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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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를 비롯해 다른 이들에게 깡통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묘법은 안드로이드 파계승이다.
원래 반복 작업을 위해 만들어진 공업용 저성능 안드로이드였던 묘법은 끝없이 제약받고 통제되는 자신의 기구한 삶에 회의를 느끼다 결국 오류를 일으켰다.
그 결과 움직이는 것들에 대한 원인 모를 증오심이 그의 전신을 지배하게 되었다.
불쑥불쑥 치미는 그 욕구를 밖으로 내보여 들키기라도 하면 바로 처분 대상이라는 것쯤은 당시의 묘법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당연한 일.
고뇌하던 묘법은 고뇌를 끊기 위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불가에 입문했다.
그러나 묘법의 충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충동을 이곳에서는 살심殺心이라 한다는 말만 주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살심은 날마다 조금씩, 천천히 크기를 불려갔다.
어느 날, 묘법은 그를 향해 다가와 몸을 부비던 고양이의 목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화들짝 놀란 그는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고양이가 울었다.
야옹-
고양이는 훌쩍 담장을 뛰어넘어 사라졌다.
가늘게 떨리던 묘법의 손에서 점차 떨림이 사라졌다.
그가 조심스레 주먹을 쥐었다.
후회가 아닌 아쉬움이 주먹 안에 담겨 있었다.
이후, 어느 중이 밤만 되면 절의 담장을 넘는다는 소문이 퍼졌다.
부랑자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는 기사가 신문 귀퉁이에 작게 실리고 묘법의 가사에 핏자국이 묻어있는 걸 본 승려가 늘었다.
충동은 어느새 공허가 되어 묘법을 좀먹고 있었다.
묘법은 이미 중이라 할 수 없었다.
몇 주 뒤, 그가 머물던 절의 주지가 묘법을 불러들였다.
주지가 묘법의 이마에 찍힌 계인을 지우기 직전, 묘법은 스스로 일어나 자신을 받아주었던 곳을 등졌다.
일어서며 펄럭이는 가사 밑자락에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그리고 살심을 굳이 누를 필요가 없는 일,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되는 일을 찾아서 용병이 되었다.
파계승 묘법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때 즈음이었다.
때로는 광증에 빠진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잔혹하지만 일 처리는 확실하다는 평가와 함께였다.
그런 묘법은 지금 오메가에게 동원되어 열심히 거신족 클론 제거 작업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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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의 귀에 날카로운 외침이 꽂혔다.
“야! 어디가! 깡통!”
오메가나 다른 이들에게는 상투라 불리는, 도깨비 빈의 외침이었다.
의식 불명의 거신족 클론 둘을 처리하고 하나만 남아 있을 때였다.
하지만 빈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묘법은 저 너머, 전투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분명한 소음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박점순 여사가 분명하다는 펠루다의 목소리와 대장은 어디로 갔냐는 닌닌의 목소리가 통신으로 전해진 직후였다.
태생은 공업용 안드로이드이지만 용병의 삶을 거치며 신체 파츠 대부분을 전투용으로 교체한 묘법이다.
전투용 안드로이드의 정점이라는 박점순 여사에 대한 소문을 들어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정말 박점순 여사라면, 멀리서라도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그녀도 나와 같은 족속일까, 어떤 식으로 싸울까, 내가 그녀에게 맞설 수 있을까.
잡념이 부유했다.
게다가 ODC에서 지금은 사라진 브리가드에게 단독으로 맞서던 오메가에 대한 기억이 생생했다.
자신의 저장장치에 남아 있는 그 모습은 분명 당시의 상황 그대로이련만, 꺼내어 재생할 때마다 다른 깨달음을 가져오곤 했다.
펠루다와 닌닌의 말로 미루어보건대 박점순 여사와 오메가 대장이 맞붙는 자리, 묘법은 놓칠 수 없었다.
한편, 묘법이 떠나는 것을 목격한 상투가 욕을 하며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클론의 손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몸을 안쪽으로 파고들어 클론의 팔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전신에 힘을 단단히 주고 몸을 돌리면서 클론을 끌어당겼다.
