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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09화 (210/258)

209.

209.

특정 인물에 대한 호불호, 그중에서도 특히 불호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적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의 하나다.

또, 그걸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나 자신의 미성숙함을 나타내는 한 가지 지표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나는 진오를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내 마음속의 선악으로 구분하자면 선은 절대 못 되고 경계선에서 악으로 제법 기울어져 있는 정도가 아닐까.

애초에 진오와 샴록이 나와 얽히기 시작한 지점이 예공방 테러 사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자신들을 지원하던 곳의 무기로 지원하던 곳을 털어버리는 미친 테러리스트.

나는 조사를 위해 그곳에 들어갔다가 부비트랩에 걸렸었다.

그때는 서로의 얼굴도 몰랐지만, 알았다 하더라도 인상이 좋을 수가 없었다.

다음은 어디였더라.

계룡 권역이었던가.

계룡 권역 특유의 정교하지 못한 사회 구조의 공백을 노려 권력을 틀어쥐려고 했었지.

거기서 나는 진오의 손목을 자르고 진오는 도주했다.

그때, 나는 진오와 샴록이 수연에게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나이누안이 죽게 된 학교 테러가 사실 진오를 노렸음을, 그 일을 지시한 이가 수연이라는 걸.

그 당시에 그들이 내 말을 믿었는지는 모르겠다.

이후 샴록은 WSS 암흑가를 제패했고 진오는 무려 서해 권역 외곽의 섬 몇 개를 점거해 해적으로 악명을 떨쳤다.

진실을 알고 적의 적은 동료라는 기치 아래 나와 잠시 협력 전선을 구성했던 것도 그때 쯤의 일이었다.

자신들은 몰랐다, 속았을 뿐이라고 하던 진오에게 내가 그랬던가.

일은 너무 커졌고 몰랐다고 한들 그간의 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진오는 뭐라고 답했더라.

일이 마무리되면 죗값을 받겠다고 했던가, 정리하겠다고 했던가.

비슷한 뉘앙스의 말이었는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 저기서 눈을 까뒤집고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이 죗값을 치르는 것으로도, 자신이 벌인 일을 정리하는 모습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몸에 무슨 짓을 해도 ‘좋은 게 좋은 거지’, ‘개성이지 뭐.’라는 말을 듣는 이 세계에서 나도 제법 적응한 건지 웬만한 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정도가 됐다.

하지만 저기서 야타가라스에 밀리지 않고 있는 진오의 두 복제품 같은 것을 보면 저절로 심장이 빨리 뛰고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내가 대단한 바이오테크 엔지니어거나 유전자 조작 및 변형에 반대해서 그런 게 아니다.

썬더 콜링 필드.

그곳에 있던 연구소.

벡의 형제들이라 할 수 있는 아기들의 최후가 스쳐 가기 때문이다.

내가 손 쓸 틈도 없이 한 줌 핏물이 되어버린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온전하지 않다.

현장에 있던 이수련의 말에 따르면 내가 연구소의 마지막 타일 하나까지도 전소시켰다던가.

그렇게 다 기억나지 않는데도 기억의 파편은 때로 머리가 아닌 가슴 한쪽에서 불쑥 솟구치곤 했다.

눈물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슬픔이 전신을 휩쓴 뒤에야 참았던 숨을 터트릴 수 있었다.

스냅샷에게 말해 기억제거나 봉인에 관련된 시술을 받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종종 벡을 만나면서 그런 생각을 버렸다.

벡은 볼 때마다 쑥쑥 커서 지금은 아기였을 때 모습이 그려지지도 않지만, 연구소에서 최후를 맞이한 아이들은 내가 아니면 그들을 기억해줄 사람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에.

그것이 내가 아이들 앞에 놓을 수 있는 작은 헌화였다.

그런데 이건······.

#

“너는 대체 생명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검을 쥔 손끝이 저렸다.

분노, 증오, 혐오, 불쾌, 악의, 반감, 경멸, 적대감.

이런 감정은 적을 앞에 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냉정을 뒤흔들어 판단에 걸림돌이 된다.

내가 상대했던 많은 놈들이 그렇게 스스로 무너지는 걸 직접 목격했다.

감정에 휩싸이면 쉽게 풀릴 일도 꼬이곤 한다.

