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잡캐여도 너보단 강함-189화 (190/258)

189.

“어이! 서씨! 쉬었다 해!”

대림 에어리어 23구역.

이곳에서는 무너진 폐건물들의 철거 작업이 며칠째 한창이었다.

대림 에어리어에서 철거를 주업으로 삼은 업체라면 모두 달라붙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현장.

신입 잡부 서씨가 엉거주춤 선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차가운 캔커피 하나가 앞으로 툭 날아들었다.

힘 조절을 잘못했는지 캔커피는 서씨의 머리보다 약간 위쪽으로 넘어갔지만, 캥거루 수인인 서씨는 꼬리로 몸을 지탱한 채로 몸을 들어 올려 커피를 받아냈다.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걸 본 동료들이 장난을 담아 밉지 않게 타박했다.

“이렇게 커피 돌리고 하는 건 막내가 해야 하는 건데, 센스가 없네. 센스가.”

“곽씨! 너무 그러지 말어. 서씨가 센스는 없고 말은 조금 못 알아들어도 자네보다 일 두 배는 많이 하니까.”

“아 그게 무슨 섭한 소리여. 철거 판에서 60년 구른 이 곽춘삼이 무시하는겨?”

“내가 언제 무시했다고. 무슨 말을 못 해 말을. 그리고 우리 서씨 정도면 아주 훌륭한 신입이야. 도망도 안 가고. 요새 이런 대규모 철거 현장이 드물어서, 현금 받는 거 생각하고 개나 소나 오는데. 그거 다 하루하고 도망간다고 난리잖아.”

“하기사. 저어기 옆옆 건물 담당하는 후앙컴퍼니는 아예 차량에 신입 모집 써 붙이고 다니더만.”

“그 돼지가 하는 곳? 이런 큰 현장은 첨일 것인디 고생 좀 하겠네.”

“어이고? 누가 들으면 김씨는 많이 해본 줄 알겄슈?”

“나! 이 김두팔이가 철거는 큰 현장 많이 못 가봤어도, 세우고, 만들고 하는 웬만한 현장에는 다 있었지! 강남 에어리어 주상복합? 성북 에어리어 고급 주택단지? 다 이 김두팔이 손에서 나왔다 이 말이야.”

붕괴 위험 때문에 안전모도 벗지 못한 채로 쉬는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었지만, 정말인지 거짓인지 모를 왕년의 이야기와 차가운 캔커피 하나면 웃음꽃을 피우기에는 차고 넘쳤다.

그러다 그들의 대화 화제가 지금 있는 현장으로 넘어갔다.

“근디, 이 현장 말인디. 그 말이 맞남? 야타가라스랑 오메가인지 하는 해결사랑 싸우느라 이 난리 났다는 거?”

“나는 아니라고 봐.”

“어째서?”

“야타가라스는 은밀하게 활동하는 걸로 유명한데 이렇게 대놓고 난리를 칠 리가 없잖어.”

주저앉아 커피만 홀짝이던 서씨도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다른 이들도 곽춘삼과 김두팔의 심도 있는 대화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럼 곽씨가 보기에는 이 전쟁통이 어떻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데.”

“그거여.”

“뭐.”

“전쟁.”

다른 이들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곽씨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 들었을 때 콰앙! 하는 것이 영락없는 전쟁 소리였다니까.”

“전쟁 소리가 뭔데.”

“미사일 쾅! 폭탄 쾅! 우리 집이 여기 옆 24구역이라 똑똑히 들은 걸 얘기하는겨! 집에서 벌떡 일어나서 확신했지. 아! WSS 놈들이 패전의 설움을 잊지 못하고 드디어 다시 전쟁을 벌이는구나. 김씨도 알 거 아녀.”

김씨가 손을 저으며 곽씨를 말렸다.

“에헤이! 곽씨! 요새 그런 소리 하면 큰일 나. 저기 서씨도 WSS 사람인데 말이야.”

