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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202화 (203/258)

202.

새로운 마탑을 세우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기존 마탑의 분파로 시작해 독립하는 방법이 일반적인 방법이지만, 학문적으로나 실전적으로 굉장한 업적을 세우지 않으면 해당 계열의 마법협회나 평의회에서 신규 마탑 설립 인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파이 나눠 먹기를 염려한 근방 마탑들의 극렬한 견제는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어지간한 대규모 권역이 아닌 이상, 동일 계열의 마탑이 근방에 있다면 상도의를 저버린 놈 소리는 당연히 따라 오는 수준.

그렇다면 기존에 세워진 마탑의 마탑주 자리에 앉는 것은 쉬운 것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실력은 물론이고, 그 외의 것들을 뭉뚱그려 한 번에 묶어내는 표현인 ‘정치력’까지 필요하기 때문.

불칸 마탑주인 박운은 여러모로 최악의 타이밍에 마탑주가 되었다.

네오-서울과 WSS의 전쟁에서 전대 마탑주는 적극적으로 WSS를 도왔다.

WSS는 패배했고 전대 마탑주는 그 과정에서 죽었다.

전범 마탑이라는 굴레가 불칸을 비롯한 WSS에 뿌리를 두고 있던 마탑들에게 씌워졌다.

불칸 마탑의 존재 자체가 붕괴 직전에 있을 때, 박운은 전대 마탑주의 직계 제자이긴 했지만, 서열이 낮아 그에게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스승인 전대 마탑주마저도 박운의 제대로 된 면모를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박운은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숨겼다.

전쟁에 발을 최대한 담그지 않기 위해.

사형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게 하려고.

실제로 박운은 전쟁 기간 내내 거동의 불편함을 들어 대부분의 지시를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전쟁이 끝났을 때, 박운은 안으로 품었던 발톱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먼저 전쟁 범죄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손수 사형師兄들을 처리하고 불칸 마탑주 자리를 쟁취했다.

회유와 협박으로 원로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후 위로는 WSS 의회와 접촉하여 불칸이 인프라나 산업 기반 시설의 재건 일각을 담당할 수 있게 했고, 아래로는 불칸에 새로운 피를 공급하기 위해 애썼다.

그 결과 불칸은 재건 광풍이 부는 WSS에서 자리를 잡고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전범 마탑이라는 굴레를 떨쳐낸 것도 큰 성과였다.

썬더 콜링 필드를 만들어낸 WSS의 전격계 마탑, 라이곤은 전쟁 이후 아직도 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박운 아니었다면 불칸 역시 같은 꼴을 못 면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박운의 그런 정치적인 면모가 주목받았지만, 제자들은 알고 있었다.

박운의 진가는 마법에 있다는 것을.

직계 제자 서넛이 박운에게 진심으로 달라붙어도 이기기는커녕 우위를 점할 수조차 없었다.

나이누안이 아직 불칸 마탑에 있었을 때나 간신히 반반 싸움을 가져갈 수 있을 정도였다.

박운의 정교한 출력 조절과 가지에 가지를 뻗는 화염계 마법의 응용은 제자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하기 충분했다.

오메가는 매우 놀라고 있었다.

박운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마법의 화려함과 파괴력에.

그리고 그 박운과 심지어 불칸의 다른 화염계 마법사까지 달라붙었는데도 불구하고, 단신으로 그들에게 밀리지 않는 노덴스의 모습에.

#

크고 작은 수십 개의 마법 술식이 박운의 곁에 그려졌다.

어깨까지 닿은 그의 장발은 불 그 자체가 되어 넘실댔고, 거기서 튀어 오른 불티마저 술식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는 대상을 바라보고 입술을 달싹이는 것만으로 일대를 뒤덮는 대규모 마법을 완성했다.