스킬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지금, 당장이라도 [명경지수]나 [평온]. [행선行禪] 같은 스킬을 사용하면 불필요하게 끓어오르는 이런 감정들을 털어낼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만큼은 불쾌를 유발하는 이 진득한 감정 위에 온전히 서 있고 싶었다.

한편, 내 기세가 달라진 것을 감지한 건지 수연을 등지고 선 진오가 몸을 낮추고 양손을 옆으로 뻗은 채 포효했다.

크어어어어-!

공기를 타고 전달되는 소리만으로도 안에 섞인 맹렬한 적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진오의 팔뚝을 쓰다듬은 수연이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글쎄요. 굳이 그걸 뭐라고 생각하고 정의할 필요가 있을까요?”

요사스러운 그녀의 혀가 날름거렸다.

“도구에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으니까요. 설마 생명의 가치 같은 고리타분한 설교를 할 생각은 아니겠죠? 그럼 당신에게 실망할 것 같아요.”

체인 소드를 박아 비틀어서 제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수연의 하반신 끝이 흔들렸다.

거의 동시에 야타가라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메······!”

내 반응이 먼저였다.

몸을 옆으로 틀자 야타가라스를 향해 달려들던 클론 둘 중 하나가 나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다리에 힘을 단단히 주고 팔을 움직여 검을 흘러가듯 아래로 두었다.

클론의 주먹이 거대해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새하얀 금속 성질로 변화하는 것이 보였다.

착-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검은 아래로 향한 그대로 광자 검날이 위로 향하게 검을 쥔 손을 뒤집었다.

주먹이 시시각각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렵지 않았다.

눈을 감고 손의 감각에 집중했다.

광자 검날의 진동이 괜찮다고 나를 달래려는 듯 손끝을 통해 온몸으로 전해졌다.

아직도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심장박동이 진동의 사이사이를 치고 들었다.

우웅- 우웅- 우웅-

두근- 두근- 두근-

둘은 찰나에 가까운 영원에서 빠르게 서로에게 공명했다.

우웅- 우웅- 우웅-

두근- 두근- 두근-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저 검이 이끌고 몸이 따르는 대로 했을 뿐이다.

[만사재시 매사필종]

내게 날아오던 것은 금속성의 주먹이었다.

하지만 전해지는 느낌은 부드러운 두부를 베는 것처럼 같았다.

눈을 떴다.

주먹의 중지부터 팔꿈치, 어깨까지 깔끔하게 잘린 클론이 보였다.

어떻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클론은 절단면에서 어떠한 액체도 흘리지 않았다.

피나 유동액, 기름이 잔뜩 튈만한 상처인데도 불구하고.

다만 절단면에서 끈적한 실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와 잘린 부분을 이어 붙이려 했다.

[에피시]

불타오르는 검을 들고 클론에게 뛰어들었다.

놈은 내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했다.

클론이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렸을 때, 녀석의 가슴에는 타오르는 검이 박혀 있었다.

검을 잡은 손에 다른 손을 겹쳤다.

[파천황]

검을 휘감던 불이 푸른 빛에 휩싸이나 싶더니, 곁으로 붉은색 얼음이 콰드득 소리를 내며 함께 밀려 올랐다.

불은 클론의 안으로 흘러들었고 얼음은 놈의 겉을 뒤덮었다.

괴로운 듯 몸부림치던 클론이 몸을 부르르 떨며 뒤로 넘어갔다.

퍼석 소리를 내며 부서진 클론의 안에서 새카만 잿물이 흘러나올 즈음, 놈의 가슴에 박혀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마침 야타가라스도 자신에게 달라붙어 있던 클론 하나를 토막 썰 듯 마무리한 참이었다.

몸을 돌리자 진오의 뒤편에 있는 수연이 보였다.

늘상 얼굴에 올려져 있던 매혹적인 미소는 어디로 가고, 눈을 둘 데를 찾지 못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수연이 발작에 가깝게 외쳤다.

“막아! 저놈이 내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

#

진오가 반응해서 오메가에게 달려들었다.

[회피의 춤]

왈츠를 추듯 경쾌한 발걸음으로 진오의 공격을 흘려냈다.

