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05화 (206/258)

205.

이수련의 법술-플라즈마 융합 빔이 불사조의 가슴을 뚫을 즈음, 박운은 불사조에게 마력을 밀어 넣어 폭발을 유도했다.

불사조의 몸 이곳저곳이 부풀며 심상치 않은 폭발을 일으켰고 박운은 그 틈을 타 불사조에게서 벗어나 녹아내린 관객석 한쪽으로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이수련이 법술과 로봇을 동원해 불사조의 통제에 애쓰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천수관음 뒤에서 멍하니 서 있던 터라 누구도 박운에게 신경을 쓰지 못한 그 잠깐 사이였다.

뒤쪽에서 몇 번이고 들리는 굉음과 건물 전체를 흔드는 진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박운은 천천히 종합운동장 건물 내부로 걸어갔다.

닿는 것을 모두 태워버릴 것 같이 이글대던 그의 머리칼은 어느새 원래의 차분한 모습을 되찾았다.

박운은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제대로 된 구미호는 전설로만 남은 줄 알았는데, 아직 저런 게 남아있을 줄이야. 네오-서울의 저력은 대체······.’

동시에 그는 손을 움켜쥐었다 펴는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힘이 계속해서 솟았다.

엄청난 규모의 마법을 계속해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지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제자들과 합공하긴 했어도 노덴스를 밀어붙이고, 죽어가던 불사조의 상처를 한 번에 복구하고, 갑자기 튀어나온 구미호에 대항하기 위해 대규모 마법은 몇 번이나 실행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마력으로 불사조를 폭주시키기까지.

박운은 대단한 마법사이긴 했으나 절대 이 정도까지 엄청나지는 않았다.

소매를 걷은 박운은 작은 주사 자국을 확인했다.

일이 시작되기 전, 수연에게 받아 스스로와 제자들에게 투여한 약이었다.

“완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이것만 있으면 세계의 판도가 뒤바뀔 겁니다. 그리고 당신들, 불칸의 마법사들은 이 약 덕에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게 되겠죠.”

수연의 말.

성분이 어떻게 되냐고 다시 물어도 수연은 답해주지 않았다.

희귀하고 강인한 종족들의 장점만 취해서 만들었으니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뿐이었다.

거부한다면 협력은 여기까지라는 말도 함께였다.

그리고 지금, 박운은 어둑한 복도에서 걸었다.

입이 찢어질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작 스무 명이다.

불사조를 만드는 데 필요했던 불칸 마법사들의 인원수.

평소 같으면 100명이 붙어도 시도조차 못 할 정도로 위험한 마법.

준비 역시 하루 이틀로 될 게 아니었다.

쇼케이스 순서를 마지막으로 가져가서 집단전투 전에 필드에 미리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약간의 조미료 정도에 불과했다.

약을 투여받은 제자들은 기대했던 것보다 훌륭하게 임무를 완성했다.

심지어 그 인원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해내고도 자신들을 공격해오는 페룬과 프로이데의 마법사들에게 맞서기도 했다.

불사조가 통제를 벗어나는 바람에 몇 녀석이 밟혀 죽긴 했다.

하지만 박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큰일에 작은 희생은 따르는 법이다.’

트라이포드가 하려는 짓은 네오-서울 체제의 전복.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지만 그렇기에 돌아오는 리턴 값은 더욱 황홀할 것이라는 계산이 박운의 머리에 섰다.

이 일에 가담할 때는 불칸을 모든 마탑 위에 올려놓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되니 마탑이니 제자니 하는 건 떼어두고 홀로 마법사의 정점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달콤한 상상을 하며 박운은 고개를 돌려 필드 쪽을 바라봤다.

불사조를 입에 문 구미호가 떠오르고 있었다.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불사조의 폭발 여파를 나다가 만들어낸 천수관음이 흩어내는 모습이 사뭇 장엄했다.

하지만 이미 엄청난 힘을 맛본 박운에게 있어서는 작게만 보일 뿐이었다.

