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19화 (220/258)

219.

219.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이수련의 물음이었다.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요. 당장 뒤에서는 클론들이 쏟아지지, 앞에는 멍청이처럼 덩치만 큰 군용 차량들이 털털거리면서 차체 돌리려고 움찔움찔하고 있지. 차라리 우리끼리 있었으면 몰라요. 그랬으면 돌파라도 쉬웠을 텐데 우리가 갈 길도 막아 버린 상태라서······.”

“그래서, 다음은?”

“다음이 어디 있어요. 빠져나갈 길이 없는데. 우리가 막고 있을 테니까 데리고 온 병력들 빨리 하차시켜서 전투 준비하라고 카마던 중령한테 소리쳤죠. 그때 반말로 고래고래 소리친 것 같은데? 아닌가? 그래도 공대는 했나? 모르겠네요. 뭐, 워낙 급했으니까 중령도 이해하겠죠. 우리 아니었으면 거기도 손실이 어마어마했을 테니까요.”

팔을 펴서 빙빙 돌려 보이며 말했다.

“그때 검을 하도 휘둘러서 아직도 팔이 뻐근하다니까요. 이러다 젊은 나이에 오십견이라도 오는 거 아닌가 몰라. 거기서 처리한 클론만 200기는 넘을걸요? 긴급방열해서 포 쏘고, 헬기 날아다니고, 나중에는 전투기도 오고 난리였다니까요.”

내 말을 들은 이수련이 여태껏 앞으로 잔뜩 내밀고 있던 상체를 소파에 파묻었다.

“그 정도로 대규모 작전이었는데 온라인에 한 마디도 없는 것이 이상하구나.”

다크웹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로 부쩍 싱글벙글 온라인 세상에 관심을 가지는 이수련이었다.

어째 순서가 반대인 것 같긴 한데, 이수련은 앨리스한테 특강도 받더라.

해결사 사무소가 아니라 노인대학이 될 판이다.

기밀 작전의 의미를 알고 있냐고 물으려는데, 사무실을 가로지르던 앨리스가 패드를 만지며 나 대신 이수련의 의문에 답해주었다.

“한 마디도 없지는 않아요. 그 시간에 거기 상공을 지나가던 항공기에서 아래쪽을 찍은 사진이 있더라고요.”

앨리스가 내민 패드를 보니 엄청난 연기가 피어오르는 사진이 떠 있었다.

“그래! 이거 다 몰살시킨 다음에 소각처리하는 거야! 매연 엄청나게 나와서 다른 애들이랑 이거 끝나고 건강 검진해봐야 한다고 그랬거든. 그런데 이 사진 왜 이래? 여기가 뚝 잘라 붙인 것처럼 이상한데.”

“관측 회피 장치가 오류를 일으키면 그런 현상이 발생한대요. 사장님 말씀대로라면 전투가 워낙 격렬해서 장치에 영향이 갔나 보네요. 아니면 담당하던 마법사나 기술자가 잠깐 신경 쓰지 못할 상황이 있었다던가요.”

“그것도 맞아. 손 모자라서 나중에는 마법사도 불려왔거든. 자기는 전투마법사가 아니라고 징징거려서 좀 시끄럽긴 했어.”

“지원 전문 마법사를 전장에 던져 넣은 게 알려지면 마법사연맹에서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그 마법사가 익힌 계열의 마법협회에서도 항의가 들어올 수 있어요.”

“그건 중령이 알아서 하겠지. 설마 항의를 나한테 하겠어?”

내 간결한 대답에 이수련과 앨리스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보길래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맞서주었다.

“그래서 책임자 아니야? 그리고, 당장 뭐라도 안 하면 클론 발바닥에 깔려 죽게 생긴 판에 뭐라도 해야지. 그렇잖아?”

“낭군의 말이 거칠기는 하나 틀린 것 같지는 않구나.”

