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어디 다치신 곳은 없죠?”
VIP 부스 내부, 신시아가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연신 물었다.
괜찮다고 연신 말해도 의료진을 불러와야 한다며 호들갑이라는 호들갑은 다 떤 직후였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혹시 모르니까 옷을 다 벗어보라고 할 것 같아 일단 자리에 눌러 앉혔다.
“제 몸은 제가 잘 알아요. 다친 곳 없어요.”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인 신시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중에라도 이상 있는 것 같으면 저한테 말씀해주세요. 꼭이요. 스틸레드 마탑이랬죠? 그놈들을······.”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문장을 다 완성하지 못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적당히 제지하지 않으면 무슨 일을 벌일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됐어요. 그냥 흔한 해프닝이었어요. 이미 테오릭 경이 그쪽 마탑에 연락을 취하겠다고 하셨으니까 신시아까지 나서는 건 과잉 대응이죠. 그리고 그놈들 잔뜩 기죽은 거 보셨잖아요.”
시비는 놈들이 걸어온 게 맞지만 내 대응 방식도 세련되지는 못했으니까 야스민 가문의 진노까지 짊어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스틸 레드의 직계 제자도 못 되는 마법사들이 테오릭 경, 신시아, 위타천의 삼각 편대에 포위된 채로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한마디도 못 하고 있었으니 보통 망신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들 입장에서는 아마 누구인지 알 수 없었을 이수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로봇 외장을 뒤집어쓴 모습으로 공중에 뜬 채 마법사들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자기에게 주어진 네오-서울 치외법권을 이런 때 아니면 어디에 쓰겠냐면서.
현장에 나타난 위타천은 이수련을 진정시키는 데 진땀을 빼야 했다.
그 대단한 위타천이 ‘선배님, 선배님 진정하십쇼.’ 하는 걸 직관한 사람들이 기묘한 표정을 짓곤 했다.
이런 혼란의 구렁텅이 속, 내가 뒤틀어 버렸거나 잘라버린 사지의 단면을 부여잡고 아프다고 앓는 소리도 못 내는 마법사들의 꼴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러니까 왜 얌전히 앞으로 가는 사람 어깨를 붙잡아서는······.
신시아가 내 말에 반박하며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앨리스를 건드렸잖아요.”
“저는 괜찮아요. 내부 파츠는 멀쩡해요.”
뒤쪽에서 들리는 앨리스의 목소리였다.
바이저를 쓴 이수련이 끝에서 빛이 나는 자신의 손가락을 앨리스의 찢어진 피부에 가져가자 마치 용접되듯 피부가 달라붙고 있었다.
빛이 강렬해 오래 바라보고 있기 어려워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부스의 구석구석을 날름대던 빛이 사라지자 신시아는 얼른 앨리스에게 달려가 팔뚝을 살폈다.
“여기 자국 남은 것 봐. 여자애 팔뚝에 이게 뭐람.”
바이저를 없앤 채로 어깨를 으쓱하는 이수련이었다.
“임시 조치라 그 정도가 최선이니라. 생활이나 움직임에 지장 있을 정도는 아니니 일단은 그 정도로 만족하고 사무실로 돌아가면 교체해주마.”
앨리스는 신기한 듯 상처처럼 남은 접합 부위를 다른 손으로 천천히 쓸었다.
그리고 이수련에게 말했다.
“심하게 움직이지만 않으면 또 찢어지거나 하지는 않죠?”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럼 이대로 둘래요.”
깜짝 놀란 신시아가 물었다.
“왜?”
“사장님이 나가도 저는 대부분 사무실에서 지원하잖아요. 그래서 이번 일로 사장님이 현장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어요. 대단하더라고요.”
‘낭군이 조금 대단하긴 하지.’ 하고 혼잣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수련을 뒤로하고 앨리스가 팔뚝을 올려 모두에게 접합 부위를 보여줬다.
“이런 게 있으면 눈에 띌 때마다 사장님이 고생하고 있구나 하고 다시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사무실이 대림 에어리어에 있는데, 이 정도 상처는 가지고 있어야 다른 사람들이 무시 안 하죠.”
그런 앨리스에게 내가 말했다.
“영광의 상처네.”
“맞아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시아가 앨리스를 덥석 안았다.
“너무 의젓해! 너무 귀여워!”
그렇게 신시아가 앨리스를 끌어안고 있는 사이, 바이저를 없앤 이수련이 내 곁으로 와서 킥킥거렸다.
