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사자 수인의 몸을 잔뜩 뒤덮은 갈기가 넘실대고 있었다.
그것은 먹잇감을 유혹하는 움직임 같기도 하고 어쩌면 몸의 대화를 나누기 직전의 준비운동처럼 보이기도 했다.
새파란 바다 위에 떠 있던 맹독성 해파리처럼 여유와 긴장이 적절히 섞여 있는 것 같은 그 움직임의 비중이 한순간에 긴장 쪽으로 쏠렸다.
인간 해결사의 쇄도를 맞이한 직후였다.
해결사의 손에 들린 검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뻗어 나온 갈기를 베어들었다.
일반적인 움직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매섭고 빠른 검격의 연속이었다.
간신히 틈을 찾은 촉수, 아니 갈기가 파고들 때면 이번에는 작은 빙벽이 솟아오르거나 심지어는 불덩이가 갈기를 직격하기도 했다.
그 바람에 간신히 조금 가라앉기 시작한 먼지가 다시 한번 피어올랐다.
“몸풀기는 끝나셨습니까?”
해결사의 기세에 잠깐 움츠러드나 싶던 사자 수인의 말이었다.
그 말과 함께 촉수들의 끝이 변하기 시작했다.
단단해지는 것, 물을 뚝뚝 흘리는 것 등등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그다지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런 걸 잔뜩 달고 휘적이는 모습은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구토를 유발할 외양이었다.
“역겹군.”
다시 달려든 해결사의 대꾸.
“사회의 질서를 위해서라도 너는 없어지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갈기, 아니 촉수를 쑤셔 넣어 아슬아슬할 정도로만 검의 궤적을 비트는 사자 수인의 선글라스 아래 보이는 입가가 길게 호선을 그려냈다.
“솔직해졌으면 합니다. 당신의 연인이 제가 함락당할까 봐 두려운 것 아닙니까. 순애? 순정?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저는 수없이 목격해왔습니다.”
“네가 억지로 뒤흔들지만 않았더라면 말이지.”
둘은 계속해서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했다.
흡혈귀 사령술사가 반파한 건물이 연이은 충격에 버티지 못하고 쿠르릉 소리를 내며 더 무너져 내렸다.
먼지가 다시 한번 힘껏 피어오르고, 근처 소화전에서 물기둥이 치솟았다.
삽시간에 엉망이 된 거리, 흙먼지 속 어렴풋이 보이는 실루엣이 하나가 아니었다.
해결사의 모습이 여럿이었다.
심지어 그 모습들은 각자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행동했다.
굳이 본체를 꼽자면 검을 들고 있는 해결사겠지만 다른 해결사들도 주먹에서 기파를 터트리거나 마법을 사용하는 식으로 사자 수인을 압박해 들어갔다.
“퓨어라고 들었는데······?”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자욱하게 깔린 흙먼지 내부의 모습을 한눈에 들여다보는 누군가의 혼잣말이었다.
부엉이 수인인 그의 눈꺼풀이 커다란 눈을 덮어 눈꼬리가 길어졌다.
“확실하지 않은 구석이 너무 많군.”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는 것은 그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대신 그는 모든 감각을 일깨웠다.
그리고 움트는 감각들을 모두 해결사에게 집중했다.
이렇게 보니 퓨어라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 같고 사용하는 기술도 어디서 훔쳐 배운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유려한 것이 사실이었다.
기술들의 연계가 아주 깔끔한 것이 전투에 대한 경험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결사를 주시하고 있는 인물은 네오-서울에서 전투와 특수 임무 경험으로 손에 꼽힐 인물이니 그가 직접 보고 내리는 평가는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연계 사이 사이의 특이한 움직임들.
분명 뭔가 하고는 있는데 그게 뭔지 알기 힘들었다.
아주 사소한 부분이지만 전투의 판도를 흔들고 판세를 해결사의 쪽을 조금씩 당겨오고 있었다.
마침 촉수의 파상공세 때문에 뒤로 밀리다 무너진 벽을 뒤에 둔 순간, 몸을 띄워 촉수의 끝을 밟고 벗어나는 해결사였다.
이 역시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것 같은 움직임.
심지어 어떤 보조 장치의 기동 신호도 포착되지 않았다.
해결사와 사자 수인의 전투를 지켜보는 이의 눈꼬리가 더욱 가늘어졌다.
그 사이 해결사와 똑같은 모습의 분신이 사자 수인을 공격했다.
촉수를 뻗어내며 사자 수인이 외쳤다.
“이런 환술 따위는 통하지 않습니다!”
해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분신들이 사자 수인을 묶어두는 그 잠깐 사이, 줄곧 한 손으로만 검을 휘두르던 해결사가 검을 역전개하고 칼자루를 쥔 손 위로 빈손을 겹쳤다.
