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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183화 (184/258)

183.

사무실은 대림 에어리어 23구역에 있다.

현실의 영등포구는 물론이고 금천구와 구로구까지 합친 크기인 대림 에어리어에서 23구역은 가장 남쪽에 있는 구역이다.

기계 교단 성당이 있는 1에서 7번 구역, 한강 기계 지구인 8에서 12번 구역, 기업들의 연구단지나 지사가 즐비해 분위기 자체가 다른 12에서 17번 구역, 스냅샷의 카지노가 있는 19번 구역보다는 상대적으로 구린 지역임이 분명하지만, 또 다르게 살펴보면 아예 뭉뚱그려 슬럼이라고 칭해지는 뒷번호 구역보다는 여러모로 나은 부분이 있었다.

다만 나를 비롯한 23구역 자영업자들이 항상 성토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구역을 대표할 이른바 랜드마크가 없다는 것이었다.

쇼핑몰도 없고 관공서도 없다며, 하다못해 카지노라도 하나 두어야 하지 않겠냐는 키클롭스 아재의 알콜향 섞인 목소리는 몇 번이고 들었다.

두고 싶다고 맘대로 둘 수 있으면 진작 했을 거다, 31구역에서 그런 소리 하다가 교도소 들어온 거 못 봤냐 등등 다른 자영업자들이 키클롭스 아재를 말리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오늘부로 키클롭스 아재의 그 랜드마크 걱정이 사라질 것 같았다.

아직 23구역에 진입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저 멀리 공중에 커다란 사신이 낫을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텅 빈 것 같이 보이는 눈구멍에서 녹색의 귀기를 뿌리는 사신의 낫이 휘둘러질 때마다 사신 주위를 맴돌던 원령들이 귀곡성을 질러대는데, 그 소리를 듣자 스로틀을 잡고 있던 손에서 핏기가 싹 가실 정도로 서늘해졌다.

“랜드마크보다는 심령스팟이 맞으려나.”

뭐가 되었든, 기억에는 남을 것이 틀림없었다.

상징성 하나는 끝내주게 새겨지지 않을까.

“나야. 사무실 거의 도착했어.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 줘. 신시아가 저렇게 진심을 다 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신시아는 자신의 이름 뒤에 붙는 가문이 가지는 무게를 잘 안다.

많은 이들이 야스민 가문을 경외하지만 그런 만큼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질시 역시 따른다.

야스민 공은 저택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수준이고 젠은 야스민 가문이긴 하지만 도사의 정체성이 더 강하다.

그러니 외부에 비치는 야스민 가문의 얼굴은 신시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신시아는 상당한 수준의 사령술사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대놓고 펼쳐 보이는 일이 드물었다.

제아무리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존중하는 시대라도 죽음이 가지는 근원적인 거부감은 어찌할 수 없는 탓이다.

사령술 협회의 일원으로 사령술에 대한 이미지 개선 캠페인도 주도적으로 벌이고 있는 신시아가 저렇게 대놓고 힘을 쓴 적은 내 기억이 맞다면 공공 집행본부 앞에서 이수련과 마주했을 때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벡이 있던 연구소를 포위할 때처럼 주위의 눈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황이라던가.

-모르겠어요. 언니가 사무실에 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큰소리가 나서 봤더니 웬 사자 수인이랑 싸우고 있더라고요. 언니가 저렇게 화난 건 처음 봐요!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는 건가.

일단 젠에게 받은 나르시스의 신상 파일을 앨리스에게 전송했다.

“그 사자 수인. 이 사람인지 확인 좀 해줄래. 거의 다 왔어.”

즉각적으로 답이 왔다.

-맞는 것 같아요. 99% 이상 일치해요. 어? 색승의 스승? 이 파일은 어디서 얻으셨어요?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골치 아픈 놈인 것 같아.”

그 사이, 내가 탄 바이크는 사신이 떠 있는 곳 가까이 와 있었다.

물론 사무실 근처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곳에서 멀어지고 있었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몇몇은 오히려 다가가고 있었다.

누군가와 신시아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번져왔다.

“부부는 고사하고 커플도 아니었다니. 실망입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당신의 눈에 담긴 감정은 분명 사랑이었으니! 이제 그 눈빛을 내게 보낼 차례입니다! 더욱더 강력한 수컷! 거대한 남성에게!”

“······죽기 직전까지 그 혀와 성대를 얇게 포 뜨다 숨이 넘어갈 직전이 되어서야 좀비로 만들어 가장 천한 일에 써 주마.”

