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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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척후와 탐지 임무 수행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는 눈깔의 목소리가 팀 채널을 통해 전해졌다.
“왜.”
-이쯤 됐으면 이게 뭔지 저희한테 알려줄 때도 되신 거 아닙니까?
상투가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갑자기 불려와서 이틀째 야전에서 구르고 있는 데다가 우리가 없애고 있는 이것들, 개체별로 구성 물질은 달라도 전체적인 외형은 다 비슷합니다. 말로만 듣던 거신족과 모습이 흡사한데······. 뭔지 정도는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녀석들은 내가 불렀다는 이유로 네오-서울에 모여 외부와의 통신도 차단된 이곳으로 옮겨졌다.
무슨 일을 하게 될 건지는 한마디도 듣지 못한 채로.
수도방위사령부와 공공 집행본부에서 제거한 클론의 수에 따라 적합한 보상을 해주겠지만, 어쨌든 얘들 입장에서는 대체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을 것이다.
다크웹에서도 이곳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고 하는 데다가 마주한 클론의 강력함도 보통 이상이었으니.
답을 해주었다.
“아무것도 안 묻기로 사인하고 들어 왔잖아. 그리고 때로는 잘 몰라도 일단 하라는 대로 하는 게 나을 때가 있는 법이야.”
-너무하십니다!
“그럼 돌아가던가. 펠루다가 모을 때 얘기 안 했어? 중간에 돌아가도 돼. 대신 상세한 내용은 함구하고.”
혹시나 해서 샴록을 바라보니 안 된다는 듯 나를 향해 고개 저었다.
“슬쩍 떠봤는데, 세부 내용 발설은 때려죽여도 안 된다고 그런다. 아닌가? 중간에 돌아갈 수도 없다는 건가?”
-누가요!
“감시역이.”
분명히 모두 통신 채널에 연결되어 있건만, 단 한 명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샴록이 비록 마데르노에게 패해 도망치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도 WSS 암흑가를 제패했던 실력자였던 사실을 알아보고 자기들끼리 수군대는 것 같더니 어느새 경계하고들 있는 것 같았다.
PMC 요원과 용병도 평탄한 삶을 사는 직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런 이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다가는 빤스 한 장 못 걸치고 쫓겨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악명 높은 곳이 WSS 암흑가이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반전으로 그런 샴록이 지금 공공 집행본부의 일로 파견 나와 있는 셈이니 일의 자초지종을 알고 있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이고,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궁금해할 만도 했다.
물론 궁금한 건 자기네들 사정이고 말해 줄 생각은 없다.
이래저래 설명이 길어질 게 뻔히 보이는데 그건 귀찮으니까.
자기는 절대 말할 일이 없다는 듯, 옆에 있던 왕발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우워어어어!”
“왕발이 말 좀 들어라. 다들 자기처럼 묵묵하게 주어진 과업에 충실 하자고 하잖냐.”
-걔 말은 대장밖에 못 알아들으니까 대충 하고 싶은 말씀 하시는 거 아닙니까?
“우워!”
“상투 넌 돌아오면 얘기 좀 하잔다.”
-나는 대장의 민주주의를 신뢰한다.
디에고를 만난 뒤 계속 울적해 보이는 적토마의 말을 마지막으로 잡담이 끊겼다.
전방에서 2기의 클론을 발견했다는 눈깔의 말이 있었던 직후였다.
지금껏 해왔던 대로 대응을 맡기자 왕발이 녹스 카트에 실려있던 블래스터를 어깨에 앉고 방열을 시작했다.
그 사이, 닌닌과 샴록에게 가서 물었다.
“중령이 지정해준 곳은 거의 정리 끝났지?”
“그렇소이다. 아니키.”
샴록도 고개를 끄덕여 닌닌의 말을 긍정했다.
“무리의 밀집도가 크게 낮아졌어요. 많게는 여섯, 일곱까지도 뭉쳐 다니는 무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많아야 셋을 넘지 않으니까요. 조우하는 빈도도 낮아지고 있고요.”
“다른 팀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나?”
디에고, 박예진 여사 팀 말고도 이쪽 구역에는 최소 셋 이상의 능력 제한 법령 대상자들로 이루어진 팀이 활동 중이었다.
앞서 말한 둘과 만났던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다른 팀들도 비슷한 수준이라면 클론을 제거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직접 나선 것도 클론이 일곱 기가 뭉쳐 있던 때 한 번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전부 뒤에서 오더 내리는 걸로 말끔히 해결했다.
원래 딜 중에 가장 찰진 게 입딜이라니까 내가 제일 고생했다는 데 감히 이의를 제기할 녀석은 없을 것이다.
왜 내가 다 모아놓고 나는 놀고 있냐고 눈깔과 상투가 작게 이의를 제기하긴 했었다.
