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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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한테 번개 맞을 때보다는 덜 짜릿하네.”
기세에서 밀리면 안 되기에 뱉은 말이지만 몸 어느 한구석 쑤시지 않은 곳이 없다.
[지락地落], [접지], [흘려보내기]와 같은 스킬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그랬다.
원래는 받아서 되돌려줄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담고 있는 힘이 워낙 커서 되돌려주지는 못하고 받아내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광자 검날이 평소처럼 정갈하게 솟아오르는 형태가 아니라 불규칙한 스파크를 만들어내며 치솟았다.
글라럽이라고 하는 이 오크의 발도를 막은 충격을 아직 해소하지 못한데다가 비 오는 날의 웅덩이 수면처럼 파장을 잔뜩 일으키는 티셔츠 역시 검으로 힘을 밀어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흩어지는 김 너머로 오크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등에 남아 있던 철판을 다시 옆구리에 장착 중이었다.
저릿함 때문에 올라가지 않는 어깨와 손가락에 힘을 주어 검을 머리 높이로 들어 올렸다.
위험을 직감한 것일까.
오크는 가볍게 뛰어 몸을 뒤로 피했다.
엎어지면 닿을 거리였던 나와 오크 사이가 대략 3~4m는 될 정도로 늘어났다.
상관없었다.
가볍게 내리그으니 검의 주변 공간이 휘었다.
수십, 어쩌면 수백 회의 충격파가 터져 나오며 발생하는 현상.
오크는 다시 자세를 낮췄다.
그녀의 몸 곳곳, 피부 아래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저 과정 직후, 철판의 모양이 변화하고 엄청난 속도로 검을 뽑아냈다.
그걸 아까처럼 바로 앞에서 한 번 더 막을 자신은 없다.
이대로 두면 디에고가 틀림없이 죽는다는 생각에 뛰어들었지만, 그걸 그렇게 정면에서 받아내고 어디 한 군데 터져나가거나, 하다못해 검이 멀쩡한 것도 굉장한 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두 번째는 없다.’
[파도천]
검이 품고 있던 힘들을 한 방향으로 내보냈다.
터져 나오는 충격파 사이 사이로, 스파크가 공간을 접으며 내달렸다.
그 끝에 이를 악문 채로 다시 검을 뽑을 준비를 하는 오크가 있었다.
조금 전에 비하면 자세도 불안정하고, 철판이 변형된 두 개의 레일에서 퍼지는 스파크도 위력이 약했으며,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대로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
오크의 정면에서 불길한 보랏빛의 도형이 그려지기 전까지는.
순식간에 생겨난 도형은 내가 날려 보낸 스파크와 충돌할 것처럼 다가왔다.
도형이 꿈틀거리나 싶더니, 스파크를 덮어씌우려는 듯이 움직였다.
장의 옆에 있던 비쩍 마른 쥐 수인이 계속해서 다양한 형태의 수인을 맺었다 풀었다 하는 것이 보였다.
저놈이 만들어낸 도형이 분명했고, 정확히 뭘 하려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의도대로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아직 [파도천]이 유지되고 있었기에 검을 한 번 더 휘둘러 스파크가 출렁이게 했다.
나아가던 스파크가 도형을 훌쩍 뛰어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도형의 면적이 확장되며 스파크를 집어삼켰다.
잠시 뒤, 오크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크으으······.”
스파크를 삼킨 도형이 사라지자, 레일 사이에 집어넣을 검을 떨어트린 채 손을 부여잡은 오크의 모습이 드러났다.
칠판을 긁는 것처럼 불쾌를 유발하는 목소리의 쥐 수인이 중얼거렸다.
“일부이긴 하지만 압축을 뚫어내고 닿았단 말인가.”
그런 것까지는 모른다.
스파크를 없애려고 하길래 아직 막히지 않은 곳으로 빠르게 넘어가 오크를 타격하게 유도한 게 전부다.
쥐 수인을 바라보고 있던 펠루다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내 귀에 흘러들었다.
“정말 클로카이인가? 유일무이한 공간술사······. 이런 괴물들이 왜 여기에······.”
나도 궁금하다.
확실한 건, 이 이상으로 상황이 길어지면 다른 이들의 목숨은 장담하기 힘들 거라는 것 정도다.
오크 하나만 해도 위협적인데 공간술사인지 뭔지 하는 쥐새끼도 절대 보통은 아닐 것 같다.