곽씨가 실수했다는 민망한 얼굴로 서씨가 퍼질러 앉아 있는 쪽을 바라봤다.

서씨는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들이 민망했던지 고개를 까딱하고 한마디만 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신경 안 써요.”

그 말이 기폭제라도 되었던 것일까 곽씨는 이 현장은 WSS의 특수부대가 땅굴을 뚫어 침투하려다 수도방위사령부의 저지 작전에 막힌 흔적이라 주장했다.

다른 이들도 처음에는 곽씨한테 간 물통에 소주가 들었던 것이 아니었냐며 웃어넘겼지만 곽씨가 워낙 진지하게 주장하기도 했고, 자기네들도 철거 작업을 진행하면서 본 흔적들이 워낙 기괴하고 엄청났기에 차차 수긍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곽씨를 말리던 김씨도 목소리가 커지더니 급기야 서로 주먹다짐하기 직전까지 가서야 다른 사람들이 둘에게 붙어 떼어놨다.

흔한 몸 쓰는 현장이었다.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화제를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그나저나 여기 이꼴 난 김에 대규모 재건축한다고 그러던디? 뭐 좀 들은 거 있나?”

“여기 악명 높았잖아. 재산권이니 유치권이니 해서. 흉물도 이런 흉물이 없는데 못 치웠던 게 다 그런 이유 아니겠어? 그런데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돼버렸으니 명분이 생겼으니까 후딱 뭐라도 올릴 거라더만. 공무원 나리들 여기 보이는 게 다른 이유가 있겠어? 내일은 행정관도 올 거라던디?”

곽씨의 청산유수 같은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인부가 물었다.

“곽씨 아저씨는 어디서 그런 걸 다 주워듣는 겁니까?”

“주워듣다니, 듣는 곽춘팔이 섭하고로. 이게 짬이고 연륜이지. 이쪽 판에 60년씩 있으면 듣기 싫어도 다 흘러들어 오는 게 있다 이 말이지.”

한편, 서씨는 주위가 시끄러워지기 전에 몸을 일으켜 현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철거 업체에서 세워 놓은 지지용 구조물 안쪽으로도 철근과 콘크리트 조각들이 뻗어 나와 있었다.

서씨는 걸음 속도를 줄이며 주위를 비롯해 아직 손이 닿기에는 먼 저 안쪽의 붕괴 현장을 눈에 담았다.

녹아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음과 불꽃의 모양이 그대로 남은 그을음이 현장의 참혹함을 더욱 생생하게 알려왔다.

그리고 마치 칼로 두부를 자른 것처럼 튀어나온 부분 하나 없이 말끔하게 잘려 나간 건물의 단면들까지.

진입 금지 가림판이 서 있는 곳까지 다가간 서씨가 한참을 둘러보더니 중얼거렸다.

“대등했나? 아니면 오히려 우세······? 결과는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군.”

멀리서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자! 쉬는 시간 끝났습니다! 다시 일합시다!”

“일할 때는 시간 줫같이도 안 가더니 좀 앉아 있을 만하면 부르고 지랄여!”

#

그날 밤, 서씨의 발걸음은 WSS의 산업지구로 향했다.

야근을 하느라 불 켜진 공장들이 내뿜는 소음 사이를 지난 서씨가 도착한 곳은 얼핏 봐서 창고인지 공장인지 구분이 잘되지 않는 허름한 건물이었다.

안쪽으로 들어선 서씨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꼬리가 사라졌으며, 굽어진 다리에 붙어 있는 엄청난 근육도 쪼그라들었다.

바닥에 넓게 붙어 있던 발바닥도 줄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벌레들이 날갯짓하는 파르륵소리가 작게 퍼져나갔다.

캥거루 수인이 엘프로 변해있었다.

서씨라는 위장을 통해 철거 현장에 잠입했던 스펙터가 한 걸음 떼다 휘청했다.

