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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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서울 서남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 벼락이 떨어지는 썬더 콜링 필드가 작게 보이는 곳의 작은 언덕에서 내가 말했다.
“발사.”
“우워어어어!”
예티인 왕발의 양쪽 어깨에 장착되어 방열을 마친 채 포격 신호만 기다리던 블래스터가 계속해서 불을 뿜었다.
발사된 탄환은 하늘로 높이 치솟았다가 곧 아래로 떨어져 거신족 클론 다섯 정도가 있던 탄착지점 부근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저번에 봤을 때보다 명중률이 좋아진 것 같다?”
내 칭찬에 왕발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워! 우워!”
“블래스터 출력이랑 조준 장비를 손봤다고? 잘했다. 장비에 들어가는 돈 아끼다가 목숨 날아가는 거야.”
“우워!”
나와 왕발을 지켜보던 펠루다가 슬쩍 다가와 물었다.
“대체 어떻게 왕발이랑 말이 통하시는 겁니까? 예티 언어구조는 아직도 해석이 안 돼서 자동 통역 장치를 사용해도 결괏값이 엉망이라던데요.”
“뉘앙스, 무드, 행동 언어. 기타 등등 많잖아. 왕발이 말을 어렵게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말이 맞다는 듯 왕발이 펠루다를 향해 말했다.
“우워어.”
그때, 통신 채널을 통해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척후와 탐지에 특화된 오크, 눈깔이었다.
-착탄지점에 있던 목표 다섯 기 중 전투 불능으로 확인된 건 세 기. 남은 두 기는 화상과 찰과상 등의 피해 흔적이 보이긴 하지만 거동에는 큰 무리가 없는 듯합니다.
“앞에 세 놈도 확실히 전투 불능 상태 맞아?”
-두 기는 의식 불명, 다른 한 기는 의식은 있는 걸로 보입니다.
“뒤에 놈은 곧 회복하겠구만. 적토마! 펠루다랑 깡통 태우고 아직 의식 있다는 놈 회복하기 전에 마무리하고 와! 펠루다랑 깡통은 멀쩡하다는 두 놈에 대한 방어에만 집중해. 호승심이니 공명심에 까불다가 죽으면 개죽음이다. 상투도 가서 의식 없는 놈들 불태워! 빨리빨리들 가라! 늦으면 멀쩡해진 거신족 상대해야 한다!”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탐사단 호위대 전원이 모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많이들 모인 덕에 지시를 내리기가 아주 수월했다.
합을 맞춰 본 적이 있어 내 스타일을 아는 놈들이라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켄타우로스, 적토마가 펠루다와 안드로이드 스님인 깡통을 등에 태우고 땅을 박찼다.
녀석이 ‘민주주의!’하고 질러대는 소리가 요란했다.
상투도 도깨비불로 변해 적토마의 뒤를 너울너울 쫓았다.
“눈깔. 애들 갔으니까 주위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거 보이면 바로 말해라.”
-확인.
“확인은 반말이고 이 새끼야.”
-확인했습니다.
통신을 듣고 있던 닌닌이 미소 지으며 다가와 말했다.
“ODC 유적탐사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듯하오, 아니키.”
펠루다, 왕발, 눈깔, 적토마, 깡통, 상투, 닌닌까지 총 7명이 내 부름에 바로 응답한 녀석들이었다.
다른 놈들도 굉장히 오고 싶어 했는데 이미 맡고 있던 임무가 있거나 머물고 있는 곳이 너무 멀어 피치 못해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펠루다의 설명이었다.
다들 그때의 유적탐사 이후로 몸값들이 많이 올랐다고 들었다.
고맙다고 사무실로 선물 보내는 놈들도 있는 거 보면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기 온 녀석 중에도 당장 투입되어야 하는 의뢰나 임무가 있는데 일단 미뤄두고 온 녀석이 있다던가.
닌닌이 뒤쪽을 살피며 말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것이오?”
닌닌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팔짱을 낀 샴록이 있었다.
“내버려 둬. 우리가 너무 강해서 다 정리하면 어떻게 하나 해서 공공 집행본부에서 붙여놓은 거니까.”
마고는 내가 모은 인원만으로 내보내는 건 아무래도 불안 요소가 있다며 샴록을 파견했다.
마고가 아직 샴록을 100% 신뢰하는 건지는 알기 어려웠다.
어쩌면 이것도 샴록에 대한 마고의 시험일지도 모른다.
“알려진 것에 비해 문신 수가 확연히 적긴 하지만 분명 WSS 암흑가의 여제이지 않소.”
“언제 얘기를 하냐. 마데르노한테······.”
털렸다고 얘기하려다가 안 듣는 척하면서 듣고 있을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엘프는 오감이 예민하다지 않나.
특히 청력은 더더욱.
