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잡캐여도 너보단 강함-196화 (197/258)

196.

“무슨 사람이 이렇게나 많아.”

바이크를 세워 놓고 운동장 근처로 가니 어마어마한 인파가 운동장을 몇 겹이나 에워싸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죠. 페룬은 네오-서울에 있는 여러 마탑 중 가장 강성한 마탑이고, 프로이데는 규모는 타 마탑에 비해 작아도 내실이 단단하기로 유명하니까요. 그 둘이 붙는 교류전? 못 참죠.”

“흐음······.”

“제 말에 별로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신데요.”

“아니 대단한 건 알고 있었는데 그걸 보러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릴 것까지 있냐······하는 거지.”

“그건 사장님 주위에 계신 분들이 워낙 대단해서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닐까요?”

“그런가?”

출입구를 찾아 걸어가는 동안 앨리스는 내 곁에서 계속해서 종알거렸다.

“게다가 올해는 불칸도 참여하잖아요. 불칸의 화염계 마법사들이 진출하는 쪽이 주로 산업 쪽이라서 상대적으로 평가가 박한 면이 있지만, 실력은 정평 났다고요. 물론 올해 참여하고 다음 기회에도 참여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사장님도 들어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교류전은 상당히 거칠거든요.”

“죽이는 것‘만’ 금지됐다고 하던데.”

“네. 그래서 교류전의 꽃인 집단전투에서는 부상자가 쏟아져 나와요. 각 진영에서 스무 명씩 나오니까. 예순 명의 마법사가 마법을 쏟아내는 장관이 펼쳐지는 거죠. 공간 얽힘 합격이나 양자 간섭 거대 마법 방진이 나올지도 몰라요.”

“그게 끝이야? 그냥 서로 때려눕히는 거?”

어이없다는 눈빛의 앨리스가 나를 바라봤다.

“설마······사장님 아무것도 안 찾아보시고 온 거예요?”

“응. 나는 올 생각도 없었는데 네가 데리고 왔잖아.”

“교류전 때문에 네오-서울까지 온 마법사의 가이드를 했으면서, 찾아보지도 않았다고요?”

“그렇다니까.”

“그럼 제가 설명할 테니까 잘 들으세요.”

앨리스가 씨익 미소 지었다.

신나게 떠들 생각에 벌써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교류전의 기원은 들으셨죠?”

“테오릭 경이랑 셀린느 할멈의 신경전이잖아. 기원이라고 하니까 되게 엄청나게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것 같네.”

“잘 알고 계시네요. 교류전의 종목은 매년 바뀌는데, 오로지 방금 말씀하신 두 분의 합의에 따라 결정돼요. 지금까지 나왔던 건 시속 200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도록 개조된 호버보드 경주―.”

“생각했던 것보다 정상적인데?”

“탑승자는 마법사였겠죠? 다른 진영의 마법사를 향해 마법을 쓰는 것도 가능했을 거고?”

말문이 턱 막혔다.

“죽음의 레이스죠. 그 당시 사망자가 한 명도 안 나온 게 기적일 정도래요. 그것 말고도 마법사 축구, 수중 전투, 상대 마탑주 집무실 침투, 국제 범죄자 추적 소탕전 등등이 있어요.”

어째 예시가 뒤로 갈수록 미쳐 돌아가는 것들이 나오는 것 같았다.

“교류전이라고 이름 붙여놓고서는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거 아니야?”

“정확해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교류전에 관심을 가지죠. 자연스레 페룬과 프로이데의 위상은 올라가고요. 이걸 따라 해서 교류전을 가지는 다른 마탑들은 많지만, 화제성 면에서는 이만한 교류전이 없어요. 그리고 또 교류전 전에 하는 퍼포먼스가 또 기가 막히거든요.”

“그건 또 뭔데.”

“새로 개발한 마법들을 선보이는 자리예요.”

“쇼케이스?”

“네. 은밀한 종목을 선정했으면 없어지기도 하는 순서인데 이렇게 동대문운동장까지 빌려서 할 정도면 굉장한 규모로 보여주지 않을까요. 마지막 순서인 페룬 마탑에서 집단전 뿐만 아니라 퍼포먼스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고 하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주위에 마법사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만?”

온갖 종족, 온갖 능력, 온갖 직업이 판을 치는 곳이 네오-서울이지만 마법사는 그중에서도 아주 특수한 위치에 있었다.

먼저 마나를 느낄 수 있는 재능이 있어야 하고, 그 마나를 몸 안에 담아둘 마나 하트를 만들 수 있어야 비로소 마법사가 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마나에게 선택받은 자들이 마법사인 것.