그가 감상을 뱉기 위해 입을 열기 직전, 그가 하려는 말이 복도 앞쪽, 어두 컴컴한 공간을 뚫고 들렸다.

“가소롭죠?”

박운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불꽃이 피어오르고 다시 그의 머리칼이 불로 넘실댔다.

잔뜩 경계하고 있는 그의 귀에 부드럽게 스치는 스르륵 소리가 들렸다.

그가 응시하고 있는 어둠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수연.

머리칼에 붙은 불은 사라졌지만, 손가락을 뛰노는 불꽃을 사그라트리지 않은 박운이 말했다.

“참······대단했소. 이런 게 가능할 줄은 몰랐소이다.”

“감히 네오-서울을 칠 생각을 할 거라면 이 정도는 준비해둬야 하는 법이랍니다.”

수연이 매혹적인 눈웃음을 짓고 끝이 갈라진 혀를 살짝 날름거린 뒤 박운에게 말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잘해주셨어요. 시선을 이쪽으로 돌린 덕에 경계가 허술해진 지역이 많더라고요.”

“아무리 네오-서울 수도방위사령부라 해도 늘상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는 말은 들었소.”

“오늘은 시작에 불과해요. 눈이 닿지 않는 곳을 통해 진짜 ‘병사’가 들어오고 있어요. 모두 마탑주께서 애써주신 덕입니다. 저희는 잊지 않을 겁니다.”

“말씀만으로도 고맙소이다.”

수연의 웃음이 차갑게 변했다.

그리고 박운에게 물었다.

“그럼, 말씀하신 것처럼 제자들은······?”

“마음대로 하시오. 재능 따위 없는 것들.”

“냉철하시군요.”

“냉철하지 않으면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으니까.”

수연은 박운의 눈에서 불꽃을 보았다.

수십 년 동안 실력을 감추던 세월을, 야심을 장작으로 삼아 피어오르던 불꽃이다.

그 불꽃이 마침내 피어올랐을 때, 박운은 사형들을 죽였고, 불칸 마탑을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렸다.

이제 그의 불꽃은 스스로 쌓아 올린 것을 태워 새로운 추진력으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탐나는 남자가 하나 더 있었네.’

수연은 몸을 옆으로 틀어 길을 내주었다.

“가시죠. 그분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영광이오.”

그렇게 말한 박운이 수연에게 물었다.

“그렇게나 네오-서울에 원한을 가지는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원한이라······.”

수연이 사르륵 소리를 내며 몸을 한번 꼬았다.

“그분께 직접 듣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그리고 다 깨진 창틀 너머 필드로 고개를 돌리는 수연.

그녀를 따라 밖으로 고개를 돌린 박운의 눈에 나다의 천수관음이 허리를 숙인 채 많은 손 중 두 개를 내밀어 무언가를 조심히 퍼담는 것이 보였다.

차르르르르-

수연의 꼬리가 빠르게 진동했다.

어찌나 빠른지 꼬리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지만, 소리는 곧 가청주파수를 넘어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진동은 확실하게 운동장 곳곳으로 전해졌고, 곧 필드에 있던 이들 중 약을 투여받은 불칸 마법사들이 이성을 잃고 주위에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꼬리 흔들기를 멈춘 수연이 안심하라는 듯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리 마탑주께 투여한 약에는 저런 장치를 해두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박운의 눈이 어느 제자에게 닿았다.

하반신뿐만 아니라 상반신까지 화염에 감겨든 살리베가 거품을 문 채로 평소 살리베였다면 어림도 없었을 고위 화염계 마법을 주위에 쏟아내고 있었다.

살리베는 주위 다른 마법사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기세를 키웠다.

지금 그뿐만 아니라 다른 불칸 마법사들은 생명을 태워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박운이 중얼거렸다.

“불에 살고 불에 죽으니 화염계 마법사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최후요.”

그렇게 박운과 수연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림자가 일렁이며 또 다른 형체를 분리해냈다.

위타천을 찾아 헤매던 야타가라스였다.

