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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21화 (222/258)

221.

221.

장과 닮았나?

장은 흐릿한 인상이지만 자신을 네오-서울 시장이라고 소개한 원은 또렷한 인상이었다.

장은 평균보다 조금 작은, 사람에 따라 왜소하다고까지 분류할 수 있는 체형이었지만 원은 인간 종족 중에는 상당히 건장한 편이었다.

여기에서 나를 보자고 한 이유는 뭐지?

대주교와는 무슨 관계지?

다짜고짜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기 어려운 말을 하는 이유가 뭐지?

그런 생각과 함께 손을 놓았다.

그는 여전히 사람 좋은, 하지만 어딘가 깊은 심계가 느껴지는 미소를 지은 채로 물었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침착하시군요. 장과 엮여 이래저래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많이 겪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당신이 한 말이 정말인지도 알 수 없고, 설령 정말 장의 형이라고 해도. 그것만으로 의심하는 건 연좌제의 악용에 가까우니까요.”

“연좌제라. 생각보다 박식하시군요.”

‘생각보다’에는 아무래도 내가 네오-서울 전임 시장들을 몰랐다는 것에 대한 의미가 들어있지 않을까.

원의 말이 이어졌다.

“오메가 씨께 했던 말에 거짓은 없습니다. 저는 정말로 네오-서울의 시장이고, 장의 이복형입니다. 네. 한쪽 손에는 초거대 권역을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수억의 목숨을 쥐고 있고, 다른 한 손에는 동생을 올바른 길로 이끌지 못한 형이라는 죄책감을 쥐고 있죠.”

손바닥을 위로한 각각의 손을 옆으로 내밀어 저울을 흉내 내는 원이었다.

그는 목숨을 얘기할 때 오른손을 들어 올렸고 죄책감을 언급할 때 왼손을 들어 올렸다.

아직 그의 저울 시늉이 끝나지 않았을 때, 물었다.

“시장님에게는 동생 한 명과 수억에 달하는 시민들이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겁니까.”

그가 저울 시늉을 그만두고 손을 차례대로 내려놨다.

그리고 서재 한쪽으로 걸어가 놓여있던 상자를 열어 시가를 꺼내 끝을 잘라 피워물고 고풍스럽게 생긴 유리병에서 술을 두 잔을 따라 내게 건넸다.

“담배 하십니까?”

“아뇨.”

“아쉽군요. 비싼 건데. 술은요?”

“갈 때 운전해서 가야하는지라.”

“받아만 두시죠.”

두 개의 잔 중 원이 내게 내민 잔을 받아들었다.

잔에 담긴 호박색 술에서 진한 나무 향과 동시에 달콤한 향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그렇게 원은 천천히 서재의 벽면을 따라 걸었다.

그리 크지 않은 면적이었지만, 그의 걸음이 느리기도 했고 걸려있는 사진마다 멈춰서는 바람에 다 도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나는 원이 술에 입을 대는 것을 보고 난 뒤에야 들고 있던 잔을 들어 술의 향을 제대로 맡았다.

향만으로도 느껴지는 아득한 풍미에 감탄할 무렵 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말 아십니까. ‘남자는 때로는 동굴이 필요하다.’.”

“들어 봤습니다.”

“여긴 역대 네오-서울 시장들의 동굴입니다. 업무에 지치거나 공세를 받을 때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 동안이나 생각을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죠. 여성 시장도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동굴 어쩌고가 남성에게만 국한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요.”

시가를 깊게 빨아들인 원이 길게 숨을 내뱉자 짙은 연기가 그의 입과 코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러더니 그는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이렇게 비밀 사랑방으로 쓰이기도 하고요.”

내 물음과는 조금 엇나간 답이었다.

원의 걸음이 어느 사진 앞에서 멈추었다.

사진 안의 남자는 원과 많이 닮아 있었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십니다. 네오-서울의 시장이셨습니다. 기억에 남는 업적은 없다고들 합디다. 무난하셨다죠. 가정생활에서는 무난하지 않으셨지만. 지독한 호색한이십니다. 철저한 자기관리 때문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요. 그런 노력으로 시정을 더 돌보시지는······.”

술을 한 모금 마신 원이 몸을 돌려 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원보다는 순박해 보이는 사진 속의 남자에게서는 쉽게 나오기 힘든 비사祕史이지 싶었다.

