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저거······말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엉망이 된 사무실 앞 거리가 조금 진정된 후, 건물 밖으로 나온 앨리스가 신시아에게 하는 말이었다.
팔짱을 낀 신시아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누가, 무슨 수로 어떻게?”
간결한 반문이었지만 앨리스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둘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길 건너편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계속해서 살이 터지고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주위로 번지고 있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 소름이 솟게 하는 그 소리 사이사이로 더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백정만도 못한 쓰레기가! 다시 지껄여 봐! 해 보라고!”
위타천이었다.
영력으로 만들어진 전신 갑옷과 너클을 낀 상태의 위타천이 채 갈무리하지 못하고 흘리는 기운만으로도 그 주변에 숨도 못 쉴 압박감이 내려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위타천은 오메가가 자택에 쳐들어와서 대놓고 취조를 하려던 때보다 한층 더 견고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으으으······.”
위타천의 손에 붙잡힌 채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두들겨 맞고 있는 것은 어레스트에 구속된 나르시스였다.
갈기는 절반 이상 뜯겨 나갔으며 끼고 있던 선글라스는 얼굴 곳곳에 박힌 파편으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신시아는 현장에 위타천이 등장하자마자 쪼르르 달려가서 저 아래 있는 놈이 자기랑 가연을 어쩌고저쩌고하는 얘기를 풀어놓았다.
위타천은 신시아의 말을 믿기 힘들어했다.
요즘 세상에 그 정도로 미친놈이 있다니.
공개적인 약혼 발표 이후 찝쩍대던 놈들이 다 사라졌다고 가연이 좋아할 정도였는데, 감히 가연을 어쩌고저째?
그때 앨리스가 나타나 오메가의 통신 장치를 통해 녹음한 현장의 대화를 들려줬고, 그대로 눈이 뒤집힌 위타천은 폐허 사이로 뛰어 내려가더니 나르시스를 꺼내 올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타작에 들어갔다.
그 살벌한 광경에 현장을 정리하기 위해 나온 경찰관, 소방관, 심지어 사설 집행자들마저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누가 어떻게 저걸 말리냐는 신시아의 반문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었다.
이제 위타천은 많이 사라진 나르시스의 갈기를 잡고 좌우로 패대기치고 있었다.
그리고 말하는 것도 아깝다는 듯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나르시스의 신체 구성을 뒤바꾸는 일에 열중했다.
오메가와 나르시스의 충돌로 무너진 근처의 건물과 실금이 잔뜩 그어진 아스팔트가 다시 한번 부서지기 시작했다.
인공 싱크홀을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지경.
그 바람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 하나가 아래로 떨어지려 하자 한손에 나르시스의 머리채를 잡은 위타천이 어깻죽지에서 날개를 뽑아내 차량 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나르시스의 머리채를 잡지 않은 손으로 차량의 범퍼를 받쳐 들었다.
그걸 본 앨리스가 감탄했다.
“저렇게 분노해도 시민의 재산은 지키는구나······.”
이번에도 신시아는 간결하게 반박했다.
“아닐걸.”
우드득-
위타천이 받치고 있는 차량 범퍼가 우그러드나 싶더니 위로 휙 던져졌다.
그리고 위타천은 반대편 손에 들고 있던 나르시스 역시 위로 던져서 공중에서 낙하하던 차량에 처박아 버렸다.
앨리스가 입을 떡하니 벌리고 경악했다.
“시민의 재산 따위는 별 관심이 없구나······. 다크웹에서 위타천 시리즈 볼 때마다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마주하니 그건 현실에 미치지 못하네요. 역시 현실이 최고의 판타지예요.”
“위타천 시리즈? 그게 뭔데?”
“위타천은 분노라는 감정을 모른다. 왜냐하면 태어날 때부터 지금껏 계속 분노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거요.”
“나는 그 시리즈를 맨 처음 만든 사람이 위타천 님을 직접 만나봤을 거라고 생각해.”
“아마도 공공 집행자와 범죄자라는 관계였겠죠?”