멀리 떨어져 이 장면을 줄곧 관찰하고 있던 이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해결사의 손에서 뇌전이 이글거렸다.
뇌전은 곧 손에 잡힌 칼자루를 타고 올랐다.
우르릉하는 우레소리와 함께였다.
난장판이 되어 먼지폭풍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부르는 거리 위, 이글거리며 명멸하는 뇌전만이 내부의 상황을 잠깐 비출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빛이 어찌나 거센지 차마 접근하지 못하고 멀리서 사태를 관망하는 이들조차 고개를 돌려야 했다.
칼자루를 타고 오른 뇌전이 위아래로 휘어지더니 거대한 장궁 형태를 만들어냈다.
해결사는 숨을 멈추었다.
어느새 그의 분신은 모두 원형에게 흡수되어 있었다.
장궁의 시위를 당기자 활대에서 지직대던 뇌전 갈래가 끌려들어 화살을 만들어냈다.
사자 수인은 촉수를 뿜어내 해결사의 조준을 방해하려 했지만, 해결사는 최소한의 회피행동으로 모두 흘려냈다.
활시위는 여전히 단단히 당겨진 채였다.
지켜보던 부엉이 수인의 뇌리에 해결사의 움직임과 비슷한 종족이 떠올랐다.
늑대인간.
그것도 태백 권역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늑대인간들의 움직임이 저랬다.
부엉이 수인과 함께했던, 동료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중 저것과 꼭 닮은 움직임을 보이는 늑대인간이 있었다.
잉그리드라는 산신으로부터 내려온 자신들만의 고유한 몸놀림이라고 했다.
‘다른 종족은 익히는 것은커녕 제대로 볼 기회조차 흔치 않을 거라고 했는데······.’
해결사가 보여주는 모습에 부엉이 수인은 경악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잔뜩 피어오른 흙먼지와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뇌전의 빛, 더 이상의 접근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그 주변을 맴돌며 귀곡성을 질러대는 수십의 원혼까지.
무엇하나 제대로 눈에 담기 힘든 광경이었지만 부엉이 수인은 어렵지 않게 모든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부엉이 수인의 시선이 해결사의 손에 들린 칼자루에 닿았다.
위화감과 기시감이 동시에 부엉이 수인의 몸을 타고 올랐다.
그때, 해결사의 손이 시위를 놓았다.
수십 가닥으로 갈라진 뇌전 화살이 사자 수인에게 쏟아졌고, 촉수들이 마치 고치처럼 뭉쳐 화살 비를 버텨내려 했으나 화살은 무심하게도 촉수를 찢어발기고 사라졌다.
사자 수인이 격한 감정이 담긴 신음을 터트릴 때, 해결사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활의 시위를 한 번 더 당기고 있었다.
파직-
뇌전이 튀어 오르는 한순간.
발사된 화살의 방향은 구멍이 숭숭 뚫린 고치처럼 변한 사자 수인의 머리 쪽이었다.
기이할 정도로 몸을 틀어 화살이 머리를 관통하는 사태를 피한 사자 수인이 고치처럼 몸을 감싸던 촉수를 풀어 해결사가 있던 방향을 향해 뻗었지만, 해결사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부엉이 수인은 보았다.
두 번째 화살이 손을 떠난 순간, 해결사의 몸이 한 줄기 빛이 되어 화살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그리고 사자 수인이 해결사의 모습을 놓친 지금, 해결사는 사자 수인이 간신히 피한 화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어둠을 밀어내고 피어오르는 여명처럼,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해결사가 칼자루를 두 번 비틀자 칼등과 검날이 밀려 올라왔다.
아직 흩어지지 못한 뇌전의 기운이 해결사의 심장으로 몰려드나 싶더니 일제히 검으로 뻗어가 검날과 하나가 되었다.
검날이 푸르다 못해 희끗거릴 정도로 아찔한 빛을 뿜어댔다.
사자 수인의 등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해결사가 악을 쓰듯 외쳤다.
“더러운 NTR!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순애의 승리다!”
부엉이 수인은 해결사가 외치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사자 수인은 촉수를 최대한 빠르게 자신의 등 뒤로 움직여 방비하려 했으나 해결사의 기세가 너무 거셌다.
부엉이 수인이 바라보고 있던 곳은 대림 에어리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정리되지 않은 거리였고, 해결사가 사자 수인을 찍어 누르는 곳은 흡혈귀 사령술사가 반파해놓은 건물의 위였다.
쩌적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 주위의 지반에 실금이 마구 그어졌다.
붕괴였다.