“씨를 뿌리는 시도는 열심히 하셨지만, 적중률이 높지는 않았던 건지 아니면 적중은 했지만 뒷공작으로 다 없애는 건지 결실이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어느 배에서 나온 건지도 모른 아이 손을 잡고 집에 들어오셨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의 행실을 알고 계셨던 건지 눈길도 주지 않더이다. 어머니는 여러모로 대단한 분이시죠.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정치를 하셨어야 했는데.”

꽤나 독한 향기를 내뿜던 시가가 절반 이상 타들어 가고 있었다.

“조그마한 녀석을 데리고 와서 제게 말씀하시더군요. ‘기억하거라. 네 동생. 장이다.’ 녀석은 마치 투명 인간처럼 지내다 머리가 커지기 무섭게 집을 떠났습니다. 아마 나가서도 부족하게 살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버지는 무난한 분이시지만 정은 많으신 분이었으니까요.”

내가 들고 있던 잔에 담긴 술이 줄어들지 않은 반면, 원의 술잔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제가 정치를 시작하고, 홍보성으로 공공 집행본부에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녀석을 거기서 봤죠. 살아는 있구나. 그게 전부였습니다. 형제지만 남보다 못한 사이였죠. 저는 그때 장의 눈빛을 기억합니다.”

“당신을 미워하는 것처럼 보이던가요?”

원이 코웃음 쳤다.

“아뇨. 그랬으면 차라리 좋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미움받는 건 정치인에게 일상이거든요. 정치인이 아니라 저라는 사람을 미워한 거라면, 녀석과 저 사이에 있는 넘을 수 없는 차이를 보여주면 그만입니다.”

“······.”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황무지를 바라보는 것 같았죠. 생각해보면 녀석은 집에서도 늘 그런 눈빛이었습니다. 항상 멀리 있었고 다가가려 해도 밀어냈죠. 핏줄, 가족, 고향. 그런 건 녀석에게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한 게 아닐까요.”

조명이 어둑했지만, [암적응] 스킬은 내게 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의 얼굴은 술기운에 살짝 달아올랐고, 손가락 사이에 끼워둔 시가는 거의 다 타서 그의 살갗에 닿기 직전이었지만 원의 눈빛은 또렷했다.

“하루는 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장의 이름은 왜 장이냐. 아버지께서 뭐라고 하신 줄 아십니까?”

“글쎄요.”

“장에는 좋은 의미가 많답니다. 장수將, 우두머리長. 장인匠, 씩씩하다壯. 하나같이 훌륭하다나요. 웃기지도 않죠. 저한테는 늘 정치가의 아들, 미래의 정치인이라고 하면서 겸양, 겸손이 최대의 미덕이라고 하시던 분이요.”

한풀이라도 하듯 독백에 가까운 긴 대화를 마친 것인지 원이 재떨이에 시가를 비벼껐다.

“오메가 씨, 하나 물어봅시다. 근래 들어 벌어지는 일과 네오-서울의 대응. 어땠습니까.”

“솔직히 말해도 되겠습니까.”

그가 껄껄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저는 친아버지의 흠결도 솔직히 말했습니다만.”

“의문스러웠습니다. 아무리 트라이포드가 급격히 몸집을 불리고는 있다고 하지만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권역이 그런 테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이요. 대응도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죠. 거신족 클론을 소통하는 작전만 해도 다친 법령 대상자가 몇입니까. 심지어 사망자도 있었죠.”

최근 일이라 그런지 나도 말이 멈추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아무리 수도방위사령부가 만성적인 인력 부족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 병력과 전력은 충분할 것 같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실제로 전투기 몇 대가 날아와 시행한 지원 폭격으로 일이 마무리됐죠. 트라이포드와 직접 마주쳐 본 경험에서 말씀드리는데, 놈들은 더욱 악독해질 거고, 이런 소극적 대응으로는 늦게 될 겁니다.”

“소극적 대응······틀린 말은 아니군요. 가능한 생포 위주의 작전을 진행하라고 한 건 저이니까요.”

먹먹한 침묵이 흐른다.

그러자 그가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왜 그랬는지 묻지 않을 겁니까?”

“물어야 합니까?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한참이나 나를 뚫어져라 보던 원이 피식 웃고 말했다.

“오메가 씨를 직접 보고 싶다고 하자 대주교가 그러더군요. 자리를 마련할 수는 있지만, 설렁설렁 봤다가는 큰코다칠 거라고요. 특히나 저처럼 정치인의 언어는 특히나 싫어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죠.”

“빙빙 돌리는 건 성격에 안 맞아서요. 정치인이든 종교인이든 사업가든 거지든 상관 없이요.”