타인의 마나 하트를 상속, 인수, 강탈, 적출······기타 등등의 방법으로 입수한 뒤 이식해서 마법사가 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해당 마나 하트의 주인이 소속되어 있던 마탑에서 마나 하트의 회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것이므로 마법사가 되는 추천 루트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는 폐쇄적인 집단인 마탑에 들어가 평생을 살아간다.

폐쇄적이라고 해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소속된 마탑의 진출 분야에 따라 사회 여러 방면에서 활약할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어딜 가나 마법사는 귀한 존재이기에 대부분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혹독하게 기강을 잡는 페룬의 마법사들도 밖에 나가면 목이 뻣뻣하다는 소리를 듣는데 다른 마탑 마법사들의 행동양식은 안 봐도 뻔했다.

지금 이곳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여러 마탑들의 문장이 새겨진 옷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업계 선두 기업이 신제품 공개하는 자리에 다른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말하니까 테오릭 경이 마치······.”

기업 회장 같다고 말하려다가 말을 안으로 말아 감추었다.

정말로 언론에서는 테오릭 경을 두고 종종 회장이라고 칭하는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마치 뭐요?”

“별 얘기 아니었어. 그런데 신시아랑 이수련은? 오기로 한 거 아니었어?”

“안에서 보기로 했어요. 입장권도 다 보냈고요. 아마 우리가 제일 늦었을 걸요? 테오릭 경이 마련해 주신 자리가 VIP 관람 부스라서 저희끼리 보면 돼요. VIP 출입구는 저쪽인 것 같네요.”

앨리스가 이끄는 방향으로 따라가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향해 손을 뻗어오며 외쳤다.

“어이! 줄 서! 새치기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몸을 틀어 손을 흘리고 뒤를 돌아보니 처음 보는 문장이 새겨진 망토를 입고 있는 리자드맨 마법사가 내 어깨를 붙잡지 못해 휘청이고 있었다.

“뭐야.”

몸을 바로잡은 리자드맨이 세로로 찢어진 동공을 내게 부라렸다.

“다른 사람들 기다리는 거 안 보여? 뒤로 가서 서!”

“미안한데, 우리 티켓으로 입장하는 곳이 저기야. 그쪽 줄은 건들지도 않을 거라고.”

“그리고 앞으로 간 뒤에 줄에 슬쩍 끼어들 생각이지?”

VIP 출입구가 마법사들 전용 출입구에서 따로 갈라져 나가는 곳에 있어 생기는 해프닝 같았다.

마법사 출입구의 대기 줄이 짧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건데, 워낙 사람이 많이 모이는 바람에 대기 줄이 뒤쪽으로 길어져서 마치 내가 새치기를 하는 그림이 되어버린 것.

내 옆으로 붙은 앨리스가 속삭였다.

“문장을 보니 스틸레드 마탑이에요. 강철계 마탑 중에서는 수위에 드는 마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수위라는 의미는?”

“측정 지표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략 삼, 사등?”

“별거 아니네.”

리자드맨이 다시 한번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뭘 쑥덕거려! 어떻게 할지 상의라도 하는 거냐? 너희 같은 놈들은 아예 입장을 못 하게······.”

앨리스를 내 등 뒤로 숨긴 뒤, 어렵지 않게 리자드맨의 손을 쳐냈다.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정의감에 불타는 건 좋은데, 괜한 의심은 거두는 게 좋아. 그리고 아무나 덥석덥석 잡는 버릇도 고치는 게 좋을 거고.”

다른 마법사들이 보고 있는 곳에서 두 번이나 수치를 당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리자드맨의 잇새에서 거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익······!”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리자드 맨의 눈에 안경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렌즈 너머로 우리를 살핀 놈이 중얼거렸다.

“한 명은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인간에,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마법사도 아닌데 마법사 줄에 선 것 자체가 잘못된 거야!”

당장 상황을 모면하려면 한가지 방향 밖에 보이지 않게 되고, 그에 따라 오판을 거듭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리자드맨의 상황이 그런 것 같았다.

놈은 스스로의 논리에 파묻히고 있었다.

하지만 놈의 발악이 효과가 있었는지 우리가 마법사가 아니라는 소리에 다른 마법사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마탑끼리 으르렁대도 누가 자기네들 밥그릇을 흔들면 마법사라는 이름 아래 뭉치는 이들의 단면이 여기서도 드러나고 있었다.

“마법사도 아니면서 왜 이쪽 줄에 선 거야!”

“줄 선 것도 아니야. 쭉 앞으로 지나치고 있었다고!”