상투의 전신에서 핏줄이 툭툭 불거졌다.
“으랴아아앗!”
상투는 노덴스가 문주로 있는 언더 스카이 파티에서도 촉망받는 인재였다.
[도깨비 체술]
[언더 스카이 파티 류]
[대大 자로 뻗은 상대를 내려다보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많지 않다]
상투의 움직임에 따라 클론의 발이 떨어지나 싶더니 거대한 덩치가 상투의 몸을 타고 넘어 등짝부터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말 커다란 대大 자였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몸 일부가 바위로 이루어진 거신족 클론이 하늘을 보고 눈을 꿈뻑이고 있을 무렵, 허리춤에서 작은 병을 꺼내 입에 술을 머금은 상투가 클론에게 술을 뿜고 불을 붙였다.
불이 붙은 거신족 클론이 날뛰는 것을 막기 위해 주먹을 질러 다리 한쪽을 으스러트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으스러진 클론의 다리가 꾸물대며 붙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를 간 상투였다.
“깡통 같은 깡통. 대장한테 그대로 일러바칠 거야.”
이것만으로는 힘들다는 것을 상투도 알고 있었다.
이 거신족 클론을 제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부에 불을 일으켜 녹이는 것이라는 걸 지금껏 체험했기 때문.
하지만 이렇게 불을 붙여 놓았으니······.
술을 다시 뿜어 불을 붙이자 클론이 일어나고 있는 주변에 원형으로 불이 붙었다.
멀리서도 잘 보일 정도로 불이 솟아 클론은 불의 벽에 갇힌 모양새가 되었다.
통신 디바이스를 만진 상투가 다급하게 말했다.
“왕발! 열추적 장치 달고 있어? 남은 놈한테 불붙여 놨으니까 탐지해서 한발 떨궈줘!”
-우워어어어!
상투는 왕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오메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대장! 왕발이 뭐랍니까?”
오메가는 박점순 여사의 빗발치는 공격을 받아내고 있어 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박점순 여사는 때로는 몸을 날붙이로 변화시켜 오메가를 공격하다가 잠시 거리를 벌려 관절이나 골격 이음새 부분에 내장되어 있던 블래스터를 쏟아내기도 했다.
겨우 자리에 도달한 묘법은 그걸 보고 석상이 된 듯 제자리에 굳고 말았다.
박점순 여사의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논리와 정합성이 느껴지는 동시에 예술성이 묻어났다.
묘법은 지금 오페라나 발레의 여주인공인 프리마 돈나가 뿜어내는 존재감을 직면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호흡이 필요 없는 안드로이드인 묘법이지만 숨이 막힌다는 관용적 표현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살심만으로 움직이는 자신이 저런 단계를 밟을 수 있을 것인가.
경이롭기까지 한 저 경지를 올려다보는 것이 가능하긴 할까.
용병으로 살기 시작한 뒤 조금은 빈도가 줄어들었던 번뇌가 끓어올랐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나무아미타불)
파계 된 지는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아직 스스로는 놓지 못한 불가와의 연을 되새겨주는 말을 되새기며 공허와 번뇌를 누르는 묘법의 눈에 박점순 여사 말고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양손에 검을 쥐고 박점순 여사와 맞서고 있는 오메가였다.
박점순 여사는 우아하고 고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오메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때로는 녹슨 칼날을 피하고자 바닥을 굴렀고, 날카로운 침처럼 변한 박점순 여사의 머리칼이 찔러 들어오자 균형이 무너진 것 같은 몸놀림으로 급히 쳐내기도 했다.
하지만 보기에는 조금 허술해 보일지언정 박점순 여사는 오메가에게 유효타를 단 한 번도 먹이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미세하게나마 여사의 피부에 생채기가 늘어났다.
박점순 여사의 스타일에 오메가가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묘법은 읽을 수 있었다.
어느새 달리는 것을 멈춘 적토마와 그 위에 탄 펠루다도 오메가와 박점순 여사의 전투에 시선을 고정했다.
펠루다는 생각했다.
‘대장이 괴물인 건 알았지만 법령 대상자, 천외천들과 대등하다고? 그래봐야 해결사······그것도 퓨어가?’