닌닌이 궁금한 게 많았던지 계속 내게 질문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처리 중인 클론들. 리벨리온으로 알려진 거신족 혼혈 같은데 왜 여럿 있는 것이오? 또 암흑가 여제와 거신족은 같이 행동하던 게 아니었소?”
“쓰읍. 그만 물어봐. 비밀 유지 계약서 쓰고 들어왔잖아. 거기에 추가적인 질문은 하지 말라고 쓰인 조항 확인 안 했어?”
“아니키가 계약서만 받고 서명은 안 하고 제출하는 걸 봐서 물어보는 것이외다. 받는 쪽에서도 별 항의가 없었고.”
그야 나는 공공 집행본부에서 의뢰받아서 움직이는 중이니까.
혼자 대놓고 서명 안 하긴 그래서 계약서만 받아서 귀퉁이에 낙서하다가 냈는데 이 원숭이 자식은 그새 그걸 봤네.
일단 얼버무려야 했다.
“서명했는데 네가 못 본 거야. 그리고 남의 계약서를 왜 컨닝해? 시험도 아닌데. 이거 웃긴 놈이네? 너 일 끝나고 입이라도 뻥긋하면 안 되는 거 알지? 그랬다가는 공공 집행본부에서 발주하는 의뢰를 받는 건 고사하고 네오-서울에 발도 못 붙인다.”
“게다가 이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다크웹에서도 언급되지 않던데, 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 일대를 가리고 정보 통제를 하는 것인지······.”
“나도 몰라 임마.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비지땀을 흘리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 다른 애들 열심히 뛰는 동안 내 옆에서 붙어서 구경만 하니까 몸이 근질거리지? 그래서 그런 질문이나 하는 거지? 너도 저기로 갈래?”
“이러지 마시오. 본인은 의료 인술을 전문으로 익혀 전투에서는 활약이 어렵소이다.”
“그러니까 메스 들고 거신족이랑 맞서기 싫으면 궁금한 게 있어도 참아.”
그때, 마치 두루마리처럼 안쪽으로 말려드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너비의 플렉시블 스크린을 펴 보고 있던 샴록이 내게 다가왔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원이 있군요.”
“다른 클론?”
“아뇨. 임시 식별코드가 있어요.”
이곳에 있는 이들은 능력 제한 법령 대상자와 군부대뿐이기 때문에 혹여라도 아군끼리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법령 대상자를 묶어 만든 팀이나 군부대별로 임시 식별코드가 부여되어 있었다.
불필요한 충돌을 방지하려고 그렇게까지 했는데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사실이 께름칙했다.
“우리가 있는 걸 모르고 있는 건 아닌가?”
그 말에 듣고 있던 닌닌이 뛰어가서 녹스 카트 위의 박스를 확인했다.
블랙박스 겸 통신 중계 장치 역할을 하는 박스였다.
“이상 없이 발신 중이외다!”
“그럼 이건 뭐지?”
스크린에 보이는 임시 식별코드의 방향이 바뀌었다.
내가 있는 방향으로 접근하나 싶더니 내가 데리고 온 애들이 거신족과 전투 중인 곳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펠루다. 그쪽 상황 보고해.”
-전투 불능이었던 세 기 중 의식 불명이었던 두 기는 도깨비불로 전소했고 남은 한 기는 깡통과 상투가 처리 중입니다.
“멀쩡했던 것들은.”
-저랑 적토마가 다른 인원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유인 중입니다. 따로 지시할 사항 있으십니까.
“할 수 있으면 포격 위치 기준 4시 방향으로 유도해. 2시 방향에서 의도를 알 수 없는 인원이 접근 중이다. 눈깔도 주변에 다른 클론 있나 주의하면서 빠져.”
-확인했습니다.
이곳에 남아 있던 왕발, 닌닌, 샴록에게 우리도 가보자는 말을 하려는 순간, 멀리서 나무들이 우지끈하고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짐승이 포효하는 소리와 기계가 맹렬히 가동되는 소리가 아련하게 뒤를 이었다.
“샴록, 임시 식별코드로 법령 대상자가 누군지까지 파악할 수 있나?”
“위치 정보 외에는 알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좋아. 닌닌, 왕발. 너희 둘이 여기 다 챙겨서 따라와라. 샴록도 마찬가지.”
“아니키는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시오?”
“먼저 가서 감히 어떤 놈이 남의 사냥감을 탐내나 얼굴이나 좀 보려고.”
다른 이들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남겨진 쪽이 느린 건 아닐 거다.
내가 빨랐을 뿐.
주변의 풍경을 뒤로 넘기며, 나는 소리의 근원지로 다가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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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루다는 거북 수인이다.
이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PMC 요원이기도 하며, 요인 호위나 탈출 작전 같은 방어적인 능력이 필요한 곳에서는 꽤 비싼 몸값을 받고 모셔지는 일도 드물지만, 종종 있는 편이다.