“밖에서 소란이 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낭군일 거로 생각했느니라.”
“왜죠?”
“직감이니라. 그런데 상대 마법사들은 강철계 마법사라고 하고 들었는데 말이다.”
“네. 스틸레드인가 하는 마탑이라던데요.”
“흠······.”
뭔가를 고민하는 이수련이었다.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앨리스의 상처가 강철계 마법으로 찢긴 건 아닌 것 같아서 말이다. 정녕 강철계 마법이었다면 아예 뜯겨 나갔거나 하다못해 접합할 수 없을 정도로 절단면이 거칠어야 하는데······.”
설마······?
“에이. 아니겠죠. 착각한 거 아니에요?”
“지금 본좌의 경험을 단순한 착각으로 치부하는 것이더냐? 낭군은 본좌가 목격한 강철계 마법이 몇 건이며, 직접 손으로 만진 로봇과 안드로이드가 몇 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팔짱을 낀 채 이수련이 중얼거렸다.
“상처의 흔적은 마치······아주 예리한 것에 베인 것 같았느니라······심지어 직접 닿은 흔적도 없는 것이 마치 아주 빠르고 거센 바람에 스친 것 같은······.”
[헥토파스칼 킥]으로 만들어진 기류 중 한 줄기가 펜스로 만들어진 구조물 안에서 방향을 잃어 앨리스의 팔을 긁은 건가?
뒤쪽에서 아직도 앨리스를 끌어안고 있는 신시아가 말만 하라며, 우리 앨리스 팔에 상처 낸 놈들 다 잘근잘근 씹어 먹어줄 수도 있다는 소리를 하는 게 들렸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펜스에 긁힌 게 맞을 거다.
“앨리스에게 당시 상황을 물어봐야겠구나.”
이수련이 몸을 뒤로 돌리기 직전, 돔구장의 천장이 접히며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모두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려야 했다.
“우, 우와! 시작한다! 다들 와요!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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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서 준비들 많이 했네.”
“본좌도 그리 생각한다. 특히나 프로이데의 마법에서 보이는 술식 간의 정교하고도 세밀한 맞물림은 정말 아름다웠느니라.”
“페룬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아요. 전장의 페룬 아니랄까 봐 새로운 마법 병기를 가져왔던데, 보고 있으니까 등줄기에 전기신호가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더라니까요.”
페룬에 이어 프로이데의 퍼포먼스가 끝났을 때, 경기장은 이미 흥분의 도가니 그 자체였으며 내 옆에 있는 셋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꺼내어 찬찬히 복기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여줘야 해서 실전성을 줄이고 가시성이나 화려함에 조금 더 비중을 두었겠지만, 되짚어 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먼저 페룬.
5명의 마법사가 한 조가 되어 펼치는 이동형 토치카(точка: 사격 진지, 전투 진지) 운용 마법.
전장과 비슷하게 구성해 놓은 필드 위에서 마법으로 고철을 끌어모아 천장까지 막힌 둥그런 토치카를 구성했을 때는 관객석에서 실망의 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미리 준비된 유전자 조작 거대 괴수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충격을 흘려보내자 점차 실망의 소리는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괴수들이 미동도 없는 토치카 앞에서 숨을 헐떡이기 시작하자 토치카 주위에 마법진들이 떠오르더니 변형을 시작했다.
토치카의 외부에 포탑처럼 생긴 구조물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나 싶더니 내부에 있던 마법사들이 포탑 위에 올라서서 괴수들을 향해 강철계 마법을 쏟아냈다.
열을 받을 대로 받은 괴수들이 운동장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포효를 내뿜으며 토치카를 들이받았지만, 그때마다 마법사들은 내부로 사라지고 토치카는 원래의 둥그런 형태로 돌아가 아무 일 없다는 듯 공격을 무심히 받아낼 뿐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이 토치카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을 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나 말고 관객석에 앉아 있는 수많은 사람들도 흥분을 참지 못해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토치카 아래에서 역관절의 다리가 솟아나더니 고지대를 점령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
기계를 이족보행 하게 하는 것은 들어가는 품에 비해 효율이 떨어진다고 한다.
특히나 저렇게 크면 클수록.
나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두 다리로 지면을 박차고 이동하는 토치카?
가슴을 끓어오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확신한다.