“그렇지 않았을까?”
위타천이 반파된 차를 들어 나르시스를 위로 떨어트렸다.
굉음이 주위를 휘감았다.
앨리스와 신시아의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 사장님은 저런 사람한테 뭘 믿고 그렇게 뻣뻣하게 굴까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섬뜩하긴 하네. 근데 또 웃긴 건 오메가 님이 위타천 님한테 뻣뻣하게 구는 걸 썩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더라. 오히려 되게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맛이 간 인간들끼리 통하는 그런 게 있나 봐요.”
“오메가 님도 나이를 먹으면 저렇게 될까?”
“사장님요? 말썽은 더 치고 있지 않을까요.”
앨리스가 능글맞게 웃으면서 팔꿈치로 신시아를 툭툭 쳤다.
“그러니까 컨트롤 하려면 얼른 잡아야 한다니까요. 아까 들었죠? 연인 간의 지고지순한 사랑 어쩌고 하는 거? 일단 붙잡아놓기만 하면 다른 사고는 쳐도 여성 문제는 안 일으키지 않을까요? 색승이나 저기 나르시스 조져놓는 거봐요.”
신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앨리스를 바라봤다.
“너······.”
“중립인 것 같더니 왜 지금 이렇게 말하냐고요?”
“······응.”
“옆에 신시아 언니가 아니라 수련 언니만 있었어도 똑같이 말했을 거예요. 내가 봐도 좋은 기회인데 자리에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따져가며 얘기하긴 너무 귀찮잖아요.”
신시아는 자신을 감싸던 오메가와 그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듬직하고 포근하고 믿음직스러웠다.
‘그런 오메가 님이 나중에 위타천 님처럼 저렇게······천둥벌거숭이가 된다니.’
천둥벌거숭이의 사전적 의미가 ‘철모르고 덤벙거리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오메가는 애진작에 천둥벌거숭이들의 우두머리로 등극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오메가를 바라보는 시선에 왜곡과 미화가 깃드는 신시아에게는 그저 오메가의 모든 것이 좋게 보일 뿐이었다.
신시아가 잠시 오메가의 등판을 떠올리며 헤벌쭉하는 사이 주변을 살피던 앨리스가 킥킥거리는 웃음과 함께 말했다.
“얼씨구, 옛날 사람 아니랄까 봐 자기 얘기하니까 바로 오네.”
앨리스가 고개를 돌린 쪽에서 로봇 헤드를 뒤집어쓴 이수련이 뒤쪽으로 향하게 조정된 노즐에서 불꽃을 길게 뿜으며 날아오고 있었다.
그걸 본 신시아가 앨리스에게 물었다.
“쟤, 저거 비행 허가받았다고 했었나? 구미호는 비행 종족이 아니라 조례 위반이잖아.”
“아뇨. 시청에 문의도 안 했어요. 자기는 치외법권이 있는데 문의하는 것 자체가 안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요.”
“이해는 한다만 여러 의미로 대단하긴 하네.”
예정되어 있던 화상회의 때문에 머물던 호텔에서 날아온 이수련이 꽤나 태평해 보이는 앨리스와 신시아의 앞의 공중에서 멈췄다.
“이쪽에서 일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왔느니라.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이냐. 저 녀석이 왜 여기 있는 것이며 손에 들린 것은······사자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구나. 어찌 된 것이냐?”
대략적인 설명을 앨리스에게 들은 이수련이 물었다.
“그럼, 지금 낭군은 어디 있느냐?”
“아직 저기 무너진 곳 아래 있어요.”
“확실한 것이냐?”
“디바이스 신호가 거기서 잡혀요.”
“본좌가 확인하마.”
이수련은 곧장 몸을 돌렸다.
그러더니 소화전이 터져 물기둥이 치솟는 자리에 나르시스의 얼굴을 박아넣고 있는 위타천을 지나쳤다.