좀 안 봤더니 대가리가 큰 건지 간이 부은 건지 구분하기 어려운 발언이었지만 처음 마주한 일곱 기의 클론 중 넷을 나 혼자 처리하는 걸 보고 말이 없어지나 싶더니 박예진 여사를 제압했을 때는 내 곁에 오는 것도 눈치를 보더라.
그게 이틀 전이고 지금 또 둘이 무슨 얘기를 한 건지 세부 작전 내용을 알려달라고 투덜거리는 걸 보면 도깨비는 참 능글맞고 오크는 퍽이나 멍청하다는, 각각의 종족에 관련된 편견을 강화해주고 있었다.
‘종족이 아니라 개별적 특성을 가진 각각의 개체로 바라보아요.’ 하는 차별 방지성 캠페인이 네오-서울 시청에서 주관해서 펼쳐지고 있다고는 들었는데 당사자들이 저 모양이니 편견이 누그러지기는커녕 강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카마던 중령이 있는 헤드쿼터에 연락을 넣어본 샴록이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쪽도 얼추 마무리되는 것 같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콰아앙-
왕발의 블래스터에서 탄환이 발사되는 소리가 요란했다.
되물었다.
“그런데?”
“디에고, 박여사 팀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얼마나?”
“2시간 이상요.”
그걸 들은 닌닌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눈썹이 여덟 팔八 자를 그렸다.
“헤드쿼터와의 정기 통신 기준은 30분 내외, 늦어도 1시간을 넘기지 말라고 권장했었던 것으로 기억하외다.”
샴록이 덧붙였다.
“외부 관측을 피하려고 이 일대에 설치된 통신 방해장이나 시각 교란 장치가 많을 거예요. 그것들과 간섭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서는 통신이 안 될 리가 없을 텐데······.”
팔짱을 낀 닌닌도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나는 한가지 가능성을 더 제시했다.
“아니지. 하나 더 있지.”
둘의 시선이 내게 달라붙었다.
“디에고랑 박여사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그건······둘 중 하나와 직접 검을 맞대본 아니키라면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하오만······.”
둘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닌닌의 함축된 물음.
닌닌의 의도와는 조금 다른 답을 내놨다.
귀걸이를 만져 지금의 대화가 통신 채널로 흘러 들어가지 않게 했다.
“닌닌, 다른 애들은 몰라도 너는 짐작했지? 우리가 처리하고 다니는 거. 거신족이야. 그것도 리벨리온의 수장인 녀석을 베이스로 해서 여러 가지를 섞어 만든 아주 괴악한 놈이라 할 수 있지.”
“오메가!”
꼬박꼬박 붙여주던 ‘씨’도 떨어트려 놓고 올 만큼 다급한 샴록의 외침도 내 말을 끊을 수는 없었다.
“거신족이 아무리 희귀한 종족이라지만 의료 인술을 익힌 닌자라면 진Gene 데이터나 VR을 통해서 접했을 겁니다. 아니어도 방법은 많죠. 다크웹, 딥스페이스 등등. 게다가 이 녀석은 혼자 움직이는 용병이니 어디서 누구와 팀이 될지 몰라요. 그러니 거신족과 만난 적은 없다고 해도 짐작 정도는 하고 있었다고 추측하는 게 비약은―.”
닌닌이 내가 하려던 말을 채갔다.
“―아니외다. 말은 하지 않았으나 대장이 했던 말 그대로라 할 수 있소.”
“그걸 따져 물으려고 한 건 아니야, 네 상식선에서 생각해보자는 거지. 희귀하디 희귀한 종족을 클론화하는 걸 목격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그것들로 이루어진 무리와 전투한다는 거. 납득이 돼?”
입술을 달싹이던 닌닌이 결론을 냈다.
“되지 않소이다. 하지만 직면한 현실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소.”
“그래. 그러니 마찬가지로 디에고와 박여사가 강한 건 분명하지만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경우의 수를 고려하지 않을 필요는 없다고 봐. 아니었다면 내 오지랖과 쓸데없는 상상에 불과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대비할 방법과 시간을 마련할 수 있으니까.”
다시 샴록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중령은 뭐라고 합니까? 인원을 보내겠대요?”
“지금 클론의 사체 수거에 투입할 인원도 부족한 모양인 것 같아요.”
하긴, 우리만 해도 불규칙하게 클론들과 조우하는 탓에 숙영지로 복귀도 하지 못하고 불침번을 세워가며 이틀째 노숙 중이었다.
그간 불태운 클론들의 수만 세 자리가 넘어가는데 이 지역에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니 클론 잔여물과 사체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돌아가려고 하면 또 튀어나오고, 됐나 싶으면 눈깔이 또 한 무리를 발견하고······.’
생각 중에 머릿속에 불꽃이 튀었다.
불규칙하다고 생각한 클론들과의 조우가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면?
“샴록. 스크린에 우리 이동 경로 표시되어 있죠? 펴 봐요.”