스펙터가 들어왔을 때부터 쭉 보고 있던 수연이 콧잔등 위에 주름을 만들어냈다.

‘저런 놈도 동료라고.’ 하는 한탄이 그대로 느껴지는 주름이었다.

민망했던지 스펙터가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꼬리란 게 말이지. 있다 없으면 균형 잡기가 쉽지 않은겨, 없어.”

어느새 곽씨의 말투가 옮은 스펙터가 바로 어미를 고쳐 말했다.

수연은 소리 하나 나지 않게 스펙터에게 스르륵 다가와 말했다.

빙긋 휜 눈웃음이 매혹적이었다.

“아예 이쪽은 때려치우고 그쪽으로 나가는 게 어때. 내가 보내놓고도 하루 만에 힘들다고 징징대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꼬박꼬박 잘나가는 거 보면 의외로 그쪽 일이 적성에 맞는 거 아니야?”

한 걸음 물러선 스펙터였다.

“발 뺄 생각은 하지도 말라더니.”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연의 휘어있던 눈웃음이 평소의 차갑고 매서운 눈으로 변했다.

“좋아. 정답이야.”

“정답? 방금 시험한 거야?”

“혹시라도 다른 마음먹었으면 서로 피곤하니까.”

길쭉길쭉한 엘프의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스펙터는 생각했다.

‘안 하던 짓을 하고. 급한 모양인데.’

그런 스펙터에게 수연이 말했다.

“가서 본 거나 말해. 야타가라스와 오메가가 맞아?”

“모르지. 나는 야타가라스를 본 적이 없는데.”

수연이 날카로운 시선을 흘렸다.

“오메가는 맞다는 말 같은데?”

“플라워즈 호텔에 남겨진 흔적 있지? 꽤 흡사해.”

야스민 공은 플라워즈 호텔에서 있던 가연 습격 현장을 재건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도록 명했다.

관광상품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 예측은 빗나가지 않아 플라워즈 호텔 광화문 에어리어점은 몇 달 내내 빈방 하나 없이 예약이 꽉 찬 상태였지만 이렇게 알게 모르게 오메가의 흔적을 품고 있기도 했다.

“꽤?”

끝이 올라가는 수연의 반문에 스펙터는 며칠 동안 눈에 담았던 철거 현장을 찬찬히 되짚었다.

미사일, 폭탄, 마법사부대, 침투 요원, 전쟁 같은 단어들이 인부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다.

그 정도로 현장은 굉장했다.

온갖 범죄에 연루된 경험이 있는 스펙터마저도 이게 단 두 명의 전투가 만들어낸 흔적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남아있는 흔적 자체만으로 보면 비슷한데. 하나는 달라.”

“뭐지?”

“위력. 범위와 강도 모두 비약적으로 증가했어.”

길게 찢어진 수연의 눈꼬리가 떨렸다.

스펙터는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오메가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어. 계속해서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지. 야타가라스가 정확히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위타천에게 뒤지지 않을 거라고들 하더라고. 그런데 남겨진 걸로만 봤을 때 오메가는 야타가라스와······대등하거나 혹은 더 우세였을지도 몰라.”

수연이 아랫입술을 질끈 무는 것을 보고 스펙터는 얼른 덧붙였다.

“그런데 이건 주변부에 남은 것만 보고 말하는 거니까······아직 손도 못 대고 있는 중심부로 가면 또 다를지도 모르지.”

수연은 아쉬움 섞인 말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 죽였어야 했는데······.”

기계교단 성당에서의 만남.

그때가 오메가를 제거하기의 적기였다.

작은 오만으로 인해 발생한 변수가 계획을 뒤흔들고 있었다.

고개를 저어 잡념을 털어낸 수연이 스펙터에게 물었다.

“야타가라스와 오메가는 붕괴 현장 아래 있는 건가?”

“아마도? 지반이 무너져서 지하수로까지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니까.”