[주재화상走在火上]

순식간에 박운의 발 근처로 내려앉은 술식들이 닿은 곳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노덴스가 서 있는 곳까지 거침없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열기가 피어올라 공기가 이지러지는 가운데, 몰려있던 사람들이 타는 냄새를 맡고 웅성이며 혼란에 빠졌다.

노덴스는 열기에 밀려나기는커녕 오히려 제자리에 서서 천천히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신체 밸런스가 완벽에 가까운 거구의 도깨비가 아주 약간의 흔들림도 없이 한쪽 다리로만 지면을 딛고 서서 다른 다리를 위로 쭉 뻗어 몸에 바짝 붙인 모습은 어느 이름 높은 조각가가 평생을 걸쳐 깎아낸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은 환상에 휩싸이게 할 정도.

높게 올려 든 다리에 가려지지 않은 한쪽 눈은 이글거리는 열기와 그 열기 때문에 흐물거리는 공간 저편, 박운을 응시하고 있었다.

쿠궁-

노덴스의 디딤발이 닿아있던 곳 주변에 방사형으로 실금이 그어졌다.

그의 몸 안을 맹렬히 달리던 기력이 방출되기 직전이라는 증거.

선포에 가까운 안내가 노덴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재해 및 재난에 관한 네오-서울 법령에 의거, 긴급 상황으로 판단했습니다. 현 시간부로 구난, 구명 대책을 최우선 목표로 수립합니다. 해당 목표를 방해하는 인물, 집단, 법인 기타 등등의 모든 존재는 네오-서울의 안위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공공 집행자의 독단적인 판단에 따라―.”

올라가 있던 노덴스의 다리가 뻗은 모습 그대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완벽한 반원을 그리는 그 다리의 궤적을 사람들의 인지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지 노덴스의 행동이 느리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다른 출구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있던 일반적인 다른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느끼지조차 못했다.

그나마 먼저 반응한 것은 오메가였다.

노덴스의 다리에서 뿜어져, 이글대는 일대를 가르고 나아가는 기파만은 못하겠지만, 노덴스가 서 있는 뒤쪽으로도 어마어마한 기세의 바람과 압력이 들이쳤다.

불칸의 마법사들이 갈겨댄 화염의 잔열까지 빨아들인 그 바람을 향해 오메가는 손을 뻗었다.

[스카디]

겨울철 어느 깊은 계곡 사이를 질주하던 삭풍이 오메가의 손에서 터져 나와 노덴스의 열기 섞인 기파와 마주쳤다.

뒤섞인 기운들이 빠져나갈 곳 없어 위로 솟구쳐 운동장 복도의 기둥벽과 천장을 긁어대는 소리가 요란했다.

내장재들이 순식간에 보기 흉하게 뒤집어졌다.

“―제거될 수 있음을 알립니다.”

노덴스의 말이 끝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올라갔던 다리가 마침내 디딤발 옆에 닿았다.

[도깨비 체술]

[언더 스카이 파티Under Sky Party 류流]

[이슬 머금은 꽃망울을 흔들다]

박운의 마법이 만들어낸 화염지옥의 위를, 노덴스의 다리에서 떠난 기파가 갈랐다.

처형인의 서슬 퍼런 도끼라도 되는 듯, 당장이라도 자신을 양단할 것처럼 밀려드는 기파를 향해 박운이 숨을 터트렸다.

가느다란 숨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몸을 불려 복도를 다 덮을 정도의 불덩이가 되었다.

오메가에게 휩쓸리지 않았거나 다른 구역을 맡고 있다가 지원하러 온 불칸의 마법사들도 재빨리 수인을 맺거나 영창을 외워 스승의 마법에 위력을 더했다.

기파와 마법이 충돌하는 순간.

일대가 뒤흔들리고, 유리창이 터져나갔다.

#

뻥 뚫린 창틀로, 사람들의 비명이 넘어 들어왔다.

마침내 격벽을 깨부순 불사조가 날아올라 종합운동장을 선회하며 만들어내는 열기도 함께였다.