아직 장은 빙글빙글 웃고 있을 뿐 자리에서 몇 걸음 움직이지도 않았고.
‘일단 하나라도 빠르게 제거하는 것이 생존 확률을 높이는 길이다. 먼저 다친 놈부터.’
오크를 처리하기 위해 움직이기 직전,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처음으로 장의 웃음이 사라졌다.
내 뒤에 있던 디에고가 중얼거렸다.
“통신 연결이 안 됐었는데?”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니 먹물로 이루어진 까마귀가 날아와 샴록의 팔에 앉나 싶더니 곧 문신으로 변해 샴록의 팔에 스며들었다.
통신이 불안정한 걸 확인하고 헤드쿼터로 까마귀를 직접 날려 보낸 모양.
때로는 아날로그가 더 나을 때도 있다는 걸 가슴 깊이 실감했다.
멀리 세 기의 군용 헬리콥터가 낮은 고도를 유지하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오메가.”
다시 나를 부르는 장의 목소리.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 반가웠어요. 하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죠.”
쥐새끼가 수인을 바꿔 맺자 아무것도 없던 장, 쥐새끼, 오크의 뒤에서 공간이 허물어지며 그들을 끌어들였다.
오크의 분노 가득한 눈이 나를 담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외쳤다.
“공격해!”
[에피시]로 불붙인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적토마가 땅을 박차는 소리, 깡통이 염주를 촤륵거리며 훑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몸의 절반 이상이 공간에 삼켜진 장이 내게 말했다.
“전 상사에게 안부 전해줘요. 이대로 가면 서운할 것 같아 선물도 준비했으니까, 즐겨줘요.”
화륵-
어느새 장이 사라진 자리를 검이 헛베었다.
불꽃만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를 뿐이었다.
뒤늦게 도달한 상투가 경악했다.
“이게 가능해? 물질계 마법 같은데 한 번에 셋이나 옮겨 놓는다고? 이렇게 짧은 시간에 추가적인 준비 없이?”
펠루다가 답했다.
“클로카이. 오죽하면 물질계 마법사가 아니라 유일한 공간술사라고 불리는 놈이야. 죽었다고 들었는데.”
“오크는 글라럽 맞지? 뭐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네.”
상투는 곁눈질로 나를 한 번 흘끗 보고 조심스레 말했다.
“가운데 놈이 실세 같던데······누군지 대장은 알고 계시죠? 그런 눈치던······. 으윽!”
앞다리로 상투의 옆구리를 걷어차 버린 적토마가 말했다.
“더 들어서 좋을 게 없다. 우리에게나 대장에게나.”
그저 돌진하는 단순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사리판단은 확실한 것 같았다.
단순해서 확실한 건가.
검을 역전개한 나는 장의 말을 곱씹었다.
“선물?”
위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대장!”
고개를 들어보니 언제인지 모르게 근처의 나무 중 가장 높은 나무에 올라간 눈깔이 외쳤다.
녀석의 목소리가 조금 흔들렸다.
“옵니다! 졸라 몰려와요! 상투! 나보다 더 위로 가서 봐봐!”
바로 도깨비불로 변한 상투가 위로 솟기 전, 괴성과 함께 날아든 거신족 클론이 우리 쪽으로 날아오던 헬리콥터 하나에 뛰어드는 것이 보였다.
비틀거리던 헬리콥터 하나가 추락하고, 남아 있던 두 기의 헬리콥터는 고도를 높이며 아래로 미사일과 기관총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소음 때문에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을 걸로 생각했던지 통신 채널을 통해 눈깔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우리가 처리하던 것들이 옵니다! 수는······몰라요! 최소 100? 저 큰 것들이 다 어디에 숨겨져 있던 거야!
갑작스러운 사태에 모두가 당황하는 가운데, 나는 귀걸이를 만져 모두에게 내 말이 전해질 수 있도록 설정하고 말했다.
“대형 갖춰. 막는 것들 다 쳐내면서 돌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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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 에어로 레토나가 네오-서울 서남부, 임시 통제 조치가 내려진 산길을 내달렸다.
고르지 못한 길 때문에 운전병이 속도를 낮추자 옆에 타고 있던 카마던 중령이 소리쳤다.
“속도 줄이지 마! 빨리 가야 한다고!”
긴장한 표정의 운전병이 카마던 중령에게 말했다.
“더, 더 이상 속도 내면 대열에서 이탈할 수 있습니다!”