둘의 대화를 들으며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수백 번도 더 든 야타가라스였지만 꾹 참아냈다.

‘이들은 꼬리일 뿐이다. 꼬리를 타고 가 머리를 잡아뽑아야 한다.’

이들의 수장이 위타천이 아니길 바라며, 야타가라스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수연과 박운이 지나갔던 길을 따라갔다.

#

나는 지금 천수관음의 손에 담겨 위로 향하고 있다.

이수련이 뭔가를 하려는 것 같은데, 그게 무지막지하게 위험할 것 같다는 직감 때문에 나다에게 나를 올려다 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아래쪽에서는 다시 잠시 소강상태였나 싶던 난리가 다시 벌어지고 있었다.

아래로 가야 트라이포드와 가까워진다는 건 안다.

하지만 팀 오메가가 먼저다.

처음에는 내 이름을 자기들끼리 가져다 쓰고 뻑하면 사무실에 죽치고 있는 게 귀찮을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사무실에 출근했는데 와있지 않다거나 오늘은 못 온다는 소리를 들으면 괜히 서운하기도 하다.

그리고 신시아나 이수련은 내가 어떤 부탁을 해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이들 아닌가.

심지어 자기들의 일을 제쳐두고까지 날 도와주기까지 하는데 아무리 트라이포드나 수연과의 악연을 정리할 수 있는 자리라고 해도 이수련을 내팽개칠 수는 없다.

돔의 천장으로 가까워지려는 찰나, 이수련이 불사조를 물고 뚫고 올라간 구멍으로 전투복을 입은 군인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들이닥쳤다.

앨리스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수도방위사령부 공수여단 같아요. 비행종이나 익인들로만 구성된 정예부대라고 들었어요.

그들 대부분은 운동장으로 강하했지만, 몇몇은 내 주위를 맴돌며 총구를 들이댔다.

“멈춰! 움직이지 마!”

“무기 집어넣고 바닥에 놔!”

“불응 시 발포하겠다!”

느껴지는 기운보다 더 적은 인원만 보이는 것이 광학미채위장복같은 장비나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른 능력으로 몸을 숨긴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입을 열려는 순간, 나다의 법력 섞인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쪽이 아니라 아래쪽을 도와주셔야 할 것 같다능.”

그러더니 천수관음이 다른 손들을 뻗어 내 주변을 날아다니던 군인들을 부드럽게 감싸 아래쪽으로 유도했다.

마침내 나를 담은 천수관음의 두 손이 머리 위로 쭉 들어 올려졌고, 뚫린 돔천장 너머로 지금도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는 거대한 구미호가 보였다.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아찔한 높이에서, 나는 프로이데의 마법사들이 퍼포먼스성으로 보여주었던 얼음 성을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완벽할 필요는 없었다.

천장까지 부족한 높이만이라도.

손에서 냉기가 뻗어 나왔다.

이내 꾸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발밑이 단단해지는 느낌이 드나 싶더니 몸이 솟아올랐다.

천장 너머까지 솟아오른 얼음에서 주변을 둘러보다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환장하겠네.”

날아다니는 전투기와 헬기, 종합운동장을 둘둘 에워싼 병력들. 주변 고층 건물 창문 너머로 몸을 내밀고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들여다보는 사람들까지.

마법사들끼리 기싸움 하는 거 보러 왔다가 이게 다 무슨 일이람.

고개를 털어 생각을 떨쳐냈다.

지금도 시시각각 머리 위로 멀어지는 이수련을 돌려놔야 했다.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신시아 언니! 사장님! 신시아 언니가 뛰쳐나갔어요!

무슨 일이냐고 묻기 전, 내 눈에 번개 몇 방이 이수련을 향하던 미사일을 격추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번개를 자유로이 다루는 실력자라면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신시아의 말에 따르면 이곳으로 오고 있다던, 아마 도착했을 이.

“앨리스. 젠한테 연결해줄 수 있어?”

