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220.
며칠 뒤, 나는 바이크를 타고 한강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여러 차량이 깜빡이도 안 켜고 끼어들기를 시도하다가 그걸 괘씸하게 여긴 다른 운전자들이 클락션을 울리고, 다리 주변을 맴돌던 교통정리 드론이 내려와서 딱지를 끊었다.
도시를 관통하는 강 중에서는 세계에서 몇 번째로 폭이 넓다는 한강은 오늘도 여전히 유유히 흘렀다.
언제든 이렇게 흐르지 않았겠냐고 내게 반문하는 듯싶어 눈을 돌렸다.
마치 용이 수면 위를 구불구불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생긴 한강대교 위쪽의 구조물 사이사이로 비행 가능 종족들이 떼를 지어 날아갔다.
겉보기에 달라진 건 없었다.
늘 볼 수 있는 네오-서울의 일상이었다.
몇 주 되지 않은 교류전 사태나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거신족 클론들과의 혈투가 꿈이나 착각으로 느껴질 만큼 너무나 평안했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몽롱한 경계에서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빵빵-
옆에서 짧게 울리길래 고개를 돌려보니 옅은 선팅 너머의 운전자가 내 바이크를 가리키더니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바이크를 끌고 나오면 흔하게 겪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
고개를 까딱여 호응해주니 운전자의 눈동자가 커졌다.
나를 알아본 듯싶었다.
플라워즈 호텔에서 신시아와 함께 있는 게 전파를 탄 이후로도 내 이름이 여러 번 오르내린 덕이었다.
종합운동장 출구 앞에서 불칸의 개 수인 마법사의 가슴을 무릎으로 찍어버리는 장면이 짤로 남아 돌아다닌다던가.
생명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그 위기 상황에 촬영부터 한 사람이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전에도 야스민 공의 손이 닿지 않는 영세 황색 언론에서 내가 하는 일이나 해결사 사무소의 손님들에 대해 추측성 기사를 내다가 요새 들어서 날개 돋친 듯이 기사를 쏟아낸다던가.
공공 집행본부와 내가 무슨 관계냐고 엄청나게 들었다는 위타천의 불평도 있었다.
이래서는 빠른 시일 내에 자기 후임으로 앉히는 건 글렀다고 진심으로 짜증 내길래 그런 거 생각할 시간에 어떻게 장을 잡아 족칠지나 생각하라고 조언했더니 내가 하기 싫으면 다른 사람을 추천이라도 해보란다.
얼굴도 알겠다, 펠루다를 추천했더니 위타천이 박수를 짝하고 치며 ‘아! 그래! 그 거북이 이름이 펠루다였지!’ 하고 좋아하더라.
폭탄 돌리기를 마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 사이 옆 차의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길래 스로틀을 더 세게 감았다.
윈드 스크린 너머로 들어오는 바람이 매서워지나 싶더니 어느새 옆에 있던 차량은 저 뒤로 밀려났다.
‘해결사 오메가의 정체는 사실 머리를 제외한 전신을 모세혈관 하나까지 기계 교단의 지원을 받아 교체한 사이보그이면서 흡혈귀인 동시에 최소 4개 계열의 마법을 완벽히 통달한 재원이며 일인 전승 되는 검술 문파의 장문인이고 자유자재로 식물의 성장을 조절하는 드루이드라는 사실을 숨기고자 퓨어라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붙인, 네오-서울이 숨겨왔던 최종 병기’라는 우스갯소리가 도니까 외부 활동 중, 특히 이동 중에 이상한 짓 좀 하지 말라는 앨리스의 당부를 몇 번이나 듣고 나온 참이다.
억울하다.
나는 이상한 짓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해결사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결과가 이상하게 받아들여진 거다.
네오-서울에 연고 하나 없이 뚝 떨어져서 나름대로 1인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결과가 이상한 짓이라는 단어 하나로 뭉뚱그려지는 것은 폄훼성 발언이라고 앨리스에게 주장했으나 앨리스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저 ‘해결사~최종 병기.’로 끝나는 문장을 중얼거리며 눈으로 나를 훑더라.
‘청운 선생님이 사장님은 틀림없는 퓨어라고 몇 번이고 못 박지 않았으면 꽤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단 말이죠······.’하는 말과 함께.