필드에 있던 불칸과 프로이데 마법사들의 활약으로 불사조의 한쪽 날개와 꽁지깃은 걸레짝이 되어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더욱 성이 난 불사조는 아예 통제되지 않았다.

그 아래 필드에서도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불사조가 만들어낸 구멍으로 밀려 나온 무장 인원들이 불칸 마법사들과 합류하여 종합운동장을 장악하려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

그들 중 하나가 당황한 목소리로 빠르게 외쳤다.

“어어! 저기!”

그들 위로, 운동장 한쪽에 세워져 있던 전광판이 쓰러졌다.

자욱이 피어오르는 전광판 아래, 커다란 체구의 실루엣이 어른거렸다.

실루엣은 전광판 기둥 아랫부분에 손을 대고 있었으며, 닿아있는 곳에서 계속해서 마법의 흔적이 흘러나왔다.

새로운 적의 출현인가 싶어 경계하던 페룬의 마법사들이 실루엣으로 확인할 수 있는 로브의 형태가 자신들의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발렌시아가 마법사들의 기대를 확인시켜 주었다.

“탑주님께서 함께하신다!”

파직하는 거대한 파장과 함께, 쓰러진 전광판에서 날카로운 무기들이 솟아 나와 일대를 휩쓸었다.

아비규환으로 변한 현장에서 페룬과 프로이데의 마법사들은 생채기 하나 입지 않았다.

모습이 드러난 테오릭 경의 눈에 분노가 가득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지는 나중에 듣지. 말할 놈은 한 놈만 있으면 되니까 나머지는 다 죽이겠다.”

무장한 이들의 정체는 트라이포드의 네오-서울 침공을 지원하기 위해 보내진 중화권 권역들의 군인과 초인들.

페룬 마탑의 마탑주이자 현역 시절 이름 날린 전투마법사인 테오릭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가 드물었다.

그렇기에 살아남은 이들은 화력을 테오릭에게 집중했다.

테오릭도 물러서지 않고 대규모 마법으로 맞섰으나 기세가 어느 한쪽으로 넘어가지는 않았다.

애초에 페룬과 프로이데의 교류전을 침공의 첫 시작점으로 삼은 만큼 침공 병력 역시 강철계 마법과 빙결계 마법에 대한 대응책을 많이 준비해왔다는 점이 컸다.

심지어 필드에서 아래로 이어진 통로를 통해 계속해서 인원들이 유입되고 있었다.

테오릭이 외쳤다.

“발렌시아! 가서 구멍으로 올라오는 놈들을 처리해라!”

발렌시아가 빠따를 휘두르며 길을 뚫는 그때, 저 멀리 어디선가 발사된 포격이 포물선을 그리며 구멍이 있는 곳에 떨어져 폭발했다.

놀란 발렌시아가 포격의 궤적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관객들은 도망가고 텅 빈 관객석, 그곳에 네 명의 불법소녀가 떠 있는 봉을 앞으로 내민 나다가 있었다.

그웨지안을 상대할 때처럼, 민머리 위에 핏줄이 잔뜩 솟은 나다가 중얼거렸다.

“오늘······오늘 불법소녀 애니 본방하는 날인데 이게 뭐냐능! 본방사수하려고 했단 말임!”

추가적인 인원 유입이 막힌 트라이포드의 병력을 향해 나다가 달리기 시작했다.

#

“와······그대로 겉바속촉 되는 줄 알았네.”

기파가 갈라낸 화염 마법이 내 쪽으로 덮쳐오는 바람에 그대로 겉은 바삭하고 안은 기름기가 쏙 빠져 야들야들한 로스트 치킨구이가 될 뻔했다.

검으로 무효화하는데도 열기가 느껴져 검을 전개한 뒤 [역려건곤]까지 동원해 마법을 쳐내야 했다.

최대한 사람이 없는 쪽으로 쳐내려다 보니 거의 강제로 밀리고 밀려, 나는 지금 뚫려 있는 창문으로 튕겨 나온 상태였다.

