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181.
위타천은 현존하는 강신술사 중 최강으로 손꼽히는 자이자 네오-서울의 공공 집행자다.
몸을 움직여야 일을 한 것 같다는 본인의 강력한 의지가 있기도 하고 문서나 서류 작업을 원체 싫어하는 탓에 집행본부에 출근해도 담당 부서에 얼굴도장만 찍고, 외근이랍시고 나가버리거나 괜히 다른 부서를 기웃거려 기묘한 긴장감과 불편함을 선사하는 것이 일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연히 위타천이 손대지 않는 이른바 ‘잡무’들은 부관인 장이 떠맡게 되었다.
나갔다 하면 뭔가 하나씩 부러트리거나 죽이거나 실종시키거나 부수거나 파괴하거나 붕괴하거나 소멸시키는 위타천의 특성상 그 뒤처리는 매우 다분화되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고, 장은 퇴근할 틈도 없이 집행본부 내의 숙직실에서 쪽잠을 자며 일을 해냈다.
공공 집행본부의 숙직실에 노숙자가 사는 것 같다거나, 집행본부 예산의 1%가 장의 특근비와 위로 격려금으로 배정된다든가 하는 괴소문이 떠도는 것도 오래된 일이었다.
위타천의 부관을 증원하려 한 적도 있었지만,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았다.
이미 공공 집행본부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진짜 초인은 공공 집행자들이 아니라 장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살인적인 업무량도 익히 알려져 있었고, 무엇보다 직속 상사가 그 위타천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위타천 담당 부서로 발령을 받는다면 부서에 붙어 있지 않은 위타천을 볼 일이 없어 꿀이지만 종일 옆에서 모시는 것으로 모자라 위타천 퇴근 후에도 집에 못 가고 남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부관은 똥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니 오늘처럼 위타천이 부서 한쪽에 마련된 자기 자리에 앉아 증강현실 안경을 낀 채로 손을 휘두르며 뭔가를 검색하는 모습은 참 낯선 장면이었다.
저 사람 왜 안 하던 짓을 하냐며, 이상 신호를 보내는 것 같으니 어떻게 좀 해 보라는 부서 직원들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눈빛을 읽은 장이 조심스럽게 위타천의 곁으로 접근했다.
“저······위타천 님?”
여전히 증강현실 안경을 벗지 않고 머리 위치 기준 약 30도 정도의 각도에 있는 공중을 바라보는 위타천이 답했다.
“말하게. 듣고 있어.”
“음······검색 중이신가요?”
“그렇다네.”
“그런 거라면 제게 말씀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럴까?”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펄떡이던 위타천의 손짓이 멈췄다.
유적지를 발견한 미어캣 수인 하뮬 교수처럼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쫑긋 올리고 장과 위타천의 대화에 주의를 온 신경을 쓰고 있던 부서 직원들은 제발 위타천이 장의 제안대로 해주기를 바랐다.
저 짓만 그만두면 위타천은 평소처럼 밖으로 뛰쳐나가겠지.
하지만 위타천의 손이 다시 펄떡였다.
“아니야. 이건 내가 하겠네.”
상사의 즉각적인 소실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누군가가 가볍게 탄식했다.
직원들이 잔뜩 힘을 주어 높게 들었던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위타천은 공공 집행본부와 네오-서울 시청, 심지어 수도방위사령부의 아카이브와 데이터베이스를 뒤지며 야타가라스에 대한 것을 찾고 있었다.
우회나 은폐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위타천 본인의 식별정보를 그대로 이용해서 접속했기 때문에 열람 흔적은 남겠지만 그런 걸 신경 쓰면 위타천이 아니었다.
오히려 흔적을 남기면 야타가라스가 반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는 위타천이었다.
‘촬영 중인 걸 알고 있으면서 모습을 드러냈단 말이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군.’
대체 집에 몇 벌이나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오늘도 여전히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증강현실 안경을 쓴 채 검색을 위해 손을 뻗어 여기저기 휘적이는 위타천의 모습은 마치 관광객 맞이용 로봇이 알로하댄스를 추는 것 같기도 했다.
