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211.
유리 벽 앞에는 녹음이나 녹화에 필요한 걸로 보이는 장치들이 올라간 테이블이 있었고, 이외에도 마이크나 작은 버튼 같은 것들이 있었다.
딱 영화에서 보던 취조실의 형태.
공공 집행자들의 심문이라길래 얼마나 대단한 최첨단 기술이나 이능이 동원될까 살짝 기대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성과를 내놓으라는 내 말에 야타가라스가 대답했다.
“아직 큰 진전은 없다.”
그리고는 마이크로 다가가 버튼을 누르고 수연을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하지. 너희 스스로 트라이포드라 부르는 조직에 협력하는 하부 조직과 구성원들을 말해라.”
숨을 쌕쌕거리던 수연이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다 말했잖아! 네오-서울에 있는 건 물론이고 다른 권역들에 퍼져 있는 것까지 전부!”
야타가라스가 고개를 저으며 마이크 옆에 놓여있던 서류 뭉치를 집어 들었다.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채워진 종이가 못해도 50장은 되어 보였다.
휙 휙 하며 그걸 넘기던 야타가라스가 표시되어 있던 곳에서 넘기는 걸 멈추고는 웃음기 하나 없이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아직도 네가 숨기고 있는 게 있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군. 그리고 이 조사에 매우 비협조적인 것도.”
수연이 핏발 선 눈으로 날카롭게 소리치는 소리가 이쪽으로 연결된 스피커를 통해 넘어왔다.
“으아아아아! 뒤적거리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보여주기라도 해! 보고 확인해줄 테니까! 그리고 당신 말고 다른 사람은 없냐고 몇 번을 물어! 말이 안 통하잖아! 말이!”
온몸으로 억울함을 주장하는 수연이었지만 워낙 단단히 결박되어 있어 조금 움찔하는 정도로 끝날 뿐이었다.
사흘 전만 해도 죽음 앞에서 웃는 여유까지 보이던 수연은 지금 거의 편집증 환자가 되었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었다.
하긴, 꼴을 보니 그 사흘간 야타가라스와 지옥의 문답을 진행한 것 같은데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수연의 정신력이 보통 이상의 강인함을 지녔다는 것에 바이크를 걸 수도 있다.
그런 수연이 애걸복걸하면서 다른 사람을 찾게 하는 야타가라스의 우직함은 말할 것도 없고.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약이 잔뜩 오른 수연의 거친 숨에도 야타가라스는 자기 할 말만 할 뿐이었다.
“기밀 정보를 반체제인사에게 보일 수 없다. 자기 처지를 자각하도록. 태도를 보니 지금까지 했던 발언의 진정성이 의심되는바,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 정도면 진전이 없는 게 아니라 진전이 생겨도 다 발로 걷어차서 치우고 있는 수준이다.
그걸 본 노덴스가 나를 향해 속삭였다.
“야타가라스 본인이 말하길 수도방위사령부식 심문이랍니다. 사흘간 잠도 안 재우고 달라붙어 있는 게, 보면서도 무서울 정도더군요.”
“듣고 싶은 말이 나올 때까지 조지는 것 같은데요.”
나도 저렇게 당할 뻔했다고 생각하니 뒤통수가 서늘하고 골통이 아찔했다.
담배 연기를 후우-하고 뿜은 노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군에 있을 때는 코에다가 설렁탕을 부어주곤 했답니다. 그럼 효과가 더 빠르다나요.”
검으로 수연을 베려 했을 때, 갑자기 야타가라스가 존속살해를 밀어 넣어서 막길래 처음엔 당황하고 이후에는 화를 냈는데, 지금 수연의 꼴을 보니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한 꼴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놈은 데려다가 야타가라스랑 앉혀놓고 1대1 대화 펑고를 시키면 절대 그런 소리 못 할 거다.
수연은 숫제 미쳐버리기 직전인 것으로 보였다.
“실신도 마음대로 못 합니다. 조금만 지치는 기색이 보이면 마고가 의식을 자기 공간으로 끌고 가거든요. 야타가라스도 함께요.”
그렇게 말한 노덴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도 안 재우는 걸로 모자라서 실신해도 못 쉰단다.
순수하게 감탄했다.
“야타가라스 본인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독특한 방향으로 활용하네요. 그 멍처······.”
“우직하다고 해두죠.”
아마 노덴스도 멍청하다고 말하고 싶었을 거다.
노덴스의 말이 이어졌다.
“본인도 알고는 있지 않을까요. 정말 악독하거나 의혹이 짙은 범죄자가 아니면 스스로가 상대를 안 하려고 한다니까요. 그래서 야타가라스에게 당한 일반인 피해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렇구나 하고 수긍하려다가 뭔가 이상해서 반문하고 말았다.