다행스럽게도 크게 다친 곳은 없어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위타천이랑 악수할 때는 은밀해야 하는 어쩌고 뭐시깽이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지금 꼬라지를 보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반대편 객석 위에서 불사조가 화염을 쏟아내며 날아다니는 꼴만 봐도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노덴스를 돕기 위해 안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불사조를 보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저걸 처리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기도 하고, 안쪽에서 잠깐이나마 직접 본 광경으로 미루어 보자면 노덴스가 이겼으면 이겼지, 질 것 같지는 않았다.

공공 집행자에게 이런 깊은 신뢰를 느껴본 것이 얼마 만인지.

어느 현자는 사람 다섯이 모이면 하나는 틀림없이 쓰레기라는 진리를 설파했다지만, 다섯 중에 넷이 이상하면 하나 정도는 정상인 것도 나쁘지 않다.

그래야만 한다.

그러니 정상인 노덴스를 믿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앨리스.”

-네, 사장님.

“너 있는 곳에서 저 새 보이니?”

-보여요.

“저걸 떨어트리려고 하는데 일단 접근해야 할 것 같거든? 어디로 가면 될까?”

-잠시만요. 지금 열려있는 통로 찾아볼게요. 음······. 사장님 지금 계신 곳에서 왼쪽 뒤편 보시면 아직 부서지지 않은 조명탑으로 이어지는 통로 있어요. 조명탑이면 새가 옆으로 지나갈 때 아슬아슬하게 닿을 것 같은데, 알려드려요?

“최단 거리로.”

앨리스의 안내를 받아 조명탑 위에 올라섰을 때, 불사조가 객석에 가까이 붙어 이쪽으로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놈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열기가 후끈하게 밀려들었다.

“불사조 같긴 한데 목 따이면 죽겠지?”

-음······확답은 못 하겠는데 그렇지 않을까요?

“해보자고.”

열기와 화상에 대비해 스킬을 두르기 직전, 내가 서 있는 조명탑의 위쪽, 돔 천장의 구조물에 그림자가 꾸물거리는 것이 보였다.

야타가라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저 새는 해로운 새다.

인민이 먹을 쌀을 없애는······아니, 돔구장에 열기를 뿌리는 걸로 모자라 온갖 시설들을 파괴하고 녹아내리게 하는 저 새를 없애야 한다.

불사조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약간의 시간 정도는 남아있는 상황.

야타가라스는 새로운 검을 들고 있었는데, 사용자가 야타가라스이니만큼 아무 검이나 들고 오지는 않았겠지만 어딘가 시원치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면 사실이었다.

그림자를 향해 외쳤다.

“어이! 야타가라스!”

그림자의 시선이 내게 닿는 걸 느꼈다.

존속살해를 꺼내 무게를 확인하고 다시 외쳤다.

“빌려주는 거니까 쓰고 반납해!”

[철완鐵腕]

[제구]

[대포알 송구]

야구팬이 봤더라면 자기 팀 외야수로 오지 않겠냐고 제의할 정도로 완벽한 송구가 야타가라스를 향했다.

존속살해를 받은 야타가라스가 고개를 갸웃하나 싶더니 곧 다시 만나 반갑다는 듯이 한 바퀴 돌리고 검을 완전히 전개하자 검은색 광자 검날이 밀려올라 모습을 드러냈다.

나도 질세라 푸른 광자 검날을 밀어 올렸고, 이제 불사조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화염 저항이나 화상 방지 스킬을 사용 중인데도 밀려드는 열기가 대단했다.

그리고.

아래로 보이는 불사조의 목을 향해 뛰었다.

반대편에서 야타가라스가 역시 불사조를 향해 떨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유성낙하]

[필격살]

나, 야타가라스.

서로가 만들어낸 광자 검날의 궤적이 공중에서 교차했다.

교차점에 불사조가 있었다.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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