결국 참지 못한 직원 몇이 푸훅하며 웃음을 터트리는 일도 있었지만, 다 들었을 것이 분명한 위타천은 미동도 없이 탐색에 열중했다.
한편, 그런 위타천을 보던 장이 생각했다.
‘직접 찾아야 하는 정보? 이런 적이 있었나?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무슨 일인지 설명하지 않고 지하에 내려갔다 오신 적도 있고······.’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 위타천을 바라보는 장의 눈빛이 깊어졌다.
#
마고는 네오-서울의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손금 들여다보듯 하는 천재 해커이자 보안 및 정보 전문가이며 네오-서울의 공공 집행자다.
네오-서울에 사는 사람 중 그녀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이가 드물지만, 실물을 본 것은 고사하고 그인지 그녀인지도 알지 못하는 이가 대다수다.
그런 마고가 나체로 눈을 뜬 곳은 특수처리된 전해질 용액이 가득한 수조 탱크였다.
그녀의 의식이 돌아오는 것을 인지한 그 즉시 뒤통수, 경추, 척추를 따라 연결되어 있던 굵은 케이블이 분리되어 수조 내부의 수납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다.
케이블이 뽑히며 만들어낸 수면의 흔들림과 공기 방울의 뽀글거림을 느끼며 마고는 수조 탱크의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백발에서 미처 털어내지 못한 전해질 용액이 방울져 떨어졌다.
“윽.”
마고가 인상을 썼다.
수조에서 나왔을 때 얼굴 피부에 닿는 공기의 느낌은 아무래도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수천 번이나 겪은 일인데도 그랬다.
마고에게는 아무래도 네트워크 안이 편했다.
그것은 그녀가 어릴 적 견학을 하러 간 반도체 공장의 폭발사고에 휘말려 살아난 뒤, 의식을 전자화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 후로 늘 그랬다.
심지어 동조할 수 있다면 타인마저 전자화한 자신의 의식 공간을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했다.
안드로이드마저 특수한 기기를 사용해서 접속해야 하는 네트워크를 마고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뛰어들 수 있었다.
밖으로 나와 몸을 닦고 옷을 입은 마고가 수조 탱크를 바라보았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의식을 전자화해서 네트워크에 머물면 신체와 의식의 유리화遊離化가 일어난다.
의식은 네트워크를 떠돌고, 의식을 잃은 신체는 그대로 썩어들어가는 것.
수조 탱크는 전자화한 의식과 신체의 간극을 메워 더욱 장시간 네트워크에 머물면서도 신체의 생명 신호를 예민하게 잡아내 이상을 체크하는 기기였다.
마고의 가능성을 알아챈 네오-서울 시청 지원의 결과로, 마고는 자기가 이용될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공공 집행자까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기를 지원받은 마고가 처음 한 일은 네오-서울 시청 전산망에 침투해 자신에 대한 기록을 모두 지우고 관련된 이들을 모두 한직으로 보내버리거나 퇴직시키는 일이었다.
옷을 입은 마고가 너저분한 방을 둘러보다 며칠 전 먹다 남겨 말라비틀어지기 일보 직전인 핫도그를 발견했다.
“빌어먹을 인간 몸뚱이. 나무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방에 햇빛만 들게 하면 됐잖아. 몸뚱이는 알아서 광합성하고 의식은 네트워크에 있고.”
마고도 엽록소 주입 수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폭발로 인해 뇌에 박힌 수많은 반도체 소자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기에 아쉬운 마음을 접어야 했다.
며칠 전 자신의 베어 문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핫도그를 들고, 마고는 테라스로 나갔다.
그녀의 집이 있는 곳은 대림 에어리어만큼은 못하더라도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한 네오-서울 북동 에어리어의 공장단지였다.
누군가가 수조 탱크를 가동하는데 필요한 막대한 양의 전력에 의문을 품더라도 공장을 돌린다는 이유로 무마하기 좋았기 때문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공장 가동음을 들으며 마고가 핫도그를 씹었다.
“으앗!”
소시지인 줄 알고 입 안의 혀를 씹은 마고가 비명을 질렀다.
감히 자신을 트라이포드인지 뭔지 하는 집단으로 의심한 오메가를 떠올리며 벌어진 참사였다.