“이런. 용케 제 얘기를 안 끊고 다 들어주셨군요.”

“빙빙 돌아가도 적당히 재미있으면 듣습니다. 시장님 얘기는 꽤 흥미로웠어요.”

내 말을 끝으로 그가 다시 대화의 방향을 되돌렸다.

“개인의 감정을 공적인 영역에 끌어왔기 때문에 그런 지시를 내린 겁니다. 녀석이 엇나가게 된 것에 내 지분이 있지 않을까. 의아함.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함. 관계가 알려지면 이대로 실각하는 걸까. 공포.”

그의 사소한 몸짓, 입에서 나오는 단어, 그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 등등.

하나하나가 모두 거친듯하면서 세련됨이 묻어났다.

초거대 권역의 대소사를 아우르는 시장다운 노련함이었다.

“오메가 씨, 해결사라 들었습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비록 왕래는 거의 없지만······. 혈육을 죽······여 달라는 의뢰를 받아본 적 있으십니까.”

미동 없는 원의 눈에 고뇌가 찰랑거렸다.

나는 그에 맞서 담담히 답해주었다.

“있습니다.”

원의 시선이 무너진다.

찰랑이던 고뇌가 쏟아져 끈적하게 흐른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계속 들렸다.

“그 의뢰,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도······.”

“의뢰만 놓고 본다면 실패했습니다.”

자신이 망설이거든 손자를 죽여달라는 할머니의 의뢰.

엄밀히 따지면 나는 실패했다.

웨리바흐는 살아남았으니까.

“그리고 그 실패는 커다란 결과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쳤고 죽었습니다. 얼마 전, 네오-서울에서요.”

원이 두 손을 들어 얼굴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 행위를 마쳤을 때, 원은 몇 년이나 늙은 것처럼 보였다.

그가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반면 늘어트린 왼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입이 떨어진다.

“오메가 당신이 이곳을 떠나면, 네오-서울은 트라이포드와 지원 세력에 대한 적극적 반격, 나아가 선제적 타격까지 시도할 겁니다. 전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요.”

숨을 크게 들이쉰 원은 그걸 토해내며 한 번에 말했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장의 죽음을 의뢰하고 싶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죽였으면 합니다.”

나는 당장 답을 하지 않았다.

원이 줄줄 설명을 덧붙였다.

왜냐하면 당신은 트라이포드와 많이 맞서왔고, 장이 당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기색이 있으니 역추적도 가능할 것 같으며, 법령 대상자가 아니면서 공공 집행자 이상의 무력과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미 파악했으며······어쩌고 저쩌고······블라블라······지원은 뭘 어떻게 원하냐······말하는 대로 준비하겠다 등등.

쭈욱 듣다가 말했다.

“계속 궁금했는데,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나를 설득하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던 원의 입이 닫힌 사이 재빨리 물었다.

“아버님께서 장의 이름을 붙인 이유는 들었는데요. 그런데 원도 좋은 뜻은 많지 않습니까? 하나One? 아니면 근원原? 그것도 아니면 으뜸元?”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저를 정치가로 내정하고 키웠습니다. 그분이 생각하시기에 정치가의 덕목은 겸양과 겸손이었죠. 모난 곳 없이 둥글어야 하기에 원圓이라 지으셨다고 합니다.”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던데, 둥글게 사셨습니까?”

“둥글기만 했다면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겠죠.”

“할 때는 확실히 하시는 분이라고 알아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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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서울 시청 본관을 빠져나와 사무실로 향하는 길.

통신 채널을 열고 앨리스와 떠들었다.

“······그래서 이름을 원이라 붙였다더라.”

-시장님 아버지가 센스가 없으셨네요. 가장 좋은 원이 있는데.

“뭔데?”

-돈 셀 때 쓰는 원₩요.

말문이 막힌 사이, 앨리스가 내게 말했다.

-참, 가 계신 동안 대주교님한테 연락왔어요. 내일 새벽에 손님 오시니까 비행장으로 마중 좀 나가주셨으면 한다고 하셨어요. 손님께서 사장님을 꼭 보고 싶어 한다면서요. 사장님이 초청한 분이라고 하던데, 누구신가요? 이 손님?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화끈한 걸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사람?”

-뭐예요. 누군데요.

“보면 알아. 그건 됐고, 이제 본격적으로 네오-서울이 들썩거릴 것 같으니까 너도 미리미리 의자에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 있어라.”

-사장님 등짝이 소파에 붙어 있는 것만 할까요.

“아 진짜라니까. 일단 자세한 건 들어가서 얘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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