끄덕이며 납득하는 이수련과 달리 앨리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향해 미덥지 못하다는 신호를 잔뜩 보낸 채로 패드를 다시 터치했다.

이번에는 짧은 동영상이 떴다.

작은 비행기 그림이 움직이다 사라지는 영상이었다.

“전투기 얘기도 맞아요. 수도방위사령부 제1 비행장에서 출격한 비행기가 그쪽으로 진입하기 직전에 항공 추적에서 사라져요.”

“이걸 일일이 다 표시해서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있어? 누군가는 이걸 다 체크하면서 보고 있고?”

“열차 덕후처럼, 항공기 덕후도 있어요. 네오-서울을 비롯한 한반도 중부는 거대 권역들이 많아서 항공기들이 많이 뜨고 내리니까 어떤 시간이든 누군가는 여길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걸요. 그리고―.”

앨리스가 패드에 손을 한 번 더 대자 화면이 바뀌며 마구 흔들리는 동영상이 재생됐다.

동영상에서 날뛰는 사람은······나였다.

“나네?”

‘나네’라는 두 글자를 말하는 사이, 영상 속의 나는 거신족 클론 하나를 베고, 하나를 얼리고, 다른 하나를 태우는 중이었다.

주머니에서 꺼내 흩뿌린 씨앗들 때문에 내 주변은 온통 거칠고 질긴 넝쿨 투성이었다.

영상은 곧 다른 곳을 비췄고, 내가 데려온 팀원들이 클론과 맞서는 장면, 그 너머로 폭탄이 터져 불기둥이 치솟고 클론의 사지가 날아다니는 장면이 차례로 지나갔다.

20초도 안 되는 영상은 핸드헬드 기법으로 찍은 전쟁 영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긴박감 넘쳤다.

“소셜 미디어에 1분 정도 게시됐다가 사라진 영상 복구 버전을 마고 씨를 통해 받았어요.”

앨리스의 말을 듣고, 팔짱을 낀 나는 말했다.

“중령이 분명 그랬는데. 이거 특급 기밀이라서 촬영은 일절 안 된다고.”

“현장에 있던 군인 하나가 네트워크 연결이 되지 않는 기기로 촬영해서 가지고 있다가 복귀하자마자 올린 것 같더라고요.”

“간도 크네. 병사래? 간부래?”

답은 신시아에게서 나왔다.

“간부요. 중사던데 군사 재판에 넘겨졌어요.”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좀 말지. 꼭 해서 화를 불러요.”

“게시된 시간은 1분 내외였지만, 조회 수가 백만 단위고, 링크 공유 역시 30만 회를 넘었어요. 네오-서울 시청 쪽에서는 종합운동장 사태도 아직 수습이 다 안 된 마당에 더 이상의 이슈를 만들기 싫은 거겠죠. 괴소문이 유포되면 네오-서울이라는 금자탑에 균열이 생기는 거니까요. 특히나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더더욱요.”

신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 앨리스가 말했다.

“시청이나 공공 집행본부 쪽에서는 일단 영상에 대해서 무대응으로 나서고 있어요. 단편 영화라거나 만델라 효과로 치부할 셈인 거죠.”

그때, 이수련이 내 팔을 톡톡 건드리더니 속닥거렸다.

“낭군, 만델라 효과가 무엇이냐?”

나도 속닥여 주었다.

“저도 모르니까 그냥 적당히 알아듣는 척해요.”

“오호······.”

하지만 우리의 속닥거림은 예리한 앨리스의 청력을 벗어날 수 없었다.

“다수가 거짓된 기억을 공유하는 걸 만델라 효과라고 해요. 일종의 사회적 착각이죠. 프리토리아 권역의 가젤 수인, 만델라에게서 유래했어요. 만델라는 육식계 수인과 초식계 수인 간의 오랜 차별을 철폐한 걸로 유명하죠. 어쨌든 그는 사실 부인과 백년해로했음에도 짧은 결혼 생활 끝에 파경을 맞았다고 오해하는 데서 만델라 효과가 유래했는데······.”