너 같으면 나한테 최종 병기 역할을 맡기겠냐고 하니까 ‘그건 그렇죠.’라고 대답하는 게 묘하게 열받았다.
‘사장을 대하는 태도가 그게 뭐냐.’, ‘아무리 내가 외근직에 바지사장 포지션이라지만 최소한의 권위는 챙기겠다.’라고 말하려니까 헤지르 대주교랑 약속한 시간 아니냐면서 자연스럽게 나를 내보내더라.
분명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려고 시간 계산까지 치밀하게 맞춘 게 분명했다.
그 덕에 나는 ‘어엉······. 그러네.’ 하는 말과 함께 차고로 가서 바이크에 올라야 했다.
이번에도 딱지 끊어오면 1달간 바이크 압수라는 앨리스의 목소리와 함께였다.
나도 앨리스의 잘못을 트집 잡아서 한 달간 오일샌드 압수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트집 잡을 게 없었다.
그렇게 오일샌드를 압수할 구실을 찾다 보니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은 네오-서울 시청 본관, 왼쪽은 근래 부쩍 자주 향하던 공공 집행본부 건물로 향하는 길.
스로틀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거대하고 복잡한 건물, 네오-서울 시청 본관이 시야에 가득이었다.
#
“이쪽으로 오시죠.”
각자의 증명사진이 박힌 공무원증을 목에 건 공무원 두 명이 주차장에 바이크를 세운 나를 안으로 이끌었다.
이름은 잘 보이지 않고 서기관이니 사무관이니 하는 계급만 눈에 들어왔다.
서기관이 4급이고 사무관이 5급이었던가.
내가 알던 것과 이곳의 공무원 계급 체계가 비슷하다면 적당히들 핵심 인력들 아니려나.
통신으로 앨리스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약속 당일 사무실 건물을 나오는 순간부터 그 어떤 통신도 하지 말라는 헤지르 대주교의 신신당부 덕에 아예 통신 기능을 꺼놓고 있었다.
만날 사람이 누군지 얘기나 해주지, 끝끝내 알려줄 수 없다면서, 가서 직접 보는 게 확실할 거란 얘기만 남긴 헤지르 대주교였다.
헤지르 대주교라서 참았다.
펠루다나 후앙 같은, 되도 않는 것들이 내게 똑같은 짓을 했다가는 주먹부터 나가서 오메가식 민주주의를 몸에 새겨줬을 거다.
이래서 일단 유명해지고 힘을 가지라는 건가.
‘유명하면 똥을 싸도 박수를 받을······.’
이런 생각이나 하면서 안내받는 대로 터벅터벅 걷다 보니 공무원들이 멈춰 섰다.
띵- 하는 경쾌한 알림 소리가 나고 커다란 철문이 옆으로 스르륵 밀렸다.
“타시죠.”
화물용 엘리베이터였다.
“왜 화물용을?”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사무관이 검지를 펴서 입가에 대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지들은 잘만 말하더니 웃기는 놈들이네?
“헤지르 대주교님이······. 응?”
그러자 이번에는 서기관 명찰을 걸고 있던 녀석이 내 입을 막으려고 달려들길래 어렵지 않게 옆으로 피했더니 풀썩 엎어지자마자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미친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 이거 참. 황당하네. 헤지······.”
이제 둘은 내게 양손을 대고 싹싹 빌기까지 했다.
“그래요. 소개해 주신 분을 봐서 가긴 하겠지만······. 대체 뭐가 뭔지······.”
그렇게 잠깐의 해프닝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자 두 공무원도 얼른 들어와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층 버튼 대신 호출 버튼을 누르고 공무원증을 들어 엘리베이터 벽의 무늬에 맞춰 가져다 댔다.
이런 과정 중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사무관이 엘리베이터 벽면의 손잡이를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잡으시죠.”
“예?”
덜컹―
엘리베이터가 빠른 속도로 위로 향했다.
야스민 저택에서처럼 때로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향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멈춰서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일도 있었다.
오만 생각이 머릿속에서 휘감겨 소용돌이쳤다.
‘나 납치당한 거야? 지금이라도 깨부수고 튀어?’