“젠장!”
열이 잔뜩 오른 마고가 손에 들고 있던 핫도그를 아래쪽으로 던져버렸다.
“내가 그런 비밀 조직의 수장이면 이렇게 궁상맞게 살겠냐고! 비싼 물건 사면 소득 증명하라고 할까 봐 최저가나 검색하는데!”
네오-서울 공공 집행자들은 상당한 고소득자였다.
용병 시절의 저금액도 있긴 하지만 위타천이 강남 에어리어의 자택을 대출 없이 사들인 것, 노덴스가 운영하는 언더 스카이 파티 도장의 신체 단련 기구가 분기별로 최신형으로 바뀌는 것, 나다가 휴가를 받아 피규어 매장에 가면 ‘여기부터 저기까지 달라능’이라는 말로 피규어를 휩쓰는 것으로 모자라 초회 한정 초고가 피규어 예약자 목록에 항상 나다가 있다는 것 등등의 일화가 그것을 증명했다.
마고 역시 그들만큼은 벌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녀의 진짜 신분이 비밀인 만큼 주위의 이목을 끄는 일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네트워크와 가상공간에서는 절대자에 가까운 위엄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마고는 불규칙한 식사로 인해 신체 곳곳에 위험 신호가 발견되는 백색 머리 여성일 뿐이었다.
그러니 미리 만져서 이리저리 분산해둔 비밀 계좌는 날로 든든해져 가지만 정작 그걸 사용할 수가 없었다.
점차 불만이 쌓여가던 도중에 오메가로부터 받게 된 의심은 마고를 분통 터지게 하기 충분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투잡을 하고 있다. 이거지? 그것도 지키라고 앉혀 놨더니 뒤로는 호박씨 까면서? 쌍끌이로 돈 버는 것도 열 받는데 방법도 너무 추잡해. 감히 나한테 그런 의심이 오게 한 것만으로도 절대 용납 못 해.”
중얼거리던 마고가 옷을 휙 벗어 던지고는 수조로 뛰어들었다.
#
“오메가는 대림 에어리어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해결사이다. 세부적으로는 알기 힘들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의뢰를 여럿 해결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네오-서울의 유력자들과 친밀한 관계라고 한다. 공식적으로 그가 모습을 드러낸 사건은 대림 에어리어 폐교 충돌 사건, 흡혈귀 회합, 영동대교 마도공학 유물 탈취 시도 사건, 루트 빌딩 진입 차단 사건 등등이······.”
패드를 들고 읽는 앨리스에게 물었다.
“너 뭐하니?”
“······등등이 있으며 상기 기록된 사건들의 인과관계는 파악되지 않았다. 현재는 기존 고객의 소개로만 신규 고객을 받는 것 같으니 무턱대고 찾아가는 것은 금물. 괄호 열고, 문전박대당한다. 괄호 닫고.”
“뭐 하냐니깐?”
“누가 인물 위키에 사장님 항목을 정리해놨길래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읽어드렸어요. 그런데 마지막 줄은 좀 이상하네요. 문전박대는 한 적 없는데. 분명 정중하게 거절 멘트하지 않았나요?”
“너는 정중했는데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상처를 입었나 보지. 그런데 인물 위키는 뭐야. 그런 것도 있어?”
“여기 올라가면 그래도 좀 인지도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죠. 안 되겠어요. 마지막 줄은 제가 가서 수정해야겠어요. 내가 언제 문전박대 했다고? 이런 게 허위사실이지.”
“그런 거 할 시간에 나온 거 뭐 없냐고 쪼아봐. 쪼아야 할 곳 많잖아. 마고, 위타천, 루트, 샌디 비치. 이게 다 인가?”
“이미 연락 한 번씩 다 돌렸어요.”
“위타천한테도?”
“거기 빼고요. 위타천 님은 사장님이 좀 맡아주세요.”
위타천은 왜 안 쪼았냐고 뭐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아무리 앨리스지만 상성이라는 게 있지 않겠나.
내가 봤을 때 위타천은 가연을 빼면 누구를 가져다 붙여도 상성 우위일 거다.
“알았다. 내가 해 볼게.”