알겠다는 대답도 하지 않고 연결해준 건지 바로 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절 찾았다고요.

“젠! 지금 종합운동장 근처에 와 있죠!”

-그렇습니다. 안에 신시아가 있다고 하던데요.

그때, 돔 천장의 구멍으로 작은 박쥐가 빠르게 날아올랐다.

몇 번 본 경험에 의하면 신시아가 틀림없었다.

“신시아?”

-신시아가 옆에 있습니까?

“저는 지금 돔 위에 있고 신시아는 제 곁을 스쳐 갔어요.”

-어디······보이는군요.

내 옆으로 번개가 떨어지나 싶더니 젠이 모습을 드러냈다.

젠은 평소처럼 젠틀했다.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군요. 신시아는 어디 있습니까?”

내가 손을 들어 위를 가리키자 젠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그런 젠에게 말했다.

“저를 위로 보내줘요, 젠.”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고 있는 겁니까? 수호자가 물고 있는 저게 뭔지는 몰라도 터지면 보통 큰일이 아닐 겁니다. 느껴지는 기운이나 에너지가 절대로 평범하지 않습니다. 가능한 한 멀어져도 모자랄 판에 가까이 가겠다고요?”

“네. 젠이나 되니까 믿고 부탁하는 거예요. 어차피 신시아도 말려야 하잖아요. 최대한 갈 수 있는 데까지만 이라도요.”

입술을 잘근 씹던 젠이 도호를 외며 허공에 상형문을 그리자 그와 내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수호자까지 구할 수 있다고는 말씀 못 드립니다. 저는 신시아의 안전 확보를 위해 가는 겁니다.”

“일단 가줘요. 부탁할게요.”

마치 아래에서 바람이 밀어 올려주는 깃털처럼 가볍게 위로 솟았다.

차량과 건물들이 미니어처처럼 작아졌다.

한강도 누군가 의미 없이 푸른색 펜으로 그어놓은 선처럼 보였다.

다시 고개를 위로 돌렸을 때, 이수련은 공중에 멈춰있었다.

그녀의 입가에 물린 것은 이제 형체만 봐서는 불사조라고 하기도 뭐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핵폭탄이 터지는 걸 유리병에 감싸 놓으면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라고 생각만 했다.

그녀가 평소에 다니는 소녀의 몸으로 변하고 손을 휘두르나 싶더니 반짝이는 무언가가 이쪽으로 빠르게 떨어졌다.

젠이 도술을 펼쳐 떨어지는 것을 낚아챘다.

이수련의 법술에 갇힌 박쥐 형태의 신시아였다.

젠이 법술을 흩어주자 신시아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신시아의 밑에도 바람을 받쳐준 젠의 목소리가 커졌다.

“신시아! 너 어쩌자고 이런 무모한 짓을 해!”

하지만 신시아는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모습이었다.

“오빠? 오메가 님?”

“너 돌아가서 내가 어떻게 하나 봐. 아버지한테 말씀드려서······.”

신시아가 벌컥 소리 질렀다.

“오메가 님! 뭐 하시려고요!”

나를 향해 젠이 고개를 돌릴 때쯤, 나는 이미 활을 쥐는 것처럼 손을 앞으로 뻗은 상황이었다.

전신에서 뇌전이 튀어 올라 손으로 몰려들었다.

[궁뢰]

젠의 놀란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이젠 도술까지?”

젠은 완벽히는 아니지만 내가 지닌 비밀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둘에게 말했다.

“먼저 내려가요. 저 여우 데리고 갈 테니까.”

“그런 걸 저기에 꽂는다면 바로 폭발할 겁니다!”

“그럼 폭발하기 전까지만 보내면 되겠네요.”

“그게 말이 됩니까?”

“돼요. 배웠거든요.”

신시아에게 말했다.

“나 믿죠? 이수련 씨 데리고 돌아갈 테니까, 오빠랑 먼저 내려가요.”

뇌전 화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온 신경을 화살에 집중했다.

잉그리드가 알려준 것처럼, 나르시스와 싸울 때 사용했던 것처럼.