만델라가 그 만델라라면 내가 아는 넬슨 만델라와 이쪽 세계의 넬슨 만델라가 미묘하게 다르긴 한데, 이 사실이나 지금 앨리스가 말하고 있는 사실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다행히도 늘 넘침과 부족함을 잘 파악하는 신시아가 앨리스의 발동 걸린 정보 공유를 멈춰주었다.

“그러니까 앨리스 네 말은, ‘마치 영상 자체를 잘못 본 것처럼 착각을 유도하려는 셈이다’. 이거 맞지?”

“음······맞아요.”

“다른 내용으로 넘어가도 될까? 더 중요한 게 있잖아.”

“맞아요.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신시아 언니가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저는 공공 집행본부 쪽에서 받은 정보와 자료지만 언니는 아무래도 직접 들은 게 많을 것 같아요.”

“그럼 스크린 좀 내려줄래?”

스크린이 내려오고, 신시아가 목걸이에서 데이터를 뽑아 앨리스에게 넘겨주자 앨리스는 그걸 패드와 연동시켜 스크린에 띄웠다.

네오-서울과 그 외곽 지역까지 표시된 지도였다.

처음 보는 사람들의 사진이 외곽 지역 여기저기에 떠 있었다.

“디에고랑 박 여사 사진도 있네?”

“맞아요. 백수왕 디에고랑 디스트로이어Destroyer 박예진 여사죠. 짐작하셨겠지만 여기 사진들은 이번 클론 소탕 작전에 참여한 법령 대상자예요.”

사진들은 대략 서른 개 정도로 보였다.

“네오-서울의 능력 제한 법령 대상자는 쉰 명 중반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 중 서른이 넘게 참여했으니 60%가량이 참여했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지금.”

디에고와 박여진 사진을 시작으로 검은색 엑스표들이 줄줄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몇몇은 붉은색 엑스표가 그어지기도 했다.

멀쩡한 사진은 몇 남지 않았다.

신시아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검은색은 부상, 붉은색은 사망이에요. 부상도 일주일 정도의 요양이 필요한 대상자가 있는가 하면 중환자실에서 목숨만 붙어 있는 대상자도 있어요.”

“이게 다······.”

신시아가 흐려지는 내 말끝을 붙잡고 마무리 지어주었다.

“트라이포드의 사냥 때문이에요. 지금까지 나타났던 놈들을 애송이로 보이게 할 정도의 거물들이 트라이포드에 합류했다는 게 속속 확인되고 있어요. 본격적인 네오-서울 침공이 시작되고 있는 거죠.”

어느새 심각해진 표정의 이수련이 신시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저만한 크기와 수를 가진 거신족 클론을 만들려면 대단위 공장이라도 필요할 것 같은데 그건 역시 중화권 권역의 도움인 것이더냐?”

“이제 숨길 마음도 없는 것 같던데? 클론 수백 기가 늘어선 위성사진이 매일 몇 장씩 찍혀 나와.”

“그걸 옮기는 건?”

“클로카이. 그 미친 물질계 마법사라면 시간과 노력은 조금 들어도 옮길 수 있을 거야.”

장의 곁에 있던 쥐 수인을 말하는 것일 터.

공간을 다루는 것에서는 다른 마법사들보다 몇 차원 정도는 앞서 있을 거라는 펠루다의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만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졌다고.

신시아가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그 쥐새끼 때문에 가지고 있는 유통업체들 주가가 끝도 없이 폭락하길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이라고 한 지가 언젠데······.”

언제인지 물어보고 싶지만 못 들은 걸로 해야겠다.

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다.

암, 그렇고말고.

눈을 돌려 스크린에 떠 있는 지도를 보다가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장······. 이유가 뭘까.”

앨리스가 되물었다.

“무슨 이유요?”

“이렇게나 네오-서울에 집착하는 이유.”