귀걸이를 조작하려는데, 통신이 걸려 왔다.
위타천이었다.
바로 받아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타이밍 좋네요. 뭐 나온 거 있을까요?”
-야타가라스 건은 아니고 다른 일 때문에 연락했네.
“말씀하세요.”
-후배, 색승과 마주한 적 있었지?
“네. W······, 아니 렙틸리비아에서요.”
WSS에서 색승을 잡아다가 스콰이어가 관리하는 렙틸리비아에 넘겨줬다.
그런데 WSS 건은 진오와 샴록이라는 범죄자들이 얽혀 있기도 하고 그때 민망한 단어를 온 사방에 외치고 다닌 탓에 공식적으로는 내게 있어 그때 일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색승과의 만남은 렙틸리비아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하는 게 옳았다.
“갑자기 색승은 왜 찾으시죠? 죽었······아니 실종 상태 아니었던가요?”
-색승의 스승이 네오-서울에 들어온 게 확인됐네.
“네? 스승이 있어요?”
-나르시스. 역시나 밀교승이네. 제자와 달리 극악무도한 범죄자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치정문제를 달고 사는 작자라네.
“그런데 그 밀교승 얘기를 왜 저한테······.”
-네오-서울에 들어오기 위한 명분이 제자의 실종을 찾는다는 것이었으니 접점이 있는 후배를 찾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아 귀띔하는 것이네. 가능하다면 색승의 뒷배를 추적할 수도 있지 않겠나?
스승은 아직 모르겠지만 색승은 확실히 트라이포드에 속해있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접촉해온다면 캐내 보겠습니다.”
-고생하게.
#
기계 교단의 성지이자 성당이 위치한 대림 에어리어 1구역의 분위기 좋은 카페.
나르시스가 커피를 마시며 자신의 앞에 앉은 이를 바라봤다.
흔하디흔한 안드로이드의 모습으로 변해있는 스펙터였다.
스펙터가 입을 열었다.
“역시 저희와 함께하시는 건······.”
“힘들 것 같군요. 아다를 찾는 것이 먼저라서요.”
“제자를 찾는 행보치고는 벌써부터 꽤 많은 일에 휘말리셨던데요.”
스펙터의 말에 나르시스는 황금빛 갈기를 뒤로 넘기며 여유롭게 답했다.
“다 저의 매력과 기술이 뛰어난 탓이지요. 누굴 탓하겠습니까.”
결국 스펙터는 참지 못하고 물어보고야 말았다.
“왜 그러는 겁니까? 굳이 파트너가 있는 상대를 노리는 건.”
“좋은 것을 물어보시는군요.”
나르시스는 진지한 눈빛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짝이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지요.”
“어째서······.”
“유부남, 유부녀를 예로 들어보지요. 그들은 일차적인 검증을 통과한 이들입니다. 무언가 매력이 있기 때문에! 극도의 경쟁시장이자 승자독식시장인 연애 시장에서 서로를 선택해 결합까지 이른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
“그러니 유한한 시간과 무한한 이성 속에서 이미 검증된 자들을 찾아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요? 굳이 부부가 아니라 커플로까지 눈을 내려서 말입니다.”
스펙터는 생각했다.
‘미친놈이다.’
나르시스의 말은 이어졌다.
“제가 여성들의 기존 짝보다 수컷으로서 우월함을 알려주는 것은 지당한 일이기도 합니다. 영웅은 호색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지요.”
스펙터는 다시 생각했다.
‘미친놈이다.’
“그리고 여성이 더 고귀할수록 저는 더 큰 희열을 느낍니다.”
나르시스가 손목에 차고 있는 통신 디바이스 겸 염주를 투사 모드로 전환한 다음, 테이블에 사진 두 개를 투사했다.
“네오-서울에 계신 분들 중 이분들은 다른 분들보다 제 관심을 많이 끌더군요. 이미 짝이 있는 것 같으니 제 조건에도 딱 들어맞고요.”
위타천과 가연의 약혼 발표 때 찍힌 가연과 신시아의 사진이었다.
스펙터는 강력하게 생각했다.
‘세상 많은 미친놈 중 가장 미친놈이다. 엮이면 안 된다.’