“아직 여물지 않은 과실의 떫은맛 역시 별미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각의 차이일 뿐입니다.”

“닥쳐라.”

조금 더 다가가자 도로 곳곳에 신시아의 기계화 좀비가 보였다.

그 너머에 신시아가 있었다.

거대한 사신 내부에 잠겨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도로를 사이에 둔 반대편 인도에 선글라스를 쓴 사자 수인이 있었다.

나르시스 테오 리하르트.

NTR이 분명했다.

“바이크 부탁해.”

-통제권 가져왔어요.

스로틀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무실 1층의 차고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허리춤의 칼자루를 뽑아 검을 완전히 전개했다.

그대로 바이크에서 뛰어내렸다.

앨리스의 통제를 받는 바이크가 차고로 쏙 들어갈 즘, 균형을 잡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에어 글러브]를 사용한 손을 아스팔트에 가져다 댔다.

스키드마크는 남지 않았지만, 손과 아스팔트 사이에서 불똥이 마구 튀었다.

고개를 돌린 신시아가 다급하게 외쳤다.

“위험하니 비키······오메가 님?”

“신시아답지 않게 일을 크게 벌였네요.”

옆으로 다가가니 신시아가 억울하다는 듯 부루퉁한 표정으로 말을 쏟아냈다.

“저 미친 작자가 갑자기 다가와서 오메가 님보다 자기가 훨씬 낫지 않냐는 소리를 해댔어요. 무시하려고 했더니 강제로 몸에 손을 대길래 제압하려 했는데 이렇게······.”

“어떻게 신시아한테 접근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놈, 색승의 스승입니다.”

색승이라는 얘기를 꺼내자마자 신시아가 더러운 것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그쪽이 오메가인가 보군요. 아다에게 얘기는 들었습니다. 아주 탐나는 녀석이 있다고.”

나르시스의 말이었다.

그는 달려드는 기계화 좀비를 어렵지 않게 제압하고 있었는데, 몸을 움직일 때마다 가장 힘을 쓰기 좋은 형태로 근육과 관절이 이동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몸이 유연하고 부드러웠다.

“아쉽지만 저는 남성을 취하지 않습니다. 대신 남성의 짝을 탐하지요. 지금은 당신 곁에 있는 흡혈귀가 아주 마음에 드는군요.”

면전에서 듣는 희롱에 신시아가 폭발했다.

“내 앞에 나타난 걸 평생 회한으로 만들어 주지.”

“그 정도 저항은 해야 힘을 쓰는 맛이 납니다. 마지막에 능멸당하는 것은 당신이 될 겁니다! 종국에는 저만을 찾게 되겠지요!”

신시아의 몸에서 녹색 기운이 오오라처럼 흘러나와 끝을 알기 힘든 도형 무리를 그려냈다.

아마도 신시아 고유의 상징일 터.

사령술사가 힘을 끌어내 펼치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손에 끼워진 포탈 링을 통해 이곳으로 불려왔을 기계화 좀비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이곳에서, 신시아의 회색빛 섞인 금발만이 나부꼈다.

“결박하라.”

다른 세계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아득한 그녀의 목소리가 전해지자 상징으로부터 힘을 전해 받은 좀비들이 더욱 빠르게 나르시스에게 덤벼들었다.

“이 정도쯤은······!”

조금 전처럼 좀비를 털어내려던 나르시스의 입가가 굳었다.

기계화 좀비는 몸이 뒤틀리고 무너질지언정 나르시스의 사지를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좀비를 떼어내기 위해 손을 대던 나르시스가 뜨거운 것을 만진 듯 화급히 손을 털어내는 모습을 보였다.

좀비와 나르시스의 손 사이에서 이수련이 쓰곤 하는 법술과 비슷한 흔적이 명멸했다.

“법술?”

“비슷해요.”

짤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들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다 해진 무당의 복식을 한 여인이 손에 방울을 들고 흔들고 있었다.

여인의 눈에 초점이 없었다.

“저것도 좀비인가요?”

“벡을 구할 때, 귀찮게 하길래 좀비로 만들어버렸어요. 좀비를 강화할 토템 역할로 쓰고 있어요. 나쁘지 않더라고요. 대단한 건 아니에요. 특정한 주문을 미리 입력시켜놓고 발동하는 것뿐이라서요.”

“하지만 신시아는 무당이 아니잖아요.”