[전이]

공간이 압축되는 기묘한 감각과 함께 내 몸이 뇌전 화살로 빨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찰나의 찰나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

[해방]

눈을 뜨니 저 멀리 멀어지는 신시아와 젠, 그리고 가까이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리는 이수련이 보였다.

“······있었노라.”

“뭐가 있었는데요.”

눈을 뜬 이수련이 믿기 힘들다는 듯 눈을 비볐다.

그러다 떨어지기 직전 휘청이는 나를 향해 손을 휘둘러 법술로 감싸고는 소리쳤다.

“어떻게! 아니 여기가 어디라고 온 것이냐! 곧 있으면 폭발한단 말이다! 본좌가 힘을 조금만 거둬도······.”

“그 후에는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돌아올 수는 있구요? 젠이 말하길 이거 터지면 보통 난리가 아닐 거라던데?”

이수련은 눈물이 글썽거리는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책도 없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면 어떻게 합니까. 내려가서 할 일도 많은데 이 높은 곳까지 왔다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은 무슨 마지막입니까. 이수련 씨가 우리 사무실에서 놀고먹은 만큼 부려 먹을 날이 한참 남았는데.”

앨리스가 내게 빙의한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잔소리가 술술 나왔다.

"희생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그건 이수련 씨 젊었을 시절에나 멋지다 소리 듣는 거고 요새 사람들은 남이 희생하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니까요. 그러니까 이기적이라는 소리 들어도 자기 앞길이나 잘 닦아 두는 게······."

이수련이 내게 달려들어 안겼다.

“낭구운!”

“업히라니까요! 안기는 게 아니라!”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느니라! 어서 가자꾸나!"

"삶에 대한 욕구가 막 솟아오르나 보죠?"

내 옷에 눈물 콧물을 닦은 이수련이 등에 업히는 걸 확인하고 말했다.

“띄우는 거 다 없애요. 눈 꼭 감고요.”

법술이 사라지자 곧바로 동시에 불사조의 폭발과 우리의 추락이 시작됐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의 추락보다 폭발이 살짝 먼저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비행 스킬은 없지만, 낙하에 대비하는 스킬은 좀 가지고 있단 말이지.

[스카이다이빙]

[고속 낙하]

[기류 읽기]

폭발이 우리를 삼킬 듯 아슬아슬하게 따라왔다.

뒤통수가 후끈거릴 지경이었지만 어떻게 다시 만든 머리카락인데 또 태워 먹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오로지 낙하에만 집중했다.

뒤에서 꼬리!, 꼬리! 하고 이수련이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한손으로는 내 목을 꽉 잡은 이수련의 손목을 꽉 잡고 몸을 뒤집었다.

불사조는 저 멀리 있었으나 종합경기장을 날아다닐 때보다 몇 배는 더 부풀어 있었고, 그보다 훨씬 큰 범위에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연쇄 폭발의 여파가 정말 손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웠다.

불사조가 안에 담고 있던 마력이 밖으로 새어나오면서 폭발은 계속해서 확대되었다.

이수련이 빽빽 소리 지르던게 엄살이 아니었던 모양.

지금 내가 시속 얼마고 폭발이 다가오는 속도는 얼마고, 어디까지가 폭발의 범위일 것인가 하는 건 솔직히 말해 모르겠다.

다만 이대로라면 닿아서 뼈도 못 추리지 않을까.

눈 앞까지 다가온 폭발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낭군! 지금 뭐하는 것이냐!"

등에 매달린 이수련이 소리 쳤으나 나는 손을 빼지 않았다.

폭발의 끝에서 살짝 안으로 파고든 내 주먹 주변으로 화염이 감겨들고 있었으나 그것들은 내 피부를 그슬리게도 만들지 못했다.

템페시르나도, 잉그리드도 중요한 것은 흐름이라고 했다.

기의 흐름, 날 둘러싼 공기의 흐름, 대자연의 흐름 등등.