“저는 당할 뻔했는데요.”
잠시 뻐끔거리는 걸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노덴스.
“오메가 씨를 일반인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왜죠?”
“제 동생이 루트에 있는 건 아시죠?”
엘림 얘기다.
루트에 있는 것 정도가 아니라 기업으로 따지면 사장 정도의 위치 아니던가.
“알고 있습니다.”
“개인 자격으로 루트와 협력하면서 자기 정보를 관리하는 사람은 일반인 중에 없습니다. 공공 집행자가 범죄자를 심문하는 자리에 자연스레 참석하는 일반인도 없죠.”
반박을 하려다가 말이 턱 막혔다.
동생인 엘림은 내가 호리병으로 머리통을 깼지만, 형인 노덴스는 말로 나를 부쉈다.
역시 공공 집행자 중에서 그나마 정상인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는지라 이빨 터는 솜씨도 보통 이상인 건가.
우리가 이렇게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수연이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지만, 여전히 야타가라스의 표정은 평온 그 자체였다.
노덴스가 내 어깨를 톡 건드리고 말했다.
“나가시죠. 둘의 대화는 마고가 따로 분석해뒀습니다.”
“네? 그럼 왜 여기로 먼저 데려오신 거죠?”
“오메가 씨가 죽이려던 걸 야타가라스가 막았으니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는 아셔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마고를 만나기 전에 먼저 만나보셨으면 하는 놈이 하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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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에게 가기 전, 노덴스가 나를 다른 곳으로 먼저 안내했다.
지하에 있던 취조실과는 달리 별도의 공간에 위치한 2층 정도의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근무복을 입은 사람들이 일어나 노덴스를 향해 경례했다.
간단히 손을 들어 답한 노덴스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철창이 쭉 늘어선 것이 얼핏 봐서는 감옥이 아닌가 싶었다.
특이한 점은 어마어마하게 소란스러웠다는 것.
수십 개로 분리된 철창 안쪽의 공간에서 사람들이 각자 소리 높여 자기 할 말만 꽥꽥거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치장입니다. 이렇게 가득 차는 일은 굉장히 드문데, 이번 사건에 연루된 놈들이 워낙 많아서 이쪽으로 수감 시키다 보니 지금 이 모양입니다.”
대부분 손과 발에 구속구를 차고 있었고, 몇몇은 저항하기라도 한 건지 몸이나 입에 어레스트를 찬 채로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놈들도 있었다.
그때, 저 안쪽에서 익숙한 말투와 목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하라능!”
철창 사이로 봉을 집어넣어 범죄자들을 마구 때리는 나다였다.
어찌나 강도가 세던지 저 봉을 머리에 맞으면 머리통 한가운데가 움푹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다가 나를 보고 외쳤다.
“오메가쿤!”
그러자 일시에 유치장 안이 고요해졌다.
모두의 눈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 나다가 말했다.
“공공 집행자한테 얻어맞아도 할 말은 다 하던 놈들이 해결사 한 명 왔다고 조용해지니 어이가 없다능.”
그 말에 대한 답은 내가 아니라 노덴스에게서 나왔다.
“이번 일 때문에 우리를 호구로 보는 시선이 많아졌잖아. 세금 먹는 도둑이라던데. 진짜 도둑은 본 적도 없는 것들이 그런 소리 하는 거 보면 웃기지도 않아. 여튼 여기서부턴 네가 안내 좀 해.”
“알겠다능. 이쪽으로 오라능 오메가쿤.”
노덴스가 계속 입에 물고 있던 곰방대를 빼고 내게 목례했다.
마주 목례를 하고 고개를 드니 어느새 다시 곰방대를 문 노덴스가 몸을 돌려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다의 뒤를 따라 유치장의 안쪽으로 향하는 길, 간간이 철창에 붙어 나를 향해 욕하거나 소리 지르는 놈들이 있었지만 모두 나다의 봉을 맞고 구석으로 찌그러졌다.
나다가 내게 말했다.
“지하를 통해서 운동장으로 기어들어 온 놈들인데, 대부분 톈진 권역이나 만주, 허베이 권역에서 온 걸로 추정하고 있다능. 본인들은 부정하고 해당 권역도 부정하고는 있지만.”
“그럼 빨리 처리해버리는 게 낫지 않나요?”
내 말에 다시 주변이 조용해졌다.
나다가 킬킬댔다.
“오메가쿤. 너무 무서운 거 아니냐능.”
“매정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그렇잖아요. 이놈들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전부 세금인데.”
“네오-서울 시청 쪽에서 포로들을 일단 가만히 뒀으면 한다는 뜻을 전해왔다능. 북부 중화권 권역도 외적으로는 이놈들과의 관계를 부정하는데 사실 그냥 버리긴 아깝긴 할 거임. 대부분 오랜 훈련을 거친 군인이거나 마법사 같은 초인들이니까. 개조 수술받은 놈들도 있길래 좀 살펴봤는데 투자된 돈이 보통은 아닐 것 같더라능.”
