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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23화 (224/258)

223.

223.

위타천을 말릴 새도 없이, 아래 늘어선 공장 상당수의 지붕이 뒤집히며 포대로 변형되는 것이 보였다.

대공 미사일 포대와 대공 블래스터 포탑이 시커먼 총구를 돌려 위쪽을 향했다.

-생각보다 대규모인데요. WSS 의회가 트라이포드의 성장을 방조한 것 같아요. 어쩌면 적극적으로 지원했을지도 모르죠. 잘도 중립 선언을 했네요. 뻔뻔한 것들.

신시아의 목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아래쪽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터져 나오는 불꽃과 폭음 너머로, 영력으로 온갖 무기를 만들어 주위를 초토화하는 위타천이 있었다.

위타천이 애써주고는 있지만, 포대의 수는 훨씬 많았다.

포대 중 하나가 위에서 떨어진 블래스터 탄환에 직격당해 불탔다.

-우워어어어!

수송기에 하체를 고정하고 블래스터를 어깨에 올려놓은 상체만을 바깥으로 내밀에 발사한 왕발의 목소리였다.

녀석은 아래로 계속해서 블래스터를 발사했다.

멀리 있는 내 눈에도 왕발의 블래스터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모습이 보일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수송기와 나를 향해 발사되는 미사일과 블래스터는 여전히 많았다.

-대장! 이대로는 강하 못 합니다!

펠루다의 목소리와 거의 동시에 수송기에서 퓨전 코프 로봇들이 뛰어내렸다.

이수련이 직접 조종하고 있음이 분명한 로봇들은 수송기들을 둘러싸고 일정 간격으로 늘어섰다.

로봇들이 공명하며 수송기 아래쪽으로 거대한 반구형의 쉴드를 만들어냈다.

마지막으로 뛰쳐나온 이수련은 로봇 헤드는 물론이고 거의 전신에 로봇 외장을 두르고 있었다.

법력 깃든 이수련의 목소리가 주변에 쩌렁쩌렁 울렸다.

“뛰어내리거라. 본좌가 보호할 테니.”

그녀의 새하얀 여덟 꼬리와 끝이 조금 탄 꼬리까지, 모두 해서 아홉 개의 꼬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춤을 추자 로봇들이 거리를 벌려 쉴드의 범위를 확장했다.

-아직. 정리 좀 할 테니 조금만 있다가 내려와요.

부드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젠이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젠이 수송기에서 몸을 던지는 것이 보였다.

같은 수송기 안에 샴록이 타고 있는 걸로 아는데, 극도의 여성공포증인 젠에게는 같은 공간에 여성이 있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들었던 걸까.

젠은 수송기에서 떨어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한줄기 벼락으로 변해 대지에 내리꽂혔다.

포대로 변형되지 않은 공장과 창고의 문이 뜯어지며 거신족 클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클론의 수는 네오-서울 서남부 작전에서보다 더 많아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빽빽하게 모여있는 공장들 틈새에 가득 들어차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저번 작전에서 클론들은 맨몸이었지만 이번에는 각자 화기를 하나씩 들고 있다는 것.

화기의 끝이 젠을 향해 있었다.

통신 채널을 통해 평소처럼 편안한 젠의 음성이 전해졌다.

-눈이 조금 부실 수도 있겠군요.

클론들이 들고 있던 화기들이 불을 뿜었다.

포화의 중심에서, 젠은 긴 도포 자락에 손을 넣어 부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가지런히 접혀있던 쥘 부채를 얼굴로 가져간 뒤 힘차게 폈다.

촤륵-

부채에서 퍼지는 공력 파동이 일대를 뒤집었다.

젠을 향하던 것들이 휘청이며 목표를 잃었다.

그 중, 미사일들이 빙글 돌더니 주변에 있는 클론이나 공장으로 파고들어 폭발했다.

여다함과 발렌시아가 힘을 쓴 결과였다.

하지만 클론들은 터지고 부서진 것들의 시체를 밟아 넘기며 다시 젠을 향해 밀려들었다.

부채로 얼굴을 절반 정도 가린 젠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때로는 물 위에 뜬 꽃잎을 밟듯 사뿐하게, 또 때로는 대지의 중심을 파고들 듯 강렬하게.

부채가 얼굴 근처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때때로 부채를 쥐지 않은 손을 뻗기도 했으며 어깨의 움직임을 따라 도포가 펄럭이기도 했다.

춤이었다.

전장에서 흡혈귀 도사가 춤을 추었다.

신선무神仙舞라고 한다던가.

하염없이 느린 움직임이었으나 젠에게 적중하는 탄환은 단 하나도 없었다.

신선이 바둑 한판 둘 시간은 진세에서 도끼 자루가 썩어버리는 시간이라고 한다.

젠의 주변은 신선의 흐름이었다.

