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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182화 (183/258)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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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타천과 마고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니.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것만 한 해결책이 떠오르지도 않는군.”

야스민 공의 서재, 그의 많은 자아 중 나와 얘기를 나누는 자아가 이마에 주름을 몇 개 만들어내고서 말했다.

혹자는 야스민 공을 보고 장막 뒤에서 네오-서울을 조종하는 거악이라고까지 말하지만, 그 혹자가 흡혈귀들의 금권을 상실하게 하는 것이 지상최대의 목표인 경실련과 전경련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필요 이상으로 날을 세우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목소리나 보도들은 공공 집행본부처럼 야스민 공의 입김이 전혀 닿지 않는 곳도 있는 점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항상 애써주시는데, 소명이 늦어 죄송합니다.”

“아닐세. 오히려 다행이다 싶어. 집행본부는 아예 손을 대지 않았던 곳이라 내부 사정을 알기가 힘드니 말이야. 시청을 움직여 정치적으로 압박을 넣을까도 생각했는데 그랬다가는 역풍이 불기 십상이라······.”

“······말 한마디로 시청이 움직이는 겁니까?”

금테 안경을 쓴 야스민 공의 자아가 손으로 안경을 밀어 올리며 당연하지 않냐는 듯 반문했다.

“행정관들과 에어리어 의원 중 야스민 가문의 후원을 받지 않는 이가 몇이나 될 것 같은가?”

“음······반수 이상?”

“그것보다는 많지. 누구라고 말은 못 하지만 증조 할아버지 대부터 내 후원을 받는 의원도 있네.”

거악! 거악이 여기 있다!

외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물었다.

“그런 분이 왜 공공 집행본부에는 선을 만들어두시지 않은 겁니까?”

“얘기하면 제법 길다네. 퓨전 코프의 총수, 아직 자네 곁에 있지? 구미호 말일세.”

“징글징글할 정도로 붙어 있죠.”

“수호자 일족이라 불렸던 토착 구미호와 새로운 땅에 발을 딛은 우리 외래 흡혈귀의 충돌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솔직히 별 관심 없었는데 진짜 옛날 사람이 해주는 옛날이야기라 그런지 흡입력이 장난 아니었다.

라떼 얘기나 주절주절 과거 얘기에 별다른 흥미를 두지 않는 나도 침을 꼴깍 삼키면서 들을 정도니.

요지만 뽑아내자면 공공 집행본부의 원형은 토착종들이 흡혈귀를 몰아내고 사냥하기 위해 만든 기구라는 것이었다.

기적적으로 공존 조약을 맺은 이후, 네오-서울이 발전함에 따라 형태가 커지고 목적이 바뀌어 아예 도시 내부의 치안과 방범을 담당하는 독립된 기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집행본부 내에서 흡혈귀를 배척하는 풍조는 아주 강하다고.

매번 차기 공공 집행자 1순위로 꼽히는 젠에게 공공본부 차원의 공식적인 권유조차 가지 않는 것은 젠 본인이 그 자리를 크게 원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이런 내부적인 이유도 있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뿌리 뽑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나는 조약을 존중한다네. 내가 손을 댈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것이지.”

야스민 공이 말하는 걸로 봐서는 내부적으로 얽혀 있는 것이 더 있는 모양새였다.

잠깐 과거 생각에 빠져 우수에 잠겨있던 야스민 공의 눈빛이 평소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동향 정도는 늘 체크하는데 야타가라스는 군부에서 왔다는 것 말고는 이상할 정도로 과거에 대한 내용이 없더군. 지금껏 이런 인물은 단 한 명밖에 보지 못했네.”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쳐 가는 것이 있었다.

분명 야스민 공이 똑같은 발언을 했던 적이 있었다.

“수연이군요.”

“그렇네. 그 라미아. 갑자기 튀어나와 예공방의 이사 자리까지 치고 올라갔지. 지금 와서 보면 트라이포드의 간부이기 때문에 모종의 지원을 받지 않았을까 추정할 수 있지만 그건 제법 오랜 기간 은밀하게 조사한 결과이지 않나.”

“게다가 중화권뿐만 아니라 열도의 몇몇 권역도 트라이포드를 지원하는 것도 근래 밝혀진 사실이죠.”

“철저하게 네오-서울을 뒤흔들기 위해 비밀리에 키워진 것이라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되지 않나 싶네.”

“그렇다면 야타가라스도 비슷한······.”

야스민 공이 내 말을 끊었다.

“속단하지 말게. 현재까지의 결이 비슷할 뿐이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의심하고 가능성을 열어두기에는 충분하지만, 결론을 내리기엔 부족하다는 말일세.”