그런 와중에도 해결사와 사자 수인은 서로를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해결사의 우위가 확실해진 상황이었기에 사자 수인은 도주를 시도했지만 무의미하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제자도 도망, 스승도 도망. 대가리 속에 제대로 된 생각이라고는 없는 놈들이 다 똑같지.”
해결사가 사자 수인을 몰아붙였다.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동안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던 부엉이 수인이 몸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육안으로 목격했던 오메가의 모습으로 인해 그는 확신했다.
‘근원을 알기 힘든 능력, 네오-서울 유력 인사들과의 커넥션, 리벨리온을 이용한 내부 분열 단속, 공공 집행자들의 포섭까지······역시.’
평범한 부엉이 수인의 모습이 바뀌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새카만, 마치 그림자를 묻히고 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풍성했던 깃털이 뼈대에 붙어 앙상하게 말라붙어 보이는 팔을 움직여 자신의 칼자루를 만진 부엉이 수인이 움직였다.
오메가와 나르시스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동안 그의 주변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
공공 집행본부의 지하에 있는 어느 방, 위타천이 거칠게 뛰어 들어왔다.
“마고! 마고!”
얼마 전 마고, 위타천, 오메가가 만나 회합을 가졌던 방이었다.
잠시 잠잠하나 싶더니 스피커가 웅웅거렸다.
-마침 잘 왔어요. 그렇지 않아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계속해서 야타가라스의 뒤를 캤는데―.”
마고가 빠르게 위타천의 말을 받았다.
굉장히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결과는?”
-아니라는 쪽에 무게가 실려요.
“나도 마찬가지야.”
-그렇다면 대체 누구······?
“노덴스와 나다를 다시 조사해 봐야 하는 건가?”
-둘은 깨끗해요.
“그 말은······.”
-역시 저라는 건가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럼 남는 건 나밖에 없는데?”
불편한 침묵이 크지 않은 지하실을 채웠다.
-원점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후배에게 연락해서 다시 한번 모여야 할 것 같다고 전하지.”
-그래요.
밖으로 향하던 위타천을 마고가 붙잡았다.
-잠깐만요. 지금 오메가 씨 사무실 근처에서 비상사태 발생이라는데요?
“그 동네야 뭐 늘상······.”
-사자 수인이랑 인간 하나가 싸우고 있다는데―.
“그런 걸 보고 비상사태라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대규모 사령술 흔적이 관측되고 건물 몇 개가 무너졌다는데요?
“······.”
-게다가 야타가라스가 그 근처에 있다고 알려왔다는데 이거 말이 되나요?
“내가 가보지.”
#
머리 위, 자욱한 먼지 너머로 하늘이 어른거렸다.
우물 안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개구리의 기분이 이런 걸까.
내가 지금 있는 곳은 건물의 지하 기반이었던 곳.
밟고 있던 곳이 무너지는 통에 내려오긴 했는데 다행히 몸을 움직이는 데는 이상이 없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나르시스가 엎어져 있었다.
나르시스인지 NTR인지 사자 수인은 촉수 대부분이 잘리고, 타고, 얼려지는 통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역시, 순정을 품은 남자만큼 강한 것은 세상에 별로 없다.
알겠냐 더러운 NTR아.
주머니에서 어레스트를 꺼내 구속하고 있으니,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오메가.”
그림자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형상.
손에 칼자루가 들려 있었다.
“네오-서울 공공 집행자 야타가라스다. 조사할 것이 있으니 같이 가줘야겠다. 원만히 협조했으면 한다.”
“야타가라스라······나도 그 쪽에게 묻고 싶은 게 많긴 한데, 원만히 협조하길 바라는 것치고는 너무 태도가 강압적인 거 아뇨?”
“너는 현재 네오-서울의 안위를 위협하는 조직과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다. 더 이상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1초도 지체하지 않고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건 무슨 개소리―!”
그림자의 앙상한 손이 들고 있던 칼자루를 뒤틀자 내 검과 똑같이 생긴 형태로 전개됐다.
시커먼 광자 검날이 웅웅거리는 것이 여간 위협적인 것이 아니었다.
직접 마주하니 더더욱 확신이 생겼다.
저건 분명 ‘존속살해’다.
나도 역전개 해두었던 검을 전개하려다 참았다.
위올란트의 말이 맞다면 상성이 너무 구리다.
천천히, 최대한 호감 가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여긴 너무 지저분하고 복잡한데, 우리 다른 곳에서 대화로 풀어가 볼까요? 저는 협조할 준비가 된 것 같답니다.”
혼자서 항공모함을 가라앉히는 분이 같이 좀 가줄 수 있냐고 권유하는데, 원만하게 가야지 그럼.
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