이수련이 위타천의 간격 내에 들어섰을 때, 위타천은 나르시스의 촉수 뭉치를 우악스럽게 붙잡고 있는 손을 놓지 않은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찌나 재빠르고 매서웠는지 투구 너머로 비치는 위타천의 눈빛은 사냥감을 노리는 매의 눈빛 같았다.
그러나 어느새 허리춤에서 꼬리를 뽑아낸 이수련은 나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거 하라는 듯 무심히 건물이 무너진 잔해로 내려섰다.
붕괴 흔적 전체를 스캔하던 이수련은 이곳에 오메가와 나르시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명이 더 있었음을 알아챘다.
조금 더 살펴보던 이수련이 쭈그리고 바닥에서 뭔가를 집어 들었다.
“음······?”
오메가의 통신 디바이스였다.
가볍게 몸을 튕겨 단번에 지상으로 올라온 이수련이 신시아와 앨리스에게 다가가 오메가의 통신 디바이스를 보여줬다.
“사장님이 이걸 놓고 다니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드디어 분이 조금 풀린 건지 자신이 타고 온 수송기에 나르시스를 던져넣고 나온 위타천이 디바이스를 보고 말했다.
“그거, 후배가 쓰는 모델 같은데.”
“맞아요. 위타천 님이 저희 사장님한테 선물해주신 모델요.”
굳이 자신의 선물이라는 걸 언급해주는 앨리스 덕에 위타천은 짜증 가득했던 기분이 아주 조금 풀렸다.
제법 기특한 구석이 있는 안드로이드라고 위타천이 생각할 즘, 신시아가 말했다.
“이건 위타천 님이 저 천인공노할 쓰레기를 끌고 나온 아래에서 이수련이 찾아냈어요.”
바로 이수련이 위타천에게 쏘아붙였다.
“얘기를 듣자 하니 본좌보다 먼저 내려갔다 온 모양인데, 그때 낭군을 보지 못했느냐?”
그 말에 머리로 몰리던 열이 팍 식은 위타천이 아주 드물게도 말을 길게 늘어트리며 답했다.
“없······었습니다만.”
“그럼 본좌가 묻겠노라. 낭군은 지금 어디 있는 것이냐.”
“어······아마도······.”
이수련의 로봇 헤드의 눈 부분에서 뿜어나오는 빛이 거세졌다.
왠지 사나워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지금 구舊 한양이자 현現 네오-서울의 안전을 책임지는 자가 그런 경솔하고 무책임한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은 것이냐?”
아무리 거침없이 행동하는 위타천이라지만 이수련의 정체를 몰랐으면 모를까 알고 있는 이상 왠지 모르게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스펙터의 탈주 이후로 이수련이 그런 식으로밖에 못 할 거면 수호자를 언급도 하지 말아 달라고 역정을 냈다는 말을 오메가에게 들은 적이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위타천은 출동을 나가면 종종 듣곤 했던, ‘당신이 뿜는 기운 때문에 숨이 막혀 질식사할 것 같다’라는 문장의 의미를 지금 깨우치고 있었다.
하지만 위타천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고 나르시스의 뼈와 살을 분리하는 작업 때문에 불러두었던 신들의 도움도 받아 이수련에게 답했다.
“야타가라스가 이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인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른 공공 집행자 중 한 명을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헌데 왜 디바이스를 두고 간 것이냐. 이건 마치······.”
둘은 존중하는 의미에서 대화에 끼지 않고 있던 신시아였지만 이 말은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정황 증거가 가리키고 있는 이 상황은 아무리 봐도······.
“납치하면서 추적하기 힘들게 만든 것 같은데요.”
그런 건 아닐 거라고, 전투 중에 벗겨진 걸 수도 있지 않냐고 위타천은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 자신이 생각해봐도 너무 궁색했다.
분명 그럴 리가 없지만 어째 점점 이수련이 쓰고 있는 로봇 헤드의 눈꼬리가 위쪽을 향해 올라가는 것 같았다.
“그럼 그 야타가라스라는 녀석은 지금 어디 있느냐.”
“모······릅니다.”
위타천의 말에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이수련이 폭발했다.