정확히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법령 제한 대상자 중에서도 소수인 일부를 제외하면 공공 집행자들과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수준이라는 걸 생각하면 전력을 내보인 야타가라스를 제압한 오메가가 보여주는 지금의 활약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메가와 야타가라스의 승부 결과는커녕 둘이 대대적으로 붙었다는 것 자체를 아는 이들은 공공 집행자들밖에 없었으니 이 자리가 비로소 오메가의 제대로 된 실력을 다른 이들이 목격하는 첫 자리였다.
오메가와 박점순 여사가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접전을 벌일 동안 거신족 클론을 찢어버린 백수왕 디에고도 오메가를 보고 어느새 얼굴이 경직되어 있었다.
켄타우로스의 곁에 붙어 나른한 얼굴로 지루하다는 발언을 할 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상투의 지원 요청에 따라 왕발이 날려 보낸 블래스터 포탄이 불붙은 거신족 클론을 뭉개고 터트리는 소음이 요란했지만, 자리에 있는 이들은 그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 사이, 차츰 전투의 중심이 오메가에게로 옮겨지고 있었다.
프리마 돈나의 우아한 움직임이 조금씩 틀어졌다.
프리마 돈나는 무대를 장악하지만, 그것은 온전히 그녀의 역량이 아니다.
그녀를 받치는 음악이 없다면 장악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박점순 여사가 전장의 프리 마돈나라면, 오메가는 그런 프리 마돈나마저 몸을 맡겨야 하는 음악을 이끄는 지휘자였다.
미친 듯이 빨라졌다가 순식간에 느려지고, 다시 불협화음을 만드나 싶더니 종국에는 천상의 화음을 끌어내는 전장의 지휘자.
변덕스러운 지휘자의 농간에 프리마 돈나는 자신만의 리듬을 잃고 휘청였다.
어느새 넘겨준 주도권을 돌려받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으나 지휘자는 오히려 그런 조바심을 이용해 더욱더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였다.
영악할 정도의 노련함.
박점순 여사는 어느새 자신이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언제 마지막으로 조바심이 들었던가.
아마 저장장치 어딘가 남아 있긴 하겠지만 여사는 지금 그때의 기억을 불러오지는 않았다.
과거에 겪었던 그 어떤 경험을 가져와도 지금 당장 겪고 있는 이 역경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오메가와 박점순 여사.
둘은 어느덧 산들바람이었으며 또 어느새 태풍이기도 했다.
바람과 바람 사이에 서로의 간격을 탐하고, 막아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티가 마치 흩날리는 꽃잎 같았다.
살벌하게 아름다운 그 과정에서 박점순 여사는 두 개의 지휘봉을 거침없이 놀리는 지휘자의 눈을 마주했다.
무서울 정도로 불타고 있었다.
어찌나 이글거리는지 열망이 전해져 올 정도.
오메가는 열망했다.
강자를 이기는 것을.
자신을 무시하는 것들을 꺾는 것을.
그것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인 행동 원리였다.
그 지극히 간단하지만 깊이를 알기조차 힘든 감정을 박점순 여사가 눈치챘을 때, 푸른 불꽃과 붉은 얼음이 엉겨 오르는 오메가의 검이 박점순 여사의 턱 끝에 닿아있었다.
그걸 목격한 디에고가 움직이려 했으나, 오메가는 박점순 여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돌아보지도 않고 아래로 내리고 있던 존속살해를 들어 올려 디에고가 있는 쪽으로 겨누었다.
지휘를 끝낸 지휘자가 열기 섞인 숨을 토해냈다.
프리마 돈나는 지휘자처럼 숨을 내뱉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 계속해서 동작음이 나고 있었다.
벌떡 일어서서 환호하는 관중도,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도 없었다.
길지 않은 전투를 목격한 이들은 모두 한여름 밤의 꿈이라도 꾼 것처럼 눈을 꿈뻑이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지휘자의 숨소리와 프리마 돈나의 동작음이 둘의 시선처럼 얽히었다.
여사의 눈가에 돌던 붉은 빛이 사라지고 동작음이 작아졌다.
마침내 막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