“협상 카드로 쓰일 여지가 있겠군요. 아마 물밑협상이겠지만.”
“역시 오메가쿤은 이해가 빠르다능. 그런데 그 덕에 내가 이 고생을 하는 건 반갑지 않다능. 대부분 특수 어레스트로 능력을 봉인해두고는 있지만, 신경 쓸 부분이 여간 많은 게 아님! 지금처럼!”
나다가 봉을 휘두르자, 어디선가 캥! 하는 소리가 났다.
봉을 얻어맞은 개 수인이 눈에 익었다.
플라워즈 호텔 테니스장과 종합운동장에서 내 플라잉니킥을 맞은 불칸 마법사였다.
손발이 묶여있고 입도 막혀 있는데 손톱으로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려다 나다가 잡아낸 모양.
명줄 하나는 긴 놈이다.
나다는 어렵지 않게 봉으로 놈의 양손 팔목을 부러트렸다.
놈이 묶인 주둥이 사이로 고통 가득한 신음을 흘려보냈지만 나다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나한테 걸린 놈들이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건 많이 봤는데 나는 그 누구도 죽인 적이 없다능. 겪어보고 싶다면 계속하는 편이 좋을지도? 요즘 기분도 별로 안 좋은데?”
나다의 이마에 푸른 핏줄이 솟았다.
잠시 나다를 바라보나 싶던 마법사가 이내 꼬리를 말고 눈을 깔았다.
누가 누구보고 무섭대······.
나다가 봉을 회수해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멈춰 선 곳에서 나다가 중얼거렸다.
“이 녀석이 처치 곤란인데, 오메가쿤과 안면이 있는 것 같길래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해서 데려왔다능.”
남들과는 떨어진 유치장 구석, 나다에게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사흘이 지난 지금도 온몸이 팅팅 붓고 멍든 웨리바흐가 있었다.
“어레스트 안 채워놔도 괜찮아요? 저놈 신체 능력 보통이 아닐 건데.”
“이런 말썽쟁이를 위해 우리 불가에서 특수제작한 장치를 해놔서 괜찮다능.”
두런두런 들리는 말소리에 반응한 건지 웨리바흐가 고개를 들었다.
퉁퉁 부어서 잘 떠지지도 않는 것 같은 눈으로 나를 확인한 웨리바흐가 비틀비틀 일어서서 철창으로 달려들었다.
이빨도 몇 개 빠졌는지 정확하지도 않은 발음으로 침까지 튀기며.
“으헤가(오메가)!”
녀석의 두 팔목과 두 다리, 그리고 머리에 금빛 테가 있었다.
이전에 봤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었다.
놈이 철창 너머로 손을 뻗기 전, 나다가 품에서 작은 버튼을 하나 꺼내 만지면서 중얼거렸다.
“얌전히 있으라능.”
그러자 웨리바흐는 마치 감전된 듯 경련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끄으으으! 으한(그만)! 으한!”
“세상만사는 네놈 하기에 달린 것임을 명심하셈.”
웨리바흐가 눈물을 줄줄 흘릴 때가 되어서야 나다는 버튼에서 손을 뗐고, 웨리바흐는 바닥에 엎어졌다.
“뭘 어떻게 한 거예요?”
“긴고아라고, 웬만한 능력으로는 스스로 벗을 수도 없는 구속장치라능. 신경계가 어쩌고 통각 수용체가 어쩌고 하던데 복잡한 건 잘 모름! 여튼 가해지는 고통이 코끼리도 쓰러지게 한다는데 그걸 버티는 걸 보면 이놈도 보통 독한 놈도 아니라능.”
뒤쪽의 유치장에서 또 왁자지껄한 소리가 났고, 나다는 한숨을 푹 쉬며 접이식 의자를 내게 가져다주고는 말했다.
“오메가가 어쩌고, 수연이 어쩌고, 자기 할머니가 어쩌고 하던데 나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으니까. 앉아서 얘기 좀 해줬으면 한다능. 일단 나는 저놈들 좀 패고 다시 오겠다능.”
버튼을 넘겨준 나다가 뛰어가고, 나는 의자를 펴서 앉았다.
그리고 유치장 바닥에 쭈그러져 있는 웨리바흐에게 말했다.
“야. 너는 쪽팔리지도 않냐? 나 같으면······어후······부끄러워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닐 것 같은데.”
놈이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버튼을 눌렀다.
“끄어어어어어!”
“대답 이 새끼야. 대답. 질질 처 짜지 말고. 뭘 잘했다고 울고 자빠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