그녀의 일갈이 주위를 뒤흔들었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놈! 네 녀석이 흠씬 두들겨 패던 놈을 붙잡고 물어도 네 녀석과 똑같은 대답은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위타천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분명 야타가라스의 출몰을 확인하러 왔을 텐데 신시아의 얘기를 듣고 눈이 돌아버린 걸 누굴 탓하겠나.
위타천에게 불을 붙인 신시아도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하기는 어렵기에 어색하게 자리를 정리했다.
“왜 그래. 위타천 님도 여기까지 와 주셨는데.”
“오면 뭘 하느냐! 더 엉망으로 만들고 한 게 없는······읍!”
눈치 빠른 앨리스가 이수련의 입을 막았다.
그 틈을 타서 신시아가 위타천도 달랬다.
“이수련도 나쁜 마음으로 저러는 게 아니라 오메가 님이 안 보여서 걱정돼서 저러는 거예요. 담아두지 마세요. 일단 여기는 제가 정리할 테니 각자 오메가 님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위타천이 이미 엉망이 된 거리를 더 엉망으로 만들 때, 자신이 부순 건물도 어떻게 어떻게 우기면 위타천의 과실로 만들어 공공 집행본부 쪽으로 떠넘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신시아지만, 지금의 이 일촉즉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런 미미한 지출 정도는 감내하기로 마음먹었다.
공공 집행본부, 정확히는 마고와 통신하기 위해 수송기로 가는 위타천과 그런 위타천의 뒷모습을 향해 계속해서 걸쭉한 욕설을 시도하는 이수련, 그런 이수련을 어르고 달래는 앨리스까지.
이수련의 욕 플로우에 한 숟갈 얻고 싶은 건지, 터진 소화전의 물줄기가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며 박자를 맞췄다.
대환장 아수라장을 잠깐 눈에 담고 있던 신시아가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난관을 정리할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오메가 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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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네오-서울 대림 에어리어의 어느 공사 현장 깊숙한 곳에 와 있다.
통신 디바이스를 자리에 풀어놓고 자기 뒤만 따라오라는 야타가라스의 말에 고분고분 따른 결과였다.
놀랍게도 그의 곁에 붙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면서 [헨젤과 그레텔] 스킬을 이용해서 돌멩이나 쓰레기 같은 걸로 여기까지의 경로를 만들어두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걸 읽어낼 수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녹이 잔뜩 슨 접이식 철제의자를 편 야타가라스가 손에 들고 있는 검을 까딱거렸다.
“앉아라. 순순히 따라올 줄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실력에 대한 자신감인가?”
무기 상성 때문이라고는 절대 말 안 한다.
“어디서부터 오해가 시작된 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당신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고, 오히려 그런 것들 때문에 굉장한 신체적 정신적 피해와 영업방해를 받는 입장······.”
“조용히 해라. 내가 묻는 말에만 답하면 된다.”
“미치겠네. 위타천이나 나다한테 물어봐! 나는 결백해.”
“이미 포섭을 마친 걸 알고 있다. 감히 내 동료이자 네오-서울의 공공 집행자들에게까지 손을 뻗칠 줄이야. 과감하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군.”
“말이 돼? 위타천을 무슨 수로 포섭해! 그따구로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을!”
“······조용히 해라.”
“당신 지금 대답하기 전에 망설였지! 위타천이 자기 멋대로 한다는 거, 반박 못 하겠지!”
“조용히 하라고 했을 텐데! 어디 한 군데 잘린 채로 시작하는 걸 원하나?”
야타가라스가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몇 미터는 떨어져 있던 쓰레기 더미가 깔끔하게 잘려서 무너졌다.
눈을 똑바로 뜨고 여전히 새카만 그림자 같은 야타가라스를 향해 말했다.
“질문은 요점을 파악할 수 있게 되도록 명료하면 좋겠어. 그래야 나도 군더더기 없는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 테니까. 시작해볼까? 그 전에 검은 넣어두지 않겠어?”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대화로 풀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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