 싶어 했지만, 그런 내막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으므로 야타가라스는 오메가가 왜 그렇게 존속살해에 관심을 가지는지가 궁금했다.
다만 자신과의 전투를 기억하기 위해 가지고 싶어 한다는 점이 제법 마음에 들기에 넘겨주었다.
‘세상에 좋은 검은 많지만 좋은 검사는 드문 법.’
그리고 좋은 검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드는 품으로 검 하나 정도면 썩 싸게 먹힌 편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야타가라스는 GPS를 확인했다.
허베이 권역과 톈진 권역 사이의 어느 갈대밭이 약속된 접선 장소였다.
어둑한 밤, 의지할 것은 그나마도 구름에 절반 넘게 가려진 그믐달이었으나 탁월한 검사이자 부엉이 수인인 야타가라스의 눈에는 아래 펼쳐진 광경이 훤히 보였다.
소형 수직이착륙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근처에 후덕한 승려, 나다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야타가라스는 공중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갈대와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수직이착륙기로 접근하는 놈들이 있었다.
몸에 블래스터 바주카나 음파 집약 발사기 같은 중화기를 메고 있으면서 소리는 거의 배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보통 놈들은 아니었다.
‘이륙과 동시에 방어시스템을 가동한다 해도 너무 위험하군. 어쩌면 격추 위험까지도······.’
오로지 은밀함과 기동성을 위해 가져온 소형 수직이착륙기이기에 상대적으로 무장이나 방어시스템이 부족할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주위의 수를 조금 줄일 필요가 있었다.
여전히 소리 없이 공중을 날며, 야타가라스가 몇 겹의 우회 보안이 설정된 통신 채널을 열고 말했다.
“나다. 통신으로 대답할 필요는 없다. 위를 봐라.”
나다가 고개를 들기 무섭게 혜심통이 야타가라스에게 꽂혔다.
-야타가라스쿤! 무사해서 다행이라능. 사실 걱정할 필요도 없었겠지만!
언제봐도 밝고 천진한 나다였다.
“뒤에 뭘 많이 달고 왔던데.”
-클론 생산기지에 침투해서 원천 유전자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조금 길어져서 그렇게 됐다능!
“작전은? 성공했나?”
-거신족 유전자 파괴는 실패했지만, 놈들이 보관하고 있던 그 늑대인간 피를 오염시키는 데는 성공했음! 클론 생산이 좀 느려지지 않을까 기대중! 이 멀리까지 오게 하다니 돌아가면 늑대놈 긴고아를 최대로 조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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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공공 집행본부 유치장 한쪽에서 쭈그려 자고 있던 웨리바흐가 식은땀을 흘리며 벌떡 깨어났다.
며칠 후면 태백 권역 사절단의 대표로 네오-서울에 방문할 잉그리드에게 인계된다는 소식과, 나다가 한동안 유치장에 오지 못할 거라는 소문을 들어 정말 간만에 편안한 잠을 청하던 차였다.
다시 잠들기 위해 돌아눕던 웨리바흐는 자신의 양 손목 발목에 걸려있는 긴고아가 부딪히며 나는 소리를 배경으로 중얼거렸다.
“꿈도 이런 개 같은 꿈을 꾸네.”
꿈이 현실을 선반영했다는 사실을 웨리바흐가 알게 되는 건 나다가 돌아온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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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타가라스가 나다의 중얼거림을 제지했다.
“그만. 일단 내려가서 정리할 테니 그동안 비행기에 가해질 공격을 막도록.”
-내가 막는 건 또 기가 막히게 막는다능!
답을 듣기 무섭게 야타가라스가 넓게 펴고 있던 날개를 등 뒤로 붙인 모습으로 낙하했다.
중화기를 멘 채 몸을 숙이고 갈대를 헤치며 나아가던 한 놈의 걸음이 우뚝 정지했다.
등에서부터 시작된 이질감이 가슴을 뚫고 나왔다.
고개를 내린 놈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림자로 감싸진 검이었다.
스륵-
검이 빠지자 뚫린 자리가 순식간에 메워졌다.
나다를 추적한 이들이 톈진 권역 군사지도부에서 생명윤리 따위는 깡그리 무시한 채 만들어낸 강화 병사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병사가 입을 벌렸다.
“놈―!”
‘놈들이 알아챘다!’라는 말을 하기도 전, 그의 몸에서 빠져나온 검에서 수십 줄기의 그림자가 뻗어 나와 병사의 몸을 난자했다.