한바탕 춤춘 젠이 부채를 반대편 손에 부딪혀 접자 부채에서 번개 기둥이 솟아 하늘까지 닿았다.

기둥의 굵기가 점차 커졌다.

궤도폭격이라도 하는 모양새가 될 즈음, 다시 한번 젠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위로 돌아가라.

쿠르르릉

땅에서 하늘로 닿은 뇌전 기둥이 꿀렁거렸다.

가득한 힘을 분출하고 싶어 애가 탄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뇌전 줄기는 분수처럼 쏟아졌다.

일대에 눈을 뜨기도 힘들 정도의 번개 비가 내렸다.

번개는 수송기와 나를 피해서 떨어졌으며, 땅에 닿은 후에는 클론들을 타고 번져 나갔다.

말로만 듣던 젠의 진짜 실력에 모두가 말을 잃었을 무렵, 채널에 떠드는 사람은 이수련 혼자였다.

-동자공 꼬맹이가 제법이구나! 아무렴! 동자공을 익혔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구름을 뚫고 하늘에 닿은 뇌전 줄기가 가늘어지다가 끝내 사라졌을 때, 일대에 공장이라고 할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폐자재 더미, 혹은 폐허가 더 알맞은 표현이었다.

아직 수송기에 남아 있던 인원들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땅으로 강하를 시작했다.

제트팩을 등에 멘 호위대원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따로 채널을 열어 한마디 했다.

“통솔은 펠루다가 할 거니까 말들 잘 들어라. 앨리스 말도 잘 듣고. 얘 말만 들으면 길 가다가도 떡이 생겨.”

-대장님은 어쩌시고요?

“나는 바빠. 참, 단독행동 같은 미친 짓은 안 하길 바란다. 봐서 알겠지만, 보통을 한참 넘긴 사람들이 수두룩해. 트라이포드 놈들도 아직은 잠잠하지만, 저번에 직접 목격했으니 절대로 쉽지 않을 거야. 안 될 것 같으면 체면이고 뭐고 도망쳐라. 오기 부리다가 죽는 것만큼 한심한 게 없어.”

-걱정해주시는 겁니까?

펠루다의 질문이었다.

“너희처럼 멍청하고 부려 먹기 좋은 놈들이 없어지는 게 아까워서 하는 말이야.”

-부끄러워하시긴!

눈깔과 상투가 신나서 뭐라고 떠들기 전에 귀걸이를 만져 채널 음 소거를 했다.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좋은 지휘관이군, 오메가 청년. 볼수록 탐나.

-오메가 청년? 발렌시아 설마 지금껏 그런 호칭으로 사제師弟를 부른 거야?

페룬의 마법사.

발렌시아와 여다함이었다.

페룬 마탑을 이끌어갈 재목이라고 불리는 명성은 헛된 것이 아니었던지 발렌시아는 강하를 마치자마자 특유의 금속 실로 이루어진 강화 신체와 주위의 공장 철골을 끌어당겼다.

이내 교류전 페룬의 쇼케이스에서 보여주었던 이동형 토치카를 만들어낸 발렌시아였다.

그리고 만들어진 토치카의 양쪽 어깨에 여다함과 정민이 안착했다.

여다함은 날아드는 미사일의 방향을 꺾어 날려 보내거나 강철계 마법으로 클론들을 정리했으며 정민은 얼음으로 폐허를 덮거나 빙벽을 세워 클론들의 접근을 경계했다.

마법사 셋이 뭉쳐 움직이는 이동형 토치카는 그 자체로 화력의 집약체였다.

호위대원들도 토치카에 올라타거나 뒤에 달라붙어 힘을 더했다.

호위대원들과 합류한 샴록이 불러낸 문신 괴수들이 여기저기 타고 넘으며 클론들의 머리통을 짓뭉갰다.

박쥐로 변해 내 어깨에 내려앉은 신시아가 주위를 둘러보고 중얼거렸다.

“이 전력이면 어중간한 권역 하나 정도는 뭉개고도 남겠는데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알고 있죠? 트라이포드의 본모습은 드러나지도 않았다는 거? 이걸로 흔들릴 놈들이 아니에요.”

“동감이니라.”

옆에 따라붙은 이수련이었다.

그녀를 따라 내려온 퓨전 코프의 원격 조종 로봇들이 아래를 향해 빔을 쏟아냈다.

이수련이 박쥐로 변한 신시아를 보고 한마디 했다.

“모두 열심인데, 신시아 너는 어찌하여 그리 여유만 부리고 있단 말이냐.”

“얘 봐. 누가 들으면 서운할 소리 하네. 나 안 놀아. 아래 좀 볼래?”

그 말에 시선을 아래쪽으로 내렸다.

그렇게나 많은 클론을 처리했음에도 아주 공장마다 꽉꽉 채워놨는지 또 다른 거신족 클론들이 여기저기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여기저기가 떨어져 나간 클론 사체들이 벌떡 일어나 새로운 클론들과 싸우고 있었다.