“이참에 죽어줬으면 좋겠네.”

‘과연 그렇게 쉽게 죽을까?’ 하는 말을 하려다 속으로 눌러 넘긴 스펙터였다.

가연의 심기가 매우 불편한 것을 알아챈 덕이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쾅' 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린 스펙터의 눈에, 액체로 채워진 원통형 유리관 안에 있는 웨리바흐가 눈을 뜬 것이 보였다.

웨리바흐는 주먹으로 벽면을 강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유리관에 생긴 작은 균열이 웨리바흐의 주먹질과 함께 점점 번져나갔다.

가까이 다가간 스펙터는 웨리바흐의 모습으로 외형을 바꿨다.

놀란 웨리바흐가 주먹으로 벽을 치는 것을 멈춘 사이, 스펙터가 수연에게 말했다.

“이 유기견, 쓸모 있는 거 맞아? 아무리 봐도 쓸데없는 일만 늘린 것 같은데.”

“쓸모가 있을 거야.”

냉혹한 눈으로 웨리바흐를 바라본 수연이 뒤이어 말했다.

“기대에 못 미치면 저놈의 능력이라도 제대로 뽑아먹어야지.”

#

“조심해! 언제 또 위에서 뭐가 떨어질지 모른다!”

스콰이어의 외침이 지하수로 벽면에 반사되어 쩌렁쩌렁 울렸다.

지상에서 아래로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가 수로를 막고 있었다.

렙틸리비아 내부도 아니고, 수로는 워낙 여러 곳이 있어 당장 통행에 불편함은 없지만 일단 혹시 모를 추가 붕괴의 위험 때문에 스콰이어는 다른 파충류 수인들을 데리고 나와 있었다.

쿠르릉-

“무너진다!”

“피해!”

잔해가 쏟아지며 엄청난 먼지가 지하수로를 점령하는 와중, 스콰이어는 잔해 안쪽에서 바깥으로 뿜어지는 한 줄기 빛을 보았다.

그리고 그 빛을 따라 잔해에 틈이 생기더니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파충류 수인들이 각자 둘러메고 있던 무기를 앞으로 겨냥하고 빽빽 소리쳤다.

“누구냐!”

“움직이지 마!”

그 사이로 스콰이어가 나섰다.

“무기들 내려.”

그리고 믿기 어렵다는 듯이 말했다.

“오메가?”

먼지를 뒤집어써서 얼핏 보면 화강암 바위 인간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오메가가 고개를 들더니 눈을 찌푸려 스콰이어를 확인했다.

“어. 스콰이어. 네가 여기 왜 있냐?”

“······우리 영역이니까.”

그제야 주위를 둘러본 오메가는 이곳이 지하수로인 걸 알았다.

“하······어쩌다 여기까지. 여기서 어디로 가야 밖으로 나가냐?”

답을 해주려던 스콰이어는 오메가의 손에 뭔가 잡혀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을 잃은 부엉이 수인이었다.

“이건 누구······?”

야타가라스라고 답하는 대신, 오메가가 분노가 묻은 단어를 씹어뱉었다.

“진짜 새대가리 빡대가리.”

대가리가 두 번이나 들어가는 것에 이상함을 느낀 스콰이어였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오메가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러다 스콰이어의 눈에 부엉이 수인의 손에 들린 검이 보였다.

오메가의 것과 똑같이 생겼지만, 검날이 시커먼 것이 아주 위압적이었다.

“저건······?”

뒤돌아본 오메가가 야타가라스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 덕에 젖은 바닥에 내팽개쳐진 야타가라스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메가는 야타가라스의 억센 아귀를 풀고서 들려 있던 존속살해를 회수했다.

그리고 칼자루 형태로 만든 뒤 자신의 검이 들어가는 허리춤 대신 뒤춤에 꽂고는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 음색으로 답했다.

“정당하고 적법한 과정을 거쳐서 습득한 내 전리품.”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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