몸에 가득 두른 화기는 건드리지 않은 채, 몸만 조각내는 신기에 가까운 검술.
야타가라스 식 작명에 의하면 [깍둑썰기]였다.
조각이 피와 함께 갈대밭에 흩뿌려질 무렵, 야타가라스는 흐릿한 달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함께 다른 희생양을 찾아 나선 지 오래였다.
푸욱- 읍-!
서걱- 크륵-?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병사들이 몸을 드러냈다.
그리고 각자 둘러메고 온 중화기를 수직이착륙기가 있는 지점으로 조준한 뒤 발사했다.
어둠 가득하던 갈대밭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병사들은 그제야 동료의 목숨을 앗아간 것의 정체를 마주할 수 있었다.
한 손에 검을 들고, 그림자를 뒤집어쓴 괴물이 갈대 위에 웅크려 있었다.
마치 질량이나 무게 같은 것은 자신을 구속할 수 없다는 양.
“이건 뭐야!”
“죽여!”
“쏴!”
야타가라스를 향해 화망이 만들어지기 전, 수직이착륙기 쪽에서 음이 터졌다.
휘광을 뿜어내는 나다가 봉을 들고 날아오는 투사체들을 튕기거나 터트리면서 나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쪽으로 아주 잠시라도 고개가 돌아갔던 병사들은 곧 야타가라스의 검에 죽음을 맞았다.
상황을 정리하는 데는 채 2분이 걸리지 않았고, 그 시간은 포위망을 구성할 후속 인원들이 도달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시간이었다.
뒤늦게 도달한 인원들은 수직이착륙기가 스텔스장에 감싸 사라지는 것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안에서 갈대밭을 내려다보던 나다가 야타가라스에게 물었다.
“오메가쿤은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능. WSS 공업지대로 직접 침투할 생각인 것 같던데.”
“······.”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야타가라스였지만 언제나처럼 눈치가 살짝 부족한 나다였던지라 야타가라스가 듣거나 말거나 혼자 떠들었다.
“장이 거기를 거점 삼아 움직이고 있다는데, 온갖 범죄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고 하는 걸 들었다능. 어쩌면 복귀해서도 네오-서울 바깥으로 나가야 할지도?”
야타가라스의 그림자가 잠시 움찔했다.
수연 심문과 외부 활동을 고민하는 제스처였다.
팔짱을 낀 나다가 또 혼자 중얼거렸다.
“위타천쿤이 오메가쿤을 따라가겠다고 난리 피운 걸로 아는데 그건 또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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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습한 기운이 피부와 코로 확 몰려들었다.
‘지하?’
주위의 풍경이 바뀌었으니까 도형을 통과하는 데 성공한 것이 틀림없다.
바닥을 구른 뒤,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서자마자 등에 굉장한 충격이 느껴졌다.
“으억!”
“어이쿠!”
위타천이었다.
본의 아니게 다시 바닥을 구르고 비틀비틀 일어서자, 우리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과 마주쳤다.
그래, 통로를 열고 계속해서 인원을 보내고 있었으니 이쪽에도 얼마간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던 놈들이 있었겠지.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위타천이었다.
순식간에 영력 갑옷을 두른 채 놈들에게 뛰어들며 외쳤다.
양손에는 역시 영력으로 만든 극戟을 든 채였다.
“장! 내가 왔다!”
순식간에 어딘지 모를 이곳이 난장판, 아수라장이 되었다.
언제봐도 행동력 하나는 무시무시하다.
자기 하고 싶은 일에만 그 행동력을 발휘해서 그렇지.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옆에서 입을 떡 벌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놈이 있었다.
“어, 어······.”
클로카이라고 하던 그 쥐 수인이다.
급작스럽게 마주한지라 나도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그러다 놈의 손이 움직이자 놈 주변의 공간이 일렁였다.
도망치게 둘 수는 없기에 바로 검을 완전 전개해 찔러 넣자 일렁이던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마법이 무효화되는 현상이다.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놈에게 재빨리 킥을 먹였다.
[로우킥]
처음 봤을 때부터 로우킥 갈기면 부러질지 궁금했단 말이지.
비쩍 마른 놈의 다리가 꺾이면 안 될 것 같은 방향으로 꺾이더니 놈이 풀썩 쓰러졌다.
볼품없이 바닥에 엎어진 놈의 얼굴 가까이에 검을 박아넣고 물었다.
“여긴 어디고, 장은 어디 있을까아~요?”
위타천처럼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