이수련이 중얼거렸다.

“하긴······저것들도 사체이긴 하니······.”

“그래. 사령술의 영역이지. 더 많이 죽일수록 내 영향력은 늘어난다고.”

이수련과 신시아가 서로 자기가 더 잘났다면서 티격태격하는 동안,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WSS 의회에서 우리보고 즉시 철수하라고 하네요. 어떻게 할까요?

“한마디만 더 하면 송도까지 이 꼴 만들어버린다고 해.”

-네오-서울 시청에 항의하겠다는데요?

“항의해도 얻어갈 게 없을 건데?”

젠과 위타천까지 모습을 드러낸 이상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긴 하지만 우리는 네오-서울에서 보낸 게 아니라 트라이포드에 위협을 느낀 사람들끼리 자발적으로 뭉쳐 만들어진 자경단이라는 설정이다.

네오-서울 시장인 원도 이 자경단의 구상을 듣더니 ‘그런 설정이시군요······. 알겠습니다.’ 하고 넘어갔으니 문제없다.

그래도 네오-서울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수도방위사령부 기계화사단을 WSS와의 접경지역 안쪽까지 밀어 넣겠다는 약속도 함께였다.

밖으로는 중립을 외치면서 안으로는 트라이포드가 성장할 공간과 양분을 제공하고 뒤로는 중화권 권역과 결탁한 WSS에 대한 응징 의지가 많이 묻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WSS 의회는 지금 밀고 들어오는 병력에 대항하기도 바쁠 터, 우린 우리 일을 하면 된다.

“앨리스, 장이나 다른 놈들 흔적은 없어?”

-찾았어요. 위타천 님이 계신 곳에서 멀지 않아요. 연구 시설 같아요.

“그쪽을 중심으로 공략하라고 전파해줘.”

모드 팔콘의 지속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바이크의 고도를 낮춰 원래대로의 모습으로 되돌린 뒤, 폐허 위를 달렸다.

번개 한 줄기가 바이크를 부드럽게 휘감더니 흡혈귀의 모습이 되었다.

젠을 본 신시아가 종알거렸다.

“오빠! 제법 멋있었어.”

“너도 나만큼은 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잘하고 있거든? 칭찬을 해줘도······.”

신시아의 말이 끝나기 전, 스로틀을 확 꺾었다.

정면에 나타난 기묘한 보랏빛 도형 때문이었다.

바이크가 땅에 닿을 듯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지며 방향을 전환했다.

기울어진 바이크가 일어설 무렵, 사람 키의 몇 배나 될 정도로 커진 도형이 꾸불거리며 사람을 뱉어내고 있었다.

등장하는 놈들은 하나같이 외형만으로도 위험함이 잔뜩 묻어나왔다.

내 어깨에서 떨어져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신시아가 중얼거렸다.

“이쪽으로 사람들을 보내고 있네요. 하나하나가······.”

이수련이 신시아의 말을 맺어주었다.

“본좌도 이름을 알 것 같은 놈들이 있는 걸 보아하니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저런 놈들을 모아 뭉친 수완 하나는 대단하구나.”

둘에게 말했다.

“그래요? 제가 보기에는 그냥 그런데요.”

답을 듣기 전, 바이크 스로틀을 잔뜩 당겨 최고 출력에 고정해두고 양손에 하나씩 완전히 전개한 검을 들었다.

“앨리스, 바쁘겠지만 자율 주행 부탁해. 최고 속도로.”

이름도 모르는 놈들이 자신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드는 호버바이크를 보고 당황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간단한 이치다.

대체 무슨 꿈을 꾸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트라이포드에 협력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트라이포드와 함께하는 것이 분명하니 조지고 본다.

바이크는 빠르게 달릴 수 있고 검은 사람을 벨 수 있으니 목적에 맞게 충실히 활용해야지.

그렇게 검을 휘두르며 인파 사이를 질주하다 보니 저번에 봤었던 오크 검사가 있었다.

그녀는 다시 그때처럼 레일을 옆에 끼고 나를 향해 발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멈춰봐.”

존속살해를 역전개 해 허리춤에 꽂은 뒤, 비어 있는 손으로 스로틀을 잡았다.

오크 검사가 나를 향해 말했다.

“와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놈은 다시 지껄였다.

“승부를 피하는 거냐? 겁쟁이군.”

스로틀을 틀어 바이크의 방향을 바꾸면서 답해주었다.

“뒤 조심.”

오크가 움찔하는 사이, 잘린 다리를 커스텀 기계 파츠로 교체한 거대 표범, 나비가 오크 뒤에서 뛰어들었다.

나비에서 뛰어내린 디에고가 길게 자라난 엄니로 오크를 꿰뚫는 것까지 보고 다시 바이크의 속도를 올렸다.

“알려줘도 당하네. 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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