뒤쪽 칸으로 고개를 내민 중령이 통신장비를 만지는 장교에게 말했다.
“뒤쪽이랑 통신 돼?”
“그렇습니다.”
“수시로 연결 확인하고 끊기는 그 즉시 나 불러. 알겠어?”
답도 듣지 않고 다시 운전병에게 고개를 돌린 중령이 말했다.
“이제 밟아.”
다시 속도를 내는 레토나에서 카마던은 입술을 씹었다.
능력 제한 법령 대상자들로 이루어진 팀들을 지원하는 작전을 총괄하게 된 것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디에고, 박예진 여사 팀을 시작으로 다른 법령 대상자 팀들도 차례로 통신이 끊겼다.
며칠 간의 작전으로 인해 헤드쿼터와 각 팀 간의 거리가 멀어진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당장 수색이나 지원팀을 편성해야 했지만, 카마던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거신족 클론으로 추정되는 괴생명체 사체의 수거와 소각을 위해 편성된 인원과 그 인원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경비 인원도 부족한 판이었다.
근처의 다른 부대에 요청하려 해도 네오-서울 외곽 곳곳에서 비슷한 작전이 진행 중인 터라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그나마 오메가 팀이 디에고, 박예진 여사 팀에게 가보겠다고 한 마지막 통신이 한줄기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먹물로 된 까마귀가 작게 접힌 쪽지를 물고 헤드쿼터에 날아들었다.
가장 신속히 보낼 수 있는 병력을 보내달라는 요청.
고민고민하던 카마던은 헬리콥터 세 대를 보냈다.
그가 당장 움직일 수 있는 헬리콥터의 절반에 가까운 수.
까마귀의 주인이 현재는 공공 집행본부에서 파견된 인원이자 과거 리벨리온의 샴록이라는 사실을 오메가의 귀띔으로 알게 된 덕에 내릴 수 있었던 판단이었다.
다시 헬기와의 통신마저 두절 되자 카마던은 즉시 가용할 수 있는 전 병력에 전투 태세를 내리고 마지막 통신 위치로의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가갈수록 폭발음, 괴성이 뒤섞인 소리가 번져왔다.
뒤쪽에서 통신장교의 목소리가 들렸다.
“괴생명체들이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 같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카마던이 보냈던 헬리콥터 중 하나가 보였다.
거신족 클론 하나가 꼬리 날개와 몸체에 손을 걸고 있어 아주 아슬아슬한 모습이었다.
다른 거신족 클론이 뛰어 헬리콥터에 매달려 있던 클론의 발목을 잡았고, 무게 때문에 헬리콥터가 휘청하더니 점차 고도가 낮아졌다.
고개를 내밀어 핸들에 붙인 뒤 앞을 보고 있던 운전병이 중얼거렸다.
“어어······?”
이대로 가며 헬리콥터가 떨어지는 방향은 레토나의 위였다.
카마던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후진! 후진!”
급격히 멈춰선 레토나의 바퀴가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지만 거신족 클론을 매단 헬리콥터는 시시각각 레토나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카마던이 이대로는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찰나, 뇌전 화살이 날아와 헬리콥터에 기어오르려던 클론의 손목을 자르고 지나갔다.
손목 잘린 클론이 레토나 바로 앞으로 추락했고, 헬리콥터는 다시 원래의 고도를 되찾았다.
운전병이 놀라 악셀레이터에서 발을 뗀 사이, 적토마가 등에 펠루다와 상투를 싣고 와 클론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레토나에서 내리려던 카마던을 제지했다.
“내리지 말아요! 차 돌려요! 빨리!”
그 옆으로 어깨 위에 나비를 올려놓고, 옆구리에는 박예진 여사를 낀 채로 쿵쿵 소리를 내며 달리는 디에고가 스쳐 갔다.
디에고의 뒤쪽으로 오메가가 데려온 인원들이 각자 전력 질주를 하면서 클론들을 쳐냈다.
그리고 대열의 마지막에는 왕발의 어깨에 올라 덤벼드는 클론들을 향해 뇌전 화살을 쏟아내는 오메가가 있었다.
멈춰 서 있는 레토나와 그 뒤에서 속도를 줄이는 군용 차량들을 보고 오메가가 외쳤다.
“차 빼! 이 새끼들아!”
왕발도 포효했다.
“우워어어어어!”
그 뒤로는 전체적인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각양각색의 구성 물질로 이루어진 거신족 클론들이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