곧바로 몸을 돌려 오메가를 향해 다시 쇄도하는 진오.

무언가가 그런 진오를 향해 날아들었다.

마치 공중을 밟고 이동하는 것 같은 움직임.

오메가 사용하는 [천상제] 같은 스킬과 비슷하지만, 저렇게 몸에 밴 기품까지 따라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가 두 손으로 진오의 어깨를 붙잡고 하체에 힘을 주자 진오의 쇄도가 멈췄다.

혼혈이긴 하지만 거신족의 덩치와 힘을 생각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완력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새 하얀 와이셔츠를 걷어붙여 잔뜩 성난 핏줄과 팔뚝을 드러낸 노덴스가 말했다.

“불칸 마탑주가 죽었는데 지원이 필요하다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런 덩치가 설치고 있을 줄이야.”

크아아아-

진오가 괴성을 내면서 노덴스를 밀어붙이려고 했지만, 노덴스는 오히려 그 힘을 역이용해 진오의 얼굴을 청계천 바닥에 처박아버렸다.

그리고는 일어서기 위해 버둥대는 진오의 등짝에 가차 없이 주먹을 꽂았다.

[도깨비 체술]

[언더 스카이 파티Under Sky Party 류流]

[밀가루 반죽은 주먹을 사용하는 편이 힘이 잘 들어간다]

주변으로 퍼지는 기파로 미루어보아 한 방 한 방이 절대 가볍지 않은 주먹인데도 불구하고, 신으로까지 여겨지는 거신족의 핏줄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듯 진오는 계속해서 저항했다.

그 상태에서도 몸을 일으키려는 통에 진오의 등 위에 올라가 있던 노덴스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스쳤다.

그는 결심했다.

보통의 방법으로는 제압할 수 없다.

결국 노덴스는 진오가 몸을 더 일으키기 전에 등에서 내려와 그의 머리 부근에 섰다.

엎어진 채로 팔을 굽혀 바닥에 대고 있는 상태의 진오는 거친 숨을 내뿜고 있었다.

노덴스의 두 다리 주변에 내력이 모이며 그가 딛고 있는 청계천 바닥의 자갈들이 잘게 진동했다.

그가 운영하는 도장에서 수련생들에게 혹여라도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던 걸 노덴스는 준비하고 있었다.

더 이상 이걸 사용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길.

언더스카이 파티에 속하지 않는 기술이지만, 노덴스는 이걸 뭐라고 부르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몇 걸음 물러났던 노덴스가 순간적으로 가속하며 왼발로는 진오의 머리가 있는 곳의 옆을 딛고 오른발로 힘껏, 있는 힘껏 진오의 머리를 걷어찼다.

타아아앙-

압축에 압축을 거듭한 내력이 방출되며 총을 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진오의 머리가 90도 틀어졌다.

그어-어어--

결국 노덴스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것으로도 모자라 머리에 사커킥까지 정통으로 맞은 진오는 일어나는 것을 포기하고 엎어졌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진오의 팔다리에 어레스트를 채우러 다가온 야타가라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무식한 방법이군.”

#

노덴스가 등장해서 진오와 대치하자 나는 수연에게로 다가갔다.

이상하게도 들끓던 감정이 걸음마다 하나씩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더 커다랗고 거대한 의지로 빨려들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그 의지는 이미 내가 수연에게 했던 말이라 할 수 있었다.

‘죽인다.’

수연은 다가서는 나를 보고 숨겨놨던 무기를 날려 보내거나 뒤로 피하려고 했지만 더 이상 개수작을 부리기 전 그녀의 하반신 전체를 얼려버렸다.

서로의 눈에 각자의 모습이 반사되어 비출 정도의 거리에서 수연은 웃고 있었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인가 봐요.”

“······.”

“끝을 보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제게 주어진 소임은 다 마무리하고 가는 것 같아 후련하네요.”

그녀의 눈이 한순간에 표독스럽게 바뀌었다.

“이제 네오-서울은 큰 위기를 겪을 겁니다. 격변이라는 말로도 부족할지 몰라요. 그때, 당신은 아마 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걸 죽어서도 후회하겠······.”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안 죽어봐서 죽어서도 후회하는 느낌을 모르니까 네가 먼저 가서 경험 좀 해라.”

검을 내리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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