두 공무원의 등짝을 걷어차 제압하려는 찰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리고 보이는 것은 깔끔하게 정리된 서재였다.
벽면 가득히 늘어선 책장 사이사이 양복을 입은 다양한 사람의 사진이 놓여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내리시죠. 잠시만 기다리시면 될 겁니다.”
공무원의 말에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뒤를 돌아보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것이 보였다.
작은 기계음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 앞쪽으로 방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책장이 생기더니 밀려 나와 주변의 책장들과 간격을 맞췄다.
신기해서 손으로 쓸어봐도 고저 차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봐도 이상할 거 하나 없는 책장인데 뒤에 비밀의 엘리베이터라도 숨겨져 있겠거니 하고 더듬거리는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때, 서재의 문이 열리고 다른 사진들처럼 양복을 입은 인간이 성큼성큼 걸어와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뵙는군요. 대주교 님께 부탁해서 제가 누군지 모르게 해달라고는 했는데, 아마 올라오시면서 짐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남자는 나보다 키가 살짝 컸다.
얼굴도 나보다 나이가 좀 많은 중년 정도로 보였지만, 여기서는 인간의 수명이 200살에 육박하는 데다가 외형을 젊게 보이게 하는 방법이야 며칠 밤을 새우면서 내내 읊어도 끝이 없을 정도라 나이를 짐작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당장 중요한 것은 남자의 키나 생김새 같은 외형이 아니었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누구······신지?”
남자의 얼굴 면적에 빠짐없이 가득하던 웃음이 사라졌다.
대단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이런 비슷한 기억이 있었는데, 언제였더라.
위타천을 처음 만났을 때인 것 같다.
연예인도 아니면서 대뜸 자기 모르냐고 물어봤었지.
이후로 알고 싶지 않았는데 강제로 알게 된 위타천의 성격이나 성질이 보통 이상인 걸 감안했을 때, 눈앞의 이 남자도 절대 평범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에고가 엄청나게 강하지 않을까.
남자는 눈을 몇 번 깜빡여 얼굴 가득하던 충격과 상실의 흔적을 밀어내고 내게 내밀었던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책장 한쪽으로 척척 소리를 내며 걸어가 사진 하나를 가리켰다.
“이분. 이분은 누군지 아십니까?”
팔이 네 개 달린 고릴라 수인이었다.
“모르겠는데요.”
믿기 힘들다는 눈으로 나를 본 남자가 다시 옆에 있는 사진으로 뛰어가 말했다.
“이분은요.”
케이블을 통해 온갖 서버와 연결된 의자 위에 앉아 있는 안드로이드의 사진.
“모릅니다.”
인물 퀴즈는 이후로도 서너번이나 더 이어졌고, 나는 모두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안다고 했다가 사실은 모른다는 걸 들켜서 쪽팔리느니 그냥 모른다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남자가 나를 흘끔거리며 중얼거렸다.
들릴 거리는 아니었으나 [집음] 스킬을 통해 남자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귀로 모여들었다.
“역대 시장들을 몰라? 공교육 붕괴가 결국에는 이 지경까지······. 대림 에어리어의 교육 수준은 다 이런 건가? 아니면 나를 시험하려고? 그런 눈치는 아니던데? 공공 집행자들과 사적으로 친분이 있다더니 벌써 그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선을 긋는 걸지도······.”
어딘가 생각과 행동에 음흉한 구석이 느껴지는 남자였다.
이런 짓이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상황을 정리하려 시도했다.
“저는 정말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헤지르 대주교 님께 들은 것도 없고요. 아는 건 당신이 저를 만나고 싶어 했다는 것뿐입니다. 저를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저도 누굴 만나러 왔는지는 이제 알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남자가 내 앞으로 걸어와 말했다.
“당신이라······. 나쁘게 들리지만은 않는 단어군요.”
그가 두터운 손을 다시 내게 내밀었다.
어색하게 손을 뻗어 악수하자 그가 말했다.
“제 이름은 원. 네오-서울의 시장입니다.”
이어지는 뒷말에 나는 손에 힘을 더 이상 주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이복 관계고, 알려진 적도 없지만 알고 계신 장의 형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