심지어 위타천이 종종 사석에서 말하는 ‘이름은 잘 모르겠고 맷집 좋은 거북이’가 펠루다를 뜻하는 것이라는 믿지 못할 소문까지 돈다.
그가 속한 PMC인 ㈜한강이 네오-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어서 펠루다는 네오-서울에 관한 여러 정보에 제법 빠삭한 편이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도 천외천, 다른 차원의 초인, 초월자 따위의 말도 안 되는 수식어가 앞에 붙곤 하는 능력 제한 법령 대상자들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심장을 포함한 하체 대부분을 기계로 교체한 켄타우로스의 등에 타서 거신족 클론을 유인하는 지금, 펠루다는 갑자기 등장한 두 명의 천외천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중형차 크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표범이 가벼운 발소리만을 내며 적토마의 옆에 붙었다.
적토마의 심장에 있는 피스톤이 미친 듯이 움직였지만 떨쳐내는 것은 어림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 표범의 등 위 서서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
“느리네.”
생김새로 보아 수인인 것은 확실하지만 정확히 어떤 종의 수인인지 정의 내리기 어려운 생김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것이 모든 수인들의 장점만을 몸에 담고 있다는 백수왕百獸王 디에고의 외형적 특징이었으니까.
그 사이, 이번에는 외장 일부가 벗겨진 여성형 안드로이드 하나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전신을 녹슨 칼날로 휘감더니 펠루다와 적토마가 유도하던 거신족 클론 하나를 수백 조각으로 도륙 내 버렸다.
모든 전투용 안드로이드들의 지향점이자 이상향으로 불리는 박점순 여사였다.
프로토 타입에 가까운 초기 형태의 안드로이드였던 덕에 당시의 미비하고 미흡했던 규제와 법령의 틈을 파고들어 제어 모듈, 통제 회로를 모두 제거하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가장 자유로운 안드로이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업그레이드에 업그레이드를 거쳐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네오-서울에서는 여러모로 골치 아픈 선례를 남긴 이 안드로이드를 잡아두기 위해 능력 제한 법령 대상자로 받아들여 대외활동을 하지 않는 대신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다.
매우 중요한 정보가 펠루다의 머릿속에 스쳐 갔다.
‘정식 절차를 통해 박예진이라는 이름으로 개명까지 완료했지만, 이전 이름의 임팩트가 강해서 여전히 박점순이라 불린다. 면전에서 점순이라는 이름을 꺼내고 살아남은 사람은 없다.’
적토마의 옆에서 달리던 표범이 마지막 남은 거신족 클론이 있는 방향으로 훌쩍 뛰었다.
디에고가 팔을 뻗자 깃털이 솟으며 날개가 되었다.
표범에게서 벗어난 디에고의 발에서 날카로운 갈고리발톱이 자라났다.
이내 그는 거신족 클론을 먹잇감으로밖에 보지 않는 거대한 독수리가 되었다.
펠루다는 이번 일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처리한 클론의 수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고 들었다.
꼼짝없이 목구멍으로 넘기기 직전의 음식을 뺏긴 기분이었지만 펠루다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펠루다가 입술을 깨문 사이, 디에고가 클론을 향해 쏘아져 내려갔다.
그때, 흑백이 뒤섞인 빛줄기 하나가 뒤에서부터 그어지며 공중으로 치솟아 클론과 디에고 사이에 끼어들었다.
“넌 뭔데 선객이 있는 걸 뻔히 보고서도 깽판을 치냐?”
기존의 검과 야타가라스에게 돌려받은 존속살해까지, 두 개의 검을 완전히 전개해서 양손에 들고 있는 오메가였다.
펠루다는 자신도 모르게 외치고 말았다.
“대장!”
오메가와 디에고가 대치하는 그 잠깐 사이, 박점순 여사가 남은 클론의 등 뒤로 접근해 베어냈다.
클론에게서 시커먼 피가 터져 나왔지만, 아직 완전히 처리하지는 못한 상황.
재빨리 몸을 피한 박점순 여사지만 피 몇 방울이 얼굴에 튀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디에고를 밀어낸 오메가가 그걸 확인하고는 짜증 섞인 목소리를 뱉었다.
“진짜 상도덕들 없네.”
그리고 아무런 악의 없이, 시커먼 피가 점점이 묻어있는 박점순 여사를 향해 말했다.
“점순이네. 점순이.”
펠루다는 기겁했다.
하지만 그 전에, 박점순 여사의 반응이 더 빨랐다.
삐이잉-
박점순 여사의 순했던 눈망울에서 붉은색 빛이 켜지고 오메가를 스캔했다.
안드로이드가 뿜어내는 광대한 살기에 오메가도 약간 주춤했다.
“왜, 왜 그렇게 봐······요.”
박점순 여사가 쇄도했다.
클론이 아닌 오메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