“아직은······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야스민 공이 고개를 끄덕이자 불빛이 그의 금테 안경에 반사되었다.

“그렇네. 아직은. 그래서 군부에 접촉했네. 야타가라스가 수도방위사령부 출신이라는 건 확실하니까.”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뭐가 나왔습니까?”

“문서로 남은 건 없었네. 아니면 더욱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거나. 다만 과거에 야타가라스와 같은 팀에 있었던 걸로 추정되는 이를 찾았네.”

“오!”

놀라는 나와 달리 야스민 공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저었다.

“설득 작업이 필요하네. 입을 열지를 않아서 말이지. 경과를 알려주겠네.”

그 말을 끝으로 금테를 쓴 야스민 공이 서재 한쪽에 있는 관 형태의 침대에 가서 누웠다.

곧 야스민 공의 본체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 얘기는 끝이라는 시그널이다.

이 저택의 지하에는 브리가드의 기함에서 건져온 마도공학 유물이 한가득이었다.

대부분 쓸모없는 룩템이나 장식템, 하우징템이었지만 야스민 공은 꼭 두세 번씩 가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내게 조르곤 했다.

어쩌겠나.

계약을 한 이상 일에 충실해야지.

몇 시간 뒤, 뭐가 그리 좋은지 유물 몇 개를 집어 서재로 가져가며 야스민 공이 내게 말했다.

“젠과 에브레가 식사를 하고 있을 시간이니 괜찮다면 들렀다 가보는 건 어떤가? 둘이 부쩍 자네 소식을 궁금해하는 것 같던데.”

밥 생각은 없었지만 젠과 에브레를 만나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근래는 젠과 내가 서로 바빠서 대련할 시간도 가지지 못하기도 했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만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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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 잉그리드라니 굉장합니다. 도사들 사이에서는 태백의 신선이라 불리는 분인데.”

“신선? 그분도 저희 같은 도사인가요?”

“그렇지는 않단다, 에브레. 다만 커다란 자연에 대한 그분의 자세가 우리 도사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해서 그렇게들 부른단다.”

식당에 불쑥 나타난 나를 반갑게 맞이한 젠과 에브레는 내가 근래 경험한 이야기를 굉장히 재미있게 들었다.

“엄할 때는 아주 엄한데, 또 결국 마지막에는 정 때문에 약해져서 위험해지는 모습을 보니까 참 어렵더라고요. 일단 급하게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트리긴 했는데 그때는 왠지 제가 나쁜 놈이 된 것 같고 그랬어요.”

“쉽게 맺고 쉽게 끊어질 수 없으니까 더더욱 그렇겠죠. 불가에서 말하는 인과 연이 그런 거잖아요. 오메가 삼촌도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순간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도야의 과정에 있는 것이니까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에브레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야. 도사 다 됐다?”

“그럼요. 보실래요?”

에브레가 손을 들어 기다란 식탁 위에 상형문자에 가까운 한자 몇 개를 그리고 수인을 맺기 무섭게 젠이 기다란 도포 자락을 휘둘러 모두 흩어버렸다.

“도를 닦는 것의 목적은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고 하였다. 완성도 되지 않았다면 더더욱 그러하고 말이다.”

엄한 젠의 목소리에 에브레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악어 수인 특유의 긴 주둥이가 식탁에 닿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훈육의 현장을 망칠 수는 없어서 애써 엄격한 표정을 유지했다.

오랜만에 본 내게 자랑하고 싶은 것은 알겠지만 그건 안전장치가 갖춰진 체육관에서 해도 된다는 말로 축 처진 에브레의 기운을 북돋는 걸로 젠의 훈육이 끝나자 분위기를 전환할 겸 에브레에게 물었다.

“스콰이어랑 안타란은 잘하고 있냐?”

“안타란 아저씨는 잘 지내는 것 같고 문제는 저희 아빠죠.”

“스콰이어가 왜?”

“저도 오다가다 하면서 들은 거라 정확한 건 아닌데요. 색승의 스승이라는 사람이 대림 하 렙틸리비아에 들어가도 되냐고 알려온 모양이에요.”

위타천이 말했던 색승의 스승이다.

색승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젠의 평온했던 표정이 조금 흔들렸다.

스승의 평정이 흔들리는 것을 알지 못한 채로 에브레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색승이 렙틸리비아에 온 건 제법 된 일 아닌가요? 오메가 삼촌이 저를 구할 때, 그쯤인 것 같은데.”

내가 WSS에서 잡아 온 색승은 분명 대림 하 렙틸리비아로 가서 피해자들에게 맞아 죽었다.

그 시점은 트라이포드가 리벨리온을 동원해 대림 에어리어 지하에 있는 두 렙틸리비아를 합병하고 점령하려 시도한 이후다.