“사령술과 멀리 떨어진 갈래가 아니라 그런지 배우기 어렵지는 않더라고요. 이수련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요.”

그러더니 신시아가 나를 보고 웃었다.

“오메가 님은 여러 계열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데, 제가 한 계통만 사용하는 건 부족하다고도 생각했고요.”

저랑은 좀 케이스가 다릅니다만······.

신시아가 이수련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지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런 노력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일단, 저거부터 마무리를 지을게요.”

신시아가 오른팔을 들어 올리자 빛을 발하던 그녀의 상징이 오른손에 감겨들었다.

그녀의 몸을 감싸던 거대한 사신이 상징이 감겨든 신시아의 오른팔의 움직임처럼 낫을 치켜올렸다.

신시아의 시선이 좀비들 사이에 파묻힌 나르시스에게 향해 있었다.

그녀의 오른팔이 떨어졌다.

상징이 빛을 발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처럼, 낫의 끝이 나르시스를 향해 떨어졌다.

스걱-

나르시스가 서 있던 인도 뒤편, 허름한 3층짜리 건물이 낫의 궤적을 따라 잘려 나갔다.

건물이 무너지며 발생한 작은 먼지폭풍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자욱했던 먼지가 조금 가라앉자 신시아가 거친 호흡을 가다듬었다.

사신과 원령은 이제 거의 사라졌고, 기계화 좀비도 근처에 대기 중이긴 했지만 큰 움직임은 없었다.

신시아도 무리를 한 것처럼 보였다.

“감히······저를······뭘로 보고. 그렇죠? 오메가 님?”

대답하는 대신, 신시아를 내 등 뒤로 숨기고 검을 휘둘렀다.

[찰나지간 - 삼적일탄]

기계화 좀비 사이사이를 누비고 들어와 신시아를 노리는 가느다란 것이 있었다.

광자 검날에 그것이 닿을 때마다 치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갔다.

기묘한 냄새도 함께였다.

‘오징어 굽는 냄새?’

정체는 곧 알 수 있었다.

“그래요. 그렇게 애틋한 모습을 보여야 제가 더욱 힘이 난답니다. 나약한 기존의 짝에 실망한 여성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사용하기 더없이 좋지 않나요?”

나르시스의 목소리가 아직 가라앉지 않은 먼지 너머로 들렸다.

신시아가 앞으로 나서려고 했지만, 손을 들어서 막았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먼지는 어느 정도 가라앉아 어렴풋한 실루엣이 보일 정도가 되었다.

“나르시스. 제자를 찾으러 왔나.”

“저를 알고 계시는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볼일만 보고 얌전히 떠나지, 그래.”

“미안하지만 힘들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여성들이 많을 줄은 몰랐거든요. 아다도 사정을 알게 되면 이해할 겁니다. 그나저나 비키지 않겠습니까? 제 손길을 기다리는 여인들이 많습니다. 당신 뒤에 있는 신시아 야스민 말고 가연이라는 여인도 썩 괜찮더군요.”

“다행이네.”

“다행?”

나르시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황금빛 갈기가 자라나서 온몸을 뒤덮고 있는 모습이었다.

신시아를 향해 날아든 것도 갈기에서 뻗어 나온 머리카락 줄기였다.

어쩐지 탈 때 냄새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갈기가 자기들끼리 뭉쳐 줄기를 이뤄 펄럭대는 모습이······촉수로 뭉친 무언가 같았다.

“그쪽으로 갔으면 위타천이 널 오체분시 하는 바람에 내가 널 죽일 기회가 없었을 테니까.”

“참으로 광오하군요.”

한 손으로 검을 들고 내밀었다.

“나르시스 테오 리하르트. NTR. 잘 들어라.”

놈에게 선전포고했다.

“너는 사도邪道다. 연인 간의 지고지순한 순애純愛, 순정純情이야말로 정도正道다.”

뒤에서 신시아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메가 님?”

앨리스의 목소리도 들렸다.

-왜 갑자기 사장님 취향을 설파하고 있어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르시스에게 말했다.

“게다가 너 같은 촉수 괴물이 난입하는 것이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이다. 이건―.”

나르시스가 내 말을 이어받았다.

놈의 목소리 역시 진지해져 있었다.

“신념과 신념의 충돌이군요.”

“양보하지 않겠다. 아니, 양보할 수 없다.”

내밀었던 검을 몸으로 당겨 붙였다.

NTR을 향해 쇄도했다.

그 어느 때보다 꺾여서는 안 되는 진지한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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