쫙 펴진 플렉시블 스크린에 떠오른 군용 지도에는 지역 진입부터 이동 경로를 비롯해 조우 시간과 무리의 규모까지 기입된 전투 기록이 함께 있었다.
“복귀하려고만 하면 클론이 한둘씩 튀어나와서 전투를 벌이거나 우리를 유도하려고 했다면 내가 과민반응 하는 건가?”
“흠······. 생각해보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닌 듯도 싶소이다.”
“그 바람에 숙영지는 물론이고 헤드쿼터랑도 거리가 벌어졌지. 그런데 이런 방식의 조우가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팀들한테도 똑같이 벌어졌다고 생각해봐.”
닌닌이 잠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반면, 그래도 조직을 이끌어보고 많은 이들을 통솔한 경험이 있는 샴록은 바로 내 의도를 캐치하고 반응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도 도움을 주고받고 어렵겠군요. 알기 힘든 사이에 물리적인 거리가 벌어졌으니까.”
고개를 끄덕이고 쐐기를 박았다.
“누군가 법령 대상자들을 떨어트려 놓고 있는 것 같네요.”
“허나, 그렇다면 목적이 뭐란 말이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소수의 최후. 사냥당하는 거지.”
기가 안 찬다는 듯이 닌닌의 말이 빨라졌다.
“아니키는 그들과 비슷한 급이라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네오-서울의 능력 제한 법령 대상자라고 하면 위상이 굉장하외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이들이 사냥당한다고 하면······.”
동의를 얻으려는 듯, 닌닌은 샴록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지금까지 같이 붙어 다닌 정이 쌓인 건지 닌닌에게 제법 장단을 맞춰주던 샴록은 닌닌의 말에 화답하지 못했다.
샴록의 눈동자가 갈피를 잃고 흔들렸다.
사실상 트라이포드의 하위 조직인 리벨리온을 이끈 샴록은 트라이포드가 가지고 있는 저력과 곳곳에 뻗어 있는 영향력을 누구보다 잘 실감할 것이다.
게다가 마고가 어디까지 알려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출입을 봉쇄한 채 수리 중인 동대문 에어리어 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사건도 다른 이들보다는 더 깊게 알고 있지 않을까.
“이 난리를 피운 게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짐작만으로 넘어가긴 그렇네. 샴록은 중령한테 통신해서 디에고랑 박여사 마지막 발신 위치 받고 우리가 가보겠다고 해요. 왕발! 네 블래스터 한 짝은 카트에 싣고 다른 하나는 들고 뛰어야겠다. 다 실으면 속도가 안 날 것 같아.”
“우워어어!”
“할 수 있다고? 씩씩하네.”
꺼두었던 팀 통신 채널을 다시 열었다.
“펠루다. 끝나가냐?”
-5분 안쪽으로 정리될 것 같습니다.
“3분 안으로 끊어. 정리되면 눈깔 빼고 전부 여기로 모이고. 급속행군이니까 관련 능력이나 장비 있는 놈들은 미리미리 준비해.”
-상황이라도 발생했습니까?
“느낌이 쎄 해.”
-예?
“설계된 판 위에서 놀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내가 또 그런 걸 못 참아. 눈깔은 샴록한테서 좌표 갈 거다. 그거 받아서 경로 잡아.”
-확인했습니다.
출발한 지 대략 3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우리는 디에고와 박예진 여사의 마지막 정기 통신이 이루어진 곳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지속적인 전투 때문에 지역 정리에 이틀 가까운 시간을 소비했던 반면, 전투를 최대한 피하면서 가능한 직선 경로로, 속도를 올렸기 때문에 3시간 주파가 가능했다.
카트를 버렸거나 속도를 낼 수 있는 인원들만 추려 먼저 움직였다면 더 빨리도 도달할 수 있었겠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대형을 유지한 채로 움직여야 했다.
나무가 우거진 산 중턱, 전투 흔적이 가득했다.
그곳을 살피던 눈깔과 닌닌이 나를 불렀다.
“대장! 이건 백수왕이 타고 다니던······.”
디에고가 나비라고 부르던 거대한 표범의 것이 분명한 다리 한쪽이 처참하게 뜯겨 나뒹굴고 있었다.
“다들 경계하면서 주위 수색을―.”
말을 마치기 전, 멀지 않은 곳에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박혔다.
달려가 확인하니 인간의 형체로 보이는 그것은 분명 박예진 여사였다.
원래부터 피부 일부가 벗겨져 있던 박예진 여사는 지금 얼굴 한쪽이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어느 장치가 고장 났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깨졌다.
어순도 이전처럼 매끄럽지 못했다.
“오, 오메, 오메가 씨이히? 위허, 위험합니다. 당장, 지역에서. 지역의. 지역을. 이탈. 도주. 도망을.”
그녀가 날아온 방향에서, 아주 밝고 사교적인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오메가 씨? 네오-서울 바깥에서 뵙는 건 처음인 것 같네요? 그렇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