“누구는 다리가 없어서 새치기 못 하는 줄 알아?”

아니 우리 출입구가 그쪽이라니까요.

그리고 다리 어쩌고 한 놈은 진짜로 하반신 대신 작은 부양 장치 같은 것이 달려 있어 대꾸하기도 애매했다.

주위가 잠시 소란스러워질 때,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간, 검은 티셔츠, 옆구리에 있는 칼날 없는 칼자루······설마 해결사 오메가 아니야?”

열심히 뛰어다닌 보람이 있구나.

알아보는 사람도 생기고.

하지만 그 기대는 얼마 가지 못했다.

“그래? 아닌 것 같은데. 봐. 칼자루가 두 개잖아. 오메가는 한 개만 들고 다닌다던데.”

“뭐야. 그럼 오메가인 척이야?”

“간도 크다. 걸리면 어쩌려고. 오메가 성질이 그렇게 더럽다는데.”

“설마 걸릴까 했겠지. 여기 사람이 몇이야.”

이런 젠장.

존속살해도 들고 다니는 중이라 허리춤에는 두 개의 칼자루가 있었다.

최신 정보 갱신이 느린 게 분명하다.

내 정보는 루트에서 관리 중인 것도 있긴 하겠지만······.

처음 내게 손대려 했던 리자드맨도 주위 분위기가 바뀐 것을 감지했는지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스틸레드의 마법사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런 짓을 자행하는 거냐! 버릇을 고쳐주지!”

여러 수인을 바꿔 맺는 리자드맨 마법사 주위로 공기가 일렁였다.

“소속을 굳이 그렇게 쩌렁쩌렁 말할 필요 있나? 다 들으라는 듯이? 내가 그러면 엎드려 빌기라도 할 것 같아?”

“후회해도 늦었다. [철상누각鐵上樓閣].”

입장 줄을 구분하기 위해 세워져 있던 낮은 펜스가 마법사의 손짓을 따라 끌려오더니 자기들끼리 엉겨들어 내 주변에 높게 세워지기 시작했다.

바로 옆구리에 앨리스를 끼운 채로 펜스를 차고 올랐다.

펜스가 휘어지며 위쪽을 막기 시작했다.

위, 아래, 옆 어디라도 좋으니 뚫어야 했다.

펜스에 닿아있는 발의 감각에 집중했다.

좁은 공간이라 실패하면 내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니라 옆에 앨리스를 끼고 있으니 한 번에 성공해야 했다.

[헥토파스칼 킥]

태풍처럼 거대한 풍압이 발바닥에 모이나 싶더니 곧 펜스로 이루어진 누각의 옆을 뚫어버렸다.

신발 밑창이 너덜거리는 불쾌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아오. 신발 걸레짝 됐네. 이래서 안 쓰고 싶었는데.”

그런 나를 본 리자드맨의 눈이 떨렸다.

“이게 무슨······.”

그러거나 말거나 옆에 끼고 있었던 앨리스를 내려놨다.

“괜찮아?”

몸 여기저기를 살피던 앨리스가 멈칫했다.

“어?”

앨리스가 들어 올린 팔뚝 아랫부분, 피부가 찢어져 내부 파츠가 보이고 있었다.

펜스 끝에 걸렸던 건가.

머릿속에서 뭔가 끊어졌다.

“이 새끼······우리 직원을 건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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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룬과 프로이데의 교류전 당일, VIP 입장 통로 앞에서의 싸움을 목격한 목격자들의 진술.

-그런 건 처음 봤다. 마법이 무슨 종이 찢어지듯 사라지더라.

-그래도 스틸레드 마탑이면 한가닥 하는 곳인데 거기 마법사랑 대놓고 치고받을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나중에는 다른 스틸레드 마법사들도 합류해서 7대1을 하더라. 그리고 1이 7을 박살 내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로 그 사람이 해결사 오메가 맞냐?

-그 검, 어디 가면 구할 수 있는지 알려줄 수 있나. 멋있었다.

-현장 통제 책임자가 위타천인걸 나중에 알았다. 그것도 놀라운 사실인데 위타천이 와도 드잡이질을 멈추지 않더라. 대체 그 사람 뭐냐.

-페룬 마탑주 테오릭, 야스민 가문의 영애 신시아 야스민이 안에서 튀어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소녀는 누구냐? 바이저로 얼굴을 가린······. 구미호 같던데. 귀엽게 생겼을 것 같아 물어보는 거다.

-교류전 분위기를 달구기 위해서 하는 사전 플래시몹인 줄 알았다. 교류전은 어땠냐고? 그건······.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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