조그만하든 거대하든 그 흐름 사이를 헤쳐나가는 방법을 궁구하다보니 어느새 벽을 깨고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고 했다.

당장 그들처럼은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이 나누어준 소중한 가르침을 조금이나마 적용할 수는 있었다.

나는 지금 불규칙하고 무질서해보이는 폭발의 흐름을 읽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읽어냈다면 이용해야했다.

[이화접목]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데 있어 대상이 꼭 살아 움직일 필요는 없다.

주어지는 정보가 적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온전히 흐름과 접점에만 집중했다.

폭발의 화염이 주먹 주위에 감겨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먹이었지만 곧 손목, 팔뚝, 팔꿈치, 곧 있으면 어깨까지.

폭발이 담고 있는 커다란 힘에 비하면 아주 일부분이겠지만 나는 그 힘을 내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팔뚝을 덮고 있는 티셔츠가 폭발에 닿아 파장을 상반신에 전달했지만 검을 들어야 티셔츠가 흡수한 성질을 전달할 수 있기에 지금 당장은 사용할 수 없었다.

지금 믿을 건 맨손으로 펼칠 수 있는 기공과 마법 뿐.

마침내 [이화접목]이 받아낼 수 있는 한계치에 이르렀다는 직감이 전신을 통과했을 때.

[수플레soufflé]

[플람 수플레]가 숨을 불어넣어 불을 만드는 스킬이라면 [수플레]는 손 끝에서 불을 만들어내는 더 낮은 단계의 화염계 마법 스킬.

하지만 지금처럼 팔 전체에 다른 화염이 감겨 있다면?

"꽉 잡아요!"

주먹 끝에 불이 피어오르기 무섭게 [이화접목]을 통해 잡아 두었던 힘이 둑이 터지듯 쏟아져 나갔다.

그 반작용으로 몸이 급격하게 아래로 밀렸고, 폭발은 더 이상 우리를 따라오지 않았다.

"으허엉! 꼼짝없이 잡아 먹히나 싶었느니라!"

순식간에 네오-서울이 가까워졌다.

팔다리를 벌려 속도를 좀 낮추고 외쳤다.

“이수련 씨! 다시 띄워줘요!”

“지금은 너무 지쳤느니라! 폭발에 꼬리가 타서 법술도 온전히 활용하기 힘들고!”

“그럼 어떻게 해요! 여기서 뭔 수를 써도 착륙하면 무조건 양쪽 다리는 나갈 것 같은데요!”

“이렇게 하자꾸나!”

무언가 아래쪽에서 나를 향해 발사되었다.

미사일이 아닌가 했는데, 퓨전 코프 마크가 그려진 원격 조종 로봇들이었다.

떨어지는 우리와 속도를 맞추더니 로봇 하나가 업혀 있던 이수련을 데려가 안았다.

“저는요!”

“설마 본좌가 낭군을 버리겠느냐!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게 해주겠노라!”

다른 로봇 하나가 수백 개는 될 듯한 파츠로 분리되더니 내 몸을 위아래로 감싸고 합쳐졌다.

순식간에 나는 외골격 같은 로봇의 안에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로봇이 공중에서 방향을 휙 꺾었다.

스피커를 통해 이수련의 목소리가 들렸다.

“종합운동장으로 보내 주겠노라! 그리고······고맙다고 말하고 싶구나.”

“고마우면 고마운거지 고맙다고 말하는 건 뭡니까.”

“어쨌든! 의미는 이해하지 않았느냐!”

“맨입으로요?”

“원하는 것이 있느냐?”

“이번 일 끝나면 사무실 앞 국밥집에서 뜨끈한 국밥 사요. 저는 특으로 먹을 겁니다.”

잠깐 말이 없던 이수련이 깔깔대며 웃었다.

곧 연결된 팀 오메가 채널을 통해 신시아의 걸쭉한 욕설과 앨리스의 타박이 이수련에게 쏟아지는 것을 들으며 나는 다시 종합운동장으로 향했다.

야타가라스의 말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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