다만 스콰이어는 색승을 죽이는 일을 굉장히 비밀스럽게 처리했다.

새어 나가서 좋을 것이 없는 일이기도 했고, 내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스콰이어가 자신의 렙틸리비아에서 폭군과도 같이 군림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 대부분은 에브레가 알고 있는 정도로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게나 말이다.”

간신히 얼버무리는 말에 에브레가 또 궁금한 것을 쏟아냈다.

“끔찍한 범죄자의 스승이면 부끄러워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닐 것 같은데 뻔뻔하게 찾아온 것도 그렇고 우리를 찍은 건 대놓고 의심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요.”

“그럴 수도 있겠네. 스콰이어는 어떻게 할 거래?”

“오게 되면―.”

젠의 눈치를 살짝 본 에브레가 얼른 말을 완성했다.

“대가리를 물고 물속으로 끌고 들어간 다음 데스롤을 20바퀴 정도 돌릴 거래요. 죄송하다고 사죄하러 와도 꺼지라 할 판에 조사가 말이 되냐면서요.”

“네 아빠는 정말로 그렇게 할 것 같아서 무섭네.”

“그러니까요.”

이번에는 젠에게 물었다.

“그 스승이라는 자에 대해 아는 것 좀 있을까요?”

입을 열려던 젠의 시선이 에브레에게 닿았고, 식사를 마쳤으면 미리 체육관으로 내려가라는 말을 들은 에브레가 식당에서 나간 이후에 젠이 말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사자 수인이고 웁살라 권역의 몰락귀족 출신입니다. 풀네임은 나르시스 테오 리하르트. 나르시스라고 많이들 부르지만 이름의 각 첫 자를 따서 NTR이라는 서명을 본인은 선호한다고 하더군요. 색승에 비하면 비교적 얌전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색승이 밀교의 이미지를 바닥에 처박긴 했지만, 밀교 자체는 몸의 가능성을 다양한 방향으로 탐구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하니까요. 실제로 위험인물로 분류되긴 하지만 강력 수배 대상은 아닙니다.”

“······제 생각보다 상세하게 알고 있는데요.”

“색승이 제게서 도망치고 난 후에 닥치는 대로 알아본 결과입니다.”

“어쨌든 색승보다 위험하지는 않다는 거죠?”

“저도 실제로 겨뤄본 적이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다만?”

“특정 취향에 대한 집념이 굉장하다고 합니다. 가정파괴범, 커플 브레이커라는 말이 괜히 따라다니는 게 아닙니다. 그 대상 중 평범한 이들은 오히려 드뭅니다. 오히려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명성 있거나 혹은 초인의 범주에 드는 이들이죠. 나르시스가 보잘것없는 이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심리 때문에 실제 피해 건수나 위험성은 더 높을 거라고 추정되곤 합니다.”

“음······제자뿐만 아니라 스승도 밀교의 이미지를 바닥에 처박고 있지 않나요?”

“실제로 밀교 총본산에서는 둘을 제명했습니다만······. 한번 찍힌 낙인이 쉽게 지워지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리고 겉으로만 제명하고 실제로는 뒤에서 지원과 협력을 했다는 의혹도 있고요.”

“저한테 접촉해오면 한 번 만나볼까 했는데, 설명을 들으니 그럴 마음이 싹 사라지네요.”

“오메가 씨의 일에 대해 이래라저래라할 마음은 아니지만 가까이해서 좋을 게 없지 싶습니다.”

“명심하죠.”

야스민 저택을 뒤로하고 성북 에어리어를 빠져나오는 길, 바이크 헬멧과 연결된 통신 디바이스가 삑삑거렸다.

앨리스였다.

“어, 나 지금 나왔어. 사무실에 일없으면 간만에 키클롭스 아재네 사무실에 얼굴이나 한번 비추고 들어갈―.”

-큰일 났어요!

앨리스가 이렇게나 흥분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발사대로 향했을 때 딱지 폭탄을 맞은 것보다 앨리스는 더 흥분하고 있었다.

괜히 내가 더 긴장됐다.

“왜 그래. 침착하게 얘기해 봐.”

-사무실 앞에서 싸움 났어요!

맥이 탁 풀렸다.

“뭐야. 대림 에어리어에서 스트리트 파이트가 한두 번이냐고. 길고양이보다 자주 보이는 게 스트리트 파이터들 아니야?”

다음으로 이어지는 앨리스의 말에 나는 스로틀을 있는 힘껏 감았다.

-신시아 언니가 싸워요! 처음 보는 사자 수인이랑! 사설 집행자들 몇 명 왔다가 피떡 돼서 실려 갔어요! 빨리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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