“마고 씨도 똑같은 소리를 하더라고요. 수연을 심문해봐도 자기 역시 모른다는 말밖에 안 하더래요.”

“제대로 심문한 거 맞아?”

“수연은 잡혀들어간 이후로 계속 야타가라스랑만 심문 중이라던데요?”

“아주 제대로 했겠네. 넘어가자.”

내가 목격한 것에 근거한다면, 수연은 야타가라스와 마주하는 동안 초 단위로 자아가 붕괴 중일 거다.

어후······그걸 어떻게 버티냐.

나였으면 진작 입고 있는 팬티 색깔부터 비밀기지 위치까지 술술 불었다.

아니다.

수연도 술술 불었을 거다.

야타가라스가 안 믿어줘서 문제지.

이수련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가소로운 것들이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구나.”

그러더니 바이저를 쓰고 사무실 구석으로 가서 어딘가와 통화를 했다.

흘러나오는 소리로 듣자 하니 북부 중화권 권역에 들어가 있던 퓨전 코프의 로봇을 산업용, 가정용, 군용을 가리지 말고 모조리 회수하라는 것과 혹시라도 다른 루트로 제공하려다 걸리는 놈들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부숴버릴 거라는 엄포였다.

지금은 관심 없는 척해도 역시 자기가 나고 자란 땅이라 무시당하는 꼴은 못 보나 보다.

하기야, 그렇지 않았으면 불사조를 물고 올라가지도 않았겠지.

앨리스에게 물었다.

“다른 건 없어?”

“이번 사태의 피해자인 페룬과 프로이데가 단단히 열 받았어요. 각 마탑주가 트라이포드와 적대하겠다고 선언했어요. 아예 방송사 불러놓고 기자회견까지 하던걸요.”

“그건 봤어. 깜짝 놀랐잖아. 발렌시아는 그런 자리에까지 빠따를 들고나오더라.”

“파견 나가 있던 페룬 마탑의 전투마법사들한테 전부 귀환령이 내려졌다잖아요. 전쟁 사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집중하겠다는 의지죠. 프로이데 마탑은 아예 네오-서울에 전격적으로 협력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어요. 둘 다 아시아에서 한 손에 꼽히는 강철계, 빙결계 마탑이니까 다른 마탑들도 속속 입장을 정해야 할 거고요.”

“일이 커지네. 이러면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겠는데?”

“아무래도 그렇죠.”

내 걱정이 빗나가길 바랐건만, 결국 사흘 뒤 네오-서울 시청은 브리핑을 통해 다수의 거신족 클론에게 압박받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네오-서울에게 가해지는 반사회적 테러와 압박을 주도하는 세력을 끝까지 응징하겠다는 발언으로 브리핑이 끝을 맺었다.

법령 대상자들에 대한 건 한 마디도 나오지 않은, 어떻게 보면 의도적으로 축소된 브리핑이었다.

브리핑 발표 직후, 나는 헤지르 대주교를 만나고 있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고?”

“거신족 혼혈이기만 하면 다행인데, 구성 물질도 제각각이고 무엇보다 머릿수가 엄청나요. 영감님이 보시면 깜짝······.”

깜짝 놀란다고 하려다가 말을 끊었다.

대충 들어보니 영감님 왕년에는 고개를 어디로 돌려도 다 자기가 움직이는 좀비였다는데 머릿수로 깜짝 놀란다고 하는 건 좀 과장 같아서.

“깜짝 뭐?”

“마지막은 잊으세요. 여튼 이렇게 소모전만 펼치고 있긴 그렇다는 거죠.”

“흠······.”

“이런 일이라면 전문가가 있잖아요. 연결 좀 해주세요.”

“그쪽도 바쁠 것 같긴 한데, 일단 물어는 보겠네.”

“감사합니다!”

“대신,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데 자리를 마련해도 되겠나?”

“저를요?”

“그래. 자네를. 비밀리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