만약 저 다리가 바퀴였다면 더 효율적이고 더 경제적이며 더 양산이 쉬울지는 몰라도, 이 정도로 가슴이 후끈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출인지 모르겠지만 옆에서 들이받는 괴수 때문에 토치카가 휘청일 때는 염려하는 관객들의 소리가 운동장 전체를 뒤덮었다.
하지만 용케 균형을 잡은 토치카는 속력을 높여 고지대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다리를 지반에 박자 이번에는 토치카 곳곳이 열리며 다섯 개의 포대砲臺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 마법사 한 명이 하나씩을 맡아서 운용하고 있을 포대에서는 포탄과 미사일이 쉬지 않고 발사되었다.
제멋대로 날아가는 그것들의 모습에 관람객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내게는 저 궤도가 제법 익숙했다.
“만천화우.”
여다함이 보여주었던 그 마법······에 가까운 무언가이자 무언가······에 가까운 마법.
실제로 탄의 몸체에는 마법 술식이 가득 적혀 있었다.
마법사들의 통제에 들어간 포탄들은 곧 궤도를 되찾고 화망을 구성해 괴수들을 찢어발겼다.
포성과 포연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투박해 보이는 토치카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괴수들, 관객들의 미칠듯한 함성뿐이었다.
프로이데 역시 준비를 많이 한 티가 듬뿍 묻어났다.
황폐한 전장이었던 필드가 뒤집히며 계룡 권역과 비슷한 울창한 숲으로 바뀌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곳에 등장한 프로이데의 마법사들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얼음의 성을 쌓아 올렸다.
페룬에 비해 볼거리가 없다고 투덜거리던 어느 관객의 불평은 얼음의 성이 순식간에 뻗어 올라, 열린 돔 천장을 넘어설 즈음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것은 너 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바짝 위로 들고 보게 할 정도의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다.
마치 동화에나 나올 것 같이 장엄하고 웅장한 성의 가장 위, 종탑에 선 마법사가 역시 얼음으로 된 종을 밀어 울리자 청명한 소리가 느릿느릿 운동장을 메웠다.
종소리가 어느 관객의 감동 섞인 눈물까지 끌어안고 다시 종으로 돌아갈 즈음, 쩌억 소리와 함께 성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사고인 줄 알았던 건지 관객들의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지만, 마법사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내가 느끼기에도 흐름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철저히 준비된 퍼포먼스라는 뜻.
무너진 얼음의 성 아래에서 프로이데 마법사들은 얼음 파편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마법을 그려 넣자, 파편들이 수십 조각으로 분리되며 마법사들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고 다시 성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훨씬 더 거대한 성을, 더 빠르고, 더 정교하게.
압도적으로 완벽하게 계산된 그 행동에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참았던 숨이 터져 나온 때는 종전보다 더 높게 솟은 종탑에서 얼음의 종이 울리는 소리가 몇 번이고 들려올 즈음이었다.
신시아와 이수련이 속닥였다.
“얼음 파편을 마법의 증폭 장치 겸 보조 술식 자체로 이용한 건가? 아이디어가 좋은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술자의 역량이 부족하면 저렇게 거대한 건축물을 오로지 마법으로만 두 번씩이나 세우는 것은 힘들 것이니라. 프로이데 마법사들의 성장이 괄목할 정도라더니 헛된 말은 아니었던 듯싶구나.”
불칸의 퍼포먼스까지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해서 화장실을 다녀오기 위해 잠시 부스를 나왔다.
볼일을 보고 손까지 깨끗하게 씻고 밖으로 나서니 앨리스가 서 있었다.
“여기 남자 화장실인데.”
“저도 알아요.”
“그런데 왜 여기 서 있어.”
“누가 사장님 좀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요.”
“누구?”
“와보세요.”
앨리스는 내 손목을 잡더니 어디론가 끌고 가려 했다.
몇 걸음 떼지 않아, 손을 뻗어서 내 손목을 붙잡고 있는 앨리스의 팔뚝을 잡고 비틀어 뜯어버렸다.
한순간에 팔 한쪽을 잃은 앨리스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외쳤다.
“사장님! 지금 이게 무슨······!”
여전히 내 손목에 매달려 달랑거리는 앨리스의 팔뚝을 집어 들고 살피며 말했다.
“내가 알기로 이딴 짓을 하는 건 스펙터밖에 없었는데.”
앨리스의 팔뚝에는 오늘 